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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증거하자 (요 20:1-18)

첨부 1


우리의 신앙 가운데 십자가와 부활을 뺀다면 남는 것이 없다 할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 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인류의 최대 문제인 죄와 그 필연적 결과인 죽음의 세력을 주님이 십 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완전히 해결 짓고, 우리는 그것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생각만 해도 감격스럽고 엄청난 대 우주적 사 건이다.

이번 부활주일은 강성교회 제2의 설립기인 3년(2000, 2001, 2002)의 마지막 해의 부활절이다.

역사는 27년이 흘렀어도 설립과 동시에 교회 지역이 자연녹지 지역으로 개발이 제한되어 20 년간 정지상태에 있었다. 이제 새롭게 1999년 2월 6일 입당하고 2000년부터 지역 아파트 입 주가 본격화되면서 오늘 교회의 모습을 가지게 되었고, 2003년부터는 조직교회로서 모습을 유지하면서 교회 모든 기관이 정상화될 것을 확실하게 볼 수 있다. 이같이 뜻 깊은 부활절 에 예수님 부활에 대한 기본 문제를 생각하므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함께 풍성히 나 누고, 성례 관계로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으므로 요한복음 20:1-18 말씀은 수요 예배 때 상 고하고자 한다.

오늘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우리의 기본적 신앙을 점검해 보자.

① 예수님의 부활은 인류 역사상 첫 사건이다. 그러므로 제자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쉽게 믿 지 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현장에서 즉시 승천하셨어도 구약 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구약에 예언된 사건이므로(시 16:10) 믿을 수 있는 사건이다. 그러나 이를 확실히 보이시고 증거하시기 위하여 40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고 하나님의 나라 일을 말씀하셨다(행 1:3). 예수님께서 40일간 구체성(具體性)과 개성(個性)을 갖고 부활의 사실성 을 나타내시므로 자신이 십자가에 죽었던 예수이심을 감각적으로 분간할 수 있도록 하셨고, 당신의 부활체를 만지게 하여 이를 믿게 하셨다(요 20:27). 그러나 그것은 육체가 아니라 영 체(靈體)였으므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내지 않으시면 제자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 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체는 유령(幽靈)과 같은 구체성이 없는 것이 아니라, 신체(身體)로서 작용은 하지만 육체처럼 혈기(血氣)있는 몸이 아니라 영체이시다. 이는 부활 후 우리의 몸의 형체를 알려주시려고 생선 한 토막을 잡수신 것도(눅 24:41-43) 육체적 시장기를 느끼시고 그 식욕(食慾)을 충족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제자들로 하여금 부활을 분명히 믿게 하시려는 사랑의 행위였다. 예수님의 부활체는 공복(空腹)을 채울 필요가 없으신 거룩한 영체이시기 때문이다.

② 예수님의 부활은 죄 없는 곳에는 사망이 없음과 죄와 사망의 세력의 참패를 의 미한다. 보편적으로 세상 통념은 살아있는 자는 반드시 죽고 죽은 자는 다시 살지 못한 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사망은 죄 값이요(약 1:14) 죄가 없으면 죽지 않는다고 가르치고 있다. 여기에 비추어보면 산 자가 반드시 죽는다는 것은 모든 인간은 죄 아 래 있다는 전제가 된다(롬 3:10). 그렇다면 무죄하신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 셨지만 계속 무덤에 갇혀계실 수 없는 분이시다(행 2:24). 그러므로 예수님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않도록 하나님이 살리셨다(행 2:31-32). 동시에 예수 그리 스도의 사죄의 은총을 입은 자들은 부활이 보장된 것이다(요 11:25). 그 후로는 인류를 지배 하던 사망 앞에 성도들은 굴복치 않고 새 생명의 승리로 장식하였다. 즉 예수의 부활을 믿 는 자에게는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되었다(롬 8:2).

③ 예수님의 부활은 사람들의 착오된 조치를 시정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당시 종교 지도자 들과 군중들이 시기하여 하나님을 모독한 죄인으로 고소하여 종교 재판에서 사형을 언 도하여 빌라도에게 넘겨주었다(마 28:18, 막 15:10). 빌라도는 예수의 무죄를 알면서도(요 19:4, 6) 자기 지위 보전을 위하여(요 19:12)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주었다(요 19:15-16). 예수께서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그들의 조치는 올바른 것으로 인정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부활하시므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메시아이시며 그들의 불법 적 처형은 잘못임을 드러내 주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불의가 판치고 정의가 핍박을 당하는 세상을 반드시 심판하시어 질서를 바르게 회복시켜 주신다는 사실을 예수님의 부활 을 통하여 공고하신 것이다.

