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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현대인의 적 근심 (마 06:2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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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산상수훈의 일부입니다. 산상수훈은 예수님의 교훈 가운데서 가장 핵심이 되는 가르침입니다. 본문에는 오늘 현대인들에게 주시는 강한 메시지가 들어 있습니다. “염려하지 말라, 아버지께서 다 아시느니라, 공중의 새를 보라 들의 백합화를 보라, 새가 농사를 짓더냐 백합이 길쌈을 하더냐, 그래도 하나님이 다 먹이시고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얼마나 강하게 주시는 메시지입니까

오늘날 현대인들은 염려와 근심을 너무 많이 하고 살아갑니다. 부모는 자식들 염려 때문에 마음 놓고 살지를 못합니다. 아내들은밖에 나가 있는 남편을 걱정하느라고 마음을 놓지 못합니다. 사업하는 분들은 언제나 마음 놓고 살 날이 없습니다. 사원들은 회사에서 일어나는 일들 때문에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습니다. 또 젊은 이는 장래 문제를 걱정하느라고 밤잠을 설칩니다.
거기다 어떤 이는 건강 문제로 근심이 많고, 어떤 이는 먹는 문제 가지고 걱정이 많고, 어떤 이는 살이 너무 많이 쪄서 걱정이고, 또 어떤 이는 진정한 걱정거리인 종말의 문제, 죽음의 문제에 직면해서 걱정과 근심에 싸여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오늘 현대인들이 안고 있고 근심하는 일들을 보면 대부분 이런 것들입니다. 사람들이 대부분 이런 문제들을 가지고 밤잠을 설치고 근심을 하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사실 이런 문제들은 부질없는 걱정이고 하찮은 근심들입니다. 어떻게 보면 인간은 참 한심한 존재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왜 이렇게 하찮은 것 가지고 걱정하고 근심을 합니까 거기에는 몇 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첫 번째로 큰일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큰일이 없으면 아주 하찮고 작은 일을 가지고 걱정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큰일이 벌어지면 그런 걱정들은 순간적으로 사라져 버립니다. 사람은 참 묘한 존재입니다. 사람들이 근심하고 걱정하는 일들을 보면 참 시시한 것들로 걱정을 합니다. 아이들이 공부를 하지 않는다고 걱정을 합니다. 성적이 떨어졌다고 애를 태웁니다. 아이들이 거짓말을 했다고 그 아이를 붙들고 앉아서 혼내면서 집안 망하는 것같이 걱정을 합니다. 그것들이 그렇게 걱정하고 근심할 일입니까
그러다가 아이가 덕컥 병이 나서 누우면 지금까지 하던 걱정거리들은 한순간에 사라져 버립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공부 못해도 좋다, 그까짓 5등 하다가 10등으로 밀리면 어떠냐, 앞으로는 거짓말해도 좋다, 그러니 건강하게만 자라다오”라고 하면서 근심 걱정에 싸여 있던 마음이 순간적으로 너그러워집니다. 큰일이 생기면 그렇게 쉽게 너그러워질 것을 아주 시시한 문제들을 가지고 아옹다옹하며 얼굴을 펴지 못하고 살아간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또 집집마다 보면 형제들이 별것도 아닌 문제들로 서로 다투고 따지고 아옹다옹하며 살아갑니다. 그것도 큰일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덜컥 병이 나서 입원을 해보십시오. 그러면 그 동안의 일은 싹 사라져 버립니다. 큰일이 있기 전에 문제들을 해결하면 좋았을 것인데 못하니까 하나님께서 가끔씩 큰일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야 사소한 문제들 가지고 아옹다옹하는 일이 없어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원래 사람들은 피상적인 문제로 고민을 시작하는 법입니다. 그러다가 근본적인 문제가 생기면 그 피상적인 고민들은 순간적으로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 질병이나 어려움은 이 같은 피상적인 문제들을 해결해 주는 좋은 열쇠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슨 문제로 밤잠을 설치고 계십니까 부질없는 일로 근심하는 일이 없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로 사람들이 너무 편해서 그렇습니다.

