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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의심 말고 믿어라, 그래야 복이 있다 (시 118:14-29, 계 01:4-8, 요 20: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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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형편에 있는 사람이, 정말로 행복한 사람이라 할 수가 있을까요
지금처럼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에는, 돈을 많이 가진 사람이라야, 행복한 사람이라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돈은 많지만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은, 다르게 말할 것입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무슨 소용이 있느냐 몸 건강한 것이 첫째’라고 말할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돈도 있고 몸도 건강하지만, 가정적으로 화목하지 못할 경우, ‘누가 뭐라고 해도, 가정이 화평해야 행복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아야, 진정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서, 그 사람과 함께 살아간다면, 그 마음에는 평화와 기쁨이 있을 것입니다. 그 사랑하는 사람의 숫자가 한둘이 아니고, 주변에 가득하다면, 돈이 좀 부족한들 어떻고, 건강이 좀 안 좋은들 어떻겠습니까
요즈음, ‘타이타닉’이라는 영화가 유명합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 ‘잭’과 ‘로즈’는, 서로 사랑할 수 없는, 신분과 계급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특히 로즈는, 어느 상류층 남자와 약혼한 입장입니다. 그런데도,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합니다. 로즈는, 약혼자에게서 느끼지 못하는 사랑을, 잭에게서 발견합니다.
약혼한 남자는 봉건적인 사상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여자는, 남자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하고, 어디까지나 남자를 위해서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잭은 오히려, 로즈를 위해서 뭔가 해주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자가 기뻐하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지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로즈’는 ‘잭’을 좋아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두 남녀의 사랑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관계로까지 깊어집니다. 두 사람에게는, 돈도 필요 없고, 높은 지위나 신분도 필요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만 옆에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배가 빙산에 부딪혀 파선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모든 것을 다 바다에 던져버려야만 했습니다. 신분도 던지고 체면도 던져버렸습니다. 그러나, 두 남녀는 행복했습니다. 왜냐하면, 서로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바다에 던져 버릴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죽음이 두렵지 않았습니다. 여자인 로즈에게는, 먼저 구출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졌으나, 잭과 헤어질 수가 없어서, 그 특권을 포기합니다.
여자 주인공 로즈는, 잭의 헌신적인 사랑 덕분에, 극적으로 살아남습니다. 대신에, 잭은 애인 로즈에게 모든 것을 바치고, 물 속에서 얼어죽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죽은 잭의 모습은 행복해 보였습니다.
시편 118:29에서, 시인은 말하기를『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하다』고 하면서,『그 한결같은 사랑으로 우리를 따뜻하게 아껴 주신다』고 했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어느 특정한 사람과 민족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 모든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그러기에,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분이 있다면, 그분은 하나님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사랑하는 우리들을 죄에서 구출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높은 지위와 권능’을 버리시고, 우리와 같은 인간이 되셔서, 우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우리를 위하여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만큼, 우리를 진심으로 사랑하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 위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짝사랑으로 끝나고 말 뻔했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예수께서 당신 죄로 인하여 죽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자기들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희생 제물이 되었다고 하는 사실을, 그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께서 생전에, 여러 번 ‘죽음과 부활’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에, 그들은 귀담아 듣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 주의 제자들은 ‘모든 것이 다 끝난 줄’로만 알았습니다. ‘타이타닉’ 영화에서 ‘잭과 로즈’는, 비록 배가 파선 당하여 물 속에 잠기고 있어도, 그들의 사랑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제자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계속되고 있었으나, 제자들은 죽음이 두려워, 예수를 배반하고 도망갔던 것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를 배신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죽음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제자들은,

1.부활을 믿지 못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일찍이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리라(요11:25)』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진리의 말씀을 믿지 못한 까닭에, 제자들은 그렇게도 쉽사리 주님을 등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부활을 믿지 못할 경우에는, 예수를 바로 믿을 수가 없습니다.
작은 시련을 당해도, 하나님의 사랑을 헌신짝처럼 집어던지고 말 것입니다. 세상의 이익을 좇아, 이리저리 휩쓸리게 될 것입니다. 부활을 믿지 못하면, 이웃에 대한 사랑도 진실할 수가 없습니다. 상황에 따라 쉽게 변하고 말 것입니다.
