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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르짖는 사람들2 (렘 3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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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스미스 소니언 박물관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다이아몬드가 소장되어 있다고 합니다. 45캐럿 인도 산 다이아몬드인데 그 동안 이 보석을 소유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비극적 최후를 맞았습니다. "저주의 보석"으로 불리는 이 다이아몬드의 원래 소유자였던 페르시아 총독은 도둑에게 살해당했습니다. 두 번째 소유자였던 페르시아 왕은 반란군에 의해 처형당했습니다. 후 보석은 프랑스의 루이 14세가 소유했지만 단 한번 목에 걸어 본 후 천연두에 걸려 죽었고,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앙트와네트가 그것을 소유했지만 두 사람 다 단두대에서 처형당했습니다. 결국 이 보석은 영국 부자 헨리 필립호프가 사들였지만 호프리 집안 역시 몰락하고 말았습니다. 이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소유라고 다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앙의 경우도 믿고 부를수록 좋은 신이 있는가 하면 믿고 가까이 할수록 불행하게 되는 신이 있습니다. 제아무리 커 보이고 좋아 보여도 저주의 다이아몬드처럼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신을 부를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게 부르지으라 내 이름을 부르라. 그리하면 내가 너에게 대답하겠고 큰 일을 보여 주겠노라"고, 우리가 하나님을 부를 때 어떤 복이 임하는가를 본문이 밝히고 있습니다.

1. 고쳐 낫게 해 주십니다.
6절을 보면 "내가 이성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고 평강과 성실함에 풍성함을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성은 예루살렘입니다. 그 성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범죄할 때마다 하나님은 그 성을 치셨습니다. 그러나 그 성 사람들이 회개하면 그 성을 회복시키셨습니다. 예루살렘성 뿐이겠습니까 하나님은 살리기도 하시고 죽이기도 하십니다. 흥하게도 하시고 망하게도 하십니다. 되게 하실 수도 있고 되지 않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유는 창조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미국 죠지타운 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인 데일매슈스 박사는 믿음이 병을 낫게 한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 그러나 신앙은 사람을 평안하게 만들고 질병을 치유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캘리포니아 주에 살고 있는 5286명의 주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의하면 흡연, 음주, 비만, 운동 부족으로 사망하는 사람들 가운데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훨씬 사망률이 낮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의학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믿음이 강한 사람일수록 우울증, 자살 충동, 알코올 중독, 마약중독에 빠질 확률이 낮다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성도 고치시고 거기 사는 사람도 고치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고치시고 우리가 살고 있는 황무한 땅을 고치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요즘 얼굴 색깔로 그 사람의 질병 유무를 판별하는 색각병리(色覺病理)학이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얼굴이나 눈동자에 청색 빛이 나타나면 복통, 냉증, 감기 등이 자주 올 수 있고, 얼굴 색이나 눈동자가 붉은 색이면 발열, 흥분, 가슴 두근거림이 있고, 황색이면 설사, 소화불량, 부종이 있고 백색이면 무기력, 탈진, 피로가 있고 흑색이면 월경불순, 어혈, 만성피로 등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의사는 환자의 얼굴만 보아도 어디가 아픈가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이 누구십니까 사람을 창조하신 분입니다.
시편 139:1이하를 보면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아셨나이다.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라고 했고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지으셨습니다.
나를 아십니다.
나를 고치십니다.
이 땅도 고치십니다.

