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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1 (요 06: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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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새벽기도회가 끝나고 개인기도 시간에 슬피울며 기도하는 나이 많은 권사님이 있었습니다. 그 권사님의 기도는 너무나 애절하고 긴박했습니다. "하나님 살려주세요. 아버지, 제발 살려주세요. 그냥 죽으면 안돼요. 너무 불쌍해요. 주여, 믿습니다. 살려주세요"라는 권사님의 기도소리가 얼마나 크고 절실했던지 목사님의 귀에까지 들렸습니다.
목사님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필시 권사님 가족 중에 급환으로 입원을 한 사람이 있거나 사경을 헤매는 사람이 있나보다 라고 짐작을 했습니다. 권사님의 기도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다가가 조용히 물었습니다. "권사님, 기도 중에 누구를 꼭 살려 달라고 기도하셨는데 위급한 가족이라도 있으십니까" 그러자 그 권사님은 울먹이면서 "목사님 너무 불쌍해요, 꼭 살아나야 해요. 목사님도 기도해 주세요." "그럼요 저도 기도할께요. 누가 그렇게 위급한가요" "목사님, 가을동화에 나오는 은서 있잖아요 죽으면 어떻게 해요 얼마나 불쌍해요 순박한 건지 모자라는 건지 어쨌든 웃기는 유머가 아닐 수 없습니다. 가끔 텔레비전을 보면 역경이나 실패를 극복하고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방영할 때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례들은 죽을 각오로 도전했거나 창피를 무릅쓰고 발바닥으로 뛰었거나 아니면 남이 미쳐 생각지 못하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개발해 성공한 예들 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런 성공은 다시 넘어질 수도 있고 쓰러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자신들이 노력이나 안간힘으로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탈진과 위기를 극복한 사건을 발견하게 됩니다. 요한복음 6:1-15을 보면 예수님께서 보리떡 5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을 먹이신 기적이 있었습니다. 이 기적은 떡을 얻어먹은 군중들도 흥분할 만한 사건이었고 떡을 나눠준 제자들도 흥분으로 들뜨기에 충분한 사건이 있습니다. 그 사건 직후 민중들은 예수를 왕으로 세우자며 동요하기 시작했고 그런 분위기를 감지하신 예수님은 혼자 산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들뜬 마음으로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다가 풍랑을 만났다는 것이 본문의 줄거리입니다. 비행기의 경우 비나 바람은 상관없지만 안개가 끼면 이착륙이 불가능합니다. 자동차는 길에 눈이 쌓으면 달리지 못합니다. 배는 풍랑이 일면 항해가 어려워집니다. 그때 그들이 탄 배는 항공모함이 아닙니다. 돛을 달고 노를 저어야 가는 작은 목선이었습니다. 그 배가 풍랑을 만났다는 것은 위기를 만났다는 것입니다.

1. 위기의 결정적 원인은 찾아보십시다.

