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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알곡과 가라지 (마 13:24-30)

첨부 1


요즈음 천국에 대해서 오해가 많은 것 같습니다. 제가 천국에 직접 갔다 와서 말씀을 드리면 더욱 실감이 날테데 유감입니다. 마태복음 13장에서 예수님이 소개하신 천국에 대해서 말씀드립니다.
찰스 알렌이라는 사람이 최근 교인들을 상대로 해서 신앙 생활을 조사했는데 그 결과가 이렇게 나왔습니다. 교인 중에서 20%는 거의 주일 예배에 참석을 하고 있지 않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름만 올려놓고 있는 신자가 20%나 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교인 중 25%는 거의 기도를 하지 않고 산다고 했습니다. 입이 열리지 않은 신자가 25%가 된다는 말입니다. 또 교인 중 35%는 집에서 성경을 한 번도 읽지 않고 산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니까 눈이 아직 뜨이지 않은 사람이 35%나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40%는 헌금 생활을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봉헌 생활이 뒷받침되지 않고 있다는 말입니다. 또 75%는 교회에서 아무런 책임도 맡지 않고 있다고 했습니다. 헌신 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또는 평생 한 사람도 전도를 해 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열매 없이 그냥 살아왔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결론에 가서 나온 통계가 재미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교인 중에서 100%는 모두 다 천국에는 가고 싶다고 응답을 했다고 합니다. 얼마나 재미있는 통계입니까 이것은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로 우리 자신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특이한 점을 한 가지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천국에 대해서 굉장히 오해를 많이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람들이 모두 천국에 대해서 이해하기를 사람이 죽은 후에나 가는 저 세상으로만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들마다 천국에 대해서는 설교를 잘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천국에 대한 찬송가도 잘 부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천국에 대한 설교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천국에 대한 찬송도 부를 때가 있습니다. 그때가 언제냐 하면 누가 세상을 떠났을 때, 장례식 때입니다. 그때는 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천국에 대해서 설교를 하고, 장송곡으로써 천국에 대한 찬송을 부르게 됩니다. 그 외에는 천국에 대한 설교도, 찬송도 잘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대심방 때 어느 권사님 댁에 가서 찬송을 부르는 데 “날빛보다 더 밝은 천국” 이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러고 나서 곤욕을 치룬 목사님이 있습니다. 그게 곤욕을 치를 일이 아닌데, 평상시에는 잘 부르지 않다가 장례 때에만 불렀기 때문에 이 천국에 대한 찬송이 장송곡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천국에 대해서 오해를 하게 된 것입니까 그것은 성경의 번역이 잘못되어서 그렇습니다. 성경에 보면 천국을 “하늘 나라”라고 번역을 해 놓았습니다. “하늘 나라” 하니까 어떤 느낌이 드느냐 하면 미래에 의미를 두게 되고, 저 멀리 어떤 “곳”, 어떤 “지점”을 가리키게 됩니다. 이를테면 사람이 죽은 후에나 가는 “하늘 나라”로만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평상시에는 그 찬송이 듣기가 싫은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천국에 대한 오해입니다.