아프리카에서 7년간 선교를 하다가, 안식년이 되어 돌아온 이은용 목사님의 간증을, 테이프를 통하여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이 목사님께서 ‘굼스’라고 하는 부족에게 복음을 전하게 된 이야기입니다.
이 부족은, 원래 식인종은 아니지만, 본보기 삼아서, 외부 침입자들을 붙잡아, 그 껍질을 벗겨 잡아먹는다는 것입니다.
그 부족 마을까지 가려면, 차 타고 이틀, 걸어서 15시간 가야만 한다고 합니다. 대나무 숲과 정글이 계속되는 길을 걸어서, 그 마을에 갔을 때에는, 살기 띤 눈빛을 한, 마을 사람들과 대면해야만 했습니다.
이 목사님이 그런 위험한 지역에 가게 된 것은, 그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야만 한다는 사명감이, 그를 재촉했기 때문입니다. 자칫 생명을 잃어버릴지도 모르는 위험이 있었지만, 목사님은 부활을 믿었기에, 그곳에 갈 용기를 가졌습니다.
그러면서, 목사님은 그의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할아버지는, 해방 후 순교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이 ‘예수를 버리고 생명을 유지하겠는가, 아니면 죽더라도 예수를 믿겠는가’하고 물었을 때, 할아버지는 죽음을 택했다고 합니다. 할아버지는 ‘목숨이 아깝지 않느냐’고 하는 공산주의자들의 물음에, ‘내가 죽으면 천국에 들어갈텐데, 무엇이 두렵겠는가 지금 죽는다면 영생 얻을 것이니, 오히려 영광’이라고 하면서, 태연히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할아버지의 신앙을 물려받았기에, 그 목사님은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굼스’부족을 찾아가서 복음을 전하고, 그래서 교회까지 세우게 되었을 것입니다. 저는, 이 목사님의 간증을 들으면서, 많은 부끄러움과 미안함을 느꼈습니다.
우리는 과연, 어떤 신앙을 갖고 있습니까 부활을 확실히 믿습니까 부활을 믿는다면, 얼마나 희생적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이웃에게는 주의 사랑을 얼마나 헌신적으로 전하고 있습니까
①우리는 지금,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하나님의 사랑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또한,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랑을 경험한 사람이라야,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관심은 세상에만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을 덧입고 살면서도, 그 사랑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건강한 사람이 그 건강의 고마움을 모르고 살듯이, 깨끗한 공기를 호흡하고 살면서도 그 공기의 고마움을 모르고 살듯이, 우리는 늘 하나님의 사랑으로 살아가고 있건만, 그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부모가 있어도 부모 없는 고아처럼 사는 것과 같으니, 참으로 불쌍한 사람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②그런 사람을 가리켜서, ‘주님을 떠나 사는 사람’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언제나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마치 부모를 잃은 어린아이처럼, 불안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영적인 고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제자들이, 그런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부활하셨는데도, 제자들은 골방에 숨어서 문을 꼭꼭 걸어 잠근 채,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살아 계셔서, 우리와 늘 함께 동행하고 계시건만, 우리는 마치 부모 없는 고아처럼, 두려움과 걱정 속에서 슬픈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③부활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좌절과 실패를 이겨내지 못합니다.
부활 신앙이 있으면, 고난이 닥쳐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시편 118:15 말씀처럼,『하나님은 바르게 사는 자를 도우셔서, 승리하게 하신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부활을 믿는 사람은, 실패를 겪어도 좌절하지 않고, 그 실패를 거울 삼아 새롭게 일어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믿음이 없으면, 한 번 실패할 경우, 그것으로 끝장인 줄로 알고 좌절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화살을 이웃에게 돌리는 것입니다. 실패한 이유를 자신에게서 찾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서 찾습니다. 그래서, 서로 갈등을 빚고 다투는 것입니다. 이런 다툼과 갈등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는지 모릅니다.
