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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으로 들어가는 나라 (히 03: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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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브로드웨이는 세계적인 명작들이 장기 공연되는 예술의 고장으로 유명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오페라 한 작품을 열 번 이상 공연하기가 어렵지만 브로드웨이의 경우는 한 작품을 10년, 15년씩 장기 공연해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제가 관람한 '레미제라블', '캣츠', '팬텀 오브 오페라', '나비부인' 등도 장기 공연된 작품들입니다. 그런데 단 한편도 공짜로 본 것은 없습니다. 뉴욕에 가기 전 친구에게 부탁해 6개월 전이나 두달 전에 미리 예매를 했습니다.
시골 장터 약장수 공연은 표를 예매할 필요가 없습니다. 장터에 나갔다가 그냥 구경하면 됩니다. 그러나 세계적인 오페라나 뮤지컬,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공짜가 없습니다. 귀한 것과 값은 비례합니다. 구리반지는 5천원이면 살 수 있지만 희귀한 보석반지는 5천만원을 줘야 살 수 있습니다. 귀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귀한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구원과 영생입니다. 흔히 우리는 구원을 값없이 받는다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구원은 공짜로 받습니다. 그러나 그 구원을 우리에게 공짜로 주시기 위해 예수님은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히브리서 9:12을 보면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다"고 했고, 9:22을 보면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나는 죄사함 받기 위해 피를 흘리거나 매를 맞은 일이 없습니다만 주님은 내 죄를 사하시기 위해 매를 맞으셨고 피를 흘리셨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 구원과 영생이 공짜이며 싸구려가 될 수 있습니까 독일 신학자 본회퍼는 "하나님의 은혜를 싸구려로 만들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시골장터의 구경거리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저절로 굴러 떨어진 행운이 아닙니다. 아픔이었고 고통이었고 죽음이었고 은혜였습니다.

저는 십자가를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는 복음성가가 있습니다.
"예수님 날 위해 죽으셨네 왜 날 사랑하나
겸손히 십자가 지시었네 왜 날 사랑하나
손과 발 날 위해 찢기셨네 왜 날 사랑하나
고난을 당하여 구원했네 왜 날 사랑하나
내대신 고통을 당하셨네 왜 날 사랑하나
죄 용서 받을 수 없었는데 왜 날 사랑하나
왜 날 사랑하나 왜 날 사랑하나
왜 주님 갈보리 가야했나 왜 날 사랑하나"
본문 3:11을 보면 "저희는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고 했고, 3:19을 보면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4:3을 보면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라고 했고, 4:11을 보면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안식은 우리가 장차 들어갈 하나님의 나라를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히브리서 3장이나 4장의 교훈을 합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들어갈 수도 있고 들어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격을 갖춘 사람은 들어갈 수 있지만 자격미달인 사람은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트럼펫 소리를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시골동네였기 때문에 트럼펫 소리를 들을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다니던 교회 목사님이 서툴긴 하지만 가끔씩 트럼펫을 불곤 했습니다. 그 멋진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리고 일년에 한 번정도 시골 동네에 서커스가 들어옵니다. 공터에 천막을 치고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 북을 치고 트럼펫을 불어댑니다. 저는 그 소리에 홀려 공터로 나갑니다만 그러나 돈이 없어 안에는 못 들어갑니다. 그때 그 심정은 비참하기 짝이 없습니다. 한 번은 친구와 함께 천막 밑구멍으로 몰래 들어가다가 들켜 실컷 두들겨 맞은 적도 있었습니다.
시골 동네 서커스도 표 없으면 못 들어갑니다. 버스도, 기차도, 비행기도 표 없으면 탈 수 없습니다. 하무려 하나님의 나라를 아무나 들어갑니까

본문은 하나님의 나라에 못 들어가는 조건을 예시하고 있습니다.

1. 마음이 강팍한 사람은 못 들어갑니다.
8절을 보면 "광야에서 시험하던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팍케 하지 말라"고 했고, 13절을 보면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팍케 됨을 면하라"고 했고, 15절을 보면 "너희 마음을 강팍케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강팍하다는 것은 굳어진다, 딱딱해진다, 경직화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무서워하는 암이란 정상세포가 변형되어 딱딱하게 굳어지는 병적 현상을 말합니다. 어느 암이든지 암 부위는 딱딱하게 변형되기 마련입니다.
본문은 강팍해지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출애굽기를 보면 여러군데 바로의 마음이 강 팍해져 하나님을 대적한 기사가 나옵니다. 바로는 강팍하다가 망했습니다. 다니엘서 5:20을 보면 바벨론 황제 느브갓네살도 그 마음이 강팍해졌기 때문에 왕위를 빼앗기고 쫓겨났다고 했습니다. 역대하 36장을 보면 남왕국 유다왕 시드기야 역시 마음이 강팍해져 하나님께로 돌아 오지 않다가 망했습니다. 욥기 9:4을 보면 "하나님은 마음이 지혜로우시고 힘이 강하시니 스스로 강팍히 하여 그를 거역하고 형통한 자가 누구이랴"고 했습니다. 강팍한 마음이나 강팍한 심령치고 복 받은 사람이 누구냐라는 것입니다. 왜 마음이 강팍해 집니까 그것은 죄의 유혹과 교만과 불신앙이 주범입니다. 유혹에 빠지면 앞 뒤 분별력이 없어집니다. 교만에 빠지면 목에 힘이 들어갑니다. 믿음이 깨지면 마음이 딱딱해 집니다. 사람의 신체구조는 흐름과 유연성이 중요합니다. 피가 정맥과 동맥을 제대로 흐리지 못하고 막히면 문제가 생깁니다. 근육도 뭉치거나 몽우리가 생기면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운동선수일수록 유연한 근육을 위해 얼마나 노력합니까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가고 입춘이 지나면 얼음이 녹고 언 땅이 녹기 시작합니다. 땅이 녹아야 씨도 뿌리고 나무도 심을 수 있습니다. 강팍한 내 심령을 성령의 뜨거운 불로 녹입시다. 경직화된 심령을 부드럽게 만듭시다.

