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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시험을 참는 사람들 (약 01: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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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이 있고 유혹이 있습니다. 시험은 참고 견디면 복이 되지만 유혹은 물리치고 이겨야 합니다. 시험과 유혹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느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시험에 관한 야고보 사도의 몇 가지 교훈을 살펴보겠습니다.

1. 시험을 기쁘게 여기라
2절을 보면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했습니다. 원문의 뜻은 "너희가 예기치 못한 시련을 당하거든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뻐하라는 것은 자랑하고 싶어서 견딜 수 없는 것, 기쁨으로 충만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이 받은 시련은 멸시, 천대, 경멸, 따돌림, 핍박, 추방 등 헤아릴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을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왜 시험을 기쁘게 여겨야 합니까
이유는 하나님이 나를 쓰시기 위해 연단 하시기 때문입니다. 시드니 올림픽 레슬링 경기에서 금메달을 따낸 선수의 훈련 과정이 텔레비전에 소개된 일이 있었습니다. 비지땀을 흘리며 반복하는 그 훈련 모습은 안쓰러울 정도였습니다. 금메달의 영광을 아무나 받는 것은 아닙니다. 시련과 연단을 기쁨으로 받아 드리는 사람이라야 합니다.
왜 시험을 기뻐해야 합니까
하나님이 나를 대표 선수로 인정하시고 선발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사실이 자랑스럽고 고마 와서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독수리가 새끼를 훈련하는 것은 가혹하리만큼 철저합니다. 독수리는 둥지를 높은 산비탈 바위틈에 만듭니다. 새끼들이 보금자리를 떠날 무렵이 되면 보금자리를 만들었던 나뭇가지들과 풀잎들을 뽑아 버리고 엉성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난 후 보금자리를 부리로 쪼아서 흔들어 버립니다. 그 안에 있던 새끼들은 하는 수 없이 둥지 밖으로 밀려나 낭떠러지로 떨어지게 됩니다. 아직 날개에 힘이 들어가 있지 않기 때문에 절벽 아래로 떨어져 박살이 날 위기에 처합니다. 그 때 독수리는 손살같이 내려와 새끼를 낚아채 다시 공중으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다시 떨어뜨립니다. 이런 훈련을 반복하는 동안 독수리 새끼는 날개에 힘이 들어가 푸른 창공을 나는 새 중의 새가 되는 것입니다. 어미 독수리의 이 높고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한 새끼 독수리가 벼랑에 머리를 박고 자살을 한다든지 원망을 한다면 새 중의 왕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3절을 보면 "믿음의 시련은 인내를 만들어 낸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인내는 휘포모네입니다. 휘포모네란 앞이 막혀도 후퇴하지 않는 것 무거운 것이 내려 눌러도 일어서는 상태를 말합니다.
휘파람을 부는 새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새는 가시나무의 날카로운 가시가 흉부를 찌르면 그 아픔 때문에 아름다운 휘파람 소리를 낸다고 합니다. 카나리아도 아름다운 소리로 노래합니다. 그러나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게 하려면 검은 천으로 새장을 덮어 어둡게 만든 다음 한참 후에 천을 벗겨 줍니다. 갑자기 찬란한 빛을 보게 된 카나리아는 너무 황홀하고 기뻐서 곱고 고운 소리로 노래를 부른다고 합니다.
시련이나 연단은 없을 수 없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시험을 기쁘게 여깁시다. 훈련하시고 연단 하시는 하나님의 선수가 된 것을 기뻐합시다.

2. 시험을 참으라
1:12를 보면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했고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고 했습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견디는 것이 참는 것입니다.
모회사의 중역으로 있다가 IMF 이후 조기 은퇴를 한 50대 후반의 남자가 있었습니다. 퇴직금으로 받은 얼마간의 돈이 있긴 했지만 놀고먹기가 지겨워 아파트 밀집 지역 상가에 잡화를 취급하는 조그마한 가게를 냈습니다. 3개월이 지난 어느 날 그를 만났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견딜 만 합니까" "장사가 이렇게 힘든 줄 몰랐습니다."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참고 견디시기 바랍니다." 그와 제가 주고받은 대화의 일부분입니다. 회사에 출근 시간이 되면 기사가 차를 대기시켜 놓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회사에 출근하면 비서실에서 그 날 할 일을 브리핑해 주곤 했습니다. 그런데 자기 손으로 가게문을 열어야 하고 손님들에게 굽실거려야 하고 하루 종일 가게를 지켜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2년이 지난 어느 날 그를 만났습니다. "요즘은 어떻습니까"라고 물었더니 "그 때 목사님 말씀대로 참고 견디기를 참으로 잘했습니다. 일거리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요즘은 월수입이 회사 있을 때 못지 않습니다. 먹고 노는 친구들이 저를 부러워하고 있습니다."라는 것이 그의 대답이었습니다. 지극히 작은 예에 불과합니다만 참고 견디는 사람이라야 인생도, 사업도, 신앙도 성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1848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금광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소문이 퍼지자 동부나 다른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서부로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을 미국 사람들은 골드 러시라고 불렀습니다. 3년 뒤인 1851년 호주의 뉴사우즈웰즈와 빅토리아 지방에서도 금광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소문이 퍼지자 은행, 회사, 농사, 목장 일을 팽개친 사람들이 금을 찾아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1년 동안 맬버른으로 들어오는 외국배가 1천척이 넘었고, 수년 사이 50만 명의 이민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러나 다 금을 캐어 부자가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채광 권이 전문 회사로 넘어가면서 몰려든 사람들은 할 일이 없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막노동을 해야 했고 보따리 장사를 해야 했고 그것도 어려운 사람들은 방랑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금에 미쳐 일터를 떠나고 고향을 떠난 사람들의 실패담은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고 있습니까
예수 믿기가 힘들고 신앙생활 하기가 어렵더라도 세상 유혹이나 황금에 눈이 어두워 그 자리를 떠나지 말라고 교훈 합니다.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러워도 참아야 합니다. 그래야 복이 오고 생명이 오는 것입니다.

