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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말씀으로 산다 (신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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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삽니까'라고 묻는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시 겠습니까 아마, 이 대답을 하려면, 먼저 사람은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 하는 것부터 말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인간이 무엇인가'라고 하는, 인간에 대한 본질적인 이해를 가질 때 거기에 따라서 그 사람의 인생관 과 세계관과 종교와 신앙이 다 영향을 받게 될 것입니다. 창 2:7에 보 면 하나님게서 인간을 지으실 때에 흙으로 육체를 조성하신 후, 생기를 불어 넣어 '생령'이 되게 하셨다고 그랬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물질적 인' 육체와, '물질적인 것이 아니' 생령, 즉 영적인 요소로 구성되었다 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간은 물질적인 것과 영적 인 것이 다 충족되어야만 살 수 있습니다.

또, 여기에서 '산다'라고 하는 것은 생명이 유지되는 것을 의미하는 데, 우리의 생명이 유지 되려면 주선 '떡이'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육을 가지고 사는 동안 먹지 않고는 살 수 없습니다. 옛날 엘리 야와 같은 하나님의 선지자도, 먹지 않고는 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릿'시냇가에 숨어 있으면서, 그 시냇물을 마시고, 또 매일 같이 까마귀가 물어다 주는 떡과 고기를 먹고 살아갔다고 하였습니다(왕상 17:1-).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도 별수 없이 먹어야만 살았습니다. 하 나님이 그를 먹여 살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주리시고 목마르시고, 또 피곤하셨을 때가 있으셨는데, 그는 육신이셨기 때문에 그랬습니다(요 4:6). 그렇다면 결국 '사람은 떡으로 산다! 떡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 다!' 그렇게 대답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떡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우리에게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 4:4)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사는 것은 '떡으로만'이 아니라 인간의 자연적인 생명은, 사실상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고, 유지되고, 지속되고, 번영한다고 하시였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육을 무시하고 영의 우월함을 주장한다던지, 혹은 인간이 물 질을 거부하거나 포기해야 한다는, 그런 뜻으로, 하신 것은 아니라고 생 각합니다.

오늘 읽은 신명기 8장은, 이 말씀의 역사적 배경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역사적 배경이란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생활 40녀 의 경험인 것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 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생각해 보라!'그랬습니다. 이 광야 40년이 란, 우리의 '인생길'인데, 우리도 지나온 과거를 돌이켜 생각하며 본다 면, '과연 무엇이 나를 살게 하였나 또 나의 생명을 유지하게 했던 것 이 무엇이였는가'하는 것을 생각해 봅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무엇으 로 살아 왔습니까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에 의하여 유지되어 왔다고 생 각합니까 무엇이 과연 내 생명에 가장 중요한 것이였습니까 우리는 이런 전제를 가지고,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40년을 생각하여 봅니다. 그런데 아마 그 사람들에게 그때에 가장 절실히 필요했던 것은 빵이였을 것입니다. 육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먹는 것이 가장 절실 하고 심각합니다. 지금와서 우리나라는 먹는 문제 만큼은 거의 해결되 었기 때문에 잘 느끼지 못할찌 모릅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사회 구 석구석에는, 그리고 아직도 이 지구상에는 먹는, 빵의 문제가 절실한 사 람들이 허다히 많습니다. 지금 이 싯점에도, 저 아프리카의 이디오피 아, 수단같은 나라 그리고 방글라데시같은 나라에는, 식량이 절대부족하 여, 굶어 죽는 사람이 하루에 약 6만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 면 어떤 나라는 너무 많이 먹어 체중을 조절하고, 성인병을 걱정하는 사 람도 많습니다. 미국사람 혼자 먹는 칼로리가 아프리카인 70명이 먹을 분량이라고 합니다.

또 지금 일어나고 있는 '걸프전쟁'같은 것을 보면, 미사일 1개가 대략 100만불이라고 하며, 하루 전비가 평균 2억불이 든다고 하는데, 이것을 석유 때문에, 혹은 패권과 세력을 쥐는 것 때문에 소비하고 있습니다.

