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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보지 않고 믿는 신앙 (고후 04:16-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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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말씀 고후5:7절에 보면,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치 아니함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의 보이는 것은 잠깐이지만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는 영원한 것입니다. 보이는 것은 일시적 인 것이요 안개와 같이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보이는 것은 한낮의 그림자와 같아서 잠깐 있으면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보이는 것은 마치 들에 피는 꽃과 같아서 잠깐 피었다가 지는 것에 불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보이는 것에 관심을 두거나 큰 비중을 두지 말아야 합니다. 보이는 것은 실제가 아니라 그림자와 같은 것이며, 보이지 않는 것이 영원한 것이며 참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고후4:18절에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 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 밝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앙과 이성)
종교와 과학은 대상을 보는 관점부터가 다르다. 종교는 대상을 볼 때 "왜"라는 의문에서 시작하여 대상의 존재 이유와 가치에 대해서 말하고, 과학은 "어떻게"라는 방법에서 시작하여 대상의 분석과 현상을 논한다. 종교는 사물을 신앙의 눈으로 보고 과학은 이성의 눈으로 본다. 이렇듯 두 영역은 출발부터가 다르기 때문에 종교를 비이성적이라 해서도 안되고, 과학을 비 신앙적이라 매도해서도 안된다. 서로 유기적 관계를 이루며 약점을 보완해 나갈 뿐이다. 하나님은 과학적 이성을 분석, 비평해서는 도무지 알 수 가 없다.

소련 우주비행사 [티토프]가 시애틀에 와서 기자 회견을 하는 중에 "내가 이 지구 위에 올라가서 지구를 몇 바퀴 돌아보았지만 하나님은 보이지 않더라."라고 했다. 얼마 후에 같은 장소에서 미국의 우주 비행사 [글렌이] 말하였다. "나는 우주여행을 하면서 우주의 찬란한 광경을 구경하였는데 지구 위에나 똑같은 자연법칙이 운행되어서 우주여행을 완전히 마치고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을 보니 과연 하나님은 계시더라."고 했다. 똑같은 광경을 보았지만 그들의 관점은 이렇게 차이가 있다. 신앙은 이성으로 먼저 알고 믿는 것이 아니라 먼저 믿고 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터툴리아 누수]는 "나는 불합리하기 때문에 믿는다."라고 했다. 모든 것을 이성적으로만 보는 사람은 하나님을 만나기가 힘들다.
우리의 이성 넘어 에 계시는 주님. 우리의 믿음의 눈을 밝게 하사 늘 주님을 보게 하옵소서.

어떤 분은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고 묻습니다. 그들은 눈으로 보는 모든 것을 다 볼 수 있는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바람, 공기, 마음 등). 하나님은 영(신)이심으로 우리 눈으로 볼 수 없는 분입니다.
A.모든 피조물이 증거 합니다.
많은 천문학자들이 천체의 신비함과 기묘하게 조직된 것과 운행되는 것을 보고 우주 만물은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라 창조주의 창조로 되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B.인간의 양심이 증거 합니다.
어느 누구든지 위급할 때에는 하나님부터 찾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교육이나 권유를 받은 일이 없는데도 하나님을 찾는 것은 양심의 고백이요, 인간 본심의 부르짖음입니다.
C.예수께서 증거 하셨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예수는 천하에 없는 사기꾼이나 거짓말 장이나 정신병자중 한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는 사기꾼도 거짓 말 장 이도 정신병자도 아님을 역사와 온 인류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성자 예수의 전 생애가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그분은 역사를 주관하시고 섭리하십니다. 그 하나님을 믿고 영접할 때 혼돈 속에 방황하던 우리의 삶에 질서가 잡히고 도무지 의미도 없는 공허한 삶에 사랑과 희락과 화평의 열매가 맺히고, 죄와 고독과 고통의 연속에서 참 자유와 기쁨과 감격의 삶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1. 보이는 대로 행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1)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이 구름 속에 달이 흘러간다고 말합니다 “야! 그 달이 참 빨리 흘러간다”고 말한다면 그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눈으로 보기에는 달이 가는 것 같지만 움직이는 것은 달이 아니라 구름입니다.

