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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건지시는 하나님 (고후 0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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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에 수확한 대구 사과 상자 속에 썩은 사과 한 알을 집어넣었습니다. 햇 사과이기 때문에 싱싱하고 맛도 좋은 것들입니다. 그 사과 상자 속에 썩은 사과 한 알을 넣어 한달동안 보관했습니다. 이유는 싱싱하고 맛있는 사과들이 썩은 사과를 싱싱하게 만들 수 있는가를 실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한 달이 지난 후 사과 상자를 열었을 때 싱싱하던 사과가 전부 썩어 있었습니다. 서른 알 넘는 싱싱한 사과가 썩은 한 알의 사과를 고치지 못한 것입니다. 반대로 한 알의 썩은 사과가 서른 개의 사과를 모두 썩게 만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부패의 원리입니다. 썩은 것은 썩은 것을 고치지 못합니다. 썩은 것은 싱싱한 것도 썩게 만듭니다. 싱싱한 사과 서른 개가 썩은 사과 하나를 고치지 못 한다는 것이 부패의 원리인 것입니다. 썩은 사과가 싱싱한 사과를 모두 썩게 만드는 것처럼 썩은 사람들은 세상이나 사람을 고치거나 새롭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부패하고 타락한 사람들은 모일수록 부패하고 타락한 사회를 만들고 정권을 만들고 정부를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땅에 떨어져 썩는 밀은 100배의 결실을 냅니다. 여기서 중요한 차이는 밀도 땅에 떨어지기 전에 미리 썩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썩은 밀은 땅에 떨어져도 싹이 나지 않고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믿음도 산 믿음이라야 역사하는 힘이 있다고 했고 제물도 산 것을 바쳐야 했습니다.
요즘 다시 총체적 위기란 말이 나돌기 시작했습니다. 그 어느 것 그 어느 부분도 마음놓을 수 있는 곳이 없다는 뜻입니다. 왜 누가 어떻게 총체적 위기를 만들었습니까 해와 달과 별이 그렇게 만들었습니까 아니면 산과 바다가 위기를 만들었습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순전히 사람 때문입니다. 사람이 썩고 타락하고 부패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우린 여기서 갱신과 개혁의 원리를 짚어보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제도를 고치고 법을 강화하고 기구를 바꾸면 세상이 달라지고 사회가 개혁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법을 만들고 기구를 고쳤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고치지 못했기 때문에 악순환은 되풀이되고 위기는 물레방아처럼 되돌고 있는 것입니다. 원리는 간단합니다. 내가 변하고 사람이 달라지면 오던 위기는 멈추기 마련이고 부패는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린 여기서 "내가 변하면 네가 변하고 세상이 변한 다"는 진리를 확인해야 합니다.

편지 한 통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목사님께 저는 목민교회에 다니는 전경옥 집사입니다. 나 자신이 변하면 남편도 자녀도 교회도 변한다는 말씀은 제게 큰 도전이었고 충격이었습니다. 저는 사실 믿지 않는 남편과 주일날 크게 다투고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그 다툼 때문에 남편은 남편대로 저는 저대로 상처가 컸고 마음은 편치 못했습니다. 저는 내가 변하면 남편이 변한다는 말씀을 붙잡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안방에 누운 채 제가 들어와도 외면하고 있는 남편 곁에 조용히 앉았습니다. 그리고 입을 열었습니다. "여보 죄송해요. 제가 잘못했어요. 당신 마음 헤아리지 못한 것 용서해 주세요. 다신 안 그럴께요."라며 남편 가슴 위에 손 얹고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저 때문에 남편의 마음이 상처 받고 속상했던 것 용서해 주세요"라고. 저는 흐느꼈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남편은 "니 지금 뭐하노, 와 우노"라고 퉁명스레 내뱉었지만 그날 밤 저희 부부는 손을 잡았고 막혔던 하수구가 뚫리는 것처럼 막혔던 감정의 구멍이 뚫렸습니다.
그 이후 사건이 더 좋았습니다. 제 남편은 섬유무역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대구 경기 역시 침체상태에서 전혀 거래나 주문이 없는 실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엄청난 물량의 주문을 받았다며 남편이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주신 말씀대로 내가 먼저 변하는 삶을 살도록 힘쓰겠습니다. 동봉해 드리는 것은 저의 작은 정성입니다. 받아 주십시오. 감사드립니다."라는 편지입니다. 그 분이 동봉한 것은 구두표 한 장이었습니다.
