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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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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에도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우선 보기만 해도 깨닫는 사람이 있고, 듣고 깨닫는 사람이 있으며, 매 맞고 깨닫는 사람, 그리고 잃어버리고 깨닫는 사람이 있습니다. 잃어버린 경험이 없이는 돈 십 원의 귀중함을 깨닫기란 쉬운 일이 아니듯이 말입니다. 어느 분이 길을 가다가 지갑을 몽땅 잃어버렸답니다. 그래서 집으로 전화를 해야겠는데 20원이 없어 쩔쩔매다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구걸을 해보았다는 것입니다. 잔돈이 없기도 하거니와 바쁜 걸음걸이를 멈추기가 귀찮아서 많은 사람들이 그냥 못들은 척하고 지나치곤 해서 20원을 얻는 데 그렇게도 힘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제야 10원이 귀한 것을 깨달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대체로 잃어버린 다음에야 그 가치를 깨닫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는 괜찮은 편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죽을 지경이 되어서야 비로소 알게 됩니다. 그러다가도 조금만 사정이 나아지면 또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그저 죽을 지경이 되어야 기도하고. 죽을 지경이 되어야 교회도 나오고 겸손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사람은 항상 죽을 지경으로 살아야 제대로 되지 않겠습니까? 여기서 좀 더 심한 사람은 죽은 다음에야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나사로와 부자의 비유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어리석은 부자는 살아생전에 끝내 깨닫지 못하고 죽어 지옥에 떨어져서 아브라함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서야 깨닫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믿었어야 했다고 지옥에서 깨닫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사실 지옥에까지 가서야 깨닫게 될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어느 쪽에 속합니까? 보고 압니까? 듣고 압니까? 아니면 죽을 지경이 되어야 압니까? 혹시 아직도 깨닫지 못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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