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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감사하는 사람 (살전 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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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선지자는 "만군의 여호와께 감사하라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고 말씀하였습니다.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은 선하시고 인자하시기 때문 에 우리는 당연히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감사는 보다 근본적입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감사를 드리는 것은 가장 기 본적인 도리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지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은 피조 물로서 너무나도 당연한 도리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므로 하나님께 대한 감사를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 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 이 어두워졌다"고 바울 사도는 지적하였습니다. 이러한 모습이 타락한 인간의 모 습입니다. 타락한 인간의 대표적인 모습이 바로 하나님께 대한 감사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러기에 바울 사도는 오늘 말씀을 통하여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 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감사에 대하여 강조하 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감사의 사람 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의 많은 인물중에 감사의 사람으로 대표적인 사람이 바울 사도입니다. 바울은 진정 감사의 사람이였기에 오늘 하나님이 사도로서 우리에게 "하나님께 대한 감사"를 명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에는 하나님 의 사람 사도 바울을 통하여 "감사"의 모습을 생각하며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 다.

 1.감사의 사람 바울.

 "범사에 감사하라는 바울은 본인이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적으로 볼 때 바울은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형편은 아니었습니다. 사도 바 울의 감사의 특징은 다음 두 가지입니다.

1)도무지 감사할 수 없는 환경이였습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대로 바울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지독히도 박해했던 사 람입니다. 바울은 초대교회에 있어서 박해자의 대표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 에서뿐만 아니라 기독교 역사에서 처음 순교한 사람은 스데반입니다. 스데반집사 가 돌로 맞아 순교할 때, 뒤에서 조정을 한 사람이 바울이 이였습니다. 스데반을 죽게한 바울은 살기 등등하여 더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외국에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으려고 다메섹까지 가는 열심을 가졌습니 다. 바로 바울은 다메섹에 있는 성도들을 잡으러 가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 습니다. 그리고 변화되어 박해자에서 복음전파자가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바울은 죽음과 마주쳐야 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바울이 예수 믿게 된 몇일 후부터 유대인들은 바울을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광주리를 타고 도망하여야 했습니다. 안디옥 교회가 바울을 선교사로 파송하였습 니다. 그때 바울은 곳곳에서 환영을 받기도 했지만 가는 곳마다 거의 매번 핍박 을 받았습니다. 비시디아 안디옥에서는 유대인들이 성내의 유지들을 선동하여 바 울을 핍박하여 그지역에서 추방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루스드라에서 바울은 무리 에게 돌로 맞고 거반 죽은 상태에서 짐짝처럼 성 밖으로 끌려나가는 어려움을 당 하기도 하였습니다. 빌립보에서 바울은 매를 많이 맞고 옥에 갇히기도 하였습니 다. 바울이 당한 고난을 우리는 이루 다 말할 수 없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당한 고난을 고후11:23-27절에 다음과 같이 간증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군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 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번 죽을뻔 하였으니 유 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번 맞았으며 세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 로 맞고 세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 험 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 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번 자지 못 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러한 바울의 환경은 늘 불평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고 도무지 감사할 수 없는 환경이였습니다.

 2)극도의 역경에서 바울은 감사드렸습니다.

바울 사도는 도무지 감사할 수 없는 극도의 상황에서 감사하였습니다. 감사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감사한 바울의 모습을 우리는 성경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16:25절에 보면 바울은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빌립보에서 복 음전파는 크게 성공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어느 곳에서 보다도 바울은 많은 박 해 를 받았습니다. 빌립보에서 많은 매를 맞고, 쇠고랑을 찬 상태에서 깊은 감옥 에 갇혔습니다. 이러한 처지에서 바울은 박해하는 자들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하 나 님께 감사의 찬송을 드렸습니다. 또 바울은 복음을 전파하다가 죄수의 몸이 되 어 로마로 재판을 받는 죄수의 몸이 되어서 로마로 호송되게 되었습니다. 바다에 서 배가 폭풍우를 만나서 14일동안 먹지 못하고, 표류하게 되었습니다. 그후에 음 식 을 먹게 되었을 때, 음식을 앞에 놓고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축사"했다 고 했습니다. 즉 죽음의 위기에서도 감사한 것을 보게 됩니다.