2. 하나님에게서 떨어지면 못 들어갑니다.
12절을 보면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라고 했고, 14절을 보면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리라" 했습니다. 그리고 19절을 보면 "저희가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세구절이 주는 교훈은 "하나님을 떠나면 못 들어간다, 믿지 않으면 못 들어간다, 그러나 끝까지 믿고 믿음을 지키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애굽을 떠난 이스라엘의 꿈과 소망을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광야 40년동안 하나님을 수시로 떠났습니다. 하나님 대신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악한 건망중과 조급증이 주원인이었습니다. 홍해를 육지같이 건넌 기적도 사흘만 지나면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다시 원망과 불평을 시작했습니다. 조금만 참으면 가나안 땅에 들어갈텐데 광야에서 물이 없다, 덥다, 고기가 없다, 과일이 없다며 보챘습니다. 그러다 종래 그들은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갔고 2세대들만 들어갔습니다.
우리는 14절을 주목해야 합니다.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리라" 불신앙의 반대는 신앙입니다. 교만의 반대는 겸손입니다. 어떻게 불신앙을 버리고 겸손해질 수 있습니까 그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면 됩니다. 우리가 장차 들어갈 하나님의 나라는 월드컵 입장권이나 오페라 입장권을 사듯 돈 주고 사서 들어가는 나라가 아닙니다. 그 나라는 믿음으로 들어갑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와 함께 하면 들어가게 됩니다.
앞에서 서커스 공짜로 구경하기 위해 개구멍 뚫고 들어가다가 들통나 매 맞은 얘길했습니다만 그 날 경비원에게 매맞고 있을 때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이 서커스 구경하러 들어가다가 매맞고 서 있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그 날 선생님이 돈 내고 제 표를 사주셨습니다. 저는 지금도 선생님의 그 배려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내 대신 천국입장권을 사주셨습니다. 자기피로 값을 지불해 주셨기 때문에 누구든지 함께 하기만 하면 들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현재 걷고 있는 인생길을 바로 걸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며칠 전 서울 시내 모 대학 총장님과 얘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런 저런 얘기 중에 며칠 전 시내 어느 식당에서 겪었던 일을 저에게 얘기했습니다. 외국에서 온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시내 모호텔 부페식당을 찾아 갔답니다. 예약된 자리에 앉아 물을 마시고 있는데 30-40대로 보이는 부부 서너쌍이 들어왔습니다. 떠들썩하게 들어오며 서로를 부르는가 하면 얘들까지 동행하고 있었습니다. "김집사 이쪽이야, 일루와" "어이 이집사 나 화장실 갔다가 올께" "목사는 아직 안 왔나봐" "금방 오겠지 뭐" "야 사람 많은데" "얘 너네들은 따로 앉아라"... 등등 그들만의 웅변대회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떠들고 소리치고, 얘들은 뛰어다니고 음식 앞에서 기침을 해 대고... 보다못해 총장님이 매니저를 불러 얘기했더니 "손님 죄송합니다. 뭐라 그러면 손님 다 떨어져요"라며 그냥 지나치더랍니다. 정신없이 식사를 마치고 카운터에 계산하러 나왔는데 앞서 식사를 마친 다른 두 남자가 계산대에 선 채 "저따윗 놈의 새끼들! 어유 저런 것들 꼴보기 싫어 난 교회 안간다"라며 계산을 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 총장님은 얼굴이 화끈거리고 열이 올라 황급히 그곳을 빠져 나왔노라는 얘기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믿음으로 들어가는 나라를 향해 길을 떠난 사람들입니다. 욕먹지 맙시다. 손가락질 당하지 맙시다. 바로 믿고 바로 삽시다. 모범은 못 되더라도 비난의 대상은 되지 맙시다. 은혜로 가는 나라, 믿음으로 가는 나라! 그 나라를 향해 흔들리지도, 넘어지지도 말고 곧 바로 걸어갑시다.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리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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