17절을 보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는 아직 저희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니"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18절을 보면 "큰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니"라고 했습니다.
17절과 18절을 종합하면 세가지 원인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날이 저물었기 때문입니다.
16절과 17절을 보면 '날이 저물었고 이미 어두워졌다'고 했습니다. 그 날 낮 벳세다 들판에서 있었던 흥분도 환호도 날이 저물면서 시들해졌습니다. 구름 떼처럼 몰려 들었던 군중들도 다 흩어졌습니다, 이제 더 이상 그 현장에 머물 필요도 남아 있어야 할 이유도 없어졌습니다. 한마디로 축제는 끝나고 적막과 고요만 남게 된 것입니다. 날이 저물었다는 것을 인생 삶에 대비시켜 보십시다. 누구나 젊고 팔팔하던 청소년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 인생의 황혼기를 맞게 됩니다. 힘도 기력도 쇠하고 꿈도 이상도 없어집니다.
누구나 건강하고 왕성한 기개를 자랑하던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건강과 기개가 죽을 때까지 계속되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성공과 영광과 풍요의 시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 역시 영원히 계속 되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인생의 저녁 노을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실패와 질병과 고통과 패배로 날이 저물었을 때 사람들이 취하는 행동은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절망하고 낙담하고 자포자기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가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합니다. 다른 하나는 조용히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저는 밀레가 그린 '만종'을 좋아합니다. 때는 저녁놀이 져오는 석양입니다. 곳은 불란서의 농촌 들녘입니다.
그때 교회의 저녁 종소리가 들려옵니다. 그 종소리가 들리자 일손을 멈춘 부부가 손을 모으고 기도를 드립니다.
밀레의 만종은 미술적 가치보다 그 그림이 풍기고 있는 서정적이고 신앙적인 가치 때문에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누구나 때가 저물 수 있습니다. 그때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저녁이 아침으로, 석양이 새아침으로 바뀔 수 있는 것입니다. 하루 중 가장 어두운 시간을 해뜨기 전시간이라고 합니다. 해가 지면 아침이 오는 것은 자연의 순리입니다.
둘째는 큰 풍란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18절을 보면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니" 라고 했습니다. 갈릴리는 호수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보통 호수보다는 크고 넓기 때문에 바다라 불렀습니다. 갈릴리는 호수이긴 하지만 호수를 에워싸고 있는 북쪽 산맥에서 형성되는 이상기류로 인해 수시로 돌풍이 몰아쳐 바다에서처럼 파도가 일어나곤 했습니다. 그날도 무서운 바람과 함께 파도가 일어났습니다.
현대 과학 문명도 자연의 공격 앞에 속수무책입니다. 집도, 자동차도, 대형 트레일러도 휩쓸어 버리는 토네이도, 미친 바람이 있습니다. 수만 명을 한꺼번에 삼키고 도시하나를 폐허로 만드는 지진이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인도에서, 미국에서, 엘살바도르에서 그리고 한국도 지진예외국이 아니라고 합니다. 3월 9일자 신문에 의하면 10년내 한국도 큰 지진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에 정부차원의 대비가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자연의 공격은 그런대로 피할 수도 있고 예방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만드는 풍랑은 막을 길도 없고 대책도 없습니다. 건강의 풍랑을 만난 사람, 경제적으로 광풍을 만난 사람, 회사에서 풍랑을 만난 사람, 그들이 무슨 재주를 부려서 풍랑을 피할 수 있습니까
나폴레옹 힐은 말했습니다. "숲속에서 가장 튼튼하기로 소문난 떡갈나무는 폭풍으로부 터 숨어있는 나무가 아니다. 폭풍과 비 찌는 더위와 추위에 맞서 생존을 위해 빈터에 서 있는 나무이다."라고. 세계 최고의 오페라 가수인 파바로티가 1975년 12월 22일 공연을 미치고 밀라노로 돌아가기 위해 비행기에 탑승했습니다. 그날따라 밀라노의 말펜시 공항은 짙은 안개로 항공기의 이착륙이 어려웠습니다. 그가 탄 비행기가 짙은 안개를 뚫고 착륙을 시도하다가 활주로를 벗어나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정신을 잃고있던 그가 깨어나보니 비행기 안은 아수라장이 었습니다. 그때 그의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여기가 생사의 갈림길이로구나, 살아있다는 것은 정말 소중하고 감사한 일이구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살아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감사하다는 것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억세고 무서운 풍랑 속에서 내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합니다. 그토록 험하고 모진 시련 속에서지만 그것을 통과하고 오늘 여기 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합니다.
셋째는 예수없이 떠났기 때문입니다.
15절을 보면 에수는 혼자 산으로 떠나가셨다고 했고, 17절을 보면 "예수는 아직 저희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니"라고 했습니다. 바로 여기에 위기의 결정적 원인이 있습니다.
홀로된 여인을 과부라고 합니다. 홀로된 남자를 홀아비라고 합니다. 홀로된 아이를 고아라고 합니다. 홀로 있는 것을 고독이라고 합니다. 예수 없는 사람, 예수 잃어버린 사람, 예수 떠난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는 곧 위기의 사람입니다. 영적 고아입니다. 예수를 떠나 홀로 있으면 누구라도 위기를 겪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이 더 중요하고 무엇이 덜 중요한 것인가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돈도, 명예도, 권력도, 성공도 다 중요하고 필요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버리면 그것들은 위기의 조건으로 작용하는 것입니다. 헬라의 알렉산더 대왕이 세계제패의 꿈을 안고 마케도니아를 출발할 때 그는 자기가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보물들을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신하가 물었습니다. "폐하 그런 식으로 값진 보물들을 나누어주신다면 얼마 못 가 폐하의 보물창고가 텅 비게 될 것입니다." 그러자 대왕은 "나는 모든 보물을 다 나누어 준 것이 아니다. 가장 값진 보물은 손에 쥐고 있노라" "폐하 그 비장의 보물은 무엇이옵니까" "그것은 희망이라고 하는 것이다. 나는 그 희망 때문에 오늘 살아있고 그 희망 때문에 승리하게 될 것이다." 위기를 만난 사람들이 붙잡아야 할 보물은 무엇입니까 알렉산더처럼 막연한 희망을 붙잡아야 합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믿음을 붙잡아야 합니다. 그 믿음으로 예수를 찾고 붙잡아야 합니다.

2. 위기를 어떻게 극복했습니까
20-21절을 보면 "가라사대 내니 두려워 말라 하신대 이에 저희가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저희의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고 했습니다. 풍랑 만난 배에 떠나셨던 예수가 돌아오셨습니다. 자기네끼리만 모여있던 그 배에 예수를 모셨습니다. 그 시간부터 바람도 풍랑도 위기도 절망도 사라졌고, 가려던 땅에 갈 수 있었습니다.
가려던 땅! 우리가 가려는 목적지는 어딥니까 지금 내가 바라고 정한 목적이 무엇입니까 왜 그 목적이 성취되지 못한 채 좌초되고 위기를 겪어야 합니까
제자들이 겪고 있던 위기는 그들이 타고 있던 배로 주님이 돌아오셨을 때 끝났습니다. 이것은 위기를 해결하고 문제를 푸는 열쇠가 나에게 있지 않고 주님에게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놀만 빈센 필은 말했습니다. "문제를 붙잡은 당신의 손을 하나님의 손 안에 넣으시오. 그리하면 당신이 붙잡은 문제가 하나님의 문제가 될 것이요"라고. 우리는 지금 경제위기, 정치위기, 사회위기, 도덕적 위기 속에 파묻혀 있습니다. 길이 없습니까 아닙니다. 길이 있습니다. 종점입니까 아닙니다. 새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예수만이 우리 시대의 절박한 위기를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사람의 능력은 상처에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근본을 치료하진 못합니다.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주님을 모십시다. 주님을 부릅시다. 그리고 주님과 함께 가려던 땅에 우리 함께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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