여러분 사람이 너무 편하면 생각이 많아집니다. 움직이지 않고 앉아만 있으면 편할 것 같아도 걱정이 많아집니다. 잡념이 많아집니다. 사람이 바쁘게 움직이며 살아가야 하는데 일하지 않고 너무 편하니까 염려가 많고 쓸데없는 생각이 많아집니다.
부처님 머리를 보면 곱슬머리같이 생겼는데 그게 곱슬머리가 아니고 달팽이 모형을 해놓은 것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조용히 앉아 있으면 머리 위에서 달팽이가 기어가는 것 같은 잡념들이 많아진다는 것을 상징한 것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달팽이가 머리 위를 기어가는데 얼마나 군시럽겠습니까 그래도 꼼짝 않고 앉아서 그것을 잊고 명상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열심히 일하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땀을 흘리며 열심히 움직이며 살아가도록 지음받았습니다. 사람이 그렇게 살면 어지간한 근심이나 걱정은 없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렇게 살지 않으니까 매일 걱정 근심에 싸여 사는 것입니다.
통계를 보니 정신병 환자는 남자보다 여자가 많다고 합니다. 여자 중에서도 자녀가 많은 여자보다 자녀들이 적은 여자가 많다고 합니다. 아이 하나 있는 여자보다는 아이가 하나도 없는 여자가 더 많다고 합니다. 아이가 없는 여자보다 결혼을 하지 않은 여자가 더 많다고 합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보다 부자가 더 많고, 바쁜 사람보다 한가한 사람이 더 많다고 합니다. 또 머리를 자꾸 사용하는 사람보다 생각이 단순한 사람이 더 많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모두가 한가해서 그렇고 편해서 그렇다는 말입니다. 사람이 시간이 많고 한가하면 쓸데없는 문제를 가지고 근심하게 되고 걱정하게 됩니다. 그래서 남의 흉을 보거나 남의 일에 참견을 하고 그럽니다. 모두 한가해서 그렇습니다.

세 번째로 결단력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사람이 결단력이 없어면 근심 걱정이 떠날 날이 없습니다. 사람이 무엇을 할 때 할까 말까 망설이면 밤잠을 자지 못하게 됩니다. 사탄은 그런 마음에 의심의 씨를 뿌려 놓습니다. 그래서 자꾸만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우무쭈물하게 만들고 의심나게 만듭니다. 무슨 일을 할 때마다 우물쭈물하는 사람이 문제입니다. 상념이 많고 생각이 많고 부질없는 잡념이 많습니다.
오늘 현대인들은 매일 매일 결단 내려야 하는 문제들을 많이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현대인들이 옛날 사람들에 비해서 걱정이 많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걱정이 별로 없었습니다. 생활도 아주 단순했고 단조롭기까지 해서 까다로울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옛날 사람들은 결단 내릴 일도 별로 없었습니다.
농사를 지어도 남들이 하는 대로 하면 되었지 특별히 결단 내리고 할 일이 없었습니다. 장가를 가도 동네에 처녀가 한둘밖에 없기 때문에 선택하느라고 고민할 것도 없었습니다. 시장에 가서 낵타이를 하나 사도 고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습니다. 몇 개 걸린 것 중에서 하나를 사면 되니까 살아가는 것이 아주 쉬웠습니다. 자동차 사고날 염려도 없었고 경쟁이 심한 것도 없었습니다. 마차를 타고 가다 전복이 되거나 바퀴 하나가 빠져도 사람이 죽거나 다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매사에 결단이 요구됩니다. 장가를 가도 여자가 많아서 고민입니다. 미스 김을 선택해야 잘 살 것인지 미스 리를 선택해야 잘 살 것인지, 넥타이 가게에 가면 넥타이가 수백 개 걸려 있는데 그 많은 것 가운데 어떤 것을 고를지 몰라 이것 저것 만지작거리다 보면 우줄쭈물하게 됩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교회도 워낙 많으니까 어디를 가야 좋을지 고민이 많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은 결단력이 없어서 우물쭈물하는 사람에게 고민이 많습니다.