아침에 해가 동쪽에서 떳 다가 저녁에 서쪽에 진다고 해서 눈으로 보는 대로 해가 떳 다가 해가 지는 것으로 믿는다면 역시 그는 어리석은 사람일 것입니다. 해는 그대로 있는데 지구가 돌아가기 때문에 마치 해가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또 물그릇에 젓가락을 넣어 보면 눈에는 그것이 구부러진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것이 구부려 진 것이 아니라 곧은 것입니다.

이와 같이 눈으로 보이는 것만이 확실한 것인 줄 알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우리의 육신의 눈으로만 보고 사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고전2:10-11)

하늘에는 천리가 있고 땅에는 지리가 있고 바다에는 해리(해도)가 있고 사람의 마음에는 심리가 있고 영적으로는 천국 가는 길이 있습니다(요14:6) 그 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2) 무식한 사람입니다.
전기나, 전파나, 공기와 같은 것은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참으로 중요한 것, 영원한 것은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도 영이시고 육신이 아니므로 믿음으로 알 수 있는 것이지 눈으로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 가운데는 하나님을 보여주면 믿겠다고 하는 단순한 사람 아니 무식한 사람들이 혹 있습니다 보는 대로만 보고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그것은 동물적인 근시안적인 인생을 사는 참으로 불쌍한 사람입니다

예수 님께서도 의심하는 도마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를 본고로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더 복 되도 다라고 했습니다(요20:24-29) 그리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음 있는 자가 되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는 믿음을 정의하기를 히브리서11:1-3절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 선진들이 이로서 증거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3) 속기 쉬운 사람입니다.
보이는 대로 행하는 사람은 속기 쉬운 사람입니다. 낚시꾼의 낚시 밥이 먹음직스럽게 보인다고 물고기가 얼른 삼켜 버린다면 잡혀 죽고 말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 앞에 보이는 것, 일시적인 것, 쾌락적인 것을 놓고 우리를 속이고 실패하게 하고 멸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보이는 대로 판단하고 보이는 대로 행동하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이요, 속아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고 믿음으로 행하는 사람은 결코 속지 않습니다. 고귀한 차원에서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겉모양은 포장을 하여 속기가 쉽습니다 이세상의 모든 것이 포장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를 과장하고 외식하고 속고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외모나 외형적인 모습만 보고 판단하거나 선택하지 말고 내면의 세계 마음의 중심을 보고 분별하도록 힘써야 지혜로운 사람이요 승리의 사람이요 성공의 삶을 살수 있을 것입니다

4) 보이는 것은 변하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꽃이나, 마이크, 강대 상 같은 것은 머지 않아 다 변해서 쓰레기통에 들어갈 날이 올 것입니다. 저도 젊어 보이지만 머지않아 이가 다 빠지고 백발이 되어 늙어 지는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속마음은 결코 늙거나 변하거나 죽지 않습니다.

고후4:16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 하 노니 겉 사람은 후패 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육신의 눈은 낮에는 볼 수 있지만, 밤에는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보이는 현재에만 살고 있는 사람은 죽음이 임박해오면 벌벌 떱니다. 죽음을 두려워하고 죽음 후에 일어날 일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행하는 사람은 두렵지 않습니다. 햇빛이 비치는 대낮에도, 햇빛이 없는 캄캄한 밤에도 대낮같이 담대히 걸어 갈 수 있습니다.

옛날 어떤 사람이 광산에서 등불을 들고 갱 속에 들어갔다가 등불이 꺼졌습니다. 출구가 어디인지 동서남북이 어디인지 알 수 가 없습니다. 꼭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때 지혜가 떠올랐는데, 석탄을 실어 나르는 철길이 생각나서 신발을 벗어들고 발을 철길에 대고 걸어갔더니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밖으로 무사히 나갈 수 있었습니다.

믿음으로 행하는 사람은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인도해 주시고 말씀이 그를 인도하기 때문에, 믿음으로 행하는 사람은 손에는 잡히는 것이 없고 눈에는 보이는 것이 없을지라도 문제가 없습니다. 캄캄한 죽음의 밤이 와도 겁나지 않습니다. 그는 보이지 않는 것, 볼 수 없는 것을 믿어 왔기 때문입니다(시119:105).

