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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못자국과 부활의 주님 (시 02:1-12, 요 20: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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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본문에 보면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두 손 과 옆구리를 보여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보지 못한 도마는 그의 눈으로 직접 그 손으 못자국을 보고 옆구리의 창으로 찔린 자국을 소 능로 만져보기를 원하였는데 다시 나타나신 주님께서 도마의 욕구를 충족 시켜 주셨습니다. 그저 도마가 즉시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이라고 신앙 을 고백하였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분명히 변화된신 분이었습니다. 제자들이 문을 모두 잠그고 있었는데 그들 가운데 나타나셨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단순한 인간의 몸을 가지신 분이 아님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의 손과 옆구리를 보이셨다는 것은 거기에 십자가에서 당하신 고난의 흔적 을 가지고 계심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의 육체가 부활하여 변화되었다면 못자국도 또 창에 찔린 상처도 모두 없어지고 새 몸이 되셨을텐데, 요한복 음 기자는 그대로 그 상처 자국을 가지고 나타나셨음을 강조하고 있습니 다.

 우리는 이 본문에서 도마의 불신앙을 주목해 왔습니다만, 복음서 기자 가 관심을 둔 것은 그것이 아니라 바로 그의 불신앙을 통해서 부활하신 주 님이 바로 십자가에 죽으셨던 분임을 강조하고, 동시에 도마의 신앙고백을 빌어 요한복음의 절정을 삼고자 한데 있었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을 각각 다른 것으로 인식하려는 오해를 없애고 그것이 하나의 사건임을 보여 주려 한 것이 요한복음의 의도라 하겠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 그가 다 시 살아나심으로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이 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그 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려는 것이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이 라고 하였는데, 마지막 부분에서 그 목적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부활의 최초의 기록이라고 볼 수 있는 고린도전서 15장에 보면, 사도 바울이 전해 받은 가장 중요한 신앙고백을 적고 있습니다.

 "그것은 곧 그리스도께서 성경에 기록된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 다는 것과 무덤에 묻히신 것과 성경에 기록된 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 신 일입니다." (고전 15:3-4)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던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 이 곧 복음입니다. 사도들의 설교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그냥 부활의 주 님을 전한 것이 아니라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주님을 전파한 것입니다. 십 자가와 부활이 별개의 것이 아니라 구원의 역사에 있어서 하나의 사건임을 우리가 분명히 고백할 때 우리의 신앙은 완전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너희에게 평안이 있으라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하신 말씀은 "너희에게 평강 이 있을찌어다" 즉 샬롬입니다. 이 말씀은 그저 단순한 인사가 아니라 여 러 가지 의미를 함축한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십자가를 통하여 인간의 모든 죄를 대속하심으로 이룩된 평안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라고 말씀하신 후에 곧 손과 옆구리를 내어 보이셨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 셨던 분임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가 그 죽음의 권세를 깨고 다시 살아나셔서 제자들에게 오신 것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이 동시에 제자 들 앞에 펼쳐지면서 그 의미를 들어낸 순간입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인간을 얽어매던 모든 죄가 대속되었고, 따라서 죄로 말미암아 신음하던 모든 인간에게 자유와 해방이 찾아오게 되었으며, 불안 과 공포가 살아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부활을 통해서 그 모든 것이 확실 한 사실로서 입증된 것입니다. 여기서 참된 평안이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 다.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오셔서 바로 이렇게 이룩된 평안을 주신 것입니다. 모인 집의 문을 모두 잠그고 있어야할만큼 불안과 공포에 떨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이제 그 모든 불안에서 벗어나 평안을 갖 도록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고 평화를 가져온 것이지만 그러나 부활이 오기 전에는 제자들에게 그 십자가는 공포의 대상이요, 패 배의 상징이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모습으로 저들 앞에 오심으로 해서 그 십자가는 평안으로 받아 드려졌습니다. 이제 더 이상 십자가는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그것은 평화의 상징이 되었습니 다.