④ 예수님의 부활은 속죄의 증거가 된다(롬 4:25). 우리는 본래 무죄하신 분의 속죄물이 없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천국 시민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받으실 수 없는 죄인들이요 하나 님 앞에 본질상 진노의 자녀들이다(엡 2:3). 그리하여 예수님은 우리 죄를 대속하여 죽으시 고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다(롬 4:25).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나의 죄를 대신 하여 예수님의 속죄의 피를 받으셨다는 싸인(sign)으로 우리에게 부활신앙을 허락하신 것이 다. 내가 주의 대속의 죽음을 믿음으로 죄가 용서되고 부활을 믿음으로 칭의가 선언됨을 확 인하게 된다.

오늘 본문(요 20:1-18) 말씀의 중심사상을 살펴보자.

①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 사건이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부활의 역사성을 부인하며 제자들의 마음속에서 일어난 심리적 환상이라고 주장하나, 예수님의 무덤이 빈 무덤이 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② 예수께서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로마시대 팔레스틴의 예루살렘에서 한 젊은 사형수가 자 기 죄 값으로 십자가형에 처형된 것 이외 별다른 의미가 없이 역사에 묻혀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셨고, 그 무죄하 심은 우리의 죄를 속하신 사실을 증명하셨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법칙은 무죄하신 예수님의 속죄의 보혈이 없이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받으실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님께 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예수님을 속죄물로 받으셨다는 표시이다.

③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음으로 받아들인 자들은 의의 승리에 동참하는 자들이며, 그 놀라운 부활 사건의 증인이 되는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그 일에 앞장 서 실천하게 된 다. 이 놀라운 부활 사건을 확실하게, 가장 가까이서 가장 먼저 확인하고도 부활의 주님을 영접하지 못한 사람들이 어느 시대나 있는 것을 볼 때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 을 증거하고 있다.

이상과 같은 깊은 뜻이 있는 귀한 말씀을 우리 모두 부활의 영광에 참예하게 됨을 감사하면 서 상고하여 보자.

 1. 믿음 없이 인정으로 빈 무덤을 찾아간 제자들(1-10)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던 골고다 근처에 있는 동산에는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소유하 고 있는 새 무덤이 있었고, 그 무덤에 유대인의 장례법대로 니고데모가 가져온 향유를 가지 고 안식일이 시작되기 전 예수의 장례절차를 마쳤다. 참으로 귀한 분들의 헌신적인 희생으 로 되어진 일이었다. 이제 예수님의 몸은 시신(屍身)이 되어 무덤 속에 있었고, 그분의 제자 들은 예수께서 메시아로서 우리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실 것 을 수차 예고하셨으나(눅 9:22-27, 9:44-45, 18:31-34), 그 말씀을 믿고 기억하지 못하였기에 예수님의 죽으신 사실만 보았지 부활을 믿거나 생각지 못하고 절망에 빠져있었다.

그런데 인류역사상 가장 영광스런 아침이 다가왔으니 그 날이 안식 후 첫날이었다. 무덤에 뉘어계시던 우리 주님은 살아나셨다. 빌라도의 허락을 받아 큰 돌로 무덤을 덮고 인봉한 후 로마군들이 굳게 지켰으나(마 27:62-66) 그분은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다. 그러나 이 놀라운 사실을 모르는 막달라 마리아는 이 영광스러운 이른 아침 무덤을 향하여 갔다. 일곱 귀신 들렸던 자신을 치료해 주신(막 16:9) 은혜와 사랑에 감격하여 무덤을 향하여 가면서 큰 걱정이 있었으니 무덤을 덮어놓은 큰 돌을 여자의 힘으로 부족하니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에서 돌을 굴려주리요(막 16:3) 염려하였다.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간 것을 보고(1).

이미 돌은 열려졌고 무덤은 비어있었다. 이렇게 빈 무덤을 확인하였으면 평소 주님의 말씀 을 기억하고 부활하신 사실을 믿고 환희의 찬송을 부르지 못하고 근심과 걱정에 싸였다.

시몬 베드로와 예수의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이 주를 무덤에 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니(2).