그러니, 부활 신앙이 없는 사람들에게, 무슨 감사가 있고 찬양이 있겠습니까 진실로 ‘사람이 사는 맛’은, 사랑을 하게 될 때 느끼는 법이며,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것이, 감사요 찬양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부활을 믿지 못할 경우,
③감사와 찬양이 없는, 슬픈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될 때에 찬양이 나오고, 이웃의 사랑을 느낄 때에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이웃의 사랑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사람만이, 진정으로 이웃을 사랑할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많으면, 행복한 사람입니다. 반면에, 미운 사람이 많으면, 불행한 사람입니다. 부활이란, 사실상 사랑의 회복을 말합니다. 물론,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으려면, 인간성이 먼저 회복되어야 합니다.
부활을 믿지 못하면, 인간성이 회복될 수가 없습니다. 부활하여 영생한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게 될 경우, 결코 이 세상 욕심을 버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부활을 믿어야 욕심을 버리게 되고, 욕심을 버려야 인간성이 회복됩니다. 그리고, 인간성이 회복되어야 사랑하게 되는 것이며, 사랑하며 사는 사람이라야,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부활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부활을 믿는다면, 이 세상 욕심을 버리십시오. 욕심은, 반드시 불행을 가져오게 마련이지, 결단코 욕심이 행복을 가져오는 법이란 없습니다.

2.이제,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기쁨과 평화를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큰 교회 건물을 갖고 있어야, 부흥이 아닙니다. 많은 교인이 있어야, 부흥이 아닙니다. 교회 건물이 크든 작든지 간에, 그리고 교인이 많든지 적든지 간에, 그 심령으로 부활을 확신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야, 진정으로 부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이전에, 부활에 대한 바른 인식이 필요합니다. 부활을, 단지 죽은 몸이 다시 살아나는 것으로만 이해하면 안 됩니다. 부활의 진정한 의미는, 욕심으로 살던 생활에서 사랑하며 사는 삶으로 바뀌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무엇을 소유하거나 지위 얻는 것으로 삶의 만족을 삼던 생활에서, 이제는 누군가를 사랑하며 사는 것을 기쁨과 즐거움으로 여기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①우리의 능력과 구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확신하고 살아야 합니다.
행복의 근원은 인간이 아닙니다. 사람이 수고해서 얻는 이 세상 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권한입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을 믿을 때에, 행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엉뚱하게도 땅에서 행복을 찾으려 하다가는, 더욱 불행하게 되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됩니다.
시편 기자는『하나님은 나의 능력이요, 나의 구원이 되신다(118:14)』고 했습니다. 인생의 승리는, 하나님을 얼마나 적극적으로, 그리고 열심히 믿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은, 누구나 골고루 사랑하십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없이 사랑하십니다. 하지만 그 사랑은, 하나님께 대하여 신실한 사람만이, 깨닫고 누릴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 대하여 신실한 사람이라 할 수가 있을까요
②이웃을 용서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하신 말씀은 세 가지입니다. 평화와 성령과 용서입니다. 스승을 배반하고 도망갔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평화를 빌어주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 죄를 용서했으니, 마음을 평안히 가지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너희들도 서로 다른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고 사랑함으로써, 평화롭게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이 평화가 가득한 모습을 가리켜서, 바로 ‘성령 충만’이라고 말합니다. 결국, 부활이란, 서로 용서하고 사랑함으로써 이루는, ‘평화의 회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악령이 물러가고, 성령이 충만한 상태를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께서 주인이 되는 인생’을 말합니다. 물질이나 명예가 인생의 주인이 되면, 그 인생의 결말은 불행입니다. 그러나,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하면서, 그 말씀대로 살면, 그 인생은 승리하게 됩니다.
③승리하는 자에게는, 찬양과 감사가 있습니다.
그 입에서, 불평과 불만이 떠나지 않는 것은, 마귀에게 패배하여, 그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활을 믿고 살아감으로써 승리할 경우, 어찌 찬양이 없겠습니까 그리고,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고로, 그 입에서 감사와 찬양이 나오면, 그는 승리한 사람입니다. 마귀를 이기고, 성령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아무쪼록, 부활을 믿으십시오. 그냥 마음과 생각으로만 믿는 것이 아니라, 직접 이웃을 사랑함으로써 부활을 체험하십시오.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늘 언제나 행복하게 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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