3. 시험을 이기라
시험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훈련하시고 연단 하시기 위해 주시는 것과 마귀가 우리를 유혹하여 넘어뜨리기 위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은 동기나 출발이 선하지만 마귀의 시험은 동기가 불순합니다.
과거 시험을 치르러 한양으로 올라가던 젊은이가 어느 날 밤 주막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주막에는 예쁜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 여자는 온갖 교태를 부리며 술과 미모로 그를 유혹하기 시작했습니다. "서방님 하룻밤만 더-, 하룻밤 만 더"라며 유혹했습니다. 그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젊은이는 술과 여자에 빠져 과거 시험에 응시하지 못했습니다. 이 사람은 나쁜 시험에 빠져 버린 사람입니다. 그러나 다른 젊은이는 절세가인의 감미로운 유혹을 뿌리치고 한양으로 올라가 과거에 응시하여 장원으로 급제한 후 금의환향했습니다. 한 사람은 시험에 졌고 한 사람은 시험에 이긴 것입니다.
우리 앞에도 두 종류의 시험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시험은 기쁘게 여기고 참고 견디고 받아 드려야 합니다. 그러나 사단의 시험은 물리치고 이겨야 합니다. 마태복음 4장을 보면 주님께서 사단의 시험을 받으시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도 단호히 물리쳤습니다.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오직 하나님께만 경배하라" "사단아 물러가라!"
사단의 시험이 갖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는 사단의 시험은 언제나 그럴싸하고 감미롭고 흥미 있게 시작됩니다.
둘째 사단의 시험은 누구에게나 어디에나 있습니다. 성 차별도 없고 국경도 없습니다. 아담도 시험했고 삼손도 시험했고 예수님도 시험했고 베드로도 시험했고 우리도 시험하러 덤비고 있습니다.
셋째 그러나 그 시험은 이길 수 있습니다. 내가 그 시험을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 시험을 이기신 주님과 연합하면 그 능력으로 시험을 이기는 것입니다. 연합하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믿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여! 나는 힘이 없습니다. 내가 지금 엄청난 시험을 당하고 있습니다. 나를 도와 주시옵소서. 이 시험을 이기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소리질러 기도해야 합니다.
정원사가 나무의 가지를 싹둑싹둑 자리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던 사람이 물었습니다. "왜 나뭇가지를 무자비하게 자르고 있습니까" 정원사는 대답했습니다. "저는 나무의 건강을 위해 가지를 자르고 있습니다. 가지를 자르지 않으면 건강하고 좋은 나무가 될 수 없습니다"라고.
교회 앞 길 좌우엔 은행나무가 줄지어 서 있습니다. 은행잎이 떨어지고 늦가을이 되면 은행나무 가지를 다 잘라 줍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보다 더 성숙한 나무가 되게 하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4:12를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 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라"고 했고, 13절을 보면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야 영광의 날에 너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이 끝났습니다. 마라톤, 레슬링, 유도 등에서 금메달을 따낸 사람들을 지켜보았습니다. 하나같이 그들은 참고 견디며 이를 악물고 최선을 다 했습니다. 영광의 금메달이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실패자가 될 수 없습니다. 인생도 승리해야 하고 신앙도 승리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시험을 이겨야 합니다. 죄와 유혹은 물리칩시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연단은 감사하며 기쁨으로 받읍시다. 그래야 영광의 날 우리 목에 금메달을 걸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시련이 힘들더라도, 견디기가 어렵더라도 십자가를 참고 견디신 주님을 바라보며 견딥시다.
시련이나 고통은 영원한 사건이 아닙니다. 잠깐이면 끝납니다. 그러나 영광은 영원한 사건입니다. 영원히 계속됩니다. 그 영광을 바라보며 시험을 참고 기뻐합시다. 이깁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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