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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에스라의 슬픔 (스 09: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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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한 사람이 죄악을 범했을 때 그 한 사람으로 끝날 수 있다면 얼마나 다행한 일일까

사악한 한 사람의 죄악은 그 이웃까지 번지게 된다.

그 범죄한 사람이 일반의 평범한 사람이 아니고 탁월한 위치에 있는 분의 경우일 경우는 그 파급의 효과가 엄청나게 큰 것이 된다.

 그것은 마치 건물의 주춧돌이 빠져 나감으로 인하여 그 집 전체가 위태하게 되는 것과 같은 결과를 가져 오게 된다.

 삼손의 경우가 바로 그것이다.

자기 한 사람의 실수로 끝나지 않았다.

 다윗의 경우도 그랬다.

다윗 한 사람으로 끝나지 않았다.(삼하12;14)

예수 믿는 한 사람의 위치가 가정과 사회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보여 줌이다.

 1,에스라의 슬픔의 원인

3절에서 6절에 에스라가 슬퍼하는 내용이 기록되 있다.

"내가 이 일을 듣고 속옷과 겉 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가 막혀 않으니 4 이에 이스라엘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떠는 자가 이 사로잡혔던 자의 죄를 인하여 다 내게로 모여 오더라 내가 저녁 제사 드릴 때 까지 기가 막혀 않았더니 5 저녁 제사를 드릴 때에 내가 근심 중에 일어나서 속옷과 겉옷을 찢은 대로 무릎을 꿇고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여 손을 들고 6 말 하기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러 워 낯이 뜨뜻하여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 이는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

우리는 이 구절들에서 에스라의 슬픔이 보통이 아님을 볼 수 있다.

 왜 무었이 이렇게 이스라 선지를 슬픔에 잠기게 하고 있는 것일까

에스라의 슬픔의 원인을 1절과 2절에서 말하고 있다.

 1-2절 "이 일 후에 방백들이 내게 나아와 가로되 이스라엘 백성과 레위 사람들이 이 땅 백성과 떠나지 아니하고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여브스 사람과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과 애굽 사람과 아모리 사람의 가증한 일을 행하여 2 그들의 딸을 취하여 아내와 며느리를 삼아 거룩한 자손으로 이방 족속과 서로 섞이게 하는데 박백들과 두목들이 이 죄에 더욱 으뜸이 되었다 하는지라"

이 말씀을 한 마디로 요약을 한다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무시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한 내용은 거룩해야할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 백성 들의 딸들을 아내와 며느리로 삼는 일이었다.

 이는 이방 여인을 아내로 삼는 장본인이나 이방의 딸들을 며느리로 삼는 그 부모나 다 같이 타락했음을 발해주고 있다.

 아들이나 그 아비나 다 같이 ....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했음을 말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을하면서도 하나님보다 이방의 여인을 더 사랑했던 것이다.

또 하나님을 섬긴다고 고백은 하면서도 이방의 여인들이 시집을 오면서 가지고 온 이방인의 신인 우상을 섬겼던 것이다.

 대대로 하나님의 말씀은 우상숭배와 이방인과의 결혼을 금지하고 있다.

 출23;31-33 "내가 너의 지경을 홍해에서부터 불레셋 바다까지 광야에서부터 하수까지 정하고 그 땅의 거민을 네 손에 붙이리니 네가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낼지라 너는 그들의 신과 언약하지 말라 그들이 네 땅에 머무르지 못할 것은 그들이 너로 범죄케할까 두려움이라 그 신을 섬기면 그것이 너의 올무가 되리라"

출34;14-16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 너는 삼가 그 땅의 거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지니 이는 그들이 모든 신을 음란히 섬기며 그 신들에게 희생을 드리고 너를 청하면 네가 그 희생을 먹을까 함이며 또 네가 그들의 딸들로 네 아들들의 아내를 삼음으로 그들의 딸들이 그 심들을 음란히 섬기며 네 아들로 그들의 신들을 음란히 섬기게 할까 함이니라"

신7;1-4 4절에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로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수23;12,13 "정녕히 알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민족들을 너희 목전에서 다시는 쫓아내지 아니하시리니 그들이 너희 올무가 되며 덫이 되며 너희 옆구리에 채찍이 되며 너희 눈에 가시가 되어서 필경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이 이름다운 땅에서 멸절하리라" 1),삼손의 경우 잠시의 향락의 결과

2),솔로몬의 경우(왕상11;1-13) 우상을 섬긴의 결과

그것도 평범한 일반 백성들만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한 것이 아니고 방백 들과 우두머리들이 더욱 으뜸이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구별되어 거룩하게 살기를 원하신다.

