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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큰 꿈을 가진 사람 (창 37:1-11)

첨부 1


오늘 읽은 말씀은 구약에 나오는 인물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람 중의 한 사람인 요셉의 이야기입니다.
요셉을 가리켜서 흔히 “꿈의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이상한 꿈을 자주 꾸었습니다. 그리고 그 꿈 이야기를 부모님과 형들이 있는 자리에서 하곤 했습니다.
“내가 꾼 꿈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우리가 밭에서 곡식을 묶고 있는데, 내가
묶은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을 하데요.” 며칠 후에 또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내가 또 꿈을 꾸었는데요.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을 하던데요” 형들은 동생 요셉의 꿈 이야기를 듣고 그를 미워하고 시기했지만, 그의 아버지는 그의 말을 마음에 두었다고 했습니다.
사실 요셉은 그의 꿈 때문에 형들에게 미움을 받았고, 애굽에 종으로 팔려 가는 고생을 하게 되었고, 애굽에 가서도 말로 다 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꿈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고통 속에서도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하나님과 동행하였고, 그리하여 결국 그의 큰 꿈이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사람은 꿈이 있어야 합니다.
꿈이 없는 사람은 인생을 살아가는 맛이 없고, 꿈이 없는 사람은 결국 망합니다. 반면에

1.큰 꿈을 가진 사람은 역사를 창조합니다.
내가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이냐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인류 역사상 아름다운 꽃을 피우며 살았던 사람들은 이름 없는 곳에서 살며 거기를 활동의 중심지로 삼아 그곳을 유명하게 만들었습니다.
내가 지금 있는 위치에서 어떻게 하면 꽃을 피울 수 있을까 하는 가능성을 생각하며 사는 것입니다. 우리의 처지가 어떠하든지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지금 당장 내 발 밑에 있는 가능성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요셉은 큰 꿈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가 처한 처지를 최대한의 기회로 삼은 것입니다. 그는 노예 생활을 하면서도 거기서 꽃을 피웠습니다.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수감되었으나 거기서도 그는 꽃을 피웠습니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든지 거기서 꽃을 피워야 합니다. 내가 어떤 처지, 어떤 상황, 어떤 형편, 어떤 장소에 있다고해도 나는 그것을 아름다운 꽃이 만발한 정원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창조적인 생각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지금의 위치에 놓으신 것이 실수가 아니라는 깊은 신앙을 가지고 또 활용하면 우리는 어디서나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위대한 가능성은 존재합니다. 우리 발 밑에는 금강석이 깔려 있습니다. 이 말을 믿으세요. 만일에 우리가 적극적인 생각을 가지고 우리 주위의 누군가를 도와주려고 노력하면 우리는 어디서든지 거기서 아름다운 꽃을 피울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한 뜻을 갖고 계시기 때문에 지금의 위치에 나를 놓아 두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면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22절에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편지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성도들이 너희에게 문안하되 특별히 가이사 집 사람 중 몇이니라”
여러분,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 많은 불의와 부도덕과 죄악이 있는 가이사 궁정 안에도 그리스도인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가이사의 집에 사는 그리스도인들, 왕의 학정 밑에서도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7천 명이 남아 있었습니다. 우리가 서 있는, 바로 그 곳에서 꽃을 피우는 창조의 생활을 하십니다. 기회는 먼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데, 바로 우리 발 밑에 있습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바로 지금이 훌륭한 기회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모세를 향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모세야, 네 손에 든 것이 무엇이냐” “지팡이입니다.” 그 때 하나님은 다시 말씀하십니다. “그 지팡이를 하찮게 생각지마라”
사실 모세는 그 지팡이를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 하는 데에, 아주 요긴하게 사용했습니다. 그 지팡이로 홍해를 갈라 육지같이 되어 이스라엘 민족이 건너갔습니다. 그 지팡이로 반석을 칠 때 생수가 솟아 났습니다.
내가 어디에 있든지 그 곳에서 꽃을 피우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사는 것이 필요합니다. 기회는 따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날, 모든 장소가 창조의 기회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목적과 기대를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쓰레기통이 없습니다. 해 아래 있는 모든 장소,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은 목적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2 큰 꿈을 가진 사람은 어떤 조건에서든지 최선을 다합니다.
