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모세의 믿음2 (히 11:27-28)

첨부 1


존 맥스웰은 우리 주변에서 우리는 종종 자기의 꿈을 자신의 삶의 마당에서 홀로 실현하는 성취가를 만나볼 수는 있지만, 자신의 꿈을 보다 넓은 곳에서 보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실현해 보기를 꿈꾸는 사람들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그것이 바로 성취가(achiever)와 지도자(leader)의 차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맥도날드 형제와 레이 크록의 차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잘 아시겠습니다만 맥도날드 식당을 시작한 사람은 맥도날드 형제들이었습니다. 레이 크록은 처음 이 식당에 밀크 세이크 제조기인 멀티 믹서를 팔러간 사람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주문 15초 내에 모든 과정이 완결되어 햄버거가 나오는 속도감을 체험하는 순간 그는 소위 맥도날드 식당의 프랜 차이즈 사업의 비전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맥도날드 형제는 사업 확장의 꿈이 없었고, 여행을 싫어했으며 그저 자신들의 이름을 쓰는 대가로 로열티를 받는 것으로 만족했던 것입니다. 오늘날의 세계적인 맥도날드의 신화적인 성공은 레이 크록이 본사만 잘 되는 것이 아니라, 세계 여러 곳에서 프랜 차이즈가 성공을 거둘 수 있도록 체인점에 필요한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략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맥도날드 형제는 성취가였지만 레이 크록은 지도자였던 것입니다.

모세는 지도자였습니다. 그가 애굽을 떠나기로 한 것은 자기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닌 이스라엘 공동체의 유익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설득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백성을 노예화하고 있던 애굽의 땅에서 떠나도록 합니다. 오늘의 본문은 이 애굽을 떠나는 과정에서 지도자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보여준 믿음의 정체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자, 출애굽의 드라마에서 배우는 모세와 이스라엘의 믿음은 무엇입니까

1. 믿음은 애굽을 온전히 떠나는 것입니다.

애굽을 떠난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그것은 자유를 의미했고 새로운 삶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신만의 자유, 자신만의 구원이 아닌 이스라엘 백성 전체의 자유, 전체의 구원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모세는 바로 왕 앞에 나타나 "내 백성으로 가게 하라"고 요구합니다. 이때부터 모세와 바로의 흥미진진한 대결이 진행됩니다. 더 이상 이 백성을 애굽 땅에 붙들어 둘 수 없다고 판단한 바로는 한 전략을 구사하기 시작합니다. 이 전략은 몇 단계로 나누어 진행됩니다. 우리는 이런 바로의 전략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온전한 자유를 방해하는 사단 마귀의 전형적인 작전을 간파하게 됩니다.

먼저 출애굽기 8:25절을 보십시오.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가서 이 땅에서 너희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라"고 합니다. 가기는 가되 이 땅의 영역에서 벗어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단은 자신의 영역 안에만 우리가 머물러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까지는 내가 허락하겠는데 아직은 나의 통치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모세가 불가하다고 하자 바로가 또 무엇이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출애굽기 8:28에 보면 "--너무 멀리는 가지 말라"고 합니다. 이 세상에서 나의 통치에서 너무 멀리 나아가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단의 작전인 것입니다. 모세가 불가하다고 하자 다시 새로운 작전이 펼쳐집니다.

출애굽기 10:11을 보십시오. "--내가 너희와 너희 어린것들을 보내면 여호와를 너희와 함께 하게 함과 일반이니라. 삼갈지어다. 너희 경영이 악하니라."고 합니다. 가기는 가되 어린것들은 두고 가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중국 같은 곳에서 진행되는 기독교 탄압정책과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습니까 중국에서 어느 정도 성인들에게는 복음을 전할 수가 있어도 청소년에게 전도하는 것은 엄격하게 금지됩니다. 청소년이 넘어가면 공산주의의 미래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지요. 맞는 이야기 아닙니까 사단은 오늘의 우리에게도 너희는 믿지만 너희 자녀는 내게 맡기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다시 불가하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마지막 작전이 시작됩니다.