그의 영혼은 보이는 것이 다 사라져 없어질 때 더욱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문 고후5:1절 이하에 “땅에 있는 육신의 장막 집이 무너져도 하늘의 영원한 장막이 있기 때문에 탄식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2. 보이지 않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1)겉 사람은 후패하나 속은 날로 새롭기 때문입니다(고후4:16)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여기서 '겉 사람'은 죽어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제한된 육체를 가진 이 세대의 인간을 가리킨다. 이에 대조되는 속 사람은 복음을 통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중생 한 영적 실존을 가리키는데(5:17 엡 2:5 골 3:9, 10:벧전 1:3), 장차 다가올 새로운 세대의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다. '겉 사람'이 낡아져 가는 것은 이 세대의 인간들에게 적용되는 생성 소멸의 원리이다. 그러나 '속 사람'이 도리어 새로워지는 것은 중생 한 영혼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지식이 새로워지며 결국에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엡 4:15 골 3:10). 이 '새로워짐'은 종말론적 재림의 때에 완성되는 것이지만, 성령의 역사 하심으로 인해 이미 현재화되어 있다. 바울은 이것을 '날마다 새롭도다로 표현하고 있다. 한편 본문은 바울 자신에게도 적절하게 적용되는 바, 그의 육체는 끊임없이 다가오는 고난들(1:7-9 4:8-11)과 세월의 흐름으로 하여 점점 쇠약해지지만 그의 영적 실존은 나날이 새로워지는 것이다.

2)잠시 받는 환난이 영원한 영광에 비교가 되지 아니 하시기

때문입니다(고후4:17)

환난의 경한 것이...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본 절에서는 두 가지 사항이 강조된다. 하나는 영광을 얻기 위해서는 환난을 피해갈 수 없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환난을 당한다 하더라도 미래에 받을 영광에 비하면 그 환난은 오히려 가볍다는 것이다. 이것은 '잠시'와 '영원' 그리고 '경한 것'과 '능한 것'의 극명(克明)한 대조로 잘 나타나고 있다. 바울이 그의 사도직을 수행하면서 당한 환난은 사실상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1:8에서 고백한대로 그가 당한 환난은 너무 심하여 살 소망까지 포기해야 하는 상황도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이것을 '경한 것'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이것은 바울이 하늘에서 받을 영원하고도 영광스러운 축복에 대한소망을(골 1:5)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3)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시기 때문입

니다(고후4:18)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여기서 '돌아보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스코페오'()는 '주목하다', '소망하다'의 뜻이다. 바울과 성도들이 소망하는 것은 이 세대의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하늘 나라의 영적인 것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바울이 보이는 것을 일시적인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영원한 것으로 묘사하고 자신이 후자를 바란다고 했을 때, 그것은 물질과 영, 현실과 이상에 대한 이원론적(二元論的) 구별을 말하는 것으로서 육체적이고 감각적인 것에 대한 부정을 뜻한다고 이해해서는 안 된다. 만약 육체적인 것이 무의미하다면 그가 당한 육체적 고통도 고린도 교인들에게 아무런 유익을 끼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분명히 자기가 당하는 고난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유익이 된다고 하였다(1:6). 다만 바울이 말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며 결국 없어질 것에 궁극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보이지는 않지만 종말론적 구원의 날에 도래할 그 영원한 세계를 소망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바울은 이 보이지 않는 것을 이미 보며, 미래의 종말론적인 것을 이미 현재적인 것으로 누리고 있다. 그것은 그가 믿음을 가지고 보기 때문이다(히 11:1). 이런 바울의 모습은 유한한 육체를 입고 환난이 현존하는 이 세대에 살고 있지만 이미 주의 영으로 말미암아 자유 함을 누리고 사는 그리스도인의 영적 실존의 한 모범이며, 마찬가지로 어떤 성도라도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바울과 동일한 영적 실존으로 살아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4)육신의 장막 집은 무너져도 영원한 집은 무너지지 아니 하시

기 때문입니다(고후5:1)

