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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진정한 행복의 요소 (잠 17: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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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장에서는 화목과 선, 분쟁과 사랑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

즉 지혜있는 삶과 미련한 삶을 대비시켜 놓고 이 글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무엇이 진정 행복한 삶인가를 이해시켜 주려고 하고 있다.

이를테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필요한 행복의 요소에 대한 교훈이다. 행복에는 외적인 행복이 있고 내적인 행복이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져지는 외적인 행복이 아니고 가장 기본적이고도 근본적인 내적인 행복을 말씀하고 있다.

그러면 내적인 행복에 대한 요소는 무엇이 있는가. 본문에서는 몇가지를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1. 화목 (1) "마른떡 한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내적인 평안이 외적으로 화려하고 풍성하면서도 불화하는 것 보다 훨씬 낫다는 말씀이다. 마른떡은 글자 그대로 먹을 시기가 지나서 말라 버려 윤기가 없는 보잘것 없는 음식을 말한다.

이스라엘인들의 음식을 먹는 습관으로 마른 떡을 초에 찍어 먹거나 물에 찍어서 먹었다. 보아스가 롯에게 초에 찍어 먹으라고 한 것이 이 경우에 해당한다. 예수님도 최후의 마찬시 마른 떡을 한조각 떼어 유다에게 찍어 주셨었다. 이것은 초라한 음식을 말한다. 그러나 육선은 풍성한 고기를 곁드린 기름진 식탁을 말한다. 즉 기름진 고기와 풍성하게 준비된 밥상이라는 말이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 감사제나 화목제를 드린 후에는 제물 중 기름이 붙어 있는 부분은 태우고 좋은 부분은 가지고 와서 함께 모여서 나누어 먹었다.이것이 육선이다.

그런데 그렇게 먹으면서도 마음이 불화하면 맛 없는 마른 떡 한조각을 먹으며 화목한 것만 못하다는 말이다. 이 말은 화목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값이 있는가를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아담이 하나님과 불화하면서 두려워 나무숲에 숨었다. 가인이 하나님과 불화하고도 도망을 다녔다.

요나가 하나님과 불화하고 배 밑창까지 내려가 숨었다. 다윗이 하나님과 불화하고 얼마나 뜨거운 회개의 눈물을 흘렸는가. 우리 인간은 그렇게 살수가 없는 존재들이다.그래서 보이는 행복의 요소는 실속이 없는 것이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적인 평안이다.

 2. 슬기로움 (2) "슬기로운 종은 주인의 부끄러움을 끼치는 아들을 다스리겠고 또 그 아들들 중에서 유업을 나눠 얻으리라" 옛날에 종은 주인의 재산의 일부였었다. 종은 인권이나 인간으로서의 존대나 가치는 전혀 인정받지를 못하였었다. 그래서 종에게는 인권이 있을리가 없다. 그러나 이같은 재산의 일부로서의 종일지라도 슬기로운 종이라면 망나니 주인의 아들을 다스리게 되고 나중에는 주인의 재산의 일부를 상속받게까지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이 그런 경우에 해당된다. 그는 종의 신분이었지만 주인의 며느리를 선발할 권한 까지도 위임받아 일을 처리할 만큼 지혜로운 종이었다. 사울의 종 시바도 그랬고 보디발의 집에서 종 노릇을 하던 요셉도 역시 종의 신분이었지만 전폭적인 권한까지 위임을 받았던 종들이었다.

그러면에서 행복은 자신이 만드는 것이다. 비록 종의 신분일지라도 지혜가 있고 슬기가 있으면 얼마든지 신분을 높일 수가 있고 신임을 받게도 되고 자신의 행복을 만들어 갈 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슬기로운 종은 주인의 유업까지도 받게 된다는 말씀이다.

 3. 순수함 (3)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 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사람이 하나님으로 부터 인정을 받는 것은 순수함에 있다. 하나님이 다윗을 보니 마음에 합하였다고 하셨다. 이 말은 그만큼 다윗이 순수하였다는 말씀이다. 사람이 행복해 질 수 있는 요소는 바로 이 순수하였다는 말씀이다. 사람이 행복해 질 수 있는 요소는 바로 이 순수함에 있다. 자신에게나, 타인에게나 하나님에게 있어서 순수한 마음을 지니고 삶을 유지해 나가는 삶은 귀하고 거룩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이같은 순수한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내적인 고요함이 있고 매사에 흔들임이 없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해 준다.