출10:24절을 보십시오. "바로가 모세를 불러서 이르되 너희는 가서 여호와를 섬기되 너희 양과 소는 머물러 두고 너희 어린것은 너희와 함께 갈지니라"고 말합니다. 물질과 재산은 두고 가라는 것입니다. 사단이 끝까지 우리에게 속삭이는 것이 바로 동일한 작전인 것을 아십니까 "믿기는 믿되 재물까지 헌신할 생각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인간이 끝까지 집착하는 물질에 대한 헌신없이 그리스도인의 헌신은 결코 온전할 수 없습니다. 저는 신앙생활(목회생활) 40여년에 제 주변에서 물질에 대한 헌신없이 한 사람의 믿음과 인격이 온전하게 성장한 사례를 단 한 건도 알지 못합니다. 모세는 바로에게 어떻게 대답합니까 "왕이라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드릴 희생과 번제물을 우리에게 주어야 하겠고 우리의 생축도 우리와 함께 가고 한 마리도 남길 수 없으니"(출10:25-26)라고 대답합니다. 내 물질까지도 더 이상 사단을 위해서는 한 푼도 사용될 수 없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온전한 자유요, 온전한 헌신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애굽을 떠난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진정한 믿음만이 진정한 자유, 진정한 헌신을 가능하게 합니다. 모세는 믿음으로 애굽을 떠났습니다. 당신과 나도 과연 믿음으로 우리의 애굽을 떠날 수 있을까요

2. 믿음은 사람을 두려워 않는 것입니다.

당시의 애굽의 통치자 바로는 신적인 존재였습니다. 아니 신 그 자체였습니다. 그는 문자 그대로 절대적인 통치권을 행사했고 그에게 불복종하는 것은 죽음을 의미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모세는 감히 바로와 맞서서 싸우고 있습니다. 얼마나 큰 용기입니까 그러나 주목할 것은 모세가 본래부터 타고난 배짱과 용기를 가진 사람은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가 처음 애굽의 궁중을 떠나 미디안 사막으로 갈 때 왜 그렇게 한 줄 아십니까 출2:14에 보면 "모세가 두려워하여"라고 기록합니다. 모세는 바로를 두려워 한 것입니다. 그래서 도피한 것입니다. 그런데 더 이상 그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본문 27절에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 아니하고"했습니다. 마침내 무서움 곧 두려움을 극복한 것입니다. 사람은 끊임없는 두려움 속에 인생을 살아갑니다. 오죽하면 무서워 시리즈라는 유머가 한때 유행했겠습니까

당신이 무서운 사람은-무서워 유/남자가 무서운 사람은 무섭군/ 여자가 무서운 사람은 무서운 걸/만두 먹고 체한 사람은 무섭지 만두/국수 사리 먹고 체한 사람은 무섭사리/비가 처량맞은 사람은 무섭지 비/세상 모든 것이 다 무서운 사람은 무섭다, 고 합니다. 그러나 역시 가장 무서운 것은 사람일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어떻게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을까요 우리는 어떻게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본문은 그 대답이 하나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면 사람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고 가르칩니다. 본문 27절에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하여 참았으며"했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을 시각화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크게 보이면 사람은 작게 보일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더 이상 사람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모세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보기 시작했고, 더 이상 바로가 두려운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종교 개혁자 요한 칼뱅의 일생의 모토는 "하나님 앞에서(Coram Deo)였습니다. 그는 사람이 아닌 하나님만을 의식하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고자 한 것입니다. 그의 생명을 위협하는 당시의 권력자들, 교권과 맞서 당당할 수 있었던 용기와 담대함은 이런 그의 믿음에서 나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믿음은 사람을 두려워 않는 것입니다.

3. 믿음은 구원의 방편을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면 하나님은 구원의 방편을 보여 주십니다. 그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구원의 방편을 수용하고 따라야 합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보여 주셔도 우리가 따르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자, 이제 이스라엘 백성이 결정적으로 애굽 땅을 벗어나기 위해 하나님은 바로에게 마지막 심판을 선언하십니다. 그것이 애굽 땅의 모든 처음 난 것들을 치시겠다는 것입니다. 모든 처음 난 짐승들이 그리고 모든 집의 처음 아들들 곧 장자들이 심판되리라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의 후계자인 바로의 맏아들에 대한 심판도 포함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심판을 경험하면서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을 비로소 해방할 것을 하나님은 아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가운데서 이스라엘 집안의 장자들을 보호하고 구원하기 위한 방편을 허락하십니다. 속죄의 양을 잡아 양의 피를 문 인방(꼭대기)과 문설주 좌우에 뿌리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심판의 천사가 그 집을 넘어가리라고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이 사건을 유월절(Pass-over)예식으로 만들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날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원 사건의 핵심에는 유월절 어린양의 희생 곧 그의 피 흘림과 피 뿌림이 있었던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바울사도는 먼 훗날 이 유월절 양이 오늘의 성도들에게는 바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라고 증언합니다. 고린도전서5:7을 읽어보십시오."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속죄양이 되시사 우리가 우리의 죄로 인하여 받을 심판을 대신 담당하신 것입니다. 그의 십자가의 죽으심 곧 피흘리심은 우리의 속죄의 근거가 되셨습니다. 히9:22에 "피 흘리심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본문은 피흘림 보다도 피 뿌림을 더 강조합니다. 피 흘림이 속죄의 근거라면 피 뿌림은 속죄의 적용입니다. 첫 유월절에 하나님의 명을 따라 어린 양이 피흘리고 죽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제 흘려진 피를 개개인의 집집마다 문 인방과 문설주에 뿌려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베드로 전서1:2에 보면 성도들을 가리켜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우리의 속죄의 근거가 되었지만 이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개개인이 마음속에 구주와 주님으로 받아 드려야 합니다.

