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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자 세사람 (눅 12: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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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갓 졸업한 딱따구리 한마리가 있었습니다. 딱따구리는 나 무에 착 달라 붙어서 그동안 학교에서 배운대로 나무를 쪼기 시작 하 였습니다. 목에다 힘을 주고 겨냥을 잘해서 한번 탁 쪼았습니다. 신기 하게도 나무가 조금 떨어져 나갔습니다. 두번째로 힘을 더 주고 쪼아 댔습니다. 나무조각이 조금 더 많이 튀어 나왔습니다.

더욱 목에다 힘을 주고 세번째로 쪼아 대는데 마침 하늘에서 날벼락 이 떨어지며 그 나무를 때렸습니다. 깜짝 놀라서 나무에서 떨어진 딱 따구리는 중간토막이 부러져 쓰려진 나무를 보고 하는 말이 "하참 내 가 힘을 내어 세번째 콱 찍었더니 과연 ! 하고 자기 실력에 놀라더라 는 것입니다.

이 신출나기 딱따구리 학교 졸업생께서는 그 나무의 중간이 부러져 쓰러진 것이 자기가 세번 찍어서 넘어간 것으로 알았던 것입니다. 참 으로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세상에는 딱따구리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 손길의 처리 를 받고서도 제가 잘하여 된줄로 압니다. 제가 수고하고 제가 힘이 있 고 제가 지혜로운 줄로 오해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제공로 로 돌립니다.

우리 인생은 내가 알든지 모르든지 하나님의 섭리 아래 살아 갑니 다. 일거수 일투족이 하나님의 살피심 아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낯을 피할수도 없고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거역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고 섬긴다고 하는 신자들까지 하나님이 요구하시 는 올바른 신앙을 가지지 아니 합니다. 예수 신앙을 자기 이익의 재료 로 이용합니다. 참으로 슬픈 현실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성경말 씀 속에서도 이런 몰염치한 군상들이 있음을 봅니다.

누가복음은 어떤 복음서보다도 부자의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12 장에는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가 있습니다. 15장에는 탕자의 아버지로 역시 돈많은 부자 이야기입니다. 16장에는 음부 즉 지옥으로 내려간 부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18장에는 주님을 채아 왔던 부자 관원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19장에서는 부자 삭개오의 이야기를 읽습니다. 20 장은 큰 포도원을 농부들에게 세로주고 타국으로 간 부자의 이야기입 니다. 누가복음은 부자 이야기의 책입니다.

주님은 비유가 아니고서는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비유의 말씀중 에는 부자의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왜 부자들이 비유의 재료로 많 이 쓰였을까요. 저는 비유중에 나오는 부자들 중에서도 다섯사람의 부자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오늘은 세사람의 부자에 대하여 말씀 드리고 다음 시간에 나머지 두 부자에 대하여 말씀 드리겠습니다. 부자 되기를 원하는 많은 사람들 이여 오늘 누가복음에 나오는 세사람의 부자를 통하여 주님이 비유로 말씀하신 깊으신 뜻을 깨닫고 은혜 받으시기를 원합니다.

 첫째는 누가복음 12장 16절에서 21절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의 비 유입니다. 이 부자는 여늬 부자답지 않게 매우 성실 했습니다. 꿈도 있었습니다. 그 꿈의 실현을 위한 추진력도 있었습니다. 그는 열심히 일했습니다. 또 절약도 했습니다. 그리고 운도 따라 주었습니다. 그 해에 풍년이 들었습니다.넉넉한 수확을 거두어 들였습니다. 정말 행 운을 잡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풍년의 기쁨에만 사로잡힌 기분 파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매우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사람이었습니다.

일만 잘할뿐 아니라 관리능력도 뛰어 났습니다. 그는 추운 겨울동안 또는 다음해에 올지도 모를 흉년에 대비해서 비축경제도 쓸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자기의 창고를 새로 지었습니다. 물론 비축식량을 위하여 새창고를 짓는 비용까지도 손익을 계산해 보았을 것입니다. 이제는 그 의 인생의 꿈이 모두 성취 되었습니다. 매우 만족해 했습니다. 저간 의 뒤를 돌아보면 그동안 허리띠 졸라맨 보람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그는 발을 쭉 뻗었습니다. 여태까지는 돈을 모으는게 계획이었 지만 다음에는 어떻게 자기의 인생을 즐기느냐 하는 것이 문제였습니 다. 그는 좀 더 편히 쉬기 위하여 이태리제 침대를 들여 놓았습니다.

