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마 20:1-16)

첨부 1


포도원 품군의 비유는 마태복음만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이다. 본문이 말하는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으로, 청지기는 예수님으로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그렇지만 품군들에 대한 해석은 학자들에 따라 다양하다.1) 처음 온 자는 아담-노아까지 제 3 시는 노아-아브라함 제 6시는 아브라함-모세 제 9시는 모세-그리스도 제 11 시는 그리스도-세상 끝까지라는 견해
2) 먼저 온 자는 유대인 후에 온 자는 이방인이라는 견해
3) 먼저 온 자는 구약의 성도 후에 온 자는 그리스도의 제자로 보는 견해
4) 첫째는 베드로 둘째는 바울과 바나바 그 다음은 계속되는 교역자들(칼빈)
5) 품군이 들어 간 시간은 각 개인이 믿을 때의 나이로 보는 견해

이 비유가 주는 의미는 믿음으로 얻는 救援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의지에 있는 것이지 인간의 선후나 우열의 차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구원은 누구에게나 차별이 없음을 가르치는 것이다.

이 비유에서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할 부분은 '天國'이다. 천국 즉 '하늘나라'에 대한 설명이다. 하늘나라가 어디에 있다던가 어떠한 모습으로 존재하며 또 언제 들어가는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늘나라란 어떤 곳인가를 말하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이러한 전제에서 이 말씀을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도록 하자.

1. 하늘나라는 품꾼을 구하는 집 주인과 같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 그대로를 보면 '품군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 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다.'고 기록되었다. 품군은 하루벌어 사는 사람들이다. 기회를 잘 만나면 몇달동안을 전속으로 일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하루 하루 일을 하며 일당을 받는 경우를 말한다.
일군이 필요한데 일군이 없다면 주인은 답답하다. 이제 제법 날이 서늘하다. 겨우살이를 준비해야한다. 연탄을 재 놓아야 하고 보일러를 손질해야 한다. 석유난로도 미리미리 손질 해놓아야 한다. 이 모든 일에는 전문적인 기술자들이 있어야 한다. 사람을 구하여 미리 손질해 놓은 사람은 그 마음이 평안하다. 그러나 사람을 구하지 못하며 아무 대비도 하지 못하였다면 걱정으로 가득하다. 빨리 손좀 보아야 할 터인데 하는 생각 때문이다.

자기를 써 줄 일터를 찾기 위하여 이른 아침 모닥불을 지피며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영등포 로터리와 동대문 근방이나 남대문, 그리고 을지로 건축 자재상이 있는 곳에 조그만 가방을 옆에 끼고 모여들게 되면 이들을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전기 목수 철근 토목등 분야별로 몇명씩 호출을 하게 되면 그 많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빠져 나간다. 일군들은 바로 이 순간을 바라면서 아침 일찍 준비하여 나가 기다린다. 일군을 필요로 하든 일군으로 쓰임받든 아침에 일찍 나가지 않으면 부름받기가 어렵다. 주인이 일당 얼마를 주겠노라고 제시하면 사람들은 가부간 대답을 한다. 얼마동안은 많다-적다로 줄다리기를 할 것이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렇게 해서 부름받은 사람들의 마음을 무엇으로 비교할 것인가 그들의 마음은 이미 천국이다. 그러나 부름받지 못한 사람들의 발걸음은 부름받은 사람들의 마음과 같지 않다. 주인이 부를 때 따라 갈 사람이 있다거나 부름받은 사람이 주인을 따라가는 걸음은 그야말로 천국 길이다. 그러나 아무도 불러주는 이도 없고 응답하는 이도 없다면 그의 길은 천국길일 수 없는 불행으로 가득한 길이 되고 만다.

