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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두 아들 (히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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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텔레비젼에서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닮고 싶은 연예인이 누구며 어느 부위를 닮고 싶은가를 조사했습니다. 주로 여성 시청자들이 설문에 응답했는데 그 결과를 보면 입은 김현주, 눈은 심은하, 가슴은 김혜수, 이마는 전도연, 코는 채림, 얼굴형은 김희선이 있다고 합니다.
월간시사 주간지인 시사저널이 여성자신이 원하는 몸매를 성형하는데 필요한 돈이 얼마나 드는가를 조사했습니다. 이목구비 고치는데 450만원, 얼굴을 김희선처럼 만드는데 900만원, 가슴 확대를 하는데 400만원, 아랫배, 허벅지 엉덩이의 지방을 빼는데 1천만원, 종아리 날씬하게 만드는데 200만원, 주름 없애고 피부를 곱게 만드는데 700 만원, 보조개나 배꼽을 예쁘게 만들고, 비키니라인의 털을 제거하는데 250만원. 이를 합치면 3900만원이 되고 거기에 다른 부대 비용을 가산하면 5000만원이 들 거라고 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의 가치관은 예쁜 코, 예쁜 입, 예쁜 다리는 닮고 싶지만 닮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다. 닮고 싶은 목사도 없고 교수도 없고 정치인도 없고 기업인도 없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부모를 존경하는가 닮고 싶은가 라는 물음에 그렇다라고 대답하는 젊은이들이 10%미만이라는 것입니다.
우린 여기서 매우 중요한 문제를 발견해야 합니다. 그것은 부모와 자식의 관계란 존경하고 우러러보는 관계이기 전에 혈연관계, 생명관계라는 것입니다. 즉 피를 물려받았고 생명을 나눠 가진 관계라는 것입니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승에 대한 존경과 수용심이 없으면 학문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어떤 젊은이가 푸른 꿈을 안고 독일유학길에 올랐습니다. 그는 독일 명문대학에 입학하여 명교수의 지도아래 박사학위 과정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지도교수의 학문방법과 자신이 평소 생각하는 학문방법이 달랐습니다. 문제는 학위논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지도교수의 지적이나 지도가 마음에 들지 않아 반대의견을 제시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그는 지도교수의 반대로 논문 제출을 못하게 됐고, 5년간의 수고가 무위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는 보따리를 싼 후 다른 지방의 대학으로 옮겼습니다. 다시 학위과정을 시작했지만 똑같은 현상이 반복되는 바람에 그 대학에서도 학위를 받지 못하고 12년만에 귀국하고 말았습니다. 요즈음 그는 지방대학 시간 강사로 출강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제자는 스승을 존경하고 따를 때에 학문도, 학위도 성립이 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학문과 비교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은 아닙니다만 이치는 비슷합니다. 교인이 자기가 몸담고 있는 교회를 비하하고 영적 지도자인 목사를 폄하하는 것은 자신의 신앙성장에 털끝만큼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요즘 모 방송에서 모 교수라는 사람이 모 강좌를 하면서 기독교를 비난하고 예수를 폄하하는 강연을 하고 있어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그가 옛날에 기독교인이었고 모 신학교에서 신학까지 공부했노라고 말하면서 기독교를 비난하고 교회를 깎아 내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가 예수를 제대로 믿고 구원의 체험이 있고 중생한 사람이라면 그런 짓을 못할 것입니다. 그는 교회만 드나들었기 때문이고 물만 먹었기 때문이고 구원받기 못했기 때문에 오늘 그런 사람이 된 것입니다.
교인은 교회를 사랑하고 지켜야 합니다. 자녀는 부모를 사랑하고 존경하고 그 가르침을 따라야 합니다. 그것이 인생의 정도인 것입니다.

본문은 우리에게 두 아들에 관해 교훈하고 있습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중요한 단어들을 먼저 찾아보겠습니다. 5절을 보면 "아들들", 내아들이라는 말이 있고 6절을 보면 "사랑하는 자", "받으시는 아들" 이라고 했고 7절을 보면 "아들과 같이"라고 했고 8절에서는 "사생자 참아들"이라고 했고 9절에서는 "육체의 아버지, 영의 아버지"라고 했습니다. 연속적으로 아들이라는 말이 반복되는가 하면 아버지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두 가지 교훈을 찾겠습니다.

