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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황폐한 예루살렘을 택한 사유 (스 2,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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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부시맨의 주인공인 니카우씨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가 있었다.

그 대화중에 기자가 물었다.

"문명 사회에 와 보니 좋은 점과 불편한 점이 있을텐데 어디가 더 살기좋습니까" 라고 물었더니 "여기도 좋지만 살기 편하고 더 좋은 곳은 집이 있는 칼라하리사막입니다" 라고 했다.

 누구에게나 다 돌아 갈 고향이 잇다.

나라가 있다.

 70여년의 긴긴 세월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의 포로로 비참한 생활을 하는 동안 고국 예루살렘에 세워졌던 성전은 오래전에 소실되었고 이제 그 빈 성전 터에는 잡초만이 무성했었다.

 그 70년의 역사 가운데 바벨론은 또 메데와 파사에게 무너지고 또 메데 파사는 다시 파사가 지배하는 등 많은 역사의 변화가 있었다.

 포로 70년이 되는해 정확하게 파사왕 고레스는 나라에 해방령을 선포하 였다.

 1,선택

이 해방령은 어디까지나 고레스 왕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감동으로 하게 되넜던 것이다.

 그러니만큼 이 해방령에는 조금도 강제성이 없었다.

 고국으로 가고 싶은 사람들은 가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각기 자유로이 선택을 하도록 했던 것이다.

 이스라엘백성은 그들의 의사에 따라 파사나라에 머물수도 있고 고국으로 귀환할 수도 있게 되었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은 자유로운 귀환령이 내렸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귀환령을 따라서 예루살렘으로 갔는가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이스라엘백성들이 출애굽할때에도 그 출애굽한 사람들의 수효를 기록했었다.

그때 출애굽한 사람이 장정만 6백 3십만명이었다.

 그럼 지금 이스라엘이 포로에서 귀환령을 받았을 때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귀환을 했는가

64절에 "온 회중의 합게가 사만 이천 삼백 육십명이요" 65절에 "그 외에 노비가 칠천 삼백 삼십칠명이요 노래하는 남녀가 이백명이요"

그러니 그 합계가 사만 구천 팔백 구십명이었다.

오만명도 채 못되는 극히 적은 숫자였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할 때에도 장정만 육십만이 넘었는데 지금은 그때만 비교를 해도 12/1 도 안되는 너무도 적은 수효이다.

 저는 이 본문는 보면서 깜작놀랐었다.

한참 정신 없이 멍하니 있었다.

 백만명도 더 될 많은 사람들이 어찌하고 이렇게 적은 수효만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는 것일까 하고...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고향으로의 귀환을 포기했는가...

 저들이 예루살렘으로의 귀환을 포기한데는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

 스1;1-3절이 그 이유를 잘 설명하고 있었다.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저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가로되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나를 명하사 유다 예루살렘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무룻 그 백성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거기 있는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라 너희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고레스왕이 왜 귀환령을 선포하게 되었는가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감동시켰기 때문이다.

 그럼 하나님께서는 무었때문에 이런 일을 하게 하시었는가

무너졌던 성전재건을 위해서였다.

황폐케된 하나님의 집을 다시 세우기 위해서였다.

 여러분 ! 놀랍지 않은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 중에 불과 오만명만 귀환을 했다니 참으로 롤랍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입으로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했었다.

매일 매일 형식적인 예배도 들였을 것이다.

 저들이 70년의 포로 생활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옳바로 섬기지 못했기 때문임을 몇 번이고 고백도 했었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본국으로의 귀환령이 내려지니 불과 오만명도 않되는 사람들만이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었다.

 아마도 파사나라에 그대로 주져 앉은 사람들은 70년의 긴 긴 셰월 동안에 아에 그곳에 정이 들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예루살렘으로 돌아 갈려고 하지 않았다. .

 더 결정적인 이유는 지금 예루살렘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황폐되어 있었다.

물론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도 못되는 형편이었다.

 만약의 경우 예루살렘으로 돌아 간다면 그냥 자신들의 집을 짖고 산다는 것도 어려운데 무너진 하나님의 집인 성전을 건축한다는 일은 상상도 하기 힘들만큼 더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귀환을 포기하고 세상을 택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황폐한 예루살렘 성전을 위하여 다시 말하면 자기 자신의 행복 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기쁘게 선택한 사람들이 있었다.

 2,보호

황폐했지만 무너진 성전에 애착을 가진 오만명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먼 길을 출발했다.

 파사에서 예루살렘까지는 대단히 먼 거리였고 험하기가 짝이 없었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를 내려 가는 길에도 강도가 출현을 하는판인데 얼마나 위험한 길인가

1;7-10절에 "고레스왕이 또 여호와의 전 기명을 꺼내니 옛적에 느무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옮겨다가 자기 신들의 산당에 두었던 것이라 바사 왕 고레스가 고지기 미드르닷을 명하여 그 그릇을 꺼내어 계수하여 유다 목백 세스바살에게 붙이니 그 수효는 금반이 삼십이요 은반이 일천이요 칼이 이십구요 금대접이 삼십이요 그보다 차한 은대접이 사백열이요 기카 기명이 일천이니 금,은기명의 도합이 오천 사백이라 사로 잡힌 자를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 때에 세스바살이 그 기명을 다 가지고 왔더라"

그것만이 아니다.

6절에도 "그 사면 사람들이 은그릇과 황금과 기카 물건을 짐승과 보물로 돕고 그 외에도 즐거이 드렸더라"

참으로 많은 은금 보화를 가지고 먼 길을 출발한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아무 문제도 없이 그 중동 광야를 건넜다는 것은 한 마디로 기적이 아닐 수 없다.

 이일이 가능했던 것은 하나님께서 시작을 하신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또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고 고생과 수고를 무릅쓰고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을 위한 위대한 결단을 하나님께 도우셨기 때문이다.

 이 일에서 우리들이 생각을 해야할 문제는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집을 위한 일에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다 참예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나 그렇지 못한 불과 적은 수효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능히 자기의 일을 하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수효가 적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많은 수효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집을 위한 결단의 사람 한 사람으로도 충분한 것이다.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슥4;9)

3,축복

오만명도 채 않되는 적은 수효였지만 하나님이 저들과 함께 하시었다.

하나님은 오늘도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 하신다.

 하나님의 일은 사람의 수효가 많다고 성사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일은 물질이 많은데도 있지 않다.

 하나님의 일은 믿음이 있는 곳에 성취가 있다.

 외냐 하면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사람을 돕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사람과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2;68절에 "어떤 족장들이 예루살렘 여호와의 전 터에 이르러 하나님의 전을 그곳에 다시 건축하려고 예물을 즐거이 드리되 " 2;69절 "역량대로 역사 하는 곳에 드리니 금이 육만 일천 다릭이요 은이 오천마네 요 제사장의 옷이 일백벌이었더라"

어떤 족장이 누구였을까

역량대로 역사하는 곳에 ...

 이는 이들이 파사제국을 떠나 올때 가지고 출발했던 금과 은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량의 금과 은이 모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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