이때 이 소식을 들은 두 제자들도 부활의 기쁜 소식을 알지 못하여 침울한 소식으 로 받고 무덤으로 갔다.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갈새 둘이 같이 달음직하더니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아나서 먼저 무덤에 이르러 구푸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으나 들어 가지는 아니하였더니 시몬 베드로도 따라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또 머리 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개켜있더라(3-7).

베드로와 요한은 막달라 마리아와 함께 예수께서 부활하신 빈 무덤을 확인하였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이들이 빈 무덤을 확인하고도 주님의 부활을 확인하지 못하였다.

그때에야 무덤에 먼저 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8).

시신이 도적맞았다는 말(2)을 믿었다는 것이다. 그 후 요한복음 제자인 요한은 자신들의 경 험을 요한복음을 기록하면서 털어놓기를 저희는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9) 하였다. 그들이 믿을 수 있는 조건이 그 토록 많았으나 다음과 같은 요인 때문에 믿지 못하였다.

① 구약 성경에 메시아는 고난을 받고 다시 살 것을 예언하였다(사 53:5, 시 16:10). 그 러나 그들은 메시아 출현은 믿었으나(요 1:40, 45) 부활은 너무도 거리감이 있어 믿지 못하 였다.

② 주님께서 부활을 수차 예고하셨다(마 16:21, 17:23, 20:19). 주님의 말씀을 조금이라도 의 식하고 들었으면 빈 무덤을 보는 순간 말씀이 기억나 믿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말씀 을 선택해서 받아들였기에 못 믿었다.

③ 빈 무덤의 수의와 수건이 단정하게 정리된 것을 보면 주님의 시신이 없어질 때 서두름이 나 황급함이나 공포 같은 소란은 없었을 것을 직감할 수 있는 분위기이다. 그러나 이들에게 부활에 대한 구약의 예언이나 예수님의 말씀은 관심 밖의 것이어서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말씀은 언제나 그대로 듣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이에 두 제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10).

최대의 기쁨과 영광의 목전에서 서운함, 허탈감을 가지고 의미 없이 막연하게 자기들의 숙 소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고 말았다. 우리는 여기서 세가지 사실을 살피고 은혜를 받자.

① 예수님의 무덤은 빈 무덤이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예수의 부활에 대한 최초의 가르 침은 부활의 진행과정이나 근원적인 힘보다는 빈 무덤을 보여주므로 시작하셨다. 예수님의 부활은 단순한 소생이나 회생(回生)이 아니라 육체의 영화이다. 무덤의 문이 열린 것도 예수 께서 나오시기 위해 열고 나오신 것이 아니라 천사가 제자들에게 예수께서 부활하심으로 무 덤이 비었다는 사실을 가르치기 위해 열어놓으신 것이다. 예수님의 육체가 단순한 소생이나 희생이었다면 돌문을 열어야 나오시지만, 영화롭게 되신 부활체는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 지 않는 자유로운 몸이 되신 것이다. 사망의 지배를 벗어난 부활체로 우리 성도들의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고전 15:20). 그 후 예수님의 무덤은 2000년간 계속 빈 무덤이다. 다른 종 교에서는 창시자의 무덤을 크고 화려하게 꾸미고 성역화하여 그 앞에서 경배하지만 부활의 종교에서는 예수님의 무덤은 없다.

② 막달라 마리아의 대담성이다. 예수님께서 능력 있게 천국 복음을 선포하시고 각종 기적 을 행하시어 백성들이 임금 삼으려 할 때, 주님께서 자신이 받을 고난을 예고하시자 그 어떤 경우에도 주님과 함께 죽겠다고 호언장담하던 제자들은(막 14:29-31) 다 도망갔으며 (막 14:50),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경건한 두 사람(요셉과 니고데모)이 예수님의 장례절차를 정성스럽게 마쳤다.

이때 여인들은 빈손으로 장례식에 참석하였다(눅 23:56). 그들은 주님께서 갑자기 목요일 밤 에 기도하시던 중 악한 자들에게 끌려가 철야 심문을 받고, 아침 사형 확정 판결이 나오자 금요일 오전 9시에 십자가에 처형당하시고 오후 3시 운명하심을 지켜보고 큰 충격을 받아 십자가 앞에서 통곡하였다. 주님의 장례는 해가 지면 안식일이므로 해질 때까지 마쳐야 하 므로 준비된 두 분에 의해서 무사히 마쳤다. 이 여인들은 유대인의 풍습에 따라 시신에 향 유 한 근 발라드리지 못한 것이 한이 되어 향품을 준비하였다가(막 16:1) 안식일 보행거리 제한이 풀리자 군인들이 삼엄하게 지키는 새벽길을 무덤을 향해 달려갔다. 부활신앙은 없었 지만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은 우리에게 본이 된다.