우리는 모두 포도원에서 일할 일꾼들로 부름받은 사람들이다. 포도원은 '하늘나라'이다. 포도원주인은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섰다. 주인이 사람들을 부지런히 찾으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처음 부름받을 때 주인은 우리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였다. 우리가 얼마를 달라고 한 것이 아니다. 그것이 하루일당으로 충분한 것이기 때문이다. 약속을 가진 사람은 행복하다.
그러나 제 3 시에 포도원에 들어 간 사람은 구체적인 약속이 없었다. 그저 막연하게 '상당하게 주리라.'라는 말 뿐이었다. 제 6시와 9시에도 주인은 그렇게 하였다. 주인의 포도원은 더 많은 일꾼들이 필요했던 모양이었다. 제 11 시에 나가 보니 아직도 섰는 사람들이 있었다. 주인은 말하였다. '어째서 종일토록 놀고 섰는거요 ' 사람들은 대답을 하였다. '우리를 품군으로 쓰는 사람이 없음이니이다.' 품군으로 써주는 사람이 없다 하였으니 이들은 주인을 만나지 못할만큼 게으른 사람들이요, 품군으로서의 가치가 없는 일꾼들일 것이다. 주인은 이 사람들에게 포도원에 들어가라고 말하였다. 얼마 주겠노라는 아무런 약속도 없었다.

그들이 일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는 불과 한시간 뿐이다. 주인은 아무 약속도 없이 이들을 포도원으로 들여 보냈다. 주인은 이들을 포도원에 들어 가라고만 했지 얼마를 주겠다는 말이 없었다. 그들도 또한 포도원에 들어갈 때에 '나 얼마 주겠소' 하고 묻지 않았다. 말하지도 않았고 묻지도 않았지만 이들이 가지는 감정은 남 달랐다. 주인은 그들이 일하는 것을 보고 기뻐하였고 일군들은 비록 한 시간이지만 일할 수 있다는 기쁨 때문에 열심으로 일을 하였을 것이다. 아무도 불러 주지 않는데, 아무도 알아 주지 않는데 누군가 불러주었다는 것은 더없이 기쁜 일이 아닌가 천국은 바로 여기에 있다.

2. 청지기에게 줄 것을 명하였다.
청지기는 주인이 아니다. 주인도 아니면서 주인처럼 일하는 것이 청지기이다. 주인은 청지기에게 '나중 온 자로부터 먼저 온 자까지' 삯을 계산하여 지급하라고 명하였다. 얼추보기에 이 순서는 상식에 어긋나는 것이다. 먼저 부름받은 사람이 먼저 댓가를 받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주인은 나중 온 사람부터 삯을 지불하도록 명하였다. 어떤 학자는 이 구절을 '나중 온 자까지 포함하여'라고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비유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마 19:30을 보라.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되고 나중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있느니라.' 마 20:16에도 '이와같이 나중된 자로 먼저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되리라.'

나중 온 사람이란 11 시에 부름 받은 사람이다.
이 사람들이 청지기에게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았다. 한 데나리온 받은 자들이 가지는 생각은 어떠한 것일까 생각은 사람따라 다를 것이다. 돈많은 부자가 겨우 이것만 주는가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웬걸 이렇게 많이 주는가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여러분의 경우라면 어떤 쪽이겠는가 해질 때까지 일할 시간이라고는 불과 한시간 뿐인데 포도원에 들어가 일하라 부름받은 사람은 그 주어진 한시간동안 최선을 다하여 일을 하였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대학을 졸업하고 일자리를 구하였으나 마땅한 자리를 얻지 못하였다. 처음에는 '그래도 내가 대학을 공부했는데 대우가 약하다. 그것 가지고 어떻게 살랴 내게 뭐 일자리가 없으랴' 하고 버티었다. 그러나 마땅히 써 주는 사람이 없어서 근 반년을 허송세월하였다. 아내 얼굴 보기도 부끄럽고 배를 곯는 아이의 얼굴 보기가 민망할 지경이 되었다. 이 사람의 마음이 변하였다. '월급이야 얼마를 주던지 내게 일자리만 있다면 열심으로 봉사하겠다.' 이 사람 자기를 불러 준 그 사실이 너무 고마와 열심으로 일하게 마련이다. 그 열심이 얼마나 가는지 그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말이다.

