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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고난과 말씀 (시 119:49-72, 딤후 03: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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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대강절 세째주일로 성서주일이기도 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이 절기에 성서주일이 있다는 것은 뜻깊은 일이라 하겠습니다. 성서주일은 온 세계 교회가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주심을 감사하면서 이 말씀을 보다 널리 많은 사람에게 전하기 위 하여 헌금하고 기도하는 날인 것입니다. 성서 반포 사업을 위하여 각 나라 마다 성서 공회가 세워지고 보다 싼 값으로 이 말씀을 전하기 위하여 힘쓰 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성서주일을 맞이하면서 고난의 역사 속에 서 이 말씀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이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사 오늘 읽어드린 시편 말씀 중에 보면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 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67-71절)란 말씀이 있 습니다. 이 시인이 현재 어떤 고난을 당하였는지는 알지 못하나 좌우간 고 난 당하기 이전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아니하고 그릇행하였다 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고난을 당하면서 돌이켜 회개하고 전심으로 주의 법도를 지키려고 애를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은 그의 "곤란 중의 위로"(50절)가 되었고, "나그네 된 집에서 주의 율례가 나의 노래가"(54절) 되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지금 고난을 당하고 있는 때에 그 의 유일한 소유는 하나님의 말씀 뿐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56절).

그래서 차라리 고난 당하는 것이 그에게는 크게 유익이 되었다는 것입니 다.

아마도 이 시인이 당한 고난은 바벨론 포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사건은 아주 충격적인 것이었던 것입니다. 포로되 어간 백성들은 예루살렘을 그리워하며 눈물로 세월을 보냈습니다. 종교적 신앙을 기르는 교육시설도 없고, 성지가 쑥밭이 되었으며, 성전이 폐허가 되고, 예루살렘이 잿더미가 되어버렸으니 포로로 잡혀간 자들의 마음이 슬 프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내 눈이 눈물에 상하며 내 창자가 끊으며 내 간이 땅에 쏟아졌으니 이 는 처녀 내 백성이 패망하여 어린 자녀와 젓먹는 아이들이 성읍 길거리 에 혼미함이로다"(애 2:11).

 처음에는 그들이 곧 다시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졌었 는데 점차 포로생활이 길어지고 고국에 돌아갈 희망이 희박해지자 그들의 신앙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앗수르에 망한 북쪽 이스라엘 백성 들처럼 될까봐 두려워하였던 것입니다. B.C. 721년에 앗수르에 의해 멸망 당한 북 이스라엘은 그들의 이민 정책에 의해 모두 이동되었고, 얼마 안가 서 전부 앗수르화 되어 한 사람도 고국에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히 브리인들에게는 두고 두고 잊을 수 없는 수치스러운 일이며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였습니다.

바벨론에 잡혀간 유다 포로민들도 곧 바벨론화 될 날이 닥쳐 오리라고 염려하였습니다. 특히 바벨론에 잡혀간 사람들은 주로 유대 지도자들이나 기술자들이었습니다. 선민 의식이 강한 이들은 그들의 자녀들이 바벨론화 되는 것을 막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동시에 그들에게 임한 이와 같은 고난의 원인이 자기들에게 주어진 율법의 말씀대로 행하지 아니하였기 때 문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의 죄를 회개하며 율법을 연구하며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율법을 편찬하고 해석하는 일과 회당을 곳곳에 세워 예배와 교육을 위한 장소로 사용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기록과 기억을 더듬어 포로생활 속에 서도 하나님의 율법을 정리하여 기록하고 과거 역사를 다시 편찬하였습니 다. 언젠가 고향에 돌아갈 날이 있으리라고 기다리고, 돌아가서는 율법을 새로이 공포하고 강론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는 율법을 어기거나 죄 를 짓지않고 살도록 해야 되겠다고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포 로생활이라는 고난 속에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대하게 되었 고, 그 말씀의 의미를 바로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율법의 연구는 절망 중에 있는 그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되었고 즐거움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 래서 이 시편 기자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내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92절).

유대인들은 이 때로부터 율법을 철저히 가르치고 생활에 실천하는 민족 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히 배우고 실천하면 어떤 고난 속에서도 그들은 견디어 낼 수 있으며, 반드시 거기에 구원의 길이 열린다 는 것을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유대인 사회에서 가장 존경받는 사 람은 랍비가 된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말씀과 그것을 바탕으로 한 탈무드를 가르치는 랍비야말로 유대사회에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되었 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있는 곳에는 어디에나 회당이 생기고, 거기에 랍 비를 모셔온다고 합니다.