큰 꿈을 가진 사람 요셉은 보디발 장군 집에서 종살이하면서도 최선을 다 했습니다. 청지기로 있으면서도 최선을 다 했습니다. 총리가 되었어도 최선을 다 했습니다. 성공한 사람은 누구나 우연히 된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 한 것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웅변가 웹스터(Webster)가 11분 동안에 모든 청중을 감동시키는 명연설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심취되고 감탄을 했습니다. 심금을 울리는 웅변이었습니다. 어느 기자가 “그 웅변을 준비하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렸느냐” 고 그에게 물었습니다. 웹스터는 “일생 걸렸습니다.”라고 대답 했다고 합니다. 의미 깊은 말입니다.즉흥적으로 훌륭한 웅변을 할 수가 없습니다. 오랜 세월의 노력의 바탕에서 대웅변이 나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노력은 하지 아니하고 성공의 꿈을 꿉니다. 공 들이지 아니하고 큰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벼락 성공, 벼락 부자, 벼락 출세를 꿈꿉니다. 이것은 허황한 망상이요 정말 벼락 맞을 생각입니다.
씨뿌리지 않는데, 싹이 날 리 없습니다. 공부하지 않는데, 실력이 향상될 리 없습니다.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있는 것 아닙니까 결과가 있으려면 원인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의 꿈을 이루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쉽게 살아야 좋은 것이 아닙니다. 고생을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이 성장하고 성숙해질 수 있습니다. 인생을 쉽게 살려고 하는 생각부터 버려야 합니다. 쉽게 공부하고, 쉽게 성공하고, 쉽게 부자가 되고, 쉽게 출세하고, 인생의 모든 일이 결코 그렇게 쉽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공의 길은 가시밭길이요,영광의 길은 고난의 길입니다.

3. 큰 꿈을 가진 사람은 언제나 긍정적입니다.
사람은 그 생각대로 됩니다.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무슨 일에나 긍정적으로 반응합니다. 실패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면, 자연히 그 일이 두려워지고 패배주의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실패에 대한 공포가 우리를 지배하게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불행한 것은 우리 국민의 마음 속에 패배의식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국제화시대를 도전의 기회로 삼으려는 생각보다는 오히려 많은 국민이 겁을 집어먹고 있습니다. “이젠 농사도 다 끝났다. 장사도 할 것이 없어졌다. 우리는 설 땅이 없어져 가고 있다. 우리는 결국 역사의 낙오자가 되고 마는 것인가 국내적으로 볼 때 사회적 부정부패를 어떻게 제거하느냐 새 정부가 아무리 애써서 해 보노라고 하지만 달라지는 것이 없는데, 한국 사회에 창궐하는 여러 가지 사회악을 어떻게수술하느냐 우리 분에넘치는 망국적인 사치와 소비와 허영과 향락 때문에 우리는 결국 역사의 제물이 되고, 사회의 패배자가되고 마는 것인가” 이러한 어두운 풍조와 패배의식이 우리 국민의 마음 속에 파다하게 만연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패배의식에 사로잡혀있는 사람들에게서 어떤 현상이 나타납니까
이런 사람들은 숙명론의 노예가되기 쉽습니다. 모든 일이다 그렇게 운명지워져 있기 때문에 별 도리가 없다고 합니다.
모든 게 팔자소관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들은 개척이나 전진을 위해서 노력하는 것을 포기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무사안일주의자가 되어 버리기 쉽습니다. 내일에 대한 비전과 계획이 없이 그날 그날을 무사안일 속에서 어름어름 지나갑니다. 우리 국민의 많은 수가 이렇게 살아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까 이런 삶의 자세를 가지고 사는 사람은 삶의 적극적인 의욕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현실을 외면하고, 역사에서 도피하려 합니다. 그래서 향락과 마취 속으로 도피합니다. 진취적인 기분을 상실하고 아무렇게나 살아갑니다.
