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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게로 와서 쉬라 (마 11:2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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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은 살아가는 데 참 고민도 많고 짐도 많습니다. 옛날에 비하면 생활 환경도 좋아졌고, 풍요로워졌고, 문화도 많이 발달되어서 살아가기가 훨씬 좋아졌는데도 그 옛날에 비하면 고민은 오히려 더 많아졌고, 짐도 더 무거워졌습니다. 시대는 더 좋아졌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살아가는 것은 더 어렵고 힘들어졌습니다.
학생들을 보면 입시 때문에 참 고생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보기에 안스러울 정도입니다. 아마 청소년들에게 있어서는 이 입시가 그들 인생에 있어서 가장 무겁고 힘겨운 짐이 될 것입니다. 이 짐이 너무 무거워서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얼마나 짐이 무거우면 스스로 생을 포기하겠습니까 생각하면 참 불쌍한 세대입니다.
그게 어디 학생들 뿐이겠습니까 어떤 아버지가 아들 과외비를 raekd할 수가 없어서 그만 목숨을 끊었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생각하면 참고달픈 인생입니다.
또 직장인들은 이 승진하는 일이 무거운 짐입니다. 직장에서 상사들로부터 인정도 받아야 하고, 승진도 해야 하고, 낙오되지 않기 위해서 얼마나 고민을 많이 합니까 그 치열한 경쟁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해서 굳은 손으로 컴퓨터를 배우느라고 안간힘을 써야 하고, 사정없이 밀고 올라오는 후배들에게 뒤지지 않으려고 매일같이 마음 졸이고 살아갑니다. 그너니 그 마음속에 얼마나 긴장이 많이 쌓이겠습니까
그런가 하면 요즘에는 건강에 대한 고민 또한 많은 때입니다. 무슨 무서운 병들이 그리도 많은지 어제까지도 건강하던 사람들이 어느 날 불치의 병에 걸렸다는 소식들을 자주 듣게 됩니다. 참 무서운 일입니다. 그래서 몸이 좀 이상해도 병원엘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병원에 가면 무슨 말을 할까봐 걱정이 되어서 못 갑니다. 그러니 오늘 현대인들이 얼마나 정신적으로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지 모릅니다.

그런가 하면 늙은 것이 고민인 시대입니다. 머리가 조금만 희어져도 그것을 감추느라고 야단들입니다. 사람의 모습은 있는 그대로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가장 고상한 모습인데 머리가 희어지고 주름이 생기는 것을 애써 감추려고 고민들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 여성들이 화장을 하는 것을 보면 안스러울 정도입니다. 이건 말이 좋아 화장이지 사실 엄밀히 보면 그것은 화장이 아닙니다.
10대들이 화장하는 것을 보게 되는데 그것은 화장이 아니고 치장입니다. 안해도 좋은데 약간 더 모양을 살린다고 해서 그것을 치장이라고 합니다. 말하자면 20대 여성들이 하는 화장을 화장이라고 합니다. 아름다움이 정절에 달했을 때 거기에 더 아름다움을 나타내려고 매만진다 해서 이를 화장이라고 합니다. 화장이라는 말은 옷매무새를 매만진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보면 3, 40대 여성들이 하는 화장은 화장이 아닙니다. 30대가 하는 화장을 분장이라고 합니다. 이때부터는 자신의 모습을 감추는 때입니다. 그리고 40대가 하는 화장은 변장입니다. 완전히 모습이 달라집니다. 그렇게 본다면 50대가 하는 화장은 무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완전 무장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은 이래 저래 고달픈 것입니다. 고민이 많습니다. 짐이 무겁습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겉에서 볼 때는 별일 없는 것같이 보이지만 좀 깊이 들여다보면 누구나 다 이 짐이 있습니다. 고민도 있습니다. 그래서 가는 곳마다 보면 거기에 탄식이 있고, 비명 소리가 있고, 눈물이 있고, 신음 소리가 있습니다.
본문 말씀을 보면 이렇게 고민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이 말씀이 복음입니다.
이 말씀은 세상에서 지친 사람들에게 생수와도 같은 말씀입니다. “오라, 내가 쉬게 하리라. 무거운 짐 다 벗어 버리고 내가 주는 가벼운 짐을 지라.” 이것이 복음이고 이것이 진정한 안식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 속에는 다음과 같은 뜻이 들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짐을 덜어 주시겠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다 내게로 오라.” 얼마나 다정한 초청의 말씀입니까 이 말씀은 “너희가 정말 나를 믿느냐. 그러면 그 짐을 다 내게 맡기라”는 뜻입니다. “근심한다고 키가 크느냐. 부질 없이 짐을 지고 근심하지 말고 다 벗어 버리라.” 이것이 복음입니다.