유대 사회에 있어서 랍비가 없어진다는 것은 유대 사회가 제 기능을 발 휘할 수 없게 되는 일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요즘도 유대인들이 20 세대쯤 모여있는 곳에는 회당이 생기고, 교육받은 정식 랍비들을 초청하여 자녀들의 교육과 예배와 그들의 모든 생활 전반에 대하여 자문하고 상담하 며 지도한다고 합니다. 유대민족이 2천년의 고난의 역사 속에서 유대인으 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게 한 데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유대인의 고난의 역사 속에서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알게 되었 는데, 고난은 그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게 하고, 그 말씀은 그 백성으로 고난을 이기게 하는 힘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말씀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기에 고난을 이기게 합니까

첫째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합니다. 사람들이 죄를 깨 닫고 회개할 때 고난을 벗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죄를 깨닫지 못하는 자 는 고난의 의미를 알지 못하고 따라서 원망과 불평으로 나날을 지새우며 자기의 운명을 저주하면서 절망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죄를 깨 닫는 자는 회개하게 되고, 잊었던 하나님을 향하여 눈을 들게 되는 것입니 다. 탕자가 돼지 우리에서 자기의 처지를 돌아보고 아버지를 생각했을 때 그는 용감히 그 자리를 떠나 집으로 돌아올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성서의 말씀에 접한 많은 죄수들 가령 고재봉이나 김대두 같은 이들이 죄를 깨닫고 회개하여 예수를 믿음으로 기쁨을 발견하였다는 간증 을 들은 바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히 4:12)라고 하였습니다. 말씀 을 통하여 죄를 깨달은 자만이 구원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해줍니다. 하나님은 죄 로 말미암아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역사하시는 분이심을 성서는 우 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낌없이 보내시어 죄 가 운데 빠진 우리를 건져내시어 그의 백성으로 삼으시는 하나님이심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포로되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 였을 때 부드러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것입니다.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나의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사 41:8-9).

 우리가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할 때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 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확신 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 확신이 생기면 이미 고난은 우리에게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바른 삶을 지시합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하며 모든 선 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 3:16-17).

 우리의 바른 생활이란 위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래로는 이웃을 사랑 하는 생활입니다. 언제나 우리는 이 사랑의 사회를 이룩하도록 부름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회를 방해하는 악의 세력과 대항하여 싸우면서 또 이 땅의 모든 불의한 세력과의 타협을 거부하면서 오직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 만을 따라 사랑의 사회를 건설하여 나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 을 알고 사랑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사랑의 사회를 향한 불타는 꿈을 가질 때 우리는 현재의 고난을 능히 극복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우리로 죄를 깨닫고 하나님의 사랑의 품으로 돌아가 구원함을 받게하며 사랑을 위해 헌신하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오늘의 고난을 극복하게 하는 능력의 원천이 되는 것입니다.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오직 저주와 사위와 살인과 투절과 간음뿐이요 강포하여 피가 피를 뒤대임이라" (호 4:1-2)고 한 상황과 비슷한 것입니다.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 을 삼키되 잠잠하시나이까"하는 하박국의 탄식이 곳곳에 들려오는 고난의 역사임에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

이런 역사적인 현실에서 우리가 할 일이란 무엇일까요 어떤 정치적인 해결책을 모색하거나 어떤 제 삼의 힘을 빌려서 해결하려고 하는 일입니 까 아닙니다. 우리가 할 일은 한가지 뿐입니다. 성서로 돌아가는 것입니 다.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그렇습니다. 이 사회가 도덕적으로 부패하고 정신적으로 타락하여 어두워질 때 우리는 성서로 돌 아가 그 말씀을 배우고 그 말씀이 요구하는 대로 결단하는 생활을 하는 것 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믿는 이들은 부지런히 성서를 공부하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이 고난의 시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 못할 때 우리는 모래 위에 세운 집과 같이 위태로울 것입니다. 깜깜한 어두운 밤에 등불이 꺼진 것과 같이 우리는 자칫 잘못하면 길을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 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마치 6.25 때와 같이 불의의 기습 앞에 서 패주하게 되고 말 것입니다.

개인의 생활에 있어서나 우리 사회 전체적인 생활에 있어서 고난을 벗어 나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갈 때에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 씀으로 돌아가는 축복의 역사가 우리 속에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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