이런 사람들은 요행을 바랍니다. 정당한 노력으로 성공과 행복을 쟁취하려 하지 않고 인생에서 요행을 기대하고, 역사에서 우연과 기적을 바라고, 무슨 좋은 수가 생기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역사에 우연이란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기회주의자가 됩니다. 자기 노력으로 인생을 개척해 나가려는 의지와 노력이 없기 때문에 그때 그때의 큰 세력이나 유리한 편에 붙어서 살아가려고 합니다. 이것이 기회주의입니다. 기회주의는 약자의 처세술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연히 자기중심의 이기주의자가 됩니다. 돈이 제일이니까 무슨 일을 해서라도 돈만 벌면 된다는 황금만능주의에 빠지고 맙니다. 어떤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권력만 잡으면 된다는 권력만능주의 사상이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습니다. 나라나 국민은 망해도 내 이(利)와 욕(慾)만 충족시키면 된다는 파렴치한 이기주의의 망국적 폐풍이 국민의 정신을 흐려 놓고 있습니다. 그래서 법을 짓밟고, 정의를 무시하고, 염치를 불구하고, 금력과 권력을 추구하는데 골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국민적 패배의식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 국민 의식구조와 생활신조와 정신자세와 가치관과 인생관의 개혁이 필요합니다. 오늘 우리 사회에는 하나의 새로운 가치관의 확립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습니다.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은 대접을 받고, 게으른 사람은 천대를 당해야 합니다.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을 모든 국민이 우러러볼 줄 알아야 합니다. 공을 위해서 애쓰는 사람과, 국민을 위해서 성실하게 봉사하는 사람에 대해서 사회가 칭송할 줄 알아야 합니다. 정의의 사람이 존경을 받고, 용감한 사람이 대접을 받고, 봉사하는 사람이 칭찬을 받아야 합니다. 이러한 가치관이 확립될 때, 사람들은 진실하려 힘쓰게 되고, 정직하려고 노력하고, 일하는 보람을 느끼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정신풍토와 사회질서 속에서 살 때 사람들은 사는 보람과 생활의 기쁨을 느낍니다.
만일에 게으른 사람이 성공을 하고, 협잡하는 사람이 번영하고, 불법불의한 사람이 승리한다면 그 사회는 망할 수밖에 없는 사회요, 저주 받은 사회입니다. 올바른 가치관이 확립되어야 사회는 흥하고, 나라는 부강해집니다.
그러면 패배의식을 극복하는 길이 어디에 있습니까
올바른 가치관을 세우는 데에 있습니다. 금세기의 유명한 역사가 토인비는 그의 명저 역사의 연구 라는 책에서 “인간의 역사는 도전과 응전의 긴장된 역학이라”라고 말했습니다.
외부에서 오는 도전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내부의 응전력이 강하면, 이 도전을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문제는 응전력에 있습니다. 토인비에 의하면 한 사회나 문명의 쇠퇴나 몰락은 외부적인 요인에 기인하지 않고, 내부적인 요인에 기인한다고 했습니다. 한 민족이 창조력을 잃어버릴 때 그 사회는 쇠퇴하고 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습니까 역사의 가혹한 도전 앞에 서 있습니다. 하나는 외부적인 도전이요, 다른 하나는 내부적인 도전입니다. 이 도전을 극복해야 개인이 성공하고 나라가 번영합니다. 우리에게 밀어닥치는 도전, 그것은 우리에게 성공과 승리의 꽃을 피우게 하기보다는 시들어 버리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모든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것같이 보이는 도전 앞에 섰을 때 사실은 우리는 그 도전을 바르게 확인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도전을 극복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도전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입니다.