우리의 장막 집-'장막 집'에 해당하는 헬라어 '스케누스'()는 천막을 가리키는 말로서 본문에서는 천막(天幕)이 일시적인 것이듯이 인간의 육신도 영구적이지 못하고 일시적이라는 것이다. 바울이 이렇게 육체의 한계성을 천막에 비유한 것은 아마 그가 천막 만드는 일을 했던 경험에서 얻은 지혜에서 기인했을 것이다(행 18:3).
무너지면-이 표현은 (1) 육신의 죽음, 또는 (2) 그리스도의 재림 때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는데, 전자의 의미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혹자는 바울이 이렇게 죽음을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한 말을 한 것은 글을 쓰는 당시 심경(心境)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본다. 즉 바울은 살아서 주의 재림을 경험할 성도들 가운데 자신도 포함되리라고 기대했었는데, 최근에 겪은 아시아에서의 죽음의 고비를 넘긴 경험을 통해서(1:8-11), 재림 전에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견해이다(Harris). 그러나 이견해도 어느 정도 타당하지만 그보다는 주의 재림 이전에 죽음으로써 재림을 경험하지 못할 것을 염려하는 성도들에 대해서 염려할 필요가 없음을 말해주려는 의도가 더 강하다고 볼 수 있다.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 요-바울은 하나님이 지으신 집의 영원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본 구절의 표현을 사용했다. 우리가 사는 집이 쉽게 썩고 낡아지는 것처럼 인간의 육체 역시 마찬가지 운명이다. 그러나 그렇게 사라질 인간의 육체에 대해서 실망하거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육체가 썩어 없어진다 해도 주께서 재림하실 때 성도들은 영원히 썩지 않을 부활의 몸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기 때문이다(고전15:38-54).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에 대해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약속하셨던 바 성도들을 위해 예비된 하늘의 처소(處所) 즉 하늘나라(요 14:2)를 가리킨다고 보는 견해가 있고(Hodge, Harris, Tasker), 또한 집단적인 몸 즉 고전 3:16;6:16에 언급된 '성전'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E. E. Ellis). 이 두 견해에 대해 혹자는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유한한 인간의 육체를 가리키므로 본 구절의 '집'도 사람의 몸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Martin). 그러나 본 절에서 강조되는 것은 일시적인 집과 영원한 집의 비교이지 몸과 몸의 비교가 아니다(Hodge). 성도들은 현재 유한한 장막에 거하나 나중에는 영원한 장막에 거하게 된다는 것이 본 절의 강조점이다

일곱단계의인생
탈무드는 인간의 나이에 따라서 인생을 일 곱 단계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1)인간 한 살 때는 왕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한 살 되는 아이 앞에서 아이에게 비위를 맞추고 어른들이 오히려 아이 앞에서 재롱을 떠는 것을 의미합니다, 2)인간 두 살 때는 돼지랍니다, 무엇이 깨끗한지 무엇이 더러운지 구별하지도 못한 채 마구 흙탕물 속을 헤집고 다니기 때문입니다.
3)인간 열 살은 양입니다. 그때쯤 되면 자기 자신을 깨끗하게 간수하고 제법 멋을 부리기 시작한다는 뜻입니다,
4)인간 18살은 말이랍니다, 크게 성장해서 자기가 지닌 재능이나 힘을 사람들 앞에서 과시하려고 할 때라는 것입니다.
5)결혼하면 당나귀가 된답니다, 가정이라고 하는 무거운 짐을 어깨에 지고서 그때부터 끝도 없는 인생의 길을 당나귀처럼 걸어야 하는 것입니다.
6)중년은 개랍니다. 딸린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서 마치 개처럼 자존심을 다 버리고 윗사람 비위나 맞추면서 아양을 떨고 꼬리치는 인생을 살아야 됨을 뜻합니다, 7)노년 은 원숭이랍니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 받으면서 살고 픈데 세상 사람 그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늘 지금 재주를 부릴 줄 아는 젊은 원숭이에게만 관심을 갖기 때문입니다. 탈무드의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일러주고 자 하는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인생은 즐거운 것 같지만 실제는 외롭고 쓸쓸하기 짝이 없는 것이라는 겁니다. 내가 아무리 당나귀처럼 가정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한평생을 힘없이 터벅터벅 걸어가도 세상 사람들은 나의 아픔과 나의 괴로움을 알지 못한 다는 것입니다. 내가 내 가족들을 먹여 살리 기 위해서 정말자존심 다 버리고 개처럼 이 사람 저 사람에게 꼬리치며 살아가도 내 가 족들조차 내 속마음을 몰라준다는 것입니다. 내 가정을 위해서 일평생 애쓴 뒤에 은퇴하고는 정말 사람들로부터 따스한 사랑 과 관심을 받으며 살 고픈데 이미 사람은 내 곁을 다 떠나고 외면한 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인간은 철저하게 고독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고독하게 홀로 태어납니다 그리고 인간은 고독하게 홀로 살아갑니다. 그리고 인간은 고독하게 홀로 죽는 것입니다, .