비디오 오디오 씨스템도 갖추었습니다. 취미생활을 위하여 서예도 해 보고 골프채도 몇벌 마련 했습니다.

얼마나 멋있는 삶이 전개될 것이겠습니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 거리지 않습니까. 사실 우리 모두는 이렇게 해보고 싶은 것이 꿈이요 소망일 것입니다.

바지랑대며 살던 생활을 정리했습니다. 이제는 즐길 때가 된것입니 다. 내일의 화려한 꿈을 수놓으며 그날밤 그는 모처럼 발을 쭉 뻗고 새로 산 부드러운 침대 속으로 들어가서 편안한 잠이 들었습니다. 그 러나 그에게는 그 다음날의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에게는 모든 것이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영혼의 구주가 없었습니 다. 하나님이 그날밤에 그의 영혼을 불러가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 님이 부르시면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이 아무리 아까웁고 미련이 남아도 그대로 고스란히 두고 떠나야만 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부요해야 할것은 재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12장 21절은 이렇게 결론을 짓고 있습니 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둘째로는 누가복음 16장 19절에서 31절에 나오는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입니다. 이 부자는 세상에 사는 동안 참으로 호의호식 했습니다.

자색옷을 입고 고운 베옷을 입었다고 했습니다. 자색옷은 권위의 상징 입니다. 그는 지방의 토후로서 재물과 권세를 아울러 가지고 있었습니 다. 한마디로 그 지방의 유지였습니다.

고운 베옷은 인간의 선한 행실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이 사람은 품 행에 인정을 받을만한 지체 높은 선비였습니다. 항상 의관정제했고 예 의를 잊지 않았습니다. 제사때면 제사법대로 혼례식때면 혼례법대로 말에나 행실에나 근엄하고 추상 같았습니다.

이 사람은 날마다 호화로이 연회를 했습니다. 그 재산의 규모를 알 만 합니다. 풍류를 아는 한량이었습니다. 아마 천재지변의 재해를 만 나면 기천만원 성금도 내고 무슨 큰 행사에는 많은 기부금을 내놓아 신문의 사회면에는 그의 이름이 떠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야말로 저명인사이고 풍류를 아는 멋쟁이 이고 자선 사업가였습니 다. 우리 눈으로 보기에도 도덕적으로나 그 덕망으로나 행실에 흠이없 는 훌륭한 사람입니다. 그에게는 다섯형제가 있어 사회 일각에서 모두 칭찬을 받으며 내노라 하고 살았던것 같습니다.

이 부자의 문간에는 아이로니칼하게도 거지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 런데 그 훌륭한 유지양반이 자기집 문깐에서 기생하는 거지에 대하여 서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거지는 헌데를 앓았습니다. 개들과 다투면서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얻기위해 투쟁을 벌렸습니다. 부 자는 이런 꾀죄죄한 거지의 인생에 대하여는 안중에 없었습니다. 이름 모를 산해진미를 가득 차려놓고 파티를 하면서도 음식 찌꺼기를 놓고 개새끼와 더불어 처절한 생존경쟁을 벌이는 거지가 웃읍고 역겨울 뿐 입니다.그에게는 눈꼽만한 자선이라도 베풀 심사를 가지지 못했습니 다.

다만 눈앞에 얼른거리는 추한 모습을 용납하는 것으로 부자의 인정 을 다했습니다. 그의 인권에는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가진자는 오직 가진자들만의 세계가 있을뿐입니다.

거지가 죽었습니다. 아무도 기억해 주는이 없었습니다. 부자도 죽었 습니다. 신문에 부고가 나고 방송이 요란 번쩍 하였을 것입니다.

부자는 죽어서 음부 곧 지옥으로 갔습니다. 뜨거운 불꽃 중에서 고 민하다가 낙원을 처다 보았습니다. 거기에 거지 나사로가 있었습니다.

거지가낙원에 있다는 것이 때로는 우리에게 애매한듯해 보입니다.