허락하신 땅 가나안에 똑같이 들어갔던 열두 사람 중의 대다수인 열 사람은 높고 견고한 성곽과 키가 큰 아낙 자손만 보고 패배의식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들의 도전에 도저히 응전 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그 땅은 하나님이 주시기로 약속한 땅이지만, 점령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싸워 볼 엄두도 못 내고 포기해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똑같은 도전 앞에서 판단을 바로 했습니다. 어려운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어려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그 거대한 도전, 엄청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빌립보서 1장 6절에 “저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 우리가 확신하노라”라고 말씀했습니다. 내가 있는 바로 그 곳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꽃피울 수 있다는 사실을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적극적이고 창조적을 생각하기 시작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써 주십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계시는 놀라운 꿈을 쓰레기통에 버리기 전에 해결의 상자를 갖다 놓으세요. 하나님을 온전히 믿으세요. 모든 어려운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세요. 하나님께서는 이 문제를 통해서 꽃이 피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모든 씨앗이 싹트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기쁨과 평안을 맛보기를 원하십니다. 거기에 바로 우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4. 큰 꿈을 가진 사람은 자신감이 있습니다.
여러분, 어떤 문제에 직면했습니까 그것이 어려운 문제입니까 그 문제를 풀 수 있다고 믿으세요. 그러면 풀 수 있게 됩니다. 어려운 것이지만 해낼 수 있다고 깊이 믿을 때 현명한 생각, 창조적인 사고, 멋진 영감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네 믿음대로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신감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4장 13절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자신감입니까!
여러분, 우리에게서 부정적인 감정을, 말하자면 열등감, 무력감, 가치감, 패배감 같은 것을 몰아내세요, 자신감이라는 긍정적인 힘으로 이와 같은 파괴적인 악마를 우리 마음에서부터 아예 제해 버리세요.
한번은 아브라함 링킨이 어떤 사람을 고용하기 위해서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추천을 받았습니다. 그 사람을 직접 면담한 후에 결론은 그 사람을 고용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추천했던 사람이 링컨에게 물었습니다. “나는 그 사람이 좋은 사람으로 여겨져서 각하에게 추천했는데 그 사람이 마음에 안 드셨나보죠”
그 때 링컨이 고용하기를 거부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저 사람의 얼굴 표정이 마음에 안 들어”
이 때 측근자가 “그렇지만 그 사람도 자기의 얼굴이야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지 않습니까”하고 되묻자 링컨 대통령은 더 현명한 대답을 했습니다. “아니, 그렇지 않아. 생각과 행동이 한 인간의 눈과 표정을 빚는 법이야”
얼마나 의미 있는 이야기입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삶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찾아서 그에 따르는 것은 자신감을 갖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 속에 자라고 있는 자신감을 계속 유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의 생애를 위한 그분의 계획을 우리에게 제시해 주고 계십니다. 이것을 믿으십니까 하나님은 그분이 시작하신 일을 반드시 마치십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큰 꿈만 있으면 됩니까 큰 꿈을 현실로 옮기는 힘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없을 때 아무 소용도 없는 공상으로 되어 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 힘이 어디서 옵니까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사야 40장 31절입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에머슨(Emerson)이란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세상은 원기 왕성한 사람에게 속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꿈이 있는 사람은 원기가 왕성합니다. 그가 하는 일에 열의가 있습니다. 이것이 곧 힘입니다. 그 마음이 뜨겁습니다. 그래서 열의가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까지 뜨겁게 합니다. 열의라고 하는 영어단어는 ‘enthusiasm'인데 그 뜻은 “하나님안에서”(en-theos)라는 말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사람은 뜨겁습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사람은 힘이 있습니다.
로버트 아드레이(robert Adrey)라는 분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세가지 욕구가 있는데 그것은 정체의식에 대한 욕구, 안정감에 대한 욕구, 자극에 대한 욕구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은 안정감을 선택합니다. 그러나 큰 꿈을 가진 사람은 자극에 대한 욕구가 강합니다.
알프레드 화이트헤드(Alfred Whitehead)는 “위대한 꿈은 단지 그 정도로만 성취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초월해서 더 많이 성취된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보다 더 큰 꿈을 주십니다. 우리가 오히려 보다 작은 꿈을 가졌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작아서 그랬습니다. 지금보다 큰 꿈을 가지고 사십니다.
사랑하는 갈보리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꿈이 있는 동안 피곤하지 아니합니다. 큰 꿈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열심이 식어지지 않습니다.
큰 꿈을 가지고 열심히 자신감 가지고 긍정적으로 최선을 다해 새역사를 창조하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994년 2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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