3.그렇다면,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왜 믿어야 합니까
1)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영이시기 때문입니다.(요4:24)

전기나, 전파나, 말소리 같은 것은 눈으로 볼 수 없으나 존재하는 것 같이, 영원히 살아 계신 하나님은 변하는 물질이 아니라 영이시기 때문에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믿는 자에게 하나님은 만나 주시고, 믿는 자에게 하나님은 함께 하시고, 믿는 자를 하나님은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어떤 아이가 길을 가다가 전봇대 옆에 구리철사, 전기용구들이 많이 쌓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무리 사방을 살펴봐도 사람이 보이지 않으니까 가져가서 엿을 사먹으려고 움켜쥐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전봇대 위에서 “이놈, 거기 놓지 못해!”하고 소리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깜짝 놀라 위를 쳐다보니까 전봇대 위에서 어떤 아저씨가 전선을 수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아이는 위는 볼 줄 모르고 아무도 없는 줄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지금도 살아 계셔서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를 살펴보고 계신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믿지 않는다면 마치 그 어린아이와 같은 것입니다.

2) 인간의 지혜로 다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믿어야 합니다.(고전1:18-25)

국민학교 1학년 어린아이보고 고등학교 3학년이 푸는 미분 적분 수학 문제를 풀라고 하면 풀지를 못할 것입니다. 바둑 18급 자리가 조치훈 10단이 두는 바둑을 보면 알 수가 없습니다.

성경에 말씀하시길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인간의 지혜로움 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인간은 어리석으나 하나님의 지혜는 한이 없으시고, 인간은 무지하나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십니다.

그러기에 인간의 머리로 말씀을 따진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요 잘못 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조건 믿어야지 따지고 들면 못 믿습니다. 많이 배운 사람일 수록 따지고 들기 때문에 더 믿기가 어려운 것입니다(잠1:7).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절대적인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사55:8-9절에 보면,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 보다 높으니라”말씀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믿음을 구원의 길로 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도, 구원을 받는 것도 믿음의 통로를 통해서 받게 하신 것입니다.

3) 믿음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므로 믿어야 합니다

(히11:6).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제일 원하는 것은 무엇보다 믿음입니다. 윤리나 도덕이나 착한 행실보다도 제일 먼저 주님을 믿어주길 원하는 것입니다.

히11: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 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 찌니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나오는 사람은 먼저 “믿습니다. 아멘” 하는 자세로 나아와야 합니다. 찬송도 믿음으로 부르며, 기도도 믿음으로 하고, 말씀을 들어도 믿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지식과 재주가 아무리 많아도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을 결코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요8:29) 믿음으로만이 하나님께로 나아 갈 수 있고 하나님께로부터 인정과 칭찬을 받고 축복을 받을 수 잇기 때문입니다(히4:16.롬4:17-2

1.마9:29)

4) 구원은 믿음으로 받기 때문입니다(엡2:

8.행16:3

1.요1:12).

롬3:23-24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가 되었느니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타락하고 범죄해서 자기 행위를 가지고는 하나님의 영광에 이 를 자가 한 명도 없게 되었습니다.(롬3:10-2

3. 롬6:23)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 값을 치뤄 주시기 위하여 예수 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하늘 나라를 가르쳐 주시고 마지막에는 저와 여러분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피 흘려주셨습니다.