오늘이 주일인데 여러분, 용케도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오셨습니다. 주일날은 대부분 늦게까지 싫토록 잠자는 것이 소원인 분들도 많을텐데 잠자리에서 일어나시기까지 얼마나 고민을 많이 하고 생각을 많이 하셨습니까 보나마나 그러셨을 것입니다. 예배 시간은 다가오고, 일어나자니 억울한 마음이 들고, 그렇다고 교회를 빠지자니 하루종일 찜찜할 것이고 아마 고민고민하다가 오늘 나오신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자리에 누워서 그렇게 갈까 말까 하고 망설이면 잠도 손해 보고 마음도 손해 봅니다. 여러분 그런 때는 무슨 소리냐하고 벌떡 일어나서 나와야 합니다. 그런 결단력이 있어야 매사를 시원하게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일본 격언에 보면 그런 말이 있습니다. “갈까 말까 하는 길은 가지 말고, 먹을까 말까 하는 음식은 먹지 말고, 만날까 말까 하는 사람은 만나지 말고, 죽을까 말까 할 때는 죽으라.” 지극히 일본인다운 아주 재미있는 발상입니다.
아무튼 사람이 결단력이 없으면 고민이 많고 근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 중에도 결단력이 없고 흐리멍텅한 사람은 믿을 것이 못 됩니다. 그런 사람은 평생 가도 신앙생활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은혜를 입을 수도 없고 신앙을 깊이 있게 할 수도 없습니다. 모든 것을 주게 맡겨 놓고 시원스럽게 믿고 나가는 사람이라야 은혜를 입고 주님을 만나기도 하고 천국을 소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근심하지 말라”는 말에 엑센트를 두어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성경은 왜 이렇게 염려하지 말라고 강조합니까 거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손해가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근심하게 되고 너무 조심하다 보면 소심해집니다. 사람이 지나치게 걱정을 하고 근심을 하고 불안해 하고 노심초사하다 보면 마음에 그늘이 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그 마음이 어두워집니다. 웃음이 없어집니다. 기쁨이 상실됩니다. 감사한 마음이 없어집니다. 그것은 굉장한 손해입니다.
사람은 먹고 배부르기만 하다가 살아지는 존재가 아닙니다. 사람은 누리고 살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삶을 즐겁게 살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삶에 감사가 있어야 하고 기쁨이 있어야 하고 즐거움이 있어야 하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늘 걱정에 싸이고 근심을 하고 살면 이런 것들이 다 소멸되고 상실되고 맙니다. 그러면 그것이 얼마나 손해입니까
사람이 소화불량에 걸리는 것은 많이 먹어서도 그렇지만 대부분은 걱정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이 소화불량에 자주 걸리는 것은 많이 먹어서가 아니고 마음이 편치 않아서 그렇습니다. 사람이 오래살면 마음이 어두워지고 차가워져서 그 속에서 온갖 병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암은 대부분 밝은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없습니까 그리고 마음이 어둡고 근심스런 얼굴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나타납니다. 왜냐하면 그 마음이 차가워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근심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너무나 손해가 많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해도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근심과 걱정 없이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지나친 근심이나 걱정은 사람에게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합니다.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때로 쓸데없는 공상에 사로잡힐 때가 있습니다.
어떤 그릇 장사가 큰 독을 지고 장에 갑니다. 가다가 언덕에 받쳐 놓고는 지게 그늘에 누워 쉬다가 눈을 감고 혼자서 생각을 했습니다. 그 생각은 곧 공상으로 발전했습니다. “이 독을 팔아서 돼지 새끼를 사다가 잘 키워서 팔아 송아지를 사자. 그리고 송아지를 큰 소로 키워서 팔아 큰 집을 사자. 그리고 예쁜 색기 얻어서 장가를 가자.” 여기까지 생각하자 이 그릇 장사가 얼마나 좋은지 누워서 얼씨구 절씨구 하고 춤을 추다가 그만 지게 작대기를 건드려서 지게가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바람에 순식간에 독도 깨지고 꿈도 깨지고 말았다고 합니다.
오늘 현대인들은 부질없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밤잠을 설칠 때가 많습니다. 일확천금을 노리는 생각에 사로잡힐 때가 많습니다. 복권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서 밤마다 밤잠을 설치는 분들도 많습니다. 투기에 미련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는 일들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하시를 “염려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해도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우리들이 신앙생활하면서 불신앙 하지만 무엇이 불신앙입니까 그것은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은 하면서도 나의 인생이나 미래, 그리고 앞날을 맡기지 못하고 매일밤 잠을 설쳐 가며 염려하고 근심하고 노심초사하는 것 그것이 불신앙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굉장한 불신앙입니다. 그렇게 걱정을 하다가 불면증에 걸리고 노이로제에 걸려서 긴긴밤을 꼬박 뜬눈으로 새우는 것이 얼마나 불신앙의 모습입니까 신앙인이라면 그것은 참 창피한 일입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신앙 생활을 합니까 모두 맡기고 살면 시원하고 편안할 것을 혼자서 짊어지고 붙잡고 있으니 잠이 오겠습니까 생활에 기쁨이 있겠습니까
사실 나의 운명이니 앞날, 그리고 나의 미래와 내가 죽고 사는 문제는 내 손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 소관이 아닙니다. 밤잠 설치고 궁리할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밤을 새워 가면 근심을 한다고 해서 내 뜻대로 되는 법이 하나도 없습니다. 밤을 새워 고민을 하면 모두 내 뜻대로 된다면야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래서 성경은 말씀하기를 “너희가 근심하고 걱정을 한다고 키가 한자나 크나 보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사실입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살아온 길을 되돌아보십시오. 뭐 하나 궁리해서 된 일이 있습니까 키가 한자가 컸습니까 안 될 일이 된 적이 있습니까 모두 불신앙입니다.
어린 아이는 어머니가 최고입니다. 어린 아이는 세상에 아무도 없어도 어머니만 있으면 살아갑니다. 옆에 좋은 친구가 있고 재미난 장난감이 있어도 곁에 어머니가 있을 때 좋은 것이지 어머니가 없으면 언제나 고아 의식이 잠재된 채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언제나 불안하게 생활합니다.

불안이라는 말은 국어사전을 보면 “이유를 모르는 고민”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 살면 이유 없이 불안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실존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창조될 때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서 살아가도록 지음받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성경은 현대인들에게 이런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너희는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녀,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
이 말씀은 옛날 사람들보다도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더욱 공감되는 말씀이고 교훈입니다. 왜냐하면 오늘 현대인들의 가슴 속에는 이와 같은 고민과 근심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주 안에서 이 같은 축복이 있으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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