사람이 인정을 하고 하나님이 인정을 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이같은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가장 힘이 있고 자신감이 있으며 그것이 그로 하여금 행복한 삶의 원천을 제공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에게나 사람들에게 조차 불성실한 사람은 언제나 요동하고 흔들리고 불안한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다. 고요가 없기 때문이다.

순수함이 주는 무게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같은 인생은 값이 없다.

내용도 없다. 풀무와 도가니는 재련하는 도구를 말한다. 광물질을 도가니에 넣고 풀무와 도가니는 재련하는 도구를 말한다. 광물질을 도가니에 넣고 풀무로 부쳐 칠배를 달구면 쇠가 녹으면서 그 속에 있는 불순물을 토해내게 된다. 이렇게 여러번 걸러져 낸 금일 수록 순도가 높고 나중에는 순수함만 남게 된다. 하나님이 인간을 상대로 해서 시험을 하신다면 이렇게 순수하게 만드시기 위해서 연단하시고 훈련하실 뿐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으로 하여금 순수한 사람이 되게 만드신다. 그것은 그만큼 사람으로 하여금 행복한 사람이 되게 하시기 위해서다. 사람은 순수할 때 비로서 행복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그 때 비로소 행복을 누릴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순수함은 곧 행복의 요소인 것이다.

 4. 진실 (4) "악을 행하는 사람은 궤사한 입술을 잘 듣고 거짓말을 하는 자는 악한 혀에 귀를 기울이느니라." 진실하지 못하고 악한 마음을 지니고 살면 언제나 진리에 귀를 기울이고 진실에 마음을 두기 보다 궤사와 거짓말에 귀를 기울이기 쉽다. 또한 진실이 없는 마음에는 언제나 외적인 화려함에 마음을 쓰게 되고 내적인 조화나 마음을 가꾸는 일에는 등한하게 된다. 그래서 언제나 나타난 현상에서 행복의 원천을 얻으려 할 뿐 진실한 삶의 모습에는 무관하려고 한다.

그러나 진정한 행복은 진실한 삶과 깨끗한 정신을 떠나서는 주어지지 않는다.외적인 행복은 그 내용이 빈약할 뿐 아니라 실속이 없다.

그래서 외화내빈이다. 성경은 그래서 줄기 차게 내적인 행복의 요소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행복은 마음에서 만들어지고 그곳에서 느껴지고 마음 속에 그 행복함을 가져다 주는 복의 요소가 되는 것이다.

 5. 자비 (5) "가난한 자를 조롱하는 자는 이를 지으신 자를 멸시하는 자요 사람의 재앙을 기뻐하는 자는 형벌을 면치 못할 자니라" 사람의 진정한 가치는 협동의 정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람은 집단을 이루어 살아가는 것이고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다. 사람이 가장 기쁨을 느끼게 되고 보람과 생의 희열을 느끼는 경우는 베푸는 삶, 나누는 삶, 바로 그것이다.

무엇인가 주고 베풀고 나눔이 있을 때 주어지는 기쁨은 얻고 받았을 때 주어지는 기쁨과는 또 다르다 주는 마음, 베푸는 마음에는 언제나 기쁨과 행복함이 따라 붙는다. 그래서 베푸는 사람은 언제나 주는 삶을 잃으려 하지 않는다. 거기에서 주어지는 행복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을 멸시하고 조롱하고 남이 당하는 재앙을 기뻐하는 사람에게는 그 마음에 행복이 자리 잡을 여백이 없다. 교만한 사람이나 이기적인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진정 마음 깊은 곳에서 이루어지고 우러 나오는 기쁨과 감사와 행복함은 그런 마음 속에서는 솟아나지 않는다.

그 마음에서는 그런 마음이 자리를 잡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은 "긍휼히 여기는 자가 긍휼이 여김을 받는다"고 했다.

