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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소로 행진하시는 하나님1 (시 68:1)

첨부 1


가. 시68편의 연구

시편 가운데 68편만큼 그 분석과 해석이 난해한 것도 없을 것이다. Hans-Joachim Kraus가 지적한 대로 68편에 사용된 언어가 자주 사용되지 않은 것들이 많아서 그 뜻을 분명히 밝히기가 어렵고, 본문 보존 상태가 불량하여 각 연의 연속성이 결여된 듯 보이기 때문이다. LePeau의 조사에 의하면 15개의 어휘나 표현 양식이 다른 성경에 사용되지 않고 이곳에만 사용되고 있으며, 24개의 어휘나 표현 양식이 20번 이하로 사용된 것들이며, 그 중 반이 10번 이하로 사용된 희귀 어휘들이다 (Psalm 68,2, Tate, p.171). 그래서 W.F.Albright 같은 사람도 시편 중 가장 어려운 것이라면 당연히 68편이라고 말할 정도이다 (HUCA 23 [1957]7). 따라서 역사적으로 수많은 학자들이 시68편과 연구와 해석에 정열을 기울였는데 E.Reuss는 1851년까지 약 4백편의 주석이 나왔다는 통계를 발표하고 있다.

시편 연구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로 제기된 부분은 이 시편의 통일성 문제이다. Kraus, Robinson, Albright 등은 이 시를 여러 개의 시구를 편집해 놓은 시로 이해하려고 하는 반면, Mowinkel, Lepeau, Gray 등은 시의 연속성을 주장한다. Mowinkel은 이 시가 MT에 수록된 것이기 때문에 특별한 증거가 없는 한 그 연속성을 부인해서는 안되며, 시편의 통일성이나 연속성 문제는 시편의 주제를 가지고 논의하기보다는 시편이 사용된 상황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Gray는 이 시가 이스라엘의 가을 축제에 사용된 일종의 칸타타라는 견해를 내놓았다. 이 축제는 승리의 주 여호와께서 왕 중의 왕이요, 신 중의 신으로 등극하시는 것을 축하하며, 그가 비를 주심을 특별히 강조하고 감사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18,19절에서 힌트를 얻어, 이 축제는 스불론과 잇사갈과 납달리 경계의 다볼산 성소에서 유래한 것이라고까지 말한다. 그러나 제한된 한 두 구절을 통해서 시의 유래나 전체적인 정황을 파악하려는 것은 무리이다.

1-18절은 분명히 시내산으로부터 시온산으로 향한 여호와의 행진을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신적 전사로 수많은 그의 군사를 대동하고 나아가는 그의 용맹스러운 모습에 땅이 진동하고, 하늘의 궁창이 비를 쏟으며, 열국의 왕들이 도망한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하나님의 산에 그의 거처를 마련하려 하신다. 따라서 이 시는 승리의 주, 이스라엘 하나님께서 그의 영영한 성소를 향하여 웅장하게 행진하는 의식을 그리는 시이다.

나. 시68편의 구조

이 시는 찬양과 행진이 반복되는 구조로 되어 있다.

간구 1-3절 하나님이여 일어나소서
찬양 4-6절 하나님께 노래하라
행진 7-18절 바산으로 행진하시는 하나님
찬양 19-23절 하나님을 찬양하라
행진 24-31절 성소로 행진하시는 하나님
찬양 32-35절 땅의 열방들아 하나님께 노래하고 찬양하라