그런데 이 번역을 바로 잡으면 “하늘 나라”가 아니고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라는 말은 헬라어로 하면 바실레이아라고 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그곳이 하나님이 지금 우리 집에 오시고, 우리 집을 다스리시면 그곳이 바로 천국이라는 말입니다. 부시 대통령이 다스리는 곳이 미국입니다. 등소평이 다스리는 곳이 중국입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내 중심에 하나님이 와 계시고 그가 내 중심을 다스리시면 내 마음이 곧 천국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곳, 그곳이 천국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들은 모두 그렇게 알고 있고, 그렇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1. 천국은 아무나 알도록 허락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천국은 아무나 알고, 아무나 소유할 수가 없다는 점입니다. 본문의 앞에 나온 11절에 보면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본문에 보면 “천국의 비밀”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은 천국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는 비유를 사용 하셨습니다. 거기에는 두 가지의 이유가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 지혜가 있는 사람은 더 밝히 알게 하시기 위함이고, 둘째는 못 알아 듣는 사람에게는 더 이상 알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비유를 마칠 때는 반드시 말씀하시기를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그랬습니다.
여러분 이 말이 무슨 뜻입니까 무지한 사람은 일러줘도 모릅니다. 보여 줘도 모르고, 손에 갖다 쥐어 줘도 모릅니다. 그래서 천국은 비밀이라는 말입니다.
저는 가끔 사람이 운명하는 모습을 지켜 볼 때가 있습니다. 그 순간을 참 만감이 교차하는 시간입니다. 그 순간에는 그곳에서 인생의 진실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인간의 종말을 보게 되고, 인간의 실존을 심각하게 느끼게 됩니다. 또 그곳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목격하게 되고, 내세에 대해서 아주 분명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또 산에 가서 하관을 할 때에도 많은 생각을 갖게 됩니다. 인생의 무상을 그곳에서 목격하게 됩니다.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되겠구나 하고 생각하면 아찔해집니다. 그저 살다가 죽으면 누구나 저땅 두 평 위에 아무 소리 못하고 누워 묻혀 버리는 인생, 겨우 그것인데 거기에 무슨 뜻이 있으며 거기에 무슨 미련이 있다고들 그렇게 거드름을 피고, 교만하고, 고집을 부리고, 유별나게 굴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갖습니다.
그러면서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유심히 봅니다. “저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저 일을 하고 있을까 저 사람들이야말로 인생에 대해서 심오한 교훈을 받고 살겠지.” 그런데 보면 그런 것같지 않고 무감각한 것같이 보입니다. 사람의 죽은 시신을 매만지면서도 감각이 없어 보입니다. 고작 관심이 있다면 술 한잔 더 얻어 마시는 것, 그리고 일을 마친 후에 용든이라도 좀더 받을 것에 대해서만 골똘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니 그게 뭡니까
성경은 잔치 집에 가지 말고 초상 집에 가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에서야말로 참인간의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보잘것없는 종말의 쓸쓸한 모습을 그곳에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정상적인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곳에서 뭔가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아직까지 숨겨져 있어서 보지 못하던 그 어떤 세계를 그곳에서는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게 정상적인 영감을 가진 인간입니다. 그런 엄숙한 실존의 모습을 보고서도 아무런 마음의 열림이 없다고 하면 그게 바로 버려진 사람입니다. 그래서 천국은 비밀이라고 했습니다. 손에 갖다 쥐어 줘도 모르는 사람은 모릅니다. 눈 앞에 바짝 갖다 보여 줘도 모르는 사람은 모릅니다. 그래서 천국은 비밀이라고 했습니다.