행복은 인간이 지닐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삶의 모습이나 자비를 떠나서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극히 기본적인 삶을 이루어 갈 때 주어지고 얻어지고 창조되는 것이다.6.우정 (17) "친구는 사랑이 끊이지 아니하고 형제는 위급한 때 까지 위하여 났느니라" 세상에서 행복한 사람은 진정한 우정을 나룰 수 있는 상대가 있는 사람이다. 외로움과 고독은 홀로 서 있는 사람이다.

함께 할 사람이 없고 진정한 대화를 나눌만한 사람이 없다는 것은 진정 고독한 인생이다. 그래서 친구는 형제보다 나을 수 있고 가까운 어느 이웃 보다도 귀한 존재다. 그래서 친구는 평생지기다.

평생을 함께 할 수 있는 동무요 동반자요 지기인 것이다. 이같은 친구가 귀한 것은 살아가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당하게 될 때 그 귀함이 진가가 더욱 선명하게 나타나게 된다. 다윗에게 있어서 요나단은 그 누구 보다도 귀한 존재였다.그래서 그들의 우정이 더욱 빛나는 것이다.

오늘 우리의 진정한 친구는 우리 주님이시다.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친구이신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그가 우리에게 귀할 수밖에 없는 것은 우리들이 가장 어려울 때 마다 더욱 가까이 오시고 그리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우리에게 다가 오시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예수님과의 교제를 끊임없이 유지해 가며 환란 속에서도 그분이 우리의 친구됨을 확인해 가며 살아가야 한다. 이 관계가 확실하고 분명한 그리스도인야 말로 진정 행복한 사람이다.

 7. 평화 (22)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 사람이 진정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마음에 평화가 이루어졌을 때라고 할 수 있다.아무리 좋은 환경과 좋은 잠자리와 좋은 음식이 있다고 해도 평화가 없는 곳에는 행복함도 있을 수가 없다. 진정한 행복은 평화로움에서 얻어진다. 그것도 일시적인 평화가 아닌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만이 참다운 평화인 것이다. 환경과 처지를 극복할 수있는 힘을 지닌 평화.

그래서 이 마음이 바로 사람을 살지게 하고 세상을 이기게 하는 힘을 공급하는 양약이 되는 것이다.

평화가 진정한 행복의 요소라는 것은 절실히 깨달아 알 수 있는 것은 평화가 깨졌을 때다. 그때는 정말 심령과 뼈를 마르게 하는 아픔을 수반한다. 다윗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고 나서 무서워 떨며 심각한 고독함에 빠져 버렸다. 그리는 매일 밤 베개를 적시는 통한의 눈물을 흘리면서 하나님과의 화해를 시도하였고 잃어버린 평화를 회복시켜 보려고 애를 썼다. 하나님과 함께 살던 사람이 하나님과 조화가 깨졌을 때 찾아오는 두려움은 모든 것을 앗아가고 파괴해 버린다.평화와 조화와 안정이 순간적으로 상실되고 만다.

이것은 참으로 무서운 형벌이다.그래서 이것이 심령을 마르게 하고 뼈로 쇠잔하게 만드는 아픔이 된다.

 사울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고 상실한 평안, 엘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고 불안해 했던 그 마음, 요나가 하나님을 피하여 도망하던 그 시간의 불화한 마음 등 우리가 한 순간인들 그런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아마 우리에게 그같은 마음이 하루라도 주어진다고 하면 과연 심령을 병들게 하고 뼈를 마르게 하는 아픔을 겪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보면 무엇이 과연 진정한 행복인가,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지는 마음의 평화인 것이다.

잠언서 17장이 주고자 하는 교훈은 악함과 거짓을 버리고 자기 중심적으로 살아가는 우매한 삶과 미련한자의 완고함과 그 폐해를 지적해 주면서 가난 하더라도 화목을 좇으며 서로 사랑과 진실함과 순수함을 지니고 살라고 권고한다. 그것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사람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즉 진정한 행복은 마음 속에서 이루어지고 내면의 깊은 곳에서 이루어지며 성경이 제시하고 있는 인간 삶의 윈칙적인 삶에서만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주시는 잠언의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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