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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바가지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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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어머니들은 바가지에 금이 가 쓰지 못하게 되면 버리질 않고 주렁주렁 엮어서 고이 보관해두곤 했다. 아버지가 무슨 일로 화가 치밀어 폭발할 기미가 보이면 살짝 빠져나가 금이 간 바가지를 부엌에 늘어놓는다. 세간 살이를 깨러 부엌에 들이닥친 아버지는 이 바가지를 짓밝음으로써 그 강한 파열음으로 울화를 푼다. 금이 간 요강이나 뚝배기도 버리질 않고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보관, 긴요하게 썼던 것이다. 아무리 화가 났다 해도 세간을 무차별로 파괴한다는 법은 심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옛 어머니들은 잘 터득하고 있었던 것 같다.
바가지 긁는 것으로 며느리가 스트레스를 푸는 것도 이 같은 심리의 연장선에서 합리화시킬 수가 있다. 소리만 요란스럽고 경제적 손실을 극소화시킴으로써 화를 푸는 현명한 전통적 스트레스 해소법이 아닐 수 없다. 그만큼 화를 속으로 풀 줄 알았던 것이다.
지식층에서도 박(匏)을 갖고 화를 푸는데, 서민들처럼 물리적으로 풀지 않고 철학적으로 푼다. 몹시 울화에 시달리는 날이면 박 한 덩이 안고 집을 나간다. 그리고 강물가에 가서 그 박을 띄워 보낸다. 울화나 분통을 박에 유감(類感)시켜 망망대해 속에 소멸시켜버리는 형이상학(刑而上學)적인 해소법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한국에 있어 박은 긁어대건, 짓밟아 깨건, 강물에 띄워보내건 울화를 속으로 푸는 스트레스 문화재였다. 우리 선조들이 그토록 지붕에 가라앉을 것만 같이 데굴데굴 많은 박을 기른 이유를 새삼스레 알 것만 같다.
한데 요즈음에는 박도 기르지 않고 아무리 긁어대고 밟아대도 소리가 나질 않는 비닐 바가지로 탈바꿈한 탓인지, 속으로 화를 풀지 못하고 걸핏하면 분화구처럼 겉으로 화를 내뿜는다. 옛날 같으면 바가지 긁는 것으로 해소시켰던 고부불화나 부부불화가 가출이나 별거, 이혼, 죽음 같은 극단으로 흐르고 있는 파멸률이 지난 10년마다 30퍼센트씩 늘어왔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지난 주말에 자기네들끼리의 내분으로 울적해진 일단의 청소년들이 지나가는 버스를 두들겨 부수었던 것도 그렇다. 스트레스를 밖으로 분화(噴火)시키기 않게 하기 위해 보건사회부에서 박 심기 운동이라도 벌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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