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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천국잔치의 주인공 (눅 14: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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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에는 두가지 종교가 있습니다. 잔치집 종교와 초상집 종교입니다. 기 독교를 가리켜 잔치집 종교라고 말합니다. 성경에 보면 천국을 큰 잔치 혹 은 혼인잔치를 비유해서 말한 적이 많습니다.

 교회는 매주일마다 모이는 축제 곧 잔치입니다. 주일저녁도 수요일도 찬송 하며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一. 잔치에는 초청자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는 어떤 사람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본문의 비유와 흡 사한 비유로서 마태복음 22:1-14절까지의 비유에서는 천국을 마치 자기 아 들을 위하여 혼인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어떤 사람은 그 집의 호주이며 그 지방의 지도자이며 그 나라의 임금이며 전 우주적인 입장에서는 하나님 아버지를 말하는 것입니 다.

 1. 잔치에는 청한 분이 있어야 합니다.

 누가 청하였는가 누구의 초청을 받았느냐는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천지의 주재자 하나님 아버지께서 신령한 잔치를 배설하고 초청한 것입니 다.

 2. 잔치에는 먹을 것이 풍족해야 합니다.

 모든 것이 준비되었다고 했는데 마태복음 22자에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잔치는 말씀이 충만합니다. 성령이 충만합니다. 은사가 충만합니다. 은혜가 충만합니다. 믿음으로 아멘으로 받으면 됩니다.

아무리 소낙비가 쏟아진다고 해도 그릇 뚜껑을 닫고 있으면 한방울의 물도 들어가지 않는 법입니다. 태평양의 물고기가 목말라 죽었다면 그 책임은 다 른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마음 문을 열어야 합니다.

 3. 잔치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야 합니다.

 청하였던 자에게 종을 보내어 "오소소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라고 했 습니다.

동양의 풍속에는 미리 초청을 하고 준비가 되면 다시 종을 보내어 손을 데 리고 옵니다. (에베소서5:8,6:14,잠언9:1-5) 일단 초대를 받고 승낙했던 사 람들은 두번째 초대에는 거절할 이유가 없는데 그들은 일제히 거절을 한 것 입니다. 그것은 약속 불이행이며 초청할 주인에 대한 모독이었습니다. 복음 의 손길을 무시하고 하나님을 모독하는 처사였습니다.

 일치하게 사양하는 이유는 (1) "나는 밭을 샀으매 불가불 나가봐야 하겠다." 밭을 사기전에 보고 샀을 터이니 이 변명은 서지 못하는 말인 것입니다.

하나의 핑계입니다. 밭은 부동산입니다. 부동산을 떼갈 사람이 없는 것입니 다.

(2)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변명입니다. 소 역시 보고 샀을 것입니다. 장사 속으로 샀는지 모릅니다.

높은 사람의 잔치 곧 하나님의 잔치에 소보다 더 큰 비중을 두어야 하는 것 입니다.

 (3)"장가들었으니" 모세의 율법에 결혼한 자에게는 1년간 병역이나 다른 직무를 지우지 못하 게 되어 있었습니다(신명기24;5). 그러나 육신의 정욕을 문제로 하나님의 초청에 불응한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크나큰 죄악인 것입니다.

 4. 잔치는 마냥 즐거워 합니다.

 하나님 마나는 것에 제일 중요성을 가져야 합니다. 모든 잔치에 참여할 준비를 하고 은혜를 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른 이유를 대지 마십시오. 바로 당신을 초대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 앞에 단 독자입니다. 하나님과 나의 일대일의 관계이지 우리 모두가 아닙니다. 천주 교에서는 보편을 주장합니다. 그러나 개신교에서는 개별을 주장합니다. 내 가 믿어서 구원받는 것입니다. 내 남편이 잘 믿는다고 내가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내가 잘 믿어서 아들이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한 집에 두 사람 이 매를 갈고 있는데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놓아둡니다. 두 사람이 잠을 자다가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놓아 둡니다. 두 사람이 함께 김을 매다가 한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놓아 둡니다. 내가 믿어서 내가 구원받는 것입니다. 내가 은혜 받고 내가 감사는 것입니다.

 二. 주인되는 하나님을 노엽게 했습니다.

 어떤 이유로든 하나님의 초청에 불응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노를 사는 일인 것이빈다. 아랍사회에서는 이러한 거부는 도전으로 간주된다는 것이었습니 다.

 1.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고 명령했습니다.

 기독교는 부동산을 많이 갖고 있고 다섯마리의 소를 갖은 것과 같이 동산 을 많이 가지고 있고 또 육신의 정욕을 위해서 사는 자가 믿기 좋은 종교는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2:26-29에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 니하도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미려한 것들을 택사하 지혜있는 자들을 부끄 럽게 하려 하시고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 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기독교인은 잘 사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보다 가난한 자들이 믿어서 부요해지는 종교입니다. 고린도전서 8;9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 은 그의 가나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기독교는 병신들이 믿어서 건강해지는 종교입니다. 신유의 사건이 많이 일 어납니다. 이사야 53:4-5에 "그는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담당 하셨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라고 하셨습니다. 마 태복음 8:17에는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의 병을 짊어지셨습니다.

 소경들이라 함은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는 자 아무것도 못보는자 절망중에 있고 갈길을 모르는 자입니다. 이러한 자가 사리를 분별하고 새로운 희망을 얻고 갈길을 보고 천국으로 인도받는 종교입니다.

 저는 저들은 불완전한 자들입니다. 이들이 온전케 되는 종교입니다.

 기독교의 목적은 곧 예수님의 목적입니다. 누가복음 4:18절에"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함을 전 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하심이니라 "고 하셨습니다.

 사무엘상2:6-8에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 기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며 부하게도 하시 는도다 낮추기도 하시며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가난한 자로 진토에서 일으키 시며 빈핍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드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위 를 차지하게 하는도다"라 하셨습니다.

 三.주인이 명하신데로 하였으되 오히려 자리가 있나이다.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을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했습니다.

 우리가 노력해야 할 부분입니다. 하나님의 연회석은 너무나 넓고 큰 것입 니다. 하나님은 지금은 다찼으니 그만 두어라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 라는 얼마든지 수용할 수 있으니 데려다가 채우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천국잔치의 주인공이 됩시다. 나를 위한 천국잔치인 것을 믿고 주 님의 초청에 기쁨으로 응해서 하나님이 마련한 잔치에 마음껏 먹고 윤택함 을 받으십시다. 그리고 빈 자리가 많으니 하나님의 집을 채우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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