우리들이 지금 지고 있는 무거운 짐들을 모두 벗어 줄 대상이 있다는 것이 행복한 일입니다.
현대인들이 고독한 것은 주변에 사람은 많은데 마음을 모두 털어놓고 이야기할 대상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많은데 내 마음의 고민을 털어놓을 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현대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고독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내게로 오라. 와서 그 무거운 짐을 다 내려놓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이 말씀이 바로 복음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늘 마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지고 있는 짐은 너무 무거워” 그러면서 늘 지쳐서 힘겨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기도하다가 지쳐서 그만 잠이 들었습니다. 꿈속에 설원 풍경이 나타났습니다. 소복하게 쏟아진 눈길 위로 두 사람이 걸어가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발자국이 선명하게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한참 있다 보니까 한 사람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자세히 보니, 한 사람이 몹시 지쳐 있는데 또 한 사람이 그를 업고 가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이 사람이 생각했습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저 사람도 나처럼 지쳐 있구나.”
그런데 유심히 보니까 업고 가는 사람은 주님이었고, 등에 업힌 사람은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고맙게도 주님께서 꿈속에 나타나셔서 그를 위로해 주셨던 것입니다.
알고 보면 주님은 우리를 지금 이렇게 위로하시고 도와주고 계십니다. 그래서 말씀하시기를 “오라, 다 내게로 오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도와주시려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모두 주님으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살아갈 수 있는 존재입니다.

두 번째는 쉼을 주시겠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진정한 쉼은 예수께 가야 얻을 수 있습니다. 육신의 쉼은 가정에 가야 얻을 수 있고, 영의 안식은 주님께 가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참안식처이고 쉼터입니다. 영혼의 안식처입니다. 그래서 성전은 신앙인들의 고향이고 안식처입니다.
가끔 어떤 중년 신사 한 사람이 교회에 와서 기도를 하고 갑니다. 신분도 밝히지 않고 낮에 와서 한참 기도를 하고 갑니다. 그런데 기도하는 모습이 아주 특이합니다. 와서는 혼자 앉아서 큰 소리로 실컷 울고 갑니다. 참 푸짐하게 울면서 얼마 동안 기도하고는 돌아갑니다.
언젠가 그 사람이 그렇게 기도하고 나오다가 저와 딱 마주쳤습니다. 그러자 민망해 하며 이렇게 말을 합니다. “죄송합니다. 저는 이렇게 한번 풀고 가야 당분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무슨 말씀인고 하니 교회가 고향이라는 말입니다. 고향이기에 와서 그렇게 실컷 울고 가면 상당 기간 동안 위로가 되어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권사님은 집을 짓는데 방향과는 상관도 없이 교회를 향해서 문을내도록 지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교회가 고향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병원에 누워서 몇 날을 보내 보십시오. 주일날 교회에 가는 일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를 비로소 알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다 내게로 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참안식과 쉼을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성도가 있어야 할 자리는 따로 있습니다. 그곳이 바로 성전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품입니다. 성도들은 거기에 있을 때가 가장 힘이 있을 때고 가장 행복할 때입니다. 어떤 사물이 가장 아름답게 보일 때가 언제인가 하면 그 물건이 놓여 있어야 할 곳에 놓여 있을 때입니다. 그때는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아무리 못생긴 돌이라도, 나무 한 그루라도 있어야 할 곳에 놓여 있으면 모두가 아름답고 예술적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아무리 나약하고 가난하고 무력해도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갈 때 우리의 인생은 제자리를 찾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가 가장 아름다울 때이고 가장 힘이 있을 때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내게로 오라, 와서 쉬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있어야 할 곳이 바로 그곳이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감당할 힘을 주시겠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아무 짐도지지 않고 살 수는 없습니다. 주님께 모두 갖다 내려놓는다고 해서 아무 짐도지지 않고 살 수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기본적인 짐은 지고 살아야 합니다. 이를테면 부모 공경의 짐은 져야 합니다. 그 짐은 아무리 무거워도 져야 합니다. 불신자들보다 더 철저하게 져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의 의무의 짐도 져야 합니다. 국민의 의무의 짐도 져야 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실패의 짐도 져야 합니다. 나의 실패가 주님의 뜻이라면 그 짐도 기쁨으로 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종말을 맞이했을 때 죽음의 짐도 져야 합니다. 그것은 누가 대신 져 줄 수 있는 짐이 아닙니다. 그래서 말씀하시기를 “내게로 오라 와서 내 멍에를 메라, 내 짐은 가벼움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주님께서 짐을 질 수 있도록 힘을 주신다는 말입니다.