이런 광경을 연상해 보십시오. 심판의 천사가 애굽의 골목 집집마다를 자나고 있을 때 이런 대화가 부모와 자녀사이에 이루어지는 것을 상상해 보십시오. 아들이 아빠에게 묻습니다. "아빠, 우리 집 문설주에 피가 뿌려졌나요 " "이미 우리는 하나님의 명대로 어린양을 잡아 피 흘리게 했단다" "그래도 우리 집 문설주에 피가 뿌려져 있어야 한 대요. 그 피를 볼 때에 천사가 그 집을 넘어간다고 하셨잖아요." 이 때에 세 가지 가능한 아빠의 반응이 있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 다 미신으로 일축하는 것입니다. "야, 너 그건 다 종교적 미신이야. 믿지 말아" 둘째는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집이란다. "믿음이 있으면 되었지 피까지 뿌릴 필요는 없어. 그건 지나친 근본주의적 신앙이야" 셋째는 뿌려진 피를 확인하고 감사하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이 집의 장자를 구원하는 길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뿌려진 피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과 저의 마음의 문설주에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져 있습니까 다시 말하면 예수께서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심을 믿고 그분을 받아 드리셨는지요 바울은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자신을 시험하고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고후13:5)고 말합니다.

저는 목사로서 교회 지도자로서 목회하며 제일 무섭고 두려운 일이 있다면 저의 교회에 나오는 교인들이 교회에는 열심히 나왔는데 마지막에 구원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는 무엇보다 여러분 자신의 믿음의 근거와 정체를 다시 확인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진실로 하나님의 구원의 방편을 받아 드리셨습니까 아직도 교회에 나오시면서도 자신의 행함이나 자신의 어떤 철학이나 인간적인 구원의 방법을 고집하십니까 십자가를 받아 드리셨습니까 십자가에서 당신의 죄를 짊어지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하셨습니까 참된 믿음은 하나님의 구원의 방편을 수용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가르치신 그대로 자신이 믿었고 자기의 백성들에게 그대로 전한 것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이스라엘 공동체가 구원을 받고 출애굽의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모세의 믿음이 당신의 믿음이 되셨습니까 출애굽의 기적을 경험한 이스라엘의 믿음이 여러분과 저의 믿음이 되셨습니까 무슨 방법으로도 죄 사함 받을 수 없었던 우리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의 피로 죄 사함을 받은 간증과 찬양이 있으신가요 이 간증과 이 찬양이 없다면 제발 당신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당신 자신을 속이지 마십시오. 이제라도 십자가 앞에 나아오십시오. 거기 당신을 위해 달려 죽으신 예수를 바라보십시오. 거기서 흘리신 그의 거룩한 피에 당신의 존재를 적시십시오. 그 분을 당신의 구주로 받아 드리십시오. 그리고 그분이 이제 당신의 주님이시라고 고백하십시오. 그때 당신의 출애굽의 인생 드라마는 시작될 것입니다.

<설교 적용 질문>

1. 모세는 믿음으로 애굽을 떠났는데 오늘 나로 하여금 애굽을 떠나지 못하게 하는 세상적인것들에는 무엇이 있는지 생각해 보고 나누어 보십시오.

2. 오늘 나에게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면 구체적으로 무엇에 대한 것인지 말해보십시오.

3. 예수님의 죽으심과 보혈에 대한 감동을 느낀 적이 있다면 회고해 보고 나누어 보십시오.

4. 최근에 나의 믿음의 삶에서 실패하고 있는 부분과 회복되어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돌아보고 나누어 보십시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