1. 두 아들이 있습니다.
두 아들이란 8절에서 말씀하신 대로 사생자와 참아들입니다. 사생자란 정상적 결혼생활을 통하지 않고 낳은 아들입니다. 사생자는 법적 권리가 없습니다. 유산상속도 안되고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호적에도 오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참아들이란 정상적 부부관계를 통해 낳은 아들이며 상속도 가능하고 법적 보호도 가능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참아들로 대우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7절을 보면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셔나니"라고 했습니다.
본래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본래 마귀에게 예속되어 있었고 죄의 종이었고 악의 자녀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하셔고 양자를 삼아 주셨습니다.
경기도 수원 시골에 장환이라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집이 가난해 제대로 공부도 못하던 소년이 6.25전쟁때 미군부대에서 심부름도 하고 구두도 닦아주다가 군인 한 사람을 만나 그의 아들로 입양이 되어 미국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미국 군인은 장환 소년을 위해 온갖 사랑과 정성을 쏟아 양육했고 소년은 미국에서 대학과 신학까지 마치고 목사가 되어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는 한국에 나와 수원중앙침례교회를 세계적인 교회로, 극동방송을 선교방송국으로 만들고 전 세계 침례교총회장 인된 김장환 목사님입니다. 가난한 소년, 길 막힌 소년이 양부모 잘 만나 세계적인 인물이 된 것입니다.
우리도 예외가 아닙니다. 마귀의 종이었던 나, 죄의 자녀였던 나를 주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속량하시고 하나님의 자녀, 참아들을 삼아 주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하고 감격스럽습니까 그러나 우린 여기서 이 이야기를 좀 더 깊은 곳으로 끌고 들어가야 합니다.
6절을 보면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지를 집계하시고 그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7절을 보면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라고 했습니다. 8절도 주목해야 합니다.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아들이 아니니라"고 했습니다. 위의 구절들을 종합하면 참아들은 매를 때린다, 야단친다, 그것이 없으면 참아들이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사생자와 참아들의 차이가 무엇인가를 밝혀주고 있습니다. 참아들은 잘못하면 야단치고 때리고 가르칩니다만 사생자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시내 모 상업여자 고등학교 이야기입니다.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야단칠 수가 없답니다. 야단치면 대들고 덤빕니다. 그리고 학교에 나오지 말라고 경고하면 "예 알겠습니다"라고 말한 후 그 다음 날부터 안나와 버립니다. 학교 안나오고 뭘하나 알아보면 가발 뒤집어쓰고 야간업소에 나가 돈 벌고 몰려다니며 논다는 것입니다. 이건 참아들도, 참제자도, 참교인도 아닙니다.
고2 여학생이 친구 꼬임에 빠져 가출을 했습니다. 그 어머니는 식음을 전폐하고 24시간을 울며불며 뜬눈으로 긴긴밤을 지새옵니다. 갈 만 한곳을 알아보고 친구 집을 찾아가 보고 경찰에 신고를 하고..... 한달 만에 속초에 하숙방에 있는 것을 찾아 집으로 함께 돌아왔습니다. 딸을 만나자 마자 그 어머니는 딸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뒹굴며 딸을 닦달했습니다. 그러나 이내 딸을 껴안고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그리고 딸도 어머니도 함께 울었습니다. 이 경우는 참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참아들의 경우는 머리채를 쥐어뜯고 두들겨 패도 함께 껴안고 울면 그것으로 다 풀어지고 맙니다. 원한도 없고 앙심도 없습니다. 그러나 사생자의 경우는 때리거나 쥐어 뜯으면 한을 품고 앙심을 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쉽게 풀리지 않습니다.
나는 누구입니까 사생자입니까 참아들입니까
본문은 왜 참아들을 징계하는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5절은 아들이기 때문이라고 했고 6절은 사랑하는 아들이기 때문이라고 했고 8절은 참아들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참아들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습니다. 아멘.

2. 아버지께 더욱 복종해야 합니다.
9절을 보면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하지 않겠느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5절을 보면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부모님을 피하는 참아들의 태도가 무엇인가를 밝혀주고 있습니다.
자녀는 윤리적으로 부모님에게 효도하고 순종하는 것이 기본 원리입니다. 부모에게 대들고 반항한 것은 자식이 취할 태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영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절대 복종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지금은 각양 좋은 약들이 많습니다만 50년대 60년대만 해도 약국도 없었고 병의원 도 면소재지에 하나 정도가 있을 뿐이었습니다. 더운 여름철 더위에 지치고 상한 음식을 잘못 먹으면 배탈이나 설사를 하게 됩니다. 설사가 계속되고 밥도 먹지 못해 탈진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역스럽고 쓰디쓴 익모초 잎을 따서 즙을 만들어 줍니다. 그 즙은 구토를 하며 마실 정도로 기분 나쁜 즙입니다. 코를 막고 오만상의 찡그리고 마셔야 합니다. 그러나 그 즙보다 더 좋은 약이 없습니다. 두 컵만 마시면 배탈, 설사, 탈진은 다 물러가 버립니다. 왜 쓴 풀잎 즙을 줍니까 먹고 쓰러지거나 기절하라고 줍니까 사랑하기 때문에 참 아들이기 때문에 나를 낳으신 어머니이기 때문에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공경합시다.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께 순종합니다.
내 영의 아버지를 높입시다.
그리하여 참아들이 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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