이제 그를 믿기만 하면 강도이든, 창녀이든, 도둑놈이든, 다 용서해 주시고 구원해 주십니다.

천국의 열쇠
미국에 유학간 세 학생이 높은 건물 24층에 방을 하나 얻어서 같이 쓰고 있었다. 어느 주일 세 학생이 같이 밖에 외출을 하고 돌아와 보니 정전이 되어 엘리베이터가 가동되지 않았다. 그 중 한 학생이 우리들은 젊은데 그까짓 24층쯤은 걸어서 올라갈 수 있지 않겠느냐고 하며 걸어서 올라가자고 했다. 그러자 다른 학생들도 동의하여 걸어서 올라가는데 그 중 한 학생이 우리 천천히 이야기나 하며 올라가자고 하며 철학도인 그가 먼저 철학 이야기를 했다. 어느덧 8층까지 올라오자 다음은 법학도가 이야기의 바톤을 이어받아 법학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16층까지 올라갔다. 끝으로 신학도가 신앙의 이야기를 하며 그들의 목적 층인 24층까지 다 올라 왔다. 이제 막 문을 열고 들어가려 하니 그 셋중 아무도 수위실에서 방문 열쇠를 가지고 오질 않았다. 셋은 24층이나 걸어서 올라갔으니 지칠 대로 지쳐서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 아무도 내려가 열쇠를 가지고 올 사람이 없었다. 옳다. 우리는 천국을 향해 층계를 오르듯 힘겹게 일평생 오르고 있으나 천국 문에 이르렀을 때 믿음이란 열쇠를 아래층 교회에서 가지고 올라오지 않았다면 천국 문은 결코 열리지 않는다. 70년, 80년 세상을 살았으나 초보적인 단계로 내려와서 믿음의 열쇠를 가지고 올라가야만 한다.

(결론)
호주에는 인구 수 보다 양의 수가 더 많다고 합니다. 그런데 가끔 독수리가 내려와서는 양의 새끼를 잡아먹는데 먼저 눈을 쪼아서 파먹고 보지 못하게 한 뒤에 살을 뜯어 먹는다고 합니다.

한번은 농부가 언덕에서 바라보니까, 독수리 한 마리가 하늘에서 빙빙 돌더니 쏜살같이 내려 와서 어미양의 눈을 파먹고 살을 뜯어먹으려 했습니다. 이때 그 농부가 달려가서 독수리를 쫓아 버리고 보니까 그 죽은 어미양의 네다리 안에 새끼 양이 숨어서 살아 있더라는 것입니다.

이 어미양은 독수리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도망하면 살 수 있었지만 새끼를 사랑하여 새끼 양을 품속에 넣어 대신 피를 흘려 죽었던 것입니다.

요3: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말씀했고, 요1: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보이는 대로 행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요, 무식한 사람이요, 속기 쉬운 사람입니다. 보이는 것은 무엇이든 변하는 것입니다. 눈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보이지 않는 것이 존귀하며 영원합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영이십니다. 우리의 지혜로 다 이해할 수 없기에 믿어야 하며 믿음을 통해서 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고, 구원을 받을 수 있기에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사는 육체적 자연의 세계만 보고 사는 형이하학적인 인생을 살지 말고 눈에는 보이지 아니하지만 영적 세계를 바라보고 사는 형이상학적 인생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보이는 대로 행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예수 님을 나의 구주로 믿어서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제목:보지 않고 믿는 신앙(고후4:16-5:1)
(서론)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왜 믿어야 합니까
종교와 과학은 대상을 보는 관점부터가 다르다. 종교는 대상을 볼 때 "왜"라는 의문에서 시작하여 대상의 존재 이유와 가치에 대해서 말하고, 과학은 "어떻게"라는 방법에서 시작하여 대상의 분석과 현상을 논한다. 종교는 사물을 신앙의 눈으로 보고 과학은 이성의 눈으로 본다

1. 보이는 대로 행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1)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영이시기 때문입니다.(요4:24)
2) 무식한 사람입니다.
3) 속기 쉬운 사람입니다.
4) 보이는 것은 변하는 것입니다.