우선 이 시는 1-3절의 서론적인 간구와 32-35절의 결론적인 찬양으로 구성되며 4-31절은 본론에 해당되는 부분으로 찬양과 행진이 반복되고 있다. 첫번째 찬양과 행진(4-18절)은 바산, 곧 하나님의 산으로 행진하여 그 곳에 거하시며 만백성의 예물을 받고자 하시는 하나님을 그리고 있으며, 두번째 찬양과 행진(19-31)은 성소, 곧 예루살렘에 있는 주의 전으로 행진하여 그곳에서 왕들의 예물을 받고자 하시는 하나님을 그리고 있다. 따라서 이 시는 찬양과 행진이 서로 병행을 이루며 반복되고 있다. 4-6절은 하나님께서 고아의 아버지요 과부의 재판장이시며, 이산가족을 상봉케 하시며, 포로된 자를 해방시키는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것이며, 19-23절은 우리의 짐을 져주시는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것이다. 7-18절과 24-31절은 다같이 하나님의 행진을 묘사하는데, 7-18절의 하나님은 거룩한 전쟁의 전사로 그의 병사를 이끌고 출현하심으로 땅이 진동하며, 하늘이 비를 쏟아 내리며, 열왕들이 도망가버려, 그의 백성들은 흡족한 비로 견고케 된다. 결국 하나님은 그의 산에 영영히 거하시며 모든 사람들에게 선물을 받는 것으로 그 절정에 이른다. 마찬가지로 24-31절도 하나님께서 그의 전에 거하시며 왕들이 주께 예물을 드리는 것으로 그 절정에 이르며, 이 때에는 전사로서 행진하시는 하나님의 모습보다는 언약궤의 행진을 연상케 하며, 특별히 하나님을 '나의 왕'으로 지칭한다(24).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의 산이나 전에서 왕으로 거주하시며 만민들과 열왕들의 경배와 예물을 받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그의 처소에 영영한 왕국을 이루시려고 행진하시는 것이다. 따라서 이 시는 그의 영영한 거주지를 향한 하나님의 행진을 묘사하는 행진시라고 할 수 있다.

사도 바울은 18절의 '주께서 높은 곳으로 오르시며' 하는 구절을 에베소4:8-13에 인용하여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그리스도에 적용하고 있다.

Ⅳ. 주 해석

68:1-3 하나님이여 일어나소서

민10:33-35에 보면 여호와의 궤가 떠날 때에는 모세가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대적들을 흩으시고 주를 미워하는 자로 주의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 하였고 궤가 쉴 때에는 가로되 여호와여 이스라엘 천만인에게로 돌아오소서 하였더라"하였다. 따라서 본문은 바로 민수기의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들과 더불어 시내산을 떠나 가나안으로 향하는 행진의 출발 모습을 연상케 하는 시라고 할 수 있다. 1-3절은 하나님의 출현에 대한 악인들과 의인들의 반응을 묘사하고 있다.

< 1절 >

하나님은 일어나사. `일어나다'의 히브리어 [야쿰] 은 권고형 jussive 으로 하나님은 출현 theophany 을 간구한다.

< 1절하-2절 >

… 흩으시며 … 도망가게 하소서 … 몰아내소서 … 망하게 하소서 . 이 네 동사는 다같이 하나님께서 일어나심으로 말미암아 '원수,' '주를 미워하는 자,' `악인'들에게 몰아칠 결과를 예상하며 그것을 기원하는 것이다. 여기서 저자가 그의 출현을 고대하는 하나님은 마치 전쟁을 몰고 오는 전사의 모습이다. 예전에 시내 광야에서 위풍당당하게 진행하는 하나님의 기세 앞에 그의 대적들이 흩어지고, 도망하고, 결국 망하던 모습을 연상하며 이제 시인은 하나님께서 일어나 주시기를 청하는 것이다. 원수, 주를 미워하는 자, 악인은 모두 하나님의 출현으로 흩어지고 도망가고, 결국 망할 자, 곧 패전의 병사들이다. ``몰려간다'라는 말은 안개나 연기가 바람에 순식간에 날려 흩어져가는 모습을 그리는 표현이며, `밀'은 밀초, 곧 왁스를 말하며 틀에 녹아내려 그 형체를 유지하지 못하는 물질이다. 항상 은유적으로 쓰인다(시2215 ; 97:5 ; 미1:4).

< 3절 >

의인은 기뻐하여 하나님 앞에서 뛰놀며 기뻐하고 즐거워할지어다. 여기서 의인은 원수, 주를 미워하는 자, 악인들과는 대조되는 자로 하나님의 백성, 곧 이스라엘을 말한다. 악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흩어져 도망하는 것과는 달리 의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이 없다. 오히려 의인들은 하나님의 출현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뛰논다. 개역 성경에서 `뛰놀다'라고 번역하고 있는 [아라츠] 도 심상은 `즐거워하다'라는 의미이다 (삼상2:1).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하나님의 출현에 대한 특징적인 반응은 기뻐하는 것이다.

