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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독교의 평화운동 (사 09:1-7, 엡 02: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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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광복 49주년 기념주일입니다. 남북한 교회가 오늘 함께 이 날을 기념하는 예배를 드리고 특히 공동기도문을 가지고 함께 기도드립니다. 뿐 만 아니라 세계교회가 함께 이 날을 기억하여 예배 드립니다. 우리는 이 날 우리를 일제의 지배 밑에서 해방하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면서 다시 한번 이 땅의 진정한 평화를 위한 해방을 주십사고 기도드려야 하겠 습니다. 사 우리는 이미 1995년을 "평화와 통일의 희년"으로 선포하고 이를 위한 평 화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자유와 평화가 선포되는 희년이 오도 록 열심히 부르짖고 열심히 평화운동에 참여하여야 하겠습니다. 교회의 선 교는 원래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일이요 그것은 바로 평화운동과 직결되 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시 한번 성경으로 돌아가 평화운동이 어떻게 전개 되었는지를 살펴보므로 우리가 이 사회에 어떻게 이 운동을 전개해 나갈 것인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거짓 평화-로마의 평화

예수님이 탄생하신 시대적 배경을 보면 그때가 바로 "로마의 평화"(Pax Romana)를 구가하던 시대입니다. 기원전 29년부터 기원후 60년경까지의 약 90년간의 기간을 로마의 평화시대라고 합니다. 옥타비안 장군이 애급 정복 을 마지막으로 전쟁을 끝내고, 기원전 27년에 옥타비안은 아우구스투스라 는 칭호를 부여받고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었습니다. 그는 기원후 14년까 지 44년간에 걸쳐 통치하면서 국방을 튼튼히 하고 안으로는 정권을 안정시 키고 치안질서를 확립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황제를 칭송하고 찬 양했습니다. "팍스 로마나" 이 말은 아주 유명한 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팍스 로마나"라는 말은 거짓 평화, 제국주의적 지배 체제 하에 서 이루어지는 평화를 상징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로마의 평화"란 전쟁이 나 내란, 민중봉기 등이 없이 지배 질서가 안정되어 있었다는 뜻으로서의 평화일뿐이며, 그것은 부와 권력을 가진 지배계급을 위한 불의한 평화였습 니다. 그것은 피억압자의 입장에서 볼 때 억압과 착취의 현상을 정당화하 는 지배 이념일 따름입니다. 바로 이런 때에 예수님께서 베들레헴 마굿간 에 태어나신 것입니다.

 참 평화의 출현

누가복음 2장에 보면 가이사 아구스도가 호적령을 내렸을 때 예수께서 베들레헴에 탄생하셨고, 천사들이 합창하여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 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고 노래하 였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탄생이 이 지상에서 참 평화가 출현되는 사건 의 시작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로마인들이 내세우는 "로마의 평화" 대신 에 진정한 평화를 가져올 메시아가 탄생했다고 초대 기독교인들은 고백을 한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로마의 평화"가 거짓 평화임을 지적하고 "그리 스도의 평화"(Pax Christi)를 대안으로 내놓은 것입니다. 초대 기독교인들 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평화이십니다"(엡 2:14)라고 용감하게 고백을 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오셔서 선포하신 하나님의 나라는 평화의 나라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요,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평화를 위해 일하는 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들로 구성되는 나라입니다. 이것을 뒤집어 말하면, 권력을 가지고 남을 지배하는 자, 남을 착취하여 자기 부를 쌓은 자, 많은 재물을 가지고도 가난한 자를 돌보지 않은 자, 불의를 행하는 자, 마음이 깨끗지 못한 자들은 발 붙일 곳이 없는 나라입니다. 평화란 무 엇입니까 바로 모든 억압과 착취가 사라지고 평등과 사랑이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은 이 평화를 주시러 온 것입니다.

 예수님의 평화운동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은 이 평화를 깨트리는 장본인이 바로 사탄이 라고 보셨고, 그래서 그 사탄과 투쟁하시므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시고 그의 평화운동을 전개하신 것입니다.

사탄이 종교 지도자들에게 들어가 율법주의자가 되게 하였고, 권력자들 에게 들어가 억압자가 되게 하여, 부자에게 들어가 탐심을 일으키므로 착 취자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한편으로는 사탄과 직접 대 결하여 그를 꺾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사주를 받은 모든 지배자들과 더불어 싸우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에게 참 생명을 주시려고 오셨 는데, 그 생명이 자라나는데 방해되는 모든 요소를 먼저 제거하신 것입니 다. 개인의 마음 속에 깃들인 욕심과 온갖 죄를 제거하시므로 마음에 평화 가 깃들이게 하시고, 생명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없도록 막는 사회적인 모 든 억압, 착취, 차별, 그리고 모든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속박을 제거하 시는 것을 그의 선교 목적으로 삼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셔 서 병자들을 고쳐 주시므로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온전케 됨을 보여 주셨 고, 가난한 자와 소외된 계층들의 친구가 되시므로 그들 속에 하나님의 나 라가 가까이 있음을 알리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부자와 권력을 가진 자, 거짓 평화를 지지하며 거기에 안주하는 자들과는 논쟁을 하시면서 그들은 하나님 나라에서 멀리 있다고 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기득권자로서 현 실에 만족하며 거기에 타협하며 살아가는 자들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다 고 보시지 않은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하여 수립 유지 되는 평화는 평화가 아니라 이웃의 평화를 깨는 악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로마의 평화"가 무수한 약자들을 희생시켜 유지되는 소수의 강자만을 위 한 불의한 거짓 평화로 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평화와는 근본적으 로 다른 하나님 나라의 평화를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인간 의 화해, 인간과 인간의 화해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평화입니다. 하나님 과 인간 사이에 모든 불의가 제거되므로 평화가 이루어지는 것처럼, 인간 과 인간 사이에 깃들인 모든 불의가 제거되어야 진정한 평화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평화운동은 그야말로 평화적인 방법에 의하여 이루어졌 습니다.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주므로 이룩하신 평화입니다. 그는 결국 "로 마의 평화"를 깨트리는 자로 고발되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거짓 평화인 로마의 평화에 도전하셨습니다. 그것을 깨고 진정한 하늘의 평화를 이 땅에 전하려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 이 십자가를 통하여 모든 인류의 죄를 대신 걸머지고 죽으시므로 하나님과 인간을 화해하게 하시고 더 나아가 인간과 인간, 민족과 민족 사이에 화해 를 이룩하신 것입니다. 그를 믿는 자는 누구나 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므로 이방인과 유대인, 종과 주인, 남자와 여자 사이에 차별이 없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비폭력적 저항운동입니다. 모든 악을 끌어 안고 대신 죽은 어린 양의 희생 제물입니다.

