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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인간, 자연의 청지기 (시 24: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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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신학에 있어서 가장 관심을 갖고 논의 되는 것은 정의와 평화 그리고 하느님의 창조보전의 문제입니다. 세계교회협의회가 1990년 4월 서울잠실 올림픽 경기장에서 소집한 JPIC 대회가 다룬 문제가 바로 이 같은 세가지 신학적 논제들이었습니다.

 정의와 평화의 문제는 인간의 권리와 사회생활에 관계된 문제이지만창조보전의 문제는 자연 또는 환경에 관계된 문제라 할것입니다. 그러나정의와 평화의 문제와 창조보전의 문제가 지닌 공통점은 인간의 생존문제와직결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창조보전의 문제는 70년대 이후 세계인의 최대관심사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자원고갈의 위협 뿐만 아니라 환경오염의 위협이라는 차원에서 매우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정의와 평화의 문제가 저개발국가나 독재국가에서 해결해야 할 사회적우선 과제라면 창조보전의 문제는 선진국 또는 개발도상국들이 당면한 사회적 우선 과제라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수서비리와 강경대군 타살사건과 함께 낙동강 페놀방출 문제를 계기로 환경오염의 문제로 극심한 위기상황에 봉착하고 있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사회기초 자체가 흔들릴 위험에 처한 것입니다. 사회적불의나 부정의 문제는 사람들 마음 여하에 따라 일대전환을 결단할 수 있지만 환경 문제는 하루 이틀에 해결할 수 없다는 데 우리로 하여금 더욱곤혹스럽게 하고 전률케 하는 것입니다.

 식수문제의 위기라는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인간의 생존을 위한 절대적 요건인 공기오염이라는 차원에서도 우리는 극한 상황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것은 남북의 대결상황 보다 훨씬 더 위험스럽고 피할 수 없는 절망적상황인 것입니다. 우리 도시민의 89%가 환경오염으로 말미암은 폐해를 입고있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도시민들의 피해의식이 심화됨으로써 정치 불신 뿐만 아니라 경제적 발전에 대한 회의와 부정심리를 유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상 90년도 니시의 보고에 의하면 서울의 아황산 가스의 농도는 세계에서 세번째로 높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미국의 L.A.에 비해 69배가 된다는 통계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 무서운 대기오염 속에서 심신 구석구석이더럽혀 가고 있는 것입니다. 서울시립대학과 상지대학 연구팀의 보고에 의하면 창덕궁과 비원의 경우 나무의 종류가 78종(1985년)에서 59종(1990년)으로 감소되었고, 나무 수도 4천2백66주에서 1천3백19주로 줄었습니다.

남산의 경우 소나무가 차지하는 밀도가 1982년 16.5%였는데 1990년에는

2.49%로 줄어들었습니다.

 서울시가 발표한 바에 의하면 1958년에 한강에 서식하는 물고기가 61종이었는데 지금은 21종만 서식한다는 것입니다. 환경청의 보고에 의하면1988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쓰레기 발생량은 우리와 인구가 비슷한 서독에비해 두배가 되고 이웃나라 일본에 비해 세배가 넘는다는 것입니다. 이런상황 속에서는 아무리 국민소득이 향상되었다 하더라도 사람이 정을 붙이고살만한 사회의 건설은 불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태가 발생된 요인이 무엇일까 물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최근 우리나라의 환경처가 발표한 "국내의 환경지표"에 의하면 비교상대국 13개 나라 가운데서 우리나라가 최하위임이 밝혀졌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7개국과 태국등 개발도상 6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것인데 부끄럽게도 우리나라의 하수처리율은 싱가폴 99%, 영국 95%에 비해, 심지어 인도네시아, 태국 75%-37%에 비해 31%로서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2) 이와 같은 사태가 발생된 요인이 무엇인가를 물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엇 보다 국민의 의식 수준에 그 원인이 있다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은 정부의 환경정책의 부재 또는 미숙에있다고 하겠습니다. 정부 각부의 환경관계 연간예산은 2천2백85억원으로서GNP의 0.13% 밖에 되지 않습니다. 스위스나 영국의 8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수질문제에 있어서도 정부는 지난 해 315억원 보다 100억원이 삭감된 216억원밖에 책정하지 않았습니다. 정부예산 전체는 자그만치 1