 오늘 우리의 상황은 문들 모두 잠그고 숨어있던 제자들이 상황과 비슷 합니다. 우리는 오늘 우리를 위협해오는 정치적인 압력과 경제적인 불안과 그리고 자연의 오염등으로 해서 불안과 공포에 휩싸여 전전긍긍 앓고 있습 니다. 불의한 세력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것처럼 오늘도 불의한 세력들이 진리를 왜곡하고 정의를 핍박하며, 의로운 백성들을 십자가에 못 박고 있는 것을 보면서 한편으로 울분을 가지며 한편으로는 두려워하고 있 는 것입니다. 우리는 탄식하면서 왜 하나님은 이 땅에 불의한 세력들을 다 몰아내고 속히 의로운 사회, 참 평화를 이룩한 나라를 허락하시지 않는가 라고 호소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그렇게 무서워서 도망가 숨어있는 그 순간에 예수님의 십자가에서는 인간을 꽁꽁 얽어매던 죄의 사슬이 끊어지고 있었습니다. 인 간을 지배하던 악마의 세력이 패배를 당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제자들이 꼭 꼭 문을 잠그고 숨어있는 동안 예수님의 무덤에서는 부활의 역사가 일어나 고 있었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임을 우리가 안다면 오늘 우리가 불안에 떨고 있는 이 순간이 바로 진리의 역사가 승리하고 있는 순간이며, 죽었던 의의 세력들이 부활하고 있는 순간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중요한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직접 나타나셔서 손과 옆구리를 보여 주시며 샬롬을 주심으로 비로소 제자들이 그 공포에서 해방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우리가 당하고 있는 이 불안과 공포에서 해방되는 길은 부활의 주님을 만나는 길입니다. 부활의 역사를 오늘 우리 가 체험하고 이 역사 속에서 모든 불의들이 깨어지는 모습들을 영의 눈으 로 볼 수 있을 때 우리는 샬롬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부활의 주님 은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못자국을 가지신 부활의 주님이 우리와 함 께 계시므로 오늘의 고난과 아픔들은 그것이 결코 최후가 아니며 오히려 진리가 승리하고 의가 실현되고 있는 것임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오늘의 역사 속에서 상처받은 진리는 내일의 역사 속에서 부활할 것입 니다. 고난의 흔적을 깊이 가진 이 민족은 결코 그 고난으로 최후를 마지 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반드시 부활의 새로운 장을 펼치면서 이 세계에 희 망을 주는 민족이 될 것입니다. 못자국을 가지신 부활의 주님이 오늘 우리 앞에 서 계시면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라고 하시는 그 모습을 날 마다 뵈올 때 우리는 불안과 공포 대신에 기쁨과 용기를 가지게 될 것입니 다.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

다음으로, 우리는 못자국을 가지신 부활의 주님을 나중에 만남으로 "나 의 주님, 나의 하나님"이라고 신앙을 고백한 도마에게서 우리 자신의 모습 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도마가 다른 제자들보다 의심이 더 많은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다른 제 자들도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그를 뵈옵기 전까지는 믿지를 않 았습니다. 그러므로 도마가 그 제자들보다 의심이 더 많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요한복음 14장에 예수님께서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 가 알고 있다"라고 말씀하셨을 때 도마가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주님, 주 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겠습 니까"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어 도 그저 듣고만 있었는데, 도마만은 그대로 있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솔직히 모른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는 분명하게 알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저에게 대답하여 주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 께로 올 자가 없다."