 고후6;17-18절에 "너희는 저희 중에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자녀의 의무가 있다.

 2,에스라의 슬픔의 깊이

다시 3-6절을 같이 보시자.

"3 내가 이 일을 듣고 속옷과 겉 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가 막혀 앉으니 4 이에 이스라엘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떠는 자가 이 사로잡혔던 자의 죄를 인하여 다 내게로 모여 오더라 내가 저녁 제사 드릴 때까지 기가 막혀 앉았더니 5 저녁 제사를 드릴 때에 내가 근심 중에 일어나서 속옷과 겉옷을 찢은 대로 무릎을 꿇고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여 손을 들고 6 말하기를 나의 하ㅏ님이여 내가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 이는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 니이다" 1),속 옷과 겉옷을 찢었다.

''''''''''''''''''''''''' 옷을 찢는 행위는 영혼의 매우 깊은 슬픔의 표시였다.(창37;29, 30, 10;11, 4

4. 삿11;35, 욥1;20)

옷을 찢었다는 것은 마음을 찢는 다는 표시였다.(욜2;13)

속옷은 개인적인 회개를 의미했다.

겉옷은 공적인 회개의 의미를 나타낸 것이다.

 옷은 사람들의 신분을 나타내었다.

 제사장은 제사장의 겉옷이 있고 왕은 왕의 겉옷이 있는 것이다.

 신분을 따라 옷을 입었다.

 2),머리털과 수염을 뜯었다.

'''''''''''''''''''''''''' 여자들이 싸울때 보면 서로 머리털을 쥐어 뜯으면서 싸운다.

한웅쿰씩 뜯겨지는 것을 보았다.

 머리털을 뜯었다.

수염을 쥐어 뜯었다.

 머리털은 면류관을 상징하고 수염은 명예를 상징한다.

 머리털을 뜯고 수염을 뜯었다는 일은 최대의 수치스러운 일이다.

 영국의 정치가요 대법원장이요 종교개혁자였던 토마스 크롬멜이 종교와 정치의 틈바구니에서 사형으로 그의 일생을 마칠때 사형 집행관이 크롬멜 에게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으면 하라고 했다.

 그때 크롬멜이 말했다.

"죄가 있다면 내 몸이 받을 것이지 내 수염이야 무슨 죄가 있겟나 내 목을 자를때 수염이 다치지 않토록 조심하도록 하라" 고 햇다는 이야기는 너무도 유명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에스라는 그의 슬픔이 얼마나 컷던지 머리털이며 수염을 쥐어 뜯었던 것이다.

 3),기가 막혀 앉아 있었다.

''''''''''''''''''''''''' 이는 아침부터 저녁가지 이렇게 앉아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방백과 우두머리들의 죄악을 보는 순간 멍청해졌던 것이다.

 4),속옷과 겉옷을 찢은 대로 무릎을 꿇었다.

''''''''''''''''''''''''''''''''''''''''' 이는 완전히 미친 사람의 모습이다.

 3,에스라의 슬픔의 기도

6-15절 이는 에스라의 간절한 기도이다.

간절한 회개의 기도이다.

1),먼저 죄를 자복했다.

''''''''''''''''''''' 에스라 자신은 결백했지만 그 자신도 공동체의 일원임을 통감하는 간절한 회개였다.

 6절 "...우리의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8-9절에서는 죽을 수 박에 없는 죄악을 죄악으로 갑지 않으시고 은혜로 되돌려 주신 것을 고백한다.

 10절에 "우리가 주의 계명을 배반하였사오니 이제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11-12절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에 대한 결단이다.

 회개만하면 무슨 소용이 있나

회개의 결과가 있어야 한다.

 13-14절은 하나님의 은혜의 회상이다.

 15절은 하나님께 대한 찬양이다.

에스라는 백성들의 죄악을 생각하면 슬프기 그지 없지만 또 회개하는 백성을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 볼 때 찬양을 할 수 있었다.

 누가복음 15장에 아들을 잃어 버렸던 아버지의 비유가 있다.

 그런데 그 아버지가 가장 슬퍼했던 때는 탕자가 그 집을 떠났을 때였다.

반대로 그 아버지가 가장 기뻐했을 때는 그 탕자가 회개하고 아버지의 품으로 되 돌아 왔을 때였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 우리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도 할 수 있고 또 하나님께 슬픔을 드릴 수도 있다.

 우리는 우리가 어떻게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할실 것을 알고 있다.

또 우리가 어떻게하면 하나님께서 슬퍼하실 것도 알고 있다.

 집 나갔던 탕자처럼 아버지 품을 생각하면서 살자.

시간을 내어 아버지를 향한 걸음을 걷자.

 회개하는 심령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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