2. 천국은 비밀입니다.

비밀을 영어로 시크릿(secret)이라고도 하고 미스터리(mystry)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이 두 단어가, 전하는 비밀의 의미는 각각 다릅니다. 시크릿은 보여 주지 않아서 모르는 비밀을 말합니다. 그런데 미스터리는 보여 줬는데도 사람들이 모를 때, 그 비밀을 뜻합니다. 오늘 성경 11절에 보면 천국의 비밀이라고 말할 때 비밀을 시크릿이라고 하지 않고 미스터리즈라고 했습니다. 이게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이 천국을 사람들에게 이미 다 보여 주셨습니다. 알게 하여 주셨습니다. 소개해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모릅니다. 보여 주었는데도 모릅니다. 그래서 천국을 미스터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천국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 깨닫는 사람들은 비유로 말씀을 하자마자 곧 알아들었습니다. 그래서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천국은 구체적으로 어떤 곳입니까 마태복음 13장에 보면 천국을 비유를 통해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천국은 알곡과 가라지와 같다고 했습니다.

24절에 보면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다”고 했습니다. 농부가 자기 밭에 씨를 뿌렸습니다. 뿌렸더니 싹이 나로는데 보니까 곡식도 나오고, 가라지도 함께 나왔습니다. 처음에는 이 두 싹이 비슷해서 분간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다 자란 후에 보니까 곡식보다 가라지가 월등하게 더 큽니다. 주인은 곡식을 심었고, 곡식이 자라기를 바랐는데 보니까 원하지도 않은 가라지가 나와서는 이것이 곡식보다 더 왕성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이것이 주객이 전도된 모양입니다. 필요도 없고, 원치도 않은 것이 나와서는 더 왕성하고, 더 크게 자라서는 곡식을 밀치고 동아리를 틀어서 제가 주인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신앙 생활을 하면서 세상을 살아갈 때 약이 오르는 대목이 바로 이 대목입니다. 신앙인들이 세상을 살아갈 때 선하게 살고, 의롭게 살고, 법을 지키고, 양심껏 살다 보면 이득을 보는 것이 아니고 자꾸만 도태되고, 위축되고, 밀려 나고 해서 속이 상합니다. 그래서 여간한 용기 가지고는 그렇게 살아가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세상을 막 살아가는 사람을 보십시오. 편법으로 살고, 속여가며 살고, 얄밉게 살아가는 사람들인데도 보면 더 왕성하고, 사업도 잘되고, 투기해서 돈도 잘 벌고, 좋은 집에서, 좋은 차를 타고, 평안하게 살아갑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속이 상하고 약이 오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기 이 보리 밭의 사정이 바로 그렇습니다. 보리 밭에 보리를 심었습니다. 그런데 자란 후에 보니까 심지도 않은 가라지가 나왔습니다. 누가 심었습니까 누가 저더러 나오라고 했습니까 나왔으면 겸손하게 한쪽 귀퉁이에서 자리 잡고 죄송한 마음으로 서 있어야 하는데 뭐가 잘났다고 더 크게, 더 왕성하게 자랍니다. 그리고 왜 옆에 있는 다른 곡식을 못살게 굽니까
그래서 속이 상해서 가라지를 뽑아 버리려고 하니까 뽑을 수도 없습니다. 아주 넓게 동아리를 틀고 조직을 넓혀 놔서 가라지를 뽑으려고 하니까 다른 곡식까지도 뽑히게 생겼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니까 뽑지 않고 그냥 두었다는 것입니다. 언제까지 그냥 두었느냐 하면 추수 때까지입니다. 추수 때는 모두 다 베어서 알곡을 곳간에 넣고 가라지는 불구덩이에 넣어서 태워버린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천국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천국은 어떤 곳이냐 하면 가라지나 쭉정이는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라는 말입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왕성했어도 가라지는 천국에 못 간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이 같은 이치를 모르고 살아가는 이 세상의 모든 가라지들은 들으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가라지들이 듣습니까 보여 줘도 모릅니다. 쥐어 줘도 모릅니다. 그래서 천국을 비밀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답답한 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일입니다. 말이란 꼭 입으로 말하는 것만이 아니고 손짓, 발짓, 눈짓, 몸짓으로도 말을 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을 보디랭귀지(bodylanguage) 라고 합니다. 그래서 아주 어린 아이라도 울거나 몸짓으로 표시를 하면 어머니는 그것을 알아듣습니다. 그런데 불행한 것은 알아들을 수 있는 똑같은 말인데도 불구하고 알아듣지를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과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참 답답합니다. 그 사람이 남편이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답답한 일입니까 아무리 이야기를 해 줘도 못 알아듣습니다. 어떤 사람은 눈 앞에 갖다 보여 줘도 모르는 이가 있습니다.
여러분, 행복이 무엇입니까 행복은 서로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것입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인 남편에게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소중한 것을 이야기해 주면 그것을 이해하고, 알아 주고, 믿어 주는 것이 행복입니다. 즉 마음과 마음이 서로 교류되고 통하는 것이 행복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안 통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처럼 불행한 일이 없습니다.

칼 바르트는 행복론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행복이란 서로가 서로를 그리워하는 것이다. 또 사로 마주 보는 것이다. 그리고 행복이란 자기 마음을 다 주고, 또 그의 마음도 다 받아 주는 것이다.” 이 말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무슨 말이든지 가리지 않고 다 할 수 있는 대상이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내가 하는 말이면 무슨 말이든지 다 이해해 주고, 전부가 사실로 받아 주는 마음과 마음의 소통이 행복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행복입니다.
그런데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눈에 갖다 보여 주었는데도0 불구하0고0 안 믿어 준다 이겁니다. 그러니 이게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예수께서 천국을 보여 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친히 오셨고, 오셔서 병도 고치셨고, 죽은 사람도 살리셨고, 귀신도 내쫓고, 바다도 잔잔하게 하셨고, 배고픈 사람에게 먹게도 하셨고, 심지어는 죽기까지 했고, 죽어서 부활까지 했습니다. 그런데도 믿지를 않고 또 다른 것을 보여 달라고 합니다. 그러니 이게 얼마나 불행한 일이냐 이겁니다.
그래서 성경은 믿음은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신학적인 차원에서 보면 이 믿음은 대단한 선물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것 중에서 가장 큰 선물은 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이 같은 선물을 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천국을 비밀이라고 했습니다. 비밀 중에서도 미스터리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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