오늘 우리의 평화운동도 이런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야 하겠습니다. 그리 스도인이 아니면서도 이런 그리스도의 본을 철저히 따르므로 평화운동을 통해 독립을 쟁취했던 간디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큰 감동을 줍니다. 그 영 화 가운데 한 장면은 우리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하얀 옷을 입은 인 도인들이 영국 군인들이 지켜서 있는 문을 향해 행진해 들어가면, 군인들 이 몽둥이로 인도인들을 마구 때려 쓰러트립니다. 그러면 기다리고 있던 여인들이 그들을 데려다 상처를 치료해 줍니다. 그 다음 줄에 선 남자들이 또 다시 전진해 가다가 맞고 쓸어지고, 또 그 다음 줄에 선 사람들이 나가 다가 맞고 쓸어지고 하기를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한 것입니다. 이 광경 을 미국의 신문기자가 지켜 보면서 그 사실을 그대로 보도를 하였습니다.

영국은 이 비폭력 저항에 손을 들고 말았습니다.

 교회의 평화운동

오늘 분단된 한반도에서 한국 교회가 전개해야 할 평화운동의 방향은 무 엇이며, 이를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가 첫째로, 거짓 평화에 속아서 그 세력과 타협하며 안주하려는 자세를 버 리고 그리스도의 평화를 이 땅에 이루기 위해 헌신하는 교회가 되어야 하 겠습니다. 우리는 과거에 평화를 위해 반공 이념을 지지했고, 우리는 평화 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독재를 용납했으며, 경제 발전을 이룩한다는 명분으 로 온갖 경제적 불의를 용납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와서 그 모두가 거 짓 평화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정권 유지와 착취를 위한 수단으로서 안보 를 내세우고 평화를 들먹거렸던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 이런 안보 논리에 순응하면서 타협해 왔던 잘못을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평화를 이 땅에 바 로 선포하면서 이를 위해 노력하는 예언자적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둘째로, 한국 교회는 반공교육을 비롯한 잘못된 안보교육에 대항하여 참 다운 평화가 무엇인지를 올바로 가르치는 교육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흑백 논리와 분단 논리에 의해서 자라난 세대들로서는 그리스도의 평화를 실현 하기가 어렵습니다. 자기 희생적이며, 비폭력적인 평화운동을 주도할 수 있는 일군들을 양성하여야 하겠습니다. 순교를 두려워하지 않은 제자들에 의하여 복음이 세계에 전파된 것처럼, 오늘도 이 평화를 사랑하여 잣니의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는 일군들에 의해 평화의 기운이 전파될 것입니다.

교회는 바로 평화의 일군을 길러내는 양성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셋째로, 한국 교회는 구체적으로 반전, 반핵운동에 앞장 서야 하겠습니 다.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략한 사실에 대해 우리 정부는 너무 느리게 그 리고 너무 소극적으로 대처하고 있습니다. 물론 여러 가지 어려운 사정이 있을 것입니다만, 약소국에 대한 강대국의 무력 침략을 어떤 명분으로도 용납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교회는 전쟁을 반대함과 동시에 군비축소를 위해 노력하여야 하며 특히 핵무기의 철거를 위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끝으로, 교회는 이 땅에 도사린 모든 불의를 청산하기 위해 투쟁하여야 하겠습니다. 교회 안에 도사린 분파주의와 교권주의, 그리고 이 사회 속에 도사린 모든 경제적인 부정의, 일부 지배계층을 위한 사회구조 등을 배격 하고 시정하는데 앞장 서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남북간에 막힌 장벽을 허물기 위해서는 우리 자 신이 먼저 철저하게 그리스도의 평화 신앙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안될 것입 니다. 평화와 통일을 위한 희년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여기에 그리스도의 평화운동을 전개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평화의 일군으 로 세상에 파송하신 것처럼 오늘 교회를 평화의 기관으로 이 땅에 파송하 고 계신 것입니다. 평화의 파숫군으로 부름받은 우리가 망설이거나 주저하 지 말고 나서서 반평화적인 모든 장애물을 제거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이루어가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의 평화를 이 땅에 이루기 위하여 헌신하시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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