(사람 죽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이런 것을 생각하면 부자 나라와 가난한 나라 간에도, 얼마나 비도덕적이며, 비양심적인가를 생각치 않을 수 없습니다. 만일 하루만 전쟁을 안하고, 그 전쟁비용을 아프리카사람 들에게 식량을 사준다면, 아마 그 굶주린 사람들이 몇개월 혹은 몇년을 잘 먹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도 전에는, 먹지 못해 굶주린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우리 인간은 지금 먹는 것 때문에도 얼마나 많은 죄를 짛고 있는가 그걸 느낍니다.

그런에 광야에 있는 이스라엘 민족, 그들은 어땠습니까 60만이 그 아무 것도 없는 광야로 나오게 됐습니다. 그들은 빵문제를 해결할 아무 런 계획이나 대책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하루 이틀도 아닌 40년이였습 니다. 그러니까, 인간의 생간으로는 그들이 산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 한 일이였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힘이나 능력으로 생명을 유지하기가 (살기가) 도저히 불가능했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오랫동안, 그런 곳에서, 뭘 먹고, 어떻게 삽니까 여기서 모세는, '너희들을, 하 나님게서 지난 40년동안 광야에서 어떻게 인도하셨는지 생각하여 보라!' (신 8:2)고 하였습니다. 과연 무엇이 그들을 살아 갈 수 있게 한 것일 까 저는 '우리의 광야생활'도 한번 돌이켜 봅니다. 우리나라의 저 구한말 때부터 일제시대, 그리고 광복, 6.25,

1.4후퇴, 서울복귀,

4.19,

5.16, 그 이후 지금까지 살아 온 경로를 생각하여 보면, 우리는 무엇으로 살았 습니까 여기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굶주리고 있을 때, 그리고 그들로서는, 속수무책이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조상들이 전에 먹어 보지 못한 만나를 주어 먹고 살게 하셨다.'(3)그랬습니다. '만나'가 그 들을 살려 주었습니다. 그러면 그 만나가 무업니까 그리고 그것은 무 슨 의미입니까

1. 우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만나'라는 떡은 처음 보는 것이요, 아무도 경험해 보지 않은 신비스럽고 기적적인 양식이였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곡식을 심어, 추수하여 자기들이 만든 음식이 아닙니다. 이것은 자기들의 노력이나 지혜로 얻은 것이 아니였습니다. 이것은 전에 자기 들의 조상들도 보거나 먹었던 것이 전혀 아니였습니다. 모두가 다 처음 보는 음식인데, 그래서 그들은 그 처음보는 음식을 보고, 도대체 '이게 뭐냐'라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즉 만나는 그들이 전혀 모르는 것이였 습니다. 그것은 기적이요, 신비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만나를 먹 고, 장장 40년을 살았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우리의 인생은 매일 하나님의 기적과 신비 속에서 산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살게 하시고 또 살려 주시 고, 그 생명이 유지되게 하여 주십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하나님 의 은혜입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과 그 은총속에 살아 왔습니다. 그 분의 은총이 우리의 생명을 유지하고, 지 속시켜 주셨습니다. 우리의 육신은, 빵으로 살지만, 그러나 성경은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 을 얻었다할가 하노라'그랬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 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니라'(8:17)고 하셨습니다. 그가 우리를 살려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가 가진 재물이나 소유에 대하여 자만하지 맙시다.

또 내가 이룬 업적이나 공로를 자랑하지 맙시다. 또 내가 이룬 업적이 나 공로를 자랑하지 맙시다. 내 지위나 명예나, 능력만 믿지 맙시다.