부활의 사건에 있어서도 도마는 다른 제자들과 달랐습니다. 그는 유독 예수님의 못자국과 창에 찔린 자리를 확인하고 싶어했습니다. 도마의 관심 사는 그들 앞에 나타나신 주님이 과연 그들과 함께 갈릴리 해변을 거니시 던 그 예수님, 십자가에 못박혀 처절하게 부르짖으시던 그 예수님인지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만일 그 분이 갈보리의 인간 예수와는 전혀 다 른, 다만 신적인 환영(幻影)에 지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별로 의미 없는 것 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아닐까요 평화를 이야기 하고, 죄사하는 권세를 주 시는 부활하신 주님은 필연코 십자가에 달리신 바로 그 분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도마에게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만일 그의 죽음이 살아계신 주님 의 일부분이 아니라면, 우리는 또 다시 헛된 꿈 때문에 큰 실망을 맛보게 될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만약 도마가 이와 같은 생각 에서 행동했다면 그는 의심많은 제자로서의 낙인보다는 오히려 사려 깊은 신학자로서 존경받아야 마땅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도마를 위해서 특별히 다시 나타나 주신 것은 그의 생각이 마냥 틀리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요 예수님께서는 도마 의 생각대로 손과 옆구리를 만져보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이 짧은 기사에 손과 옆구리가 세번이나 언급된다는 것은 그것이 갖는 의미가 크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도마는 즉시 예수님께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이라고 신앙을 고백하 였습니다. 도마의 이 고백적인 대답은, 그가 갈보리의 예수와 부활의 그리 스도가 완전히 같은 분임을 확인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십자가에 못박힌 흔적을 가지고 계신 분이기에 그는 우리의 주님 이시고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 님을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게 하려고 기록된 것입니다.

 도마는 직접 자기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지만, 우리는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부활의 주님을 직접 뵈옵지는 못한다 할지라 도 그가 십자가에서 죽으신 분이요, 그리고 무덤에서 살아나신 분임을 믿 을 때 복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역사 속에서 십자가의 신학과 영광의 신학을 함께 지켜 나갈 때 우리에게 복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복음 안에 간직된 이 두 가지 사건 곧 십자가와 부활이 서 로 떨어져 나갈 위험 속에 살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십자가의 고난만을 강조하는 행동주의자들이 있는가 하면, 또 한편으로는 축복만을 간구하면 서 영광만을 좇는 열광적인 신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다 바 람직스러운 것이 못됩니다.

 신약성경은 결코 십자가의 엄격성을 낮게 평가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신약성경은 항상 수난의 금요일을 부활의 날의 조명에 의해 설명하고 있습 니다. 또한 부활의 권능과 고난 속의 교제를 항상 연결짓고 있습니다. 신 약성경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고난받는 종이시며, 동시 에 영광받으시는 메시아"이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고난 없는 영광은 천 박한 것이며, 영광 없는 고난은 무의미한 것입니다. 고난과 영광이 함께 연결될 때 고난도 영광도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이라고 우리가 고백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고 난의 흔적을 가지신 주님이십니다. 이제 이런 신앙고백을 하는 교회들은 오늘의 고난에 동참하여 이 역사 속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동시에 이 고난받는 역사에 부활의 소망을 전파하므로 이 고 난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와 믿음을 불러 일으켜 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가 믿는 주님은 못자국을 가지신 부활의 주 님이십니다. 고난받는 종으로서의 예수요, 부활하여 영광 받으신 그리스도 이십니다. 그가 고난받으심으로 우리가 죄 사함을 받았고, 그가 부활하심 으로 우리가 기쁨과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 과 더불어 영광받을 자리에 오를 그의 자녀들이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이 제 용기와 희망과 사랑을 가지고 이 고난의 역사를 극복해 갑시다. 더 이 상 고난은 우리를 짓누르는 무거운 짐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를 위협하는 공포가 될 수 없습니다. 이제 담대하게 불의와 맞서며 진리의 파수를 위해 헌신할 때가 된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오늘도 우리 곁에 계시면서 우 리에게 평강을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박히심으로 이룩하신 참 평강을 우리에게 주심으로 오늘의 상황이 어떻게 변화해 간다해도 그 평화 는 우리에게서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의 이 뒤끓는 역사 속에서 주 님이 주신 이 평화를 누리면서 용기와 믿음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해 가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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