③ 예수님은 인간의 손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으로 무덤에서 나오신 것이다. 예수님의 시신 을 제자들이 도적질하였다고 반대자들은 꾸며 말하지만(마 28:11-15), 무덤 속은 도적질 한 흔적이 없다. 어찌 세마포가 벗겨져 있겠는가 유대인의 장례법은 시신을 세마포로 싸면 서 향품을 바르므로 오래 되면 기브스(gips)와 같이 된다. 예수님 장례식 때는 니고데모가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근쯤(33kg) 가져와 그것과 함께 세마포로 쌌다(요 19:39-40). 어느 도적이 그것을 벗기고 정돈해 놓고 갔겠는가 제자들은 부활하신다는 말씀을 기억하지 못하 고 있었으나 그들은 기억하고 사흘까지 굳게 지키게 해달라고 빌라도에게 요청하여 군 인들이 지키고 있었다(마 27:63-64). 지키던 군병들은 돈을 받고 제사장들이 시키는 대로 제자들이 도적질해갔다 하였으나(마 27:11-15) 그것을 보았다면 잡았을 것이요, 보지 못 했다면 거짓말이다. 이 모든 상황으로 볼 때 예수께서 무덤을 나오신 것은 인간의 손이 아 닌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오신 것이다(롬 8:11).

(1-10절 말씀의 교훈) ① 예수님의 부활은 어느 면으로 보나 너무도 확실한 역사적 사건이다. 예수님의 사랑하는 제자들이 그토록 믿을 수 있는 상황 속에서도 믿지 못한 것은, 예수님의 말씀 중 자기 수준 에 맞는 것만 받아들이고 자기 생각 밖의 말씀은 수차 듣고도 듣지 않은 것처럼 여겼기 때 문이다. 오늘 우리에게는 이런 일이 없는가 살펴보자.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도 거부한다면 그 사람에게서 실질적인 하나님은 자기 자신이다.

② 우리도 마리아처럼 주님과 영적 교제를 위해 좀 일찍 일어나 말씀을 상고하고 교회에 나 가 기도하면서 주님의 뜻을 찾아 따라가자. 반드시 참다운 역사가 그때그때마다 현장에서 일어날 것이다.

 2. 부활하신 주님을 처음 만나는 영광을 차지한 마리아를 바라보자(11-16)

베드로와 요한은 역사 이래 가장 영광스런 사건의 현장까지 갔으나 아무런 의미를 찾지 못 하고, 그 놀라운 빈 무덤을 보고도 실망과 허탈감 속에 힘없이 떠났으나 마리아는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그녀의 마음은, 예수께서 누우셨던 그곳은 그녀로 하여금 떠나지 못하게 하였다.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푸려 무덤 속을 들여다보니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11-12).

마리아의 눈앞에 너무도 놀라운 일이 있었다.

천사들이 가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13상).

빈 무덤을 발견하였다면 예수께서 약속하신대로 부활하셨으니 울기보다는 기뻐할 일이 아니 겠느냐 하는 질책성 질문이다.

사람이 내 주를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13하).

주님께 내 주란 표현을 쓰면서 부활을 믿지 못하고 시신이 없어진 것으로만 생각하고 자기의 슬픔을 토로하였다.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의 서신 것을 보나 예수신 줄 알지 못하더라(14).

천사가 일어나 마리아 뒤로 시선을 돌리니 그때 천사의 시선을 따라 뒤를 돌이켜 예수의 서 신 것을 보나 예수이심을 알지 못하였다. 이제부터 부활하신 예수님은 믿음이 없이는 볼 수 없다(요 21:4, 7, 눅 24:15-16). 이제는 육신의 몸이 아니요 신령한 몸이시며, 흙에 속한 자가 아니라 하늘에 속한 자이시다(고전 15:44, 48-49). 그렇다고 살과 뼈가 없는 유령이 아니라 살과 뼈를 가지신 신령한 분이시다(눅 24:39, 요 20:27).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 인 줄로 알고 가로되 주여 당신이 옮겨갔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15).