집회에 참석하고 은혜받은 집사님이 보낸 편지입니다. 이 사건은 어느 소시민의 부부 사이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아내가 자기를 꺽고 변화되었을 때 부부관계가 회복되었고 잃었던 평안을 찾게 되었고 그리고 사업에 축복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이 원리는 소시민의 가정과 부부 사이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가정과 사회와 국가 공동체에도 적용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원리를 받아드리고 수용하고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 탓입니다. 제가 책임지겠습니다."라고 말하고 나서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어렵고 힘든 일을 해내신 위대한 분이 계십니다. 그가 바로 유대땅 베들레헴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 일 때문에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 일 때문에 죽으셨습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그 일을 건져내시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10절을 보면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시리라 또한 이후에라도 건지시기를 그를 의지하여 바라노라"고 했습니다.
출애굽기 2장을 보면 애굽에 살고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남자아이를 낳으면 나일강에 버려야 했습니다. 그 시대에 모세가 태어났습니다. 모세 역시 나일강에 버림받게 되었고 바로의 공주 눈에 띠어 건져냄을 받게 되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나일강에서 건져냈다는 뜻으로 그 이름을 모세라고 불렀다는 것입니다. 모세란 건져냈다는 뜻이고 구원이라는 뜻입니다. 모세는 자신이 건져냄을 받았고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내는 사명을 완수해 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가리켜 우리를 죄에서 건지셨고 건지고 계시고 앞으로도 건져내신다고 10절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10절에서 말씀하신 '건지셨고'라는 것은 과거입니다. '건지시리라'는 것은 현재입니다. '후에도 건지시기를 바란다'는 것은 미래 구원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 믿기 시작할 때 구원을 받았습니다. 지금도 구원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구원은 미래에 완성이 됩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일회적 사건입니다. 그러나 성장하고 성숙하는 것은 단번에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에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계속 성장하고 성숙해져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계속 성장해 갈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의 원리도 같습니다. 구원받았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그 구원이 다져지고 성숙해 갑니다. 그리고 훗날 미래에 주님 오실 때 내 신앙과 구원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바울이 10절에서 강조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건지셨다, 건지신다, 건지실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구원의 전권과 능력과 주체가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누가 나를 구원합니까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어떻게 구원하십니까 친히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린 본문에서 중요한 다른 교훈에도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것은 "자기를 의뢰하지 말라"는 9절의 교훈입니다. 주님이 구언하시기 때문에 주님을 의뢰하고 주님을 위해 일하고 살라는 뜻입니다.
1634년 흑사병이 유럽을 휩쓸고 있었습니다. 독일 남쪽 바바리아 지방에 오버아마가 우(Oberamagau)라는 외딴 마을이 있었습니다. 이웃 마을로 돈벌이 나갔던 주민 한 사람이 집으로 돌아왔는데 흑사병에 감염되어 있었습니다. 흑사병은 삽시간에 전체 마을로 번졌습니다. 대책없이 죽어간 무덤앞에서 산 사람들은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님 저희들을 죽음의 병으로부터 구원해 주시면 앞으로 10년마다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십자가와 부활을 기념하는 연극을 만들어 주님께 바치겠습니다"라고.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 날 이후 단 한명도 흑사병으로 죽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350년이 지난 오늘까지 그 동네 사람들은 약속대로 연극을 만들어 매 10년마다 공연하고 있습니다. 연극 이름은 그리스도의 수난극(Passion Play)입니다. 그 마을 인구는 5000여명 정도인데 2200명이 연극에 동원됩니다. 출연료는 거의 없습니다. 아침 9시에 시작하여 점심시간을 빼고 저녁 6시까지 연극이 계속됩니다. 다섯달 동안 110번 공연하는데 1년 전에 표는 매진이 돼 버립니다. 혹독한 날씨와 가파른 지형 때문에 농사도 짓지 못하는 작은 마을인데 입장료와 숙박비 수입이 8천만 달러가 넘는다고 합니다.
그들이 자신들을 믿고 농사나 짓고 공예품이나 깍아 팔았다면 이름도 없는 시골동네를 벗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들을 의뢰하지 않고 예수님을 높이고 자랑하고 증거하는 일을 350년 동안 계속해 오고 있기 때문에 '오버아마가우에'라는 시골 동네는 세계의 명소로 소문나게 된 것입니다.
성경은 자신을 의뢰하지 않고 하나님을 믿고 그 구원을 바란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누가 나를 건져낼 수 있습니까
불란서의 무신론 철학자 싸르트르는 "출구가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겐 길도 있고 출구도 있습니다. 주님은 "내가 길이다 내가 문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은 주님이 우리를 건지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인자의 온 것은 잃어 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러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린 여기서 성탄의 참 뜻이 무엇인가를 찾아야 합니다.
우리를 건지시러 오셨습니다.
우리 짐을 대신 지러 오셨습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성탄하신 주님을 영접합시다.
성탄하신 주님을 찬양합시다.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드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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