2. 회복해 주십니다.
7절을 보면 "내가 유다의 포로와 이스라엘의 포로를 돌아오게 하여 그들은 처음과 같이 세울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70년 간의 길고 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게 해 주시며 행복하고 잘살았던 처음처럼 회복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5:11이하를 보면 아버지와 집을 떠난 둘째 아들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게 될 유산을 미리 받은 둘째아들은 어느 날 재산은 다 정리하여 집을 떠났습니다. 13절을 보면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 방탕하였다."고 했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비행기타고 하와이나 모로코 같은 곳으로 날아가 폼잡고 즐기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리 오래가진 못했습니다. 일정한 수입도 없이 썼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돈이 떨어졌습니다. 돼지가 먹다 버린 쓰레기통에서 먹을 것을 찾아 먹고 길거리에서 잠자는 거지 중의 상거지가 되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어떻게 그 위기를 극복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간단합니다. 아버지께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아버지가 그를 받아 주었다는 것입니다. 제아무리 백번 천번 돌아와도 아버지가 "너는 내 자식이 아니다나는 너 같은 자식을 둔 일이 없다"며 받아 주기 않는다면 그는 돌아와도 거지이며 버림받은 자식인 것입니다. 우린 이 이야기 속에서 돌아오면 받아 주시고 다시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본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본문 7절에 의하면 하나님은 돌아오게 하시며 돌아온 사람들을 처음처럼 세워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예수 믿기 전 죄의 포로로 살았습니다. 질병과 고통의 사슬에 묶인 채 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우리를 돌아오게 해주셨고 우리의 결박과 사슬을 풀어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자유인이 된 것입니다.
죄로부터 고통으로부터 절망으로부터 좌절과 패배감으로부터, 질병과 죽음으로부터 자유케 해 주셨습니다.
"예수 결박 푸셨도다 모든 결박 푸셨도다
나의 결박 푸셨도다 나는 자유해
모든 영광 하나님께 모든 영광 하나님께
모든 열광 하나님께 나는 자유해"
아멘

3. 죄악을 사하여 주십니다.
8절을 보면 "내게 범한 그 모든 죄악에서 정하게 하며 그들이 내게 범하며 행한 모든 죄악을 사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범한 죄는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불신 죄입니다. 이사야 43:1을 보면 "야곱이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이스라엘을 창조하시고 조성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소유였고 백성이 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것을 부인하고 믿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엄청난 대역죄였습니다.
둘째는 하나님 대신 우상을 섬긴 죄입니다. 그들은 하나님 대신 바알 신과 몰록 신과 아세라 신을 섬겼습니다. 그 죄 때문에 그들은 나라가 망했고 살던 땅에서 쫓겨났고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김인수교수가 쓴「한국 기독교회의 역사」라는 책을 보면 초대 한국 기독교인들은 조상 제사 문제 때문에 핍박을 받고 피 흘리며 순교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1913년 2월 18일자 그리스도 신문은 조상 제사의 폐해를 지적했습니다. 시간 낭비, 돈 낭비는 물론 제사 지낼 아들이 없는 집에서는 첩을 얻어 아들을 낳아 제사를 지내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조상을 추모하고 업적을 기리고 그 유덕을 살피는 것은 당연하고 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미 죽어 흙이 된 사람의 혼을 위해 숭배 행위를 하는 것은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계명에 위배되는 것입니다. 요즘 귀신들은 제대로 얻어먹지 못해 허기진 귀신이 많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의 전통적 제사는 저녁 자정이 되어야 지냅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귀찮기도 하고 밤중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서 초저녁에 제사를 지내 버립니다. 사전에 제사 시간 통보를 받지 못한 귀신이 자정 녘에 와 보니 이미 제사는 끝난 뒤고 먹을 것은 깨끗이 청소가 된 뒤여서 얻어먹을게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만든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고 불신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신에게 분향하고 제사하다가 나라가 망하는 진노를 겪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너희가 내게 범한 모든 죄악을 사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모든 죄악을 사할 것이라" 아멘 죄악을 사한다는 것은 용서하신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용서받은 후의 삶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다시 죄를 범하지 않아야 합니다.
요한 복음 8장을 보면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혀 죽게 된 여인이 있습니다. 그녀에게 하신 주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지 아니하노니 다시는 가서 죄를 범치 말라" 어떻게 연약한 내가 다시 죄를 범치 않을 수 있습니까 그것은 기도하고 성령 님을 내 안에 모셔야 합니다. 성령의 감동과 인도하심을 따라야 내가 재범을 피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 심리학 교수인 필립짐바도 교수는 "전에는 수줍음을 약간 타며 남들과 어울리던 사람이 요즘 와서 아예 다른 사람과 접촉하지 않고 살수 있게 되었다. 이유는 인터넷 문화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죄사함 받은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아야 합니다. 다른 것들 만나느라 하나님 만나는 시간이 줄어들면 안됩니다. 컴퓨터 인터넷 때문에, 사업 때문에, 돈버는 것 때문에, 세상 즐거움 때문에, 사람 만나는 것 때문에 주님을 소홀히 하면 안됩니다. 우린 이 시간 주님을 향해 내가 주님을 사랑한다고 부르짖어야 합니다.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해야 합니다. "주님을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주님 사랑해요"라고 입을 열고 고백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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