부활하신 예수님의 첫 말씀은, 자신의 시신이 없어 슬퍼하는 마리아의 믿음 없음을 책망하 시기보다 동정과 위로를 하신다. 문제를 해결해 주시겠다는 말씀이다. 마리아의 태도는 우리 에게 두가지를 본받게 한다.

첫째는 주님을 시체라 하지 않고 살아있는 것처럼 내 주라 하였고(13), 본절에서도 우리말 성경에는 빠졌지만 당신이 그를 옮겨갔거든이란 말을 사용하고 있다. 둘째는 여 자의 몸으로 주님(시체)이 어디에 있는지 말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하였다. 어려운 문 제를 자기가 감당하겠다고 한다. 이런 성도가 교회에 필요하다.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16상).

자기 양을 부르는 선한 목자의 음성이다. 이 때의 음성은 평소의 주님의 음성이었다.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여 하니(이는 선생님이라)(16하).

마리아의 영적인 눈과 귀는 모두 열리게 된 것이다. 이 여인은 인류 역사상 부활하신 예수 님을 최초로 만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누가 이 영광을 누리며 차지할 수 있는가 주님 을 지속적으로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오늘도 원리는 동일하다. 예배에 참석하는 것, 기도하는 것, 성경 읽기 등 어떤 계기가 마련되지 않아도 중단 없이 계속하면 주님의 임재 를 확인할 수 있고 의미 없이 집으로 돌아가면 의미 없이 물러설 수 있다.

(11-16절 말씀의 교훈) 마리아처럼 처음에는 신앙이 온전하지 못하여 기대에 못 미쳐도, 지속적일 때는 반드시 하 나님의 영광에 참예하게 되고 주님의 임재와 역사에 함께 할 수 있다. 그러나 말씀의 기억 이 없고 말씀을 깨닫지 못하면 빈 무덤을 보고 슬퍼할 수밖에 없다. 신앙의 바른 자세를 유 지하면서 내 앞에 놓인 십자가를 질 수 있는 용기를 가져보자. 능력주실 때 할 수 있다.

 3. 부활을 확신하고 믿은 바를 증거하는 성도들이 되자(17-18)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기쁨과 감격이 충만한 마리아는 거의 반사적으로 경배한 후 예수님 을 만지려 하였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 라간다 하라 하신대(17).

여기에 만지지 말라는 것은 매달리지 말라는 뜻이요, 이제부터 주님과의 교제는 보 고 만지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교제(말씀의 교제)가 이루어짐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요, 그 후 특수한 경우 도마에게는 직접 만지도록 허락하셨지만(20:24-26) 말씀을 기록케 하시고 말씀을 통해서 구원 얻게 하셨다(20:31-31). 이제 주님께서는 마리아가 가지고 있는 인간적 인 생각과 정을 금하셨고, 네가 해야 할 급한 일은 속히 가서 내 형제들에게 이 소식 을 전하는 것이라 일러주셨다.

특별히 부활하신 주님께서 주님을 버리고 도망간 제자들에게, 이곳까지 와서 믿음 없어 그 냥 집으로 희망 없이 허탈감속에 돌아간 제자일지라도 그들에게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 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이라 하셨다. 거룩하게 하시는 자(예수님)와 거룩함을 입 은 자들(성도들)이 하나에서 난 자라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히 2:11)라 고 하셨다.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를 믿어 죄 사함을 받고 부활의 사실을 믿음으로 칭의가 선언된 우리 들(롬 4:25),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나를 형제라 부르시 기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으시고 나도 저 구속받은 연약한 자들을 형제라 부르기를 부끄러 워하지 않는다. 우리 서로 서로 형제자매이다. 어색한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못한 증거 일 수 있다. 이제부터 차별은 죄악이다(약 2:1-9).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 씀하셨다 이르니라(18).

주의 부활의 첫 목격자가 첫 증거자가 안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마리아는 첫 증거자가 되었 다. 무덤에 올 때는 힘들고 무거웠던 발걸음이 이제는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발걸음이 되어 속히 가서 이 소식을 전하였다. 그러나 같은 은혜를 받지 못한 제자들은 믿지 못하였으나 (눅 24:11, 막 16:11) 후에는 모두 믿고 같은 부활의 증인이 되었다.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 가! (17-18절 말씀의 교훈) ① 오늘 우리 주님께서 나에게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 하실 뿐 아니라 기뻐하신 다. 얼마나 영광스럽고 복된 일인가 우리도 이웃에게 이 은혜를 함께 나누는 형제 자매가 되자. 서로 존중히 여기자.