어떤 때는 주님이 힘을 주시지 않으면 지기 힘들 때가 있습니다. 모세는 애굽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도 한사코 못 간다고 버텼습니다. 그것은 겸손이 아니었습니다. 사실 모세는 말을 할 줄 몰랐습니다.
탈무드에 보면 모세가 말을 못하는 이유를 그렇게 설명했습니다. 모세가 3살 때 바로왕이 벗어 놓은 왕관을 겁없이 집어서 썼다고 합니다. 당시에 이런 행위는 누구를 막론하고 반역죄에 해당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바로왕이 그 아이에게서 어떤 비범함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장차 이 아이가 무엇이 될까 궁금해서 쟁반에다 숯불 하나와 책을 놓고 무엇을 집는지를 보았더니 그만 숯불을 집어서 입에 넣더라는 것입니다. 그때 모세의 혀가 타 버려서 말을 못했다고 합니다.
모세는 그래서 한사코 못 간다고 했는데도 하나님은 그 옆에 말 잘하는 아론을 붙여 주면서까지 가라고 하셨습니다. 못하면 하나님은 할 수 있도록 방법을 주십니다.

사도 바울은 몸에 병이 있어서 심각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고쳐 주기를 위해서 세 번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고쳐 주지 않으시고 그 곁에 의사 한 사람을 붙여 줍니다. 그러고는 나가서 일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약하면 약한대로 사용하시고, 강하면 강한 대로 사용하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무슨 일을 하든지 그 환경에 맞게 감당할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그래서 말씀하시기를 “내게로 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감당할 힘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깨달음을 주시겠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여기 보면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 속에는 아주 좋은 깨달음을 주시겠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사람은 때로 몰라서, 무지해서 가벼운 짐인데도 무겁게 지고 사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생각에 따라서 짐이 무거울 수도 있고, 가벼울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할머니는 등에 손자를 업고 하루종일 다녀도 조금도 무거워 하지 않습니다. 어린아이 몸무게가 20㎏이 되는데도 가볍기만 합니다. 왜 그러냐 하면 내 자식이라서 그렇습니다. 내 손자라서 그렇습니다. 그렇지 않고 20㎏ 나가는 돌덩이를 지고 있어 보십시오. 그러면 단 10분도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생각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일본 소설 가운데 이끼루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말은 “산다”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이 병에 걸렸습니다. 병원에서 앞으로 6개월밖에 살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들은 후 이 사람은 삶에 회의가 생겼습니다. 일하는 것도, 먹는 일도, 술마시는 일도, 누구를 만나는 일도 모두 재미가 없습니다. 만사가 귀찮습니다.
그러던 중 하루는 무작정 길을 걷가다 길가에서 꽃을 파는 소년과 앉아서 여러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야기하는 중에 이 사람이 아이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는 앞으로 6개월밖에 살지 못한단다.” 그러니까 어린 소년이 선뜻 대답을 합니다. “아저씨 아직 6개월은 있잖아요.” 그 말에 이 사람이 정신이 들었습니다.
“6개월밖에 없는 것이 아니고, 6개월이나 남아 있다.” 이 짤막한 말 한마디는 그에게 엄청난 힘을 주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까 그가 지금까지 지고 있던 그 무겁던 짐들이 순간적으로 가볍게 느껴지더라는 것입니다.
송구봉이라는 사람이 지은 한시 가운데 “족부족”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부족하더라도 족하다고 생각하면 언제나 여유가 있고 족하지만 부족하다고 여기면 언제나 부족하다”는 말입니다. 생각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현대인은 모두 짐을 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모두 나름대로 무거운 짐들이 다 있을 것입니다. 이것만 없으면 날아갈 것 같은데 이 짐 때문에 의기 소침하고 근심이 되는 짐들이 다 있습니다. 알고 보면 짐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 주님이 주시는 이 같은 위로와 쉼이 주어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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