 진정으로 바울은 감사할 수 없는 환경에서 하나님께 감사한 사람입니다. 우리 도 바울처럼 좋은 환경에서뿐 아니라 역경에서도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 것이 그리스도인의 참된 모습입니다.

 2.감사의 비결.

 도무지 감사할 수 없는 환경에서 범사에, 특히 역경 중에도 바울이 감사한 비 결 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앞에서 말씀드렸습니다만 바울은 불신자의 죄악 중에 하 나 가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는 것임을 지적하였습니다.(롬1:20-21) 하나님 께 로부터 지음받은 인간이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은 당연한 도리입니다. 철학자 데 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했습니다. 내가 생각한다는 것 은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인간은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나는 존재한다 고로 감사한다."해야 하니다. 사람은 누구나 만물을 창조하시 고 나를 창조하사 나로 존재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합니다. 내가 살아있다 는 증거가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즉 내가 다른 이유에서도 하나님께 감사 를 드려야 하지만 뿐만 아니라 내가 지금 살아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감사를 드려 야 합니다. 내가 살아있는 것이 곧 감사의 근거입니다.

살아있는 사실 자체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모든 사 람 들은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만큼 감사하지 못한 죄악을 범했습니다. "의 인 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말씀 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배은망덕의 죄가 포함되 어 있습니다. 이 배은망덕의 죄는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 해결됩니다. 예수 그 리 스도 안에서 범사에 감사한 비결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합니다." 이럴 때에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다.

 성도는 모두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성도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기 때문 에 있기 때문에 감사할 수 있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리스도 예수 안에는 생 명 이 있기 때문입니다. "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 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여기서 "영생'은 죽어서 누리는 생명만이 아니고 현 세 와 내세에 누리는 참된 생명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무슨 일을 만나도 모든 일이 합력하여 항상 선을 이루도록 되어 있 습니다. "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 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환란도 선을 이룹니다.

환 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을 소망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롬5:3-4)

시련 중에도 감사할 수 있는 것은 시련이 우리 속에서 불순물을 제거하여 영생 을 붙잡는 믿음을 순근으로 제련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 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 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 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함이라"(벧전1:6-7)

감사라는 영어(Thandkfulness)는 본래 생각(Thinkfulness)에서 나왔습니다. 즉 감 사함은 생각함에서 나왔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받아 누 리 고 있는 영생의 복들을 생각해보면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박애주의자 몬 테 피오레 경은 "생각하라 그리고 감사하라"는 것을 가훈으로 삼았습니다. 하나님 의 모든 은혜를 생각하면 역경 속에서도 감사가 저절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여 호 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시116:12)

사람들을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당연히 받을 것으로 생 각 하는 사람들과, 모든 것을 감사하게 받는 사람들이 그 두 종류입니다. 그리스도 인 은 아무것도 당연히 받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받는 자 들 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 입 니다.

 3.감사를 삶의 모습으로 합시다.

 " 범사에 감사하라"고 한 바울 사도는 교회들에게 말씀을 전할 때마다 서두에서 는 반드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어떤 말씀에서는 감사라는 말이 없이만 은혜와 평강을 축원하므로 사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감사는 바울 사도의 편지의 스타일뿐만 아니라 바울 사도의 삶의 스타일이기도했 습니다. 우리도 감사를 삶의 스타일 즉 삶의 모습으로 살아야 합니다. "감사는 그 사람의 삶의 스타일이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우리는 범사에 감사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다음 주일 추수감사절을 지킵니다. 한 해동안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 리게 됩니다. 우리는 감사절에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어려울 때도, 평안할 때 도 항상 감사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섯살 짜리 아이가 식사 초대를 받아 이웃집에 갔습니다.모든 사람들이 식탁에 둘러앉았을 때 그 아이는 놀라고 말았습니다. 그 아이가 솔직하게 "모두들 식사 하실 때 기도하지 않으세요"라고 하니까 주인은 "우리는 기도하는 시간을 갖지 않는다"고 얼버무렸습니다. 그때 아이는 "여러분은 우리 개를 닮았네요. 우리 개 는 밥을 주면 그냥 시작해요"라고 말했습니다. ] 식사 때 기도하지 않는 것은 개 의 삶의 스타일입니다. 성도는 식사 때만 아니라 범사에 감사하는 삶의 양식을 가진 자입니다. 이러한 삶을 이루는 것이 우리는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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