68:4-6 하나님을 위하여 대로를 수축하라

이제 시인은 하나님께서 일어나심을 전제로 사람들로 하여금 그를 위하여 노래하고 찬양하라고 권한다. 하나님을 위하여 대로를 수축하라고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아버지요, 재판장이시요, 이산 가족을 만나게 하시며, 갇힌 자를 해방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거역하는 자를 지옥에 던지시기도 한다.

< 4절 >

노래하며 … 찬양하라. `노래하라'로 번역하고 있는 히브리어 [실] 과 `찬양하라'로 번역하는 [자말] 은 특별한 경우에 맞추어 작사 작곡한 것을 노래한 경우를 말한다. 이 경우 [실]과 달리 악기가 동원되는 경우가 많다. 시인은 사람들에게 하나님께 노래하고, 그 이름을 찬양하라고 권한다. `노래하라'와 '찬양하라'가 서로 의미상 병행을 이루듯이 `하나님'과 '그 이름'이 서로 병행을 이루고 있다.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존재와 성품과 능력을 나타낸다.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존재와 별개로 사용될 수 없으며, 바로 하나님과 동의어로 쓰인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예루살렘(신12:5, 11 ; 삼하7:13 ; 시74:7 ; 사62:2, 4, 12 ; 렘25:29)과 성전(렘7:10,11, 30, 32:34 ; 34:15)을 택하셨다 또한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그의 이름으로 일컫는 백성이 되게 하셨다 (신28:10 ; 대하7:1

4. Seok-Tae Sohn, The Divine Election of Israel, Grand Rapids ; Eerdmans, 1991, p.6

9. 참조).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름으로 하나님의 도움과 보호를 요청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함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

타고 광야에 행하시던 자. 개역성경은 그의 백성들이 노래하고 찬양해야 할 대상을 `타고 광야에 행하시던 자'로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을 탔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표준새번역은 이 점을 고려하여 '광야에서 수레를 타고 오시는 분'으로 번역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수레를 타시는 분으로 묘사하는 것은 본문 문맥이나 어휘의 용례에 맞지 않다.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타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상징적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낸 것으로, 제사장들이 어깨에 메었던 언약궤이거나 구름이었을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바아라봇]인데 많은 역본들은 광야나 사막을 일컫는 [아라바] 로 읽기보다는 구름을 의미하는 [아라포트]로 읽는다. 왜냐하면 흔히 우가릿 문헌에서 폭풍우를 주관하는 바알신을 가리켜 `구름을 타는 자'로 일컫고, 히브리어의 [b] 와 우가릿어 [P]는 그 발음이 서로 교환 가능해서 [라로켑 바아라봇]은 우가릿어로 rkp 'rpt (구름을 타는 자, UT, `Anat Ⅱ:39-40)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NIV, Kraus, Dahood, Tate). 따라서 본문을 재구성한다면 "구름을 타시던 자를 위하여 대로를 수축하라. 그 이름은 여호와시니"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시인은 구름을 타고 폭풍우를 몰고 오시는 분이 바알이 아니라 여호와이심을 천명하고 있는 것이다 (참조. 33절 ; 18:9 ; 104:3 ; 사19:1 ; 마26:24).

[솔루]의 원형 [소랄]은 `높이 평가하다', `소중히 하다'는 뜻도 있지만 `(길을) 구획하다,' `(길을) 예비하다'의 뜻도 있다. 따라서 NIV는 `구름 타시는 자를 칭찬하라'로 번역하고 있지만 개역성경은 `대로를 수축하라'로 번역하고 있으며 대개의 현대의 주석가들은 이 번역을 따르고 있다. 표준새번역도 `길을 열어드려라'로 번역하고 있다.

< 5절 >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 하나님께서 거주하시는 그의 거룩한 처소는 하늘이다 (신24:15 ; 렘25:30 ; 슥2:17). [마온] 이라는 말은 `숨겨진 굴,' '집' (dwel ling place)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거주하시는 곳은 하늘에도 있고 땅에도 있으며, 하늘의 처소와 땅의 처소가 마주치는 곳이 성전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Mowinkel, Der achtundsechzigste Psalm, 28-29).