그런 것이 내 생명을 유지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을 가지게 하고, 이루게 하신 하나님이 나를 살게 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대하는 식탁도 평범히 대하지 말고, 하나님이 나에게 내리시는 기적과 신비로 대하며, 감사하여야 할 것입니다. 밥 한그릇도, 내 힘으로, 내 능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또 내가 이룩한 공 로나 성공도, 나는 모르는 것인데,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살게 하여 주 신 하나님게서 이뤄 주신 것을 믿고 감사하여야 하겠습니다. 내가 건강 하게 사는 것도,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것도 내 힘이나 능력 으로 되여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사에 내가 그것을 '처음 보는 것'처럼 , 내가 전혀 '모르는 것'처럼, 그러한 신비와 감격과 기쁨 그리고 감사를 가지고 살 아가야 될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우리의 생명이 유지되고 지속된다는 것은, 전부 다 기적입니다. 우리에게 먹을 빵이 있어서, 그 빵으로 사 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가지게 하시고, 나로 하여금 먹게 하신 하나님 때문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말씀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에 의하 여 산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나를 살게 하여 주심을 믿고, 감사하고,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2.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생활의 경험은 그들을 무한히 '낮추는'경험이 였습니다.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8:2이하)고 했습니 다. 사람이 처하여 사는 상황이나 환경은, 그 사람의 본심을 알게하는 시금석이 됩니다. 그 사람이 화가 났을 때, 그 사람이 굶주렸을 때, 그 사람이 실패했을 때, 자유를 빼았겼을 때, 그 때 '그가 어떻게 하는가' 그것을 보아서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민족의 고아야의 경험은, 그들이 하나님께 순종하는지, 아닌지를 시험하 는 기회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본심을 알기 위하여, 그들이 광 야에 있게 하셨고, 또 그들이 굶주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면, 그 본심이 들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땠습니까 과연 그들의 본심은 어땠습니까 광야 길에 지 친 이 사람들은, 원망과 불평만 했습니다. 그들이 애굽군대에게 추격을 당했을 때에,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출 14:11)고 아우성을 쳤습니다. 그들이 마실 물이 없을 때에, 그들은 물때문에 아우성을 치고 원망했습니다.(출 15:24) 또 이들이 먹을 것이 없을 때에 '우리가 애굽땅에서 고기가마 곁에 앉았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면 좋았 을 것을'(출 16:3)하고 원망했습니다. 그리고 또 그들은 '만나만'먹고 는 못살겠다고 불평하였습니다. 그런데 백셩들의 이러한 원망과 불평 은, 결국 다 하나님께 향한 불평이였습니다.(출 16:8이하) 감사는 없고 불평을 발하는 본심이 들어났습니다. 이스라엘을, 천국백성으로 훈련하 시는 하나님은, 이 사람들이 이런 처지에서도 나를 섬기고 내 말을 듣고 순종하는가 그것을 보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본심은 다 '불신앙'적이였습니다. 도대체 사람은 무 엇으로 살아야 합니까 무엇이 위주가 되고 무엇이 중심이 되야 합니 까 우리는 왜 흔들리고, 떨어지고, 원망하고, 거역합니까 그것은 아 직도 아직도 우리가 더 낮아지지 아니해서 그런 것같습니다. 더 훈련 받지 않아서 혹은 더 혼이 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지금 이 신명기서 에서 보면, 여기서 하고 있는 말은 그들의 '과거지사'입니다. 그들이 이 일을 다시 생각하여 볼 때에, '자기들이 얼마나 어리석었느냐' 그것 을 알라는 것입니다. 과거를 보고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들을 낮추시려고 하시는데, 그들은 높아지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 들에게 모든 명령을 성실히 준행하라고 하시는데, 그들은 모두 거역했습 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명령과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하는데, 각자 가 처한 상황과 환경에 따라서, 그대로 못할 때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러나, 그 때 하나님은 우리를 보십니다. 우리가 실제로 그 명령에 순종하는지 아닌지, 그 여부를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바로 그 사람이 그 때에 그 입장에서, 성실히 모든 명령을 순종하 는 것, 그것을 보기를 원하십니다. 배가 고흘 때, 목이 마를 때, 위험 한 고비에 직면했을 때, 내게 아무런 만족함이 없을 때...그런 때에도, 여전히 그가 말씀을 따르고 있는가 그것을 하나님은 보십니다. 말씀 으로 산다는 것은 바로 이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40일을 금식하시고 당하신 시험이 바로 그것입니다. 극도로 주리신 예수님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떡이였습니다. 그에게는 돌이 떡이 되게 할 수 있는 능력도 있으십니다. 그러나 주님은 돌로 떡을 만 드신 것이 아니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말씀으로 삽니다.