2. 보이지 않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1)겉 사람은 후패하나 속은 날로 새롭기 때문입니다(고후4:16)
2)잠시 받는 환난이 영원한 영광에 비교가 되지 아니 하시기
때문입니다(고후4:17)
3)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시기 때문입
니다(고후4:18)
4)육신의 장막 집은 무너져도 영원한 집은 무너지지 아니 하시
기 때문입니다(고후5:1)

3.그렇다면,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왜 믿어야 합니까1)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영이시기 때문입니다.(요4:24)

2) 인간의 지혜로 다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믿어야 합니다.(고전1:18-25)

3) 믿음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므로 믿어야 합니다
(히11:6).
4) 구원은 믿음으로 받기 때문입니다(엡2:

8.행16:3

1.요1:12).

제목:죤 워나메커의 성공 철학
1896년경에 백화점의 선구자였던『죤 워나메커』는 자신이 경영하는 뉴욕의 백화점 게시판에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①주일날은 어떤 일이 있어도 출근하지 말 것,
②수입담배를 피우거나 유흥업소나 댄스 홀에 가야할 때는 이유 서를 제출할 것,
③교회에 가서 연간 5불 이상의 헌금을 바칠 것,
④매주 성경 공부 반에 가서 공부를 할 것... 이라고 썼다는 것입니다.
그가 세계적인 갑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그릇이 되었기 때문 이였습니다.

제목:천 원 짜 리 인 간
인간은 물질로 만들어졌다. 인체를 화학 성분으로 분해하면

2.25Kg의 칼슘, 500g의 인산, 252g의 칼륨, 168g의 나트륨, 28g의 마그네슘, 그리고 28g의 철과 구리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 밖의 체중의 65%가 산소, 18%가 탄소, 10%가 수소, 3%가 질소로 되어 있다. 해부학자들은 이 물질들을 현 시가로 환산한다면 1,000원 안팎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인간의 가치가 무엇인가 인간의 존엄성의 의미가 무엇인가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완전히 조화된 아름다운 품성, 곧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이다-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비로소 가치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 속에 없는 사람의 가치가 무엇인가

제목:톨스토이의 인생론(히9:27)
러시아가 낳은 세계적인 문호 톨스토이의 인생을 이야기하는 우화에 대해서는 아마 여러분들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의 우화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들에 나갔다가 사자에게 쫓겨서 도망치게 됩니다 도망치다가 절벽 끝에까지 몰리게되어 실수로 낭떠러지로 떨어집니다 떨어지는 순간 그래도 정신을 차리고 절벽에 널려있는 덩굴을 붙잡게 됩니다 이래서 구사일생으로 추락사는 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위를 쳐다보니 사자는 지금도 으르릉대고 있습니다 아래로 내려다보니 밑에는 무서운 뱀들이 우글거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덩굴을 잡은 손에서는 점점 더 힘이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달콤한 냄새가 나기에 쳐다보았더니 마침 절벽에 꿀벌이 집을 지어놓고 있어서 꿀이 졸졸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 꿀을 한 손으로 찍어서 입에 대고 보니 꿀맛이 괜찮았습니다 또 이상하게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나서 쳐다보았더니 덩굴 위에서 검은 쥐와 흰쥐가 들어가며 나가며 하면서 덩굴을 갉아먹고 있습니다 톨스토이는 이 이야기를 해놓고 “이것이 인생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은 모두다 죄인임을 알아야하고(롬3:10,23) 그리고 그 죄 값으로 죽음이라는 것이 찾아오게 된 것입니다(히9:27 롬6:23) 인생이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어서 믿는 자는 천국으로 안 믿는 자는 지옥으로 떨어지는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히9:27 눅16:19-31) 이 세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해결 할 수 있는 것입니다(롬8:1-2 요11:28)