그러나 거지가 낙원에 간것은 믿음의 문제가 아닙니다. 부자가 무시한 인격, 그 인권을 하나님이 채아주신 것입니다.

돈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돈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지 사람 이 돈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돈은 더불어 인간답게 사는데 기 여되어야 합니다. 어우러져 사는 삶을 무시하고 오직 돈만 벌기 위하 여 인권을 유린하고 자신의 안일과 명성만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이 마 땅히 생각해 보아야할 문제입니다.

 셋째는 누가복음 18장 18절에서 23절에 나오는 부자 관원의 이야기 입니다.이 관원은 주님을 채아 왔습니다. 영생을 사모하는 사람이었습 니다. 주님께 영생얻는 방법을 구했습니다. 구도자의 열정을 봅니다.

그 열정에 감복한 주님은 먼저 계명들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이관원은 겉으로 보기 보다는 훨씬 진지하고 인간 다웠습니다. 그는 재물이 많았습니다. 높은 벼슬도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가려 울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부자는 결코 어리석지 않았습니 다. 그는 죽음 후에 오는 인간사까지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영생을 갈망했습니다. 참으로 지혜로웠습니다. 인간의 궁극적 인 세계인 영생의 나라에 가기 위하여 하나님의 계명까지도 다 지켰습 니다. 율법의 계명들을 지키기 위하여는 모든 인간적인 소욕에서 벗어 나야 합니다. 부자 생활로서는 지켜나가기 어려운 것들이 많았을 것입 니다. 그러나 그것까지도 극복 했습니다.

그가 주님을 채아와서 영생의 문제를 논한 것은 그의 개인적인 생활 에서 이렇게 자신만만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 하십니다. 오히려 네게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하십니다. 어쩌면 그 것이 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한 문제인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바로 재 물입니다. 재물은 진실하게 그리스도를 따르려는 사람들에게는 유익보 다는 방해되는 요소가 더 많을지도 모릅니다.

주님은 그 재물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셨습니다. 이것은 그 부자에게 큰 시험이 되었습니다. 결국 이 부자 는 영생의 소망은 있었지만 재물을 포기할 용기와 결단이 앞서지는 못 했습니다.

영생은 영원하고 무궁한 생애의 희락과 기쁨과 만족입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내일의 문제보다는 눈앞에 보이는 부귀공명을 떨쳐 버리기는 어러운 것입니다.

주님은 재물을 험오하신 것이 아닙니다. 재물을 포기하는 믿음을 보 시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 부자는 주님과 함께 있는 것이 그 무엇보다 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가치관의 결여입니다. 오늘날 이렇게 잘못된 가치관으로 스스로를 망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상에서 말씀드린 세 부자는 부정적인 부자상입니다. 부를 소유하 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재물과 함께 문제도 안고 있었 습니다. 부는 공유하기 위하여 존재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 재 산의 축적만을 위하여 바등거리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하나님은 부자 이십니다. 당신의 자녀들이 부유하게 되시기를 원하 십니다. 하늘나라는 부자나라 입니다.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이 주인이시니 그 나라가 얼마나 부요하고 풍성 하겠습니까. 우리가 목표하고 믿는 하나님 나라는 이렇게 풍요한 나라인 것입니다.

거기에는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영원한 평안이 있습니다. 영원한 양식이 있습니다. 영원한 즐거움이 있습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부요가 넘치는 곳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진정하고 영원한 부를 주시기 위하여 그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 주셨습니다. 주님은 잘 버릴줄 아는 것이 잘 얻 는 것임을 이 부자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보여 주십니다.

주님은 가지기만 하는 것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가를 보여 주십니다.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을 외면하는 것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를 보여 주 십니다. 잘 버릴줄 모르는 것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를 보여 주십니 다.

주님은 보좌의 찬란함을 버리고 말구유에 오셨습니다. 벌거벗은 몸 으로 십자가에 매달리셨습니다. 주님은 썩어지고 없어질 것들을 버리 심으로서 영원하고 값진 것들을 얻으셨습니다. 주님은 부활 후에 선언 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진정한 얻음의 비결이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부하기를 원할때 주님의 길을 따르는 것은 헛된 일이 아닙니 다. 진정으로 영원한 부를 소유하기 원하시면 주님의 길을 따르는 지 혜를 가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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