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등경 위의 등불 (마 05:15, 막 04:21, 눅 08:16-18)

첨부 1


제가 어렸을 때 저희집은 좀 가난한 편이어서 등잔을 사용했습니다.

저희집 뿐만 아니라 이웃들도 등잔을 사용하는 집도 있고 또 유리로 등을 감싸는 호롱불도 사용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등은 우리가 사용했던 등불과 별로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30대 이전의 분들은 등에 대해서 어렵지 않게 이해하실 수 있 을 것입니다. 저희 집에는 한 방에서 모든 식구가 살았습니다. 당시의 경우 특별한 부자집이 아니면 거의 비슷했습니다. 잠자리에 들기전에 이불을 펼 때 이 등불이 제일 잘 꺼집니다. 조금만 바람을 일으켜도 꺼지고 맙니다. 또 실수하여 발로 겉어 차거나 부딛혀 자주 엎어뜨렸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 나라의 등대는 옮겨 다닐 수 있도록 받침이 있고 그 위에 얻어 놓게 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 시대의 팔레스타인의 등불은 방 구석에 즉 벽에 등대가 붙어있었 습니다. 이 등불을 "루크니안" 이라고 불렀습니다. 예수님은 이 등불을 예로 말씀하고 계신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아주 쉽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현재에 우리가 어렵게 이해되는 것은 이스라엘의 문화와 또 과거의(예수님 때) 문화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등불을 왜 켜놓는지 그 목적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아마 세살짜리 어린이도 이해가 될 것입니다. 사람에게 비취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잘 비추게 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두루 비추일 수 있는 곳에 두어야 합니다.

 팔레스타인의 등 받침은 진흙으로 만들어 졌는데 말(斗)로 덮으면 불은 꺼집니다. 작고 대부분 창문이 없으며, 굴뚝조차 없는 단간방 농가에서는 이런 불끄는 방법이 흔히 사용되었습니다. 불어서 끄면 연기와 냄새가 생기 고, 경유에 따라서는 불티에 의해 불이 나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팔레스틴 사람들은 등불을 다시 끄지 않습니다. 지금도 팔레스틴 농부들은 흔히 밤새도록 켜 둡니다.

 첫째 이 비유는 제자들에게 주셨습니다.

마태복음의 기자는 제자들에게 이 말씀을 적용시키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산상에서 팔복을 말씀하신 후에 하신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마5:14)라는 말씀에서 연결하고 있습니다.

빛은 이제부터 비추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부터 시작한 복음 의 빛 입니다. 이 빛을 말(斗)로 덮어서 끄거나 빛을 잘 빛출 수 없는 평상 아래 둘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비추기 위해서 밝혀진 것입니다. 이제 제자들에게 빛의 사명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세상의 빛이니"(요8:12) 말씀하셨습니다. 이 빛을 제 자들에게도 주신 것 입니다. 예수님은 세례요한에 대해서도 "켜서 비취는 등불"(요 5:35)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엄중히 말하면 세례요한의 빛은 예수님이 오시기 까지 필요한 등불이었습니다. 예수님으로 부터 시작된 등 불은 이제 다시는 꺼지지 않는 세상을 비추는 등불이 된 것입니다.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 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고후4:6)

(요 8:12)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요 12:35)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두움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두움 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바를 알지 못하느니라 (요 12:46)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두움에 거 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 (행 26:18)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예화> 미국에서 오래전 시골 열차 건널목에서 있었던 한 비극적인 이야기입니 다. 온 가족이 탄 마차가 달려오는 기차에 치여, 마차에 있던 사람들이 몰살 하고 말았습니다. 그 건널목을 지키면서 기차가 다가올 때 여행자들을 경고 하는 일을 맡고 있는 건널목지기가 소환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사건 이 발생한 밤에 마땅히 그래야 했듯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느냐고 물었습니 다. 그는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당신은 기차가 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까" "예 기차는 항상 그 시간에 왔습니다." "당신은 등불을 들고 기차를 맞으러 나갔습니까" "예" "그리고 당신은 기차가 온다는 것을 경고하기 위해 등불을 좌우로 흔들었습니까" "예" 모든 심문이 끝났다. 결론은 단순히 이 사건의 원인을 알 수 없는 불행한 사고 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 여러해가 지나갔는데, 죽음이 임박한 건널 목지기의 뇌리에 그 사건이 떠올랐습니다. 그는 신음 소리를 내며 "오 저 불쌍한 사람들. 오 저 불쌍한 사람들."이 소리를 들은 친구가 물었습니다.

친구는 그 때 그 사건은 자네의 협의가 없다고 완전히 판결되었잖아. 하고 안심시켰다.

건널목 지기는 대답했다. "그러나 저들이 나한테 한 가지 묻지 않은 것이 있어. 그들은 당시에 내 등불이 켜져 있었는지 꺼져 있었는지 묻지 않았다 네." 등불은 켜 있지 않았고, 이 때문에 마차를 탄 가족들은 죽음을 당했던 것 입니다.

 둘째 이 비유는 불신자에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에 대해서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요1:5)고 말씀하십니다.

 (눅 11:34)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 (눅 11:35)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 (눅 11:36) 네 온 몸이 밝아 조금도 어두운데가 없으면 등불의 광선이 너를 비출 때와 같이 온전히 밝으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누가복음 11장을 모두 참고해 보셔야 합니 다.

여기서 보면 예수님이 눅11:14 벙어리 귀신을 쫓아내셨을 때 귀신 바알세불 을 힘입어 고쳤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완악한 사람을들을 향해서는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나니"(눅11:29)라고 죽음에 대해 십자가 의 표적을 말씀 하십니다.

몸의 등불은 눈이라 하셨습니다. 눈이 없으면 소경이며 바른 갈 수 없음 과 같이 영적인 눈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숨은 것이 장차 드러나지 아니할 것이 없고 감추인 것이 장차 알려지고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눅8:17)

여기서 숨은것은 그들의 죄악에 대해서 나쁜 마음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 입니다. 누구든지 좋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숨기우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자 신의 부끄러운 일들에 대해서 숨기웁니다. TV를 보면 가끔 추악한 범죄자 들이 나옵니다. TV카메라를 비추면 모두 얼굴을 감춤니다. 아마 부끄러웠던 모양입니다. TV는 가릴 수 있지만 하나님께는 감추일 수 없습니다.

 (요 3: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요 3: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롬 13: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엡 5:8)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여러분 우리의 작은 불빛 이라도 그 빛을 많은 사람에게 빛을 발하시기 바랍니다. 마가복음에서는 우리에게 어떻게 할 것인가를 질문하고 계십니다.

제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다시한번 잘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막 4:21) 또 저희에게 이르시되 사람이 등불을 가져오는 것은 말 아래 나 평상 아래나 두려 함이냐 등경 위에 두려 함이 아니냐 (막 4:22) 드러내려 하지 않고는 숨긴 것이 없고 나타내려 하지 않고는 감추인 것이 없느니라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