9.5% 인상하면서 국민생활에 기본이 되는 수질보전을 위해서는 이토록 인색한 것입니다. 또 그뿐만 아니라 대기보전, 폐기물관리등 환경개선을 위한 투자에있어서도 지난 해의 750억원 보다 33% 깍인 500억원 밖에 계상되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환경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자연환경과의 관계 속에서사람은 자신의 생존을 위한 혜택을 누립니다. 사회환경과의 관계 속에서사람은 자신의 인격적 성숙을 위한 혜택을 누립니다. 따라서 자연환경은오래 보존해야 하고 사회환경은 최대한 안정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자연환경은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의욕 때문에 자원의 고갈, 환경오염을 자초 마침내 사망상태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사회는 부질없는 이념투쟁과 군국주의적 사고방식 때문에 인간의 권리와 자유가 위협받으며 먹고 먹히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사회의 민주화를 절대적으로 요청합니다. 그렇지 못한 사회에는 평화와 안정이 뿌리내리지 못합니다. 이에 필요한 투자에 인색해서는 안됩니다. 그에 못지 않게, 그보다 더 자연보전에 대한 열의와 투자를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런다면 아직도 우리의 하늘과 땅은 삶의 공간으로서 찬양받을 수 있으리라 믿고 있습니다.

 피아트 자동차의 회장이었던 펫체이를 비롯한 뜻있는 사람들에 의해조직된 로마클럽의 등장과 함께 유럽은 인구의 폭발, 자원고갈, 환경오염의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아이는 둘만,기술 대신에 예술을, 개발 대신에 자원절약을, 그리고 역사의 종말의식을갖자"는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이것은 정부만의 노력으로 되는 일은 아닙니다. 기업과 국민 전체가 공동운명체가 되어 협력하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습니다.

 (3) 또 한가지 염두에 두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인간은 결코 자연의 주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따라서 자기 욕심껏 개발해서는안됩니다. 인간은 결단코 만물의 영장이 아닙니다. 다만 우주의 창조자이신하느님으로부터 만물을 관리하는 지혜와 능력을 위임받은 청지기일 뿐입니다.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여호와의 것이요 세계와 그 안에 사는 모든 생명체도

다 여호와의 것이다.

 "(시편 24:1-,현대인을 위한 성경)

"여호와여, 주는 정말 많은 일을 하셨습니다.

주의 지혜로 그 모든 것을 만드셨으니 땅에는 주의 피조물로 가득 찼습니다.

크고 넓은 바다가 있고 그 안에는 크고 작은 생물들이 수없이 많으며"(시편 104:24-,현대인을 위한 성경) 지금 인류가 추구할 것은 GNP의 제고가 아닙니다. 어떻게 이미 가진자들이 아직 가지지 못한 자들과 함께 나누어 가며 사느냐 하는 것입니다. 세계의 지배자가 되기 위해 핵무기를 제조하는 일이 아니라 "나라마다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드는 일입니다"(이사야 2:4)그리고 자연의 줄기찬 개발이 아니라 하느님의 창조를 보전하는 일입니다.

인간의 욕구에 맞게 생태계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생태계의 질서에 맞게 인간의 욕구를 조절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우주의 중심이 아닙니다. 따라서 우주 안에 만물과의 공존의지혜와 기술을 부여받은 존재일 뿐입니다. 만물을 다스리라고 했다는 것은만물을 자기 것으로 점령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생존을 위해 필요한대로 자연을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지배자는 한꺼번에 통째로 집어 삼키는 자가 아니라 백성으로 하여금 계속적으로 생산하여 사회인으로서의 적당한 의무금(세금)을 계속 납입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현대인은 그 엄청난 과학기술로 자연의 우상화로부터 인간을 해방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업적에도 불구하고 현대인은 자신들이 개발한 과학기술로 자연을 멋대로 파괴한 과오를 범했습니다. 자연의 파괴는 자연이 지닌자원을 소멸시키고 있으며 인간의 생활환경을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자연의 파괴는 하느님에 대한 도전행위가 됩니다.

 우리는 바벧탑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인간능력의 한계가 무엇인가를 일깨워 주는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인간과 그 역사는 위대합니다. 그러나 결코 영원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한계상황에 이르게 됩니다. 바벧탑을쌓았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능력을 하느님과 비교하는 어리석음을 범했습니다. 현대인은 자연을 정복하면서 하느님을 추방하거나 상실했습니다. 그결과는 자연의 분노를 사게 되었고 인간의 도덕성의 기본이 꺼져가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들은 우리들 자신을 향해 긴급동의를 할 때가 되었습니다.

GNP(소득)이 아니라 G(하느님-God) N(자연-Nature) p(시-Poem)를 회복하자고. 소득에 집착하는 한 물질지상주의의 망령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이리가 아니면 장사꾼 밖에 되지 못합니다.

 "누가 여호와의 산에 오를 수 있으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수 있는가 오로지 행동과 생각이 깨끗하고 순수하여 우상을 숭배하지 않는 자들이다.

거짓으로 맹세하지 않는 자들이다"(시편 2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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