제목:인생 70년
어떤 사람이 인생을 70년으로 잡고 다음과 같은 계산을 했다고 합니다.
첫째, 잠들고 있는 시간 약 23년 4개월
둘째, 음식 먹고 있는 시간 약 3년
셋째, 용변 시간 약 1년
넷째, 학교에 다니고 있는 시간 약 2년 2개월
다섯째, 일하는 시간 약 8년 5개월
여섯째, 출퇴근 시간 약 1년 6개월
일곱째, 자유시간 약 31년. 그러나 말하지 못하고 뒤를 가릴 수 없는 유아 시절, 깨
달음이 없는 무의미한 시간들을 빼면 명실공히 자기의 자유시간은 대체로 21년이라고
하였다. 아무튼 인생은 짧다. 그래서 여러 가지 인생관이 나오게 되었다

제목:신앙의.3대오소(요한1서3:13-18)
독일의 [빈델 반트]는 ①지성 ②감정 ③의지의 세 가지 정신적 요소가 인간에게 있다고 말했습니다. 반면에 우리 신앙인격에도 지정의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①지적신앙16-「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여기「그」라는 삼인칭대명사는 예수그리스도를 가르칩니다. 즉 예수 님이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다는것을.아는것이제일요인인지적인것입니다.(찬226) 예수께서 나를 위하여 죽으신 그 고마운 사랑을 인식하는 지적인 신앙은 참으로 귀한 것입니다. 제 아무리 성경을 잘 알고 교회봉사를 잘하며 열심히 특심 이라도 예수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면 그는 예수 님을 믿는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이와 같이 지적요소가 결여된 신앙은 참 신앙이 아닌 것입니다.
②감정적 신앙16-「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이로서 란 말은 구절과 관련되는 말씀입니다. 즉 예수 님이 우리를 위하여 죽었음을 알므로 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느꼈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제2 요소인 감정적인 요소인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너무나도 메마르면 에스겔 골짜기의 해골 떼처럼 되는 것입니다. 이는 십자가의 사랑이 결여된 신앙인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예수님의 십자가 하면 가슴이 뛰고 ,피가 뛰고, 심장이 뛰는 감정을 가져야되며 눈에서는 눈물이 코에서는 콧물이 쏟아지는 회개와 아울러 그 사랑에 뛰어드는 열정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③의지적 신앙16-「우리도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사도 요한 은 그리스도의 희생을 인식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느낀 후에 그는 우리도 예수 님을 본받아 형제들을 위하여 희생함이 마땅하다고 외쳤습니다. 이것은 제3 요소인 의지적인 요소인 것입니다. 신앙에는 인식판단하고 알고 믿은 지적요소와 느끼고 믿는 감정적 요소도 있는 믿고 실천하는 의지적 요소도 있습니다. 머리로 믿고 가슴으로 믿고 다리로 믿는 신앙인격이 서로 안배가 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중 하나가 결여된 신앙은 기형적 신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교회 성도들은 신앙의 삼대 요소를 잘 갖춘 참 신한 신앙 인격자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제목:하나님은 과연 존재 하는가
어떤 분은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고 묻습니다. 그들은 눈으로 보는 모든 것을 다 볼 수 있는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바람, 공기, 마음 등). 하나님은 영(신)이심으로 우리 눈으로 볼 수 없는 분입니다.

1.모든 피조물이 증거 합니다.
많은 천문학자들이 천체의 신비함과 기묘하게 조직된 것과 운행되는 것을 보고 우주 만물은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라 창조주의 창조로 되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2.인간의 양심이 증거 합니다.
어느 누구든지 위급할 때에는 하나님부터 찾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교육이나 권유를 받은 일이 없는데도 하나님을 찾는 것은 양심의 고백이요, 인간 본심의 부르짖음입니다.

3.예수께서 증거 하셨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예수는 천하에 없는 사기꾼이나 거짓말 장이나 정신병자중 한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는 사기꾼도 거짓 말 장 이도 정신병자도 아님을 역사와 온 인류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성자 예수의 전 생애가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그분은 역사를 주관하시고 섭리하십니다. 그 하나님을 믿고 영접할 때 혼돈 속에 방황하던 우리의 삶에 질서가 잡히고 도무지 의미도 없는 공허한 삶에 사랑과 희락과 화평의 열매가 맺히고, 죄와 고독과 고통의 연속에서 참 자유와 기쁨과 감격의 삶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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