아버지 … 재판장. 거룩한 처소에 계시며, 구름을 타고 다니시는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이시고, 과부의 재판장이시다. 아버지는 자식을 양육하고 보호하는 자이다. 재판관은 시비를 가려주고 억울한 약자들의 원한을 풀어주는 자이다. 특별히 고아들에게는 아버지와 같은 보호자가 필요하고 과부들에게는 억울함을 동정하고 원한을 풀어주는 의로운 재판장이 필요하다. 시인은 그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라고 말한다.

< 6절 >

고독한 자로 가족 중에 처하게 하시며. 많은 주석가들이 제언한 대로 `고독한 자'로 번역하고 있는 [에히딤]이라는 말은 `고독한'이라는 뜻보다는 `버림받은'에 더 가깝고, 그의 집이나 조국으로부터 추방된 자에 대해서 쓰이는 말이다. 하나님은 집을 쫓겨난 자를 다시 집으로 돌려보내 가족들과 함께 살게 하는 분이라는 것이다.

수금된 자를 … 형통케 하시느니라. `수금된 자'란 `갇힌 자' 혹은 `죄수'라는 뜻이다. 개역성경이 '형통케 하다'로 번역하고 있는 [바코샤롯] 은 '성공하다, 잘되다'는 뜻의 히브리 동사 [카셀]의 칼 부정형에 비분리 전치사 [ㅂ]이 첨가된 것이다. 그러나 NIV에서는 '죄수를 이끌어내어 노래하게 하시며' he leads forth the prisoner with singing 라고 번역하고 있다. 풀려난 죄수들이 기뻐하여 노래하는 의미를 첨가하고 있다. 이는 아마도 시105:43이나 사24:9에 출애굽하는 이스라엘의 즐거워 노래하는 모습과 [카세르]의 우가릿 동계어 ktrt가 '여자 가수'라는 점을 연결시켜 그러한 번역을 한 것 같다 (Pope, 137).

오직 거역하는 자의 거처는 메마른 땅이로다. 여기서 `오직'이라는 말은 앞의 열거하는 사실과 반대되는 것을 기술하고자 할 때 쓰는 말로, '그러나'의 의미를 가진다 (VT 14 [1964] 221-25). [사랄](`거역하는 자')은 원래 `고집이 센'이라는 뜻이다. 하나님께 대항하여 자기 뜻을 굽히지 않는 자를 말하는 것으로 여기서는 끈질기게 이스라엘을 놓아주지 않는 애굽 왕 바로를 가리키는 말이다. '거처는'이라고 개역성경이 번역하고 있는 [소크누] 는 동사형이다. 따라서 '그러나 거역하는 자는 메마른 땅에 거하리로다'로 번역하는 것이 더 원문에 가깝다 (표준새번역 참조). [샤켄](`거주하다')은 시94:7이나 사26:19, 3:18에서 보는 것처럼 무덤이나 지하세계에서 거주하는 것도 의미하며, [스올](지옥)이 물이 없는 메마른 땅으로 묘사되는 구절이 많은 것을 보면 (렘2:31 ; 엡2:20 ; 욥10:22 ; 눅16:24) 메마른 땅에 거주한다는 것은 지옥에서 거주한다는 의미도 가능하다 (Pope, 138)

4-6절에 우리는 대조되는 두 무리의 사람들을 본다. 첫번째 무리는 고아, 과부, 외로운 자, 그리고 갇힌 자이다. 이들에게 하나님은 보호자이시요, 재판장이시며, 이산가족을 상봉케 하시는 분이시며, 해방자이시다. 이들은 하나님의 출현을 대망하고, 하나님의 출현을 대비하여 그 길을 단장하며, 하나님의 출현을 기뻐하고 노래하는 자이다. 두번째의 무리는 하나님의 출현을 거역하는 자들이다. 이들은 메마른 땅, 곧 지옥에 떨어진 자들이다.
68:7-18 광야를 행진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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