② 마리아가 주님의 부활의 사실과 자기에게 하신 말씀을 증거 한 것같이, 오늘 주께서 부 활하신 사실과 내게 베푸신 은혜를 이웃에게 전할 수 있는 성숙한 성도들이 되자. 이는 권 리임과 동시에 명령이요 의무이다(딤전 4:2). 반드시 실천해야 한다.

 결 론

예수님의 십자가에 죽으심과 부활은 우발적 사건이거나 어떤 응급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수 습차원에서 발생한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담시대부터 예정하시고 섭리하신 놀라운 구속사역이다. 예수는 우리의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 4:25)는 말씀같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이 우리의 죄를 구속하시 는 속죄행위라면 그것을 우리는 믿음으로 속죄함을 받는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자는 하 나님께서 우리 죄 대신 주의 속죄의 제물을 받으시므로 칭의의 선언이 이루어졌다는 증 거가 된다. 속죄함과 칭의의 선언을 받은 우리들은 이제부터 십자가의 대속과 승리의 부활 을 널리 증거하는 증인의 사명을 바로 감당하는 성도가 되자.

 <다음주 말씀> 이것을 먹으라 이것을 마시라 내 몸과 피니라 (마 26:17-30)

유월절 양을 잡는 날(14일 목요일) 체포되시기 바로 전에 유월절 잔치를 배설하시고 성찬을 제정하셨다.

 1. 창조주의 능력을 보여주시는 예수님(17-19)

당시 예루살렘에서 제자들이 모일만한 장소는 없었다. 그러나 주님은 창조주의 지각과 능력 으로 모든 것을 아시고 명령하셨다. 이는 나귀를 쓰실 때와 같은 것이다(21:1-12).

예수님의 대속의 행위는 하나님 섭리대로 진행되고 있다. 그 누구도 방해할 수 없다. 나의 구원도 이렇게 이루어진 것이다.

 2. 너희 중 한사람이 나를 팔리라(20-25)

최후의 만찬이다. 주님이 이런 자리를 원하셨고(눅 22:15) 여기서 제자에게 겸손과 사랑과 봉사를 가르쳐 주신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너희 중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21) 하셨다.

이때 모두 동시적으로 유다지요하지 않고 심히 근심하면서 각각 주여 내니이까 하 였다. 유다의 개입이 없어도 주께서는 십자가를 지시지만 범죄에 개입한 자는 범죄의 책임 이 있다. 그에게는 너무도 불행한 일이요 큰 죄이다.

나지 않았으면, 성공하지 못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지 않고, 당신을 밴 태와 당 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도소이다(눅 11:27)라는 칭찬을 듣는 성도들이 되자.

 3. 이것을 먹으라, 마시라 내 몸과 피니라(26-28)

유월절을 지키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킨 것을 기억하고 은혜에 감사하 게 하심같이, 속죄와 칭의를 받은 성도들은 성찬에 참예하므로 주께서 나를 위해 몸을 찢 기시고 보혈을 흘리셨음을 기억하기 위해 성찬을 제정하셨다. 지금까지 짐승의 피는 예수 님의 속죄의 피를 예표한 것이었다.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이 없다(히 9:22). 짐승의 피로는 죄 사함이 없다(히 9:12-13).

무죄하신 예수님의 희생 제물만이 우리의 죄를 정결케 할 수 있다. 성찬은 반드시 참석하여 야 한다.

 4. 죽음 저편의 세계를 소개하신 예수님(29-30)

죽음 저편에는 새 세계와 새 질서가 있다. 이제 주님과 그 세계에서 만찬을 하기까지 이런 만찬은 없다. 그때를 기다리자. 그리고 찬미하면서 십자가 지시려(기도하시려) 감람산으로 가셨다.

나를 향하신 주님의 뜻을 알고 있다면 떡을 먹으며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속죄의 죽으 심에 감사하면서 복음을 주님 오실 때까지 전하는 성도들이 되자.

 결 론

성찬을 제정하시고 그대로 우리를 위해 살을 찢기시고 피를 쏟으시며 실천하셨다. 그 이름 을 힘입어 주의 대속의 죽으심과 부활의 영광을 힘 있게 증거하는 교회와 성도들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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