그걸 믿고, 그 편을 택해야 합니다. 말씀이 생명의 양식입니다. 육을 위해 밥을 먹지 않으면 않되는 것같이, 우리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 그 어떤 때라도,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그래야만, 살 수 있을 것입 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삽니다! 인간은 환 경조건만 좋으면, 과영 잘 살 수가 있는 것입니까 환경이 문제다, 조 건이 문제다, 소유가 문제다 모두 그럽니다. 그러나 보십시요! '어느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여, 곡식을 쌓아 둘 곡간을 크게 짖고,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고, 편안히 쉬고 먹고 즐거워 하자!' (눅 12:16F) 그랬습니다. 그는 그것이 자기를 잘 살게 하고, 자기의 생 명을 길이 길이 행복하게 유지해 줄 줄로 알았습니다. 그의 환경조건은 완벽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환경과 조건이 좋아도 말씀을 떠나면 소 용없습니다. 다만 말씀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 길이 제일 좋은 길이고 복된 길입니다.

 3. 우리는 이 말씀에서 한 깨달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본문의 말씀 은 '모세의 설교'입니다. 그는 지나간 역사를 회고하면서, 그 일을 겪 어 보지 아니한 세세대의 사람들에게 교훈을 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뜨 거운 심정으로 아무 것도 모르는 젊은 세대에게 당부를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사는 것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 을 그는 가르치고 있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며, 그 말씀 만을 따르는 생활을 할때, '네가 살 것이다.' '네가 명하는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며,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 을 얻을 것이다.' 또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는 너희들의 행복을 위하여 주신 것이다.'(신 10:13)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살기를'원하고 있습니다. 살되, 누구나 '잘 살 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무엇이 과연 잘 사는 길입니까 여기서 우리 는 다시 한번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우려 봅시다. '썩는 양식을 위하 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 가 너희에게 주리라'(요 6:27)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그 양식, 그것을 먹는 자가 가장 잘 살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 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 6:35)고 하셨고 또 주 님은 '당신이 하늘로서 내려 온 떡인데 사람이 이 떡을 먹고, [죽지 아 니하게] 하는 것이라.'(요 6:50)고 했습니다. 그 떡을 먹는 자가 죽지 않고 생명이 유지됩니다.

이스라엘의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 은 이미 다 죽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않는 떡]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그가 참된 만나이십니다. 우리는 '생명 의 떡'이신 예수로 인해 삽니다. 그 떡을 우리는 언제나 먹음으로 생명 이 유지될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예수를 믿고, 우리가 그 안에 살 며, 우리가 그의 모든 말씀을 지키고 따르며, 또한 우리가 그의 명령과 의무를 성실히 그리고 끝까지 수행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결론은, 여러분 예수 잘 믿으시라는 겁니다. 우리의 사는 날 동안, 끝까지 교회를 떠나지 않고, 하나님을 진실히 섬기며, 그 자녀와 후손들 이 모두 믿음을 비키는 사람들 그 분들은 참으로 '잘 사는' 사람들인 것 입니다. 나는 이것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의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 146:5)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신앙을 잘 지키 지 못하는 사람들, 교회를 쉽게 떠나는 사람들, 그 자녀와 후손들이 믿 음을 등한히 하는 사람들...그들은 모두 잘못되고, 잘못 사는 것을, 또 한 획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오직 말씀으로 삽니다.

그러므로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이러한 신앙으로 모두 살아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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