11시에 포도원에 들어 간 일군은 내일이 없는 사람이다. 당장 오늘 하루 일당을 받을 수 있는 일터에서 그는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일하는 것을 본 주인이 그에게 한 데나리온을 주었다. 그가 한 데나리온 받는 것은 정말 뜻밖이었다. 이들은 감격과 기쁨으로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한 시간 밖에 일을 아니하였는데 이렇게까지 대우해 주십니까 '
받는 사람도 뜻 밖이었지만 그것을 보는 먼저 온 사람도 뜻밖이었다. 그들은 내심으로 '한 시간만 일한 사람이 한 데나리온 받았으니 8시간 일한 우리는 당연히 .... ' 라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 역시 한 데나리온을 받았다. 한 데나리온을 손에 쥐고 생각해 보니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들은 주인을 원망을 하였다. 원망한 이유는 분명하다. 더 받을 줄 알았는데 꼭같이 주기 때문이다.

12절에 기록된 말씀을 보자.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만 일하였거늘 저희를 종일 수고와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생각을 가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신앙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옳지 않다.

우리 격언 가운데 이런 말이 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신앙의 입장에서 더 받으리라 생각하는 것은 교만이다. 원망은 언제나 '더 받으리라는 생각'에서 나온다. 우리가 이만큼 고생하며 수고하였는데 왜 알아주지 않는가

어떤 사람은 너무 고마와서 혼신을 다하여 일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받을 것을 생각하며 열심으로 일하는 사람이 있다. 일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일 하는 동기는 같을 수가 없다. 전혀 다르다. 아들로 일하는 것과 머슴으로 일하는 것이 어떻게 같을 수 있는가 이와같이 먼저 부름 받은 사람과 나중에 부름받은 사람이 일하는 양상이 같지 아니하다.

3.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이 말은 원망을 들은 주인이 원망하는 자에게 던진 말이다.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친구여 ! 이 말은 친구이기 때문에 친구라고 부른 것이 아니다. 말은 다정한 것처럼 들리지만 단호한 꾸짖음이 있는 말이다.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이 말은 사실이다. 주인의 잘못이 무엇인가 주인은 약속한 것을 정당하게 지켰다. 한 데나리온을 약속하였고 또 한 데나리온을 지급했다.

잘못은 더 받으리라 생각한 그 자신이 잘못이다. 그는 주인과의 약속에서 지나쳤던 것이다. 벵겔이라는 사람은 이렇게 말하였다. '하나님께 잘 못하는 것은 악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잘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더욱 큰 악이다.'

얼마전에 제가 잘 아는 장로님 한분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분은 한 기업의 자재과에 근무하는 분이었다. 교회에서 필요로 하는 물건들도 시중가격보다는 매우 싼 값으로 구입을 한 일이 몇번 있었다. 자신과 관계된 일이기 때문에 예산절감이 되어 좋았고 교회에서도 적은 비용으로 행사를 치르게 되니 잘한 일이었다. 새로운 예산을 수립하면서 전보다는 40-50% 가량 축소예산을 세우게 되었다. 바로 여기에서 문제가 일어난 것이다. 교회에서 필요한 물건을 대량으로 구입하는 일에 그동안 직접 간접으로 혜택을 보던 교인들이 불만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아무개 장로님 때문에 돈 다 벌었다는 것이다.
장로님은 개인적으로 아무런 사심이 없이 일한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교회에 유익을 가져 온 셈이다. 그러나 반면에 다른 사람에게 원망을 사게 된 것이다. 자 여러분 ! 이런 경우에 여러분은 누구를 책망하겠는가

포도원 주인은 먼저 온 일꾼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나중에 온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은 내 뜻이다.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

우리가 처음 하나님의 부름받은 때를 생각하자! 하나님의 선을 시기하고 원망하는 것은 옳지 않다. 먼저 부름받은 사람보다도 뒤 늦게 부름받은 사람이 열심을 가지고 헌신하는 일에 대하여 범죄하지 말아야 한다. 깨닫고 열심을 내던지 열심을 가지고 봉사하는 이들을 칭찬하여야 한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