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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만일 예수의 부활이 없었다면 (요 2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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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서 가정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지만 만일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과연 기독교가 존재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존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독교의 토대는 부활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기초가 부활이요, 기독교 신앙의 기초가 부활이며, 우리의 소망의 근거도 부활입니다.

부활이 이렇게 중요하기에 사탄은 할 수만 있으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여 부활을 부인하려고 합니다. 부활은 인간의 이성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불가사의한 일입니다. 이해되지 않기에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믿는 자에게는 능력이 됩니다. 부활신앙은 창조신앙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부활을 믿지 못하는 것은 정직한 고백이며 진실된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직까지 그들은 죽은 사람이 살아난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창조가 믿어지면 부활은 자연스럽게 이해됩니다. 하나님의 창조를 무(無)로부터의 창조라고 합니다. 부활이야말로 무로부터의 완전한 새창조이기 때문입니다.

부활은 고난과 연결되어 있으며, 재림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것들은 서로 구분할 수는 있지만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바울이 말하지 않더라도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예수 믿는 자들은 가장 어리석고 불쌍한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불신자들은 이 세상에 살면서라도 즐기면서 살아가는데 성도는 모든 것을 유보하고 희생했습니다. 그 유일한 보상은 하늘 나라에 대한 보상 때문입니다. 그런데 부활이 없다면 얼마나 허망할 것입니까 부활은 기독교와 교회와 성도들에게 있어서 알파와 오메가이며 처음이며 나중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첫째-부활은 죽음에 대한 생명의 승리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최대 적은 죽음입니다. 죽음은 모든 것을 끝장내는 치명적인 무기입니다. 생명은 대단한 위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생명 있는 물고기는 거센 물결을 헤치고 올라갑니다. 바다에서 잡은 생선이라도 소금기가 물고기 몸속에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죽으면 뼛속까지 소금기가 절여지게 됩니다. 어릴 때 정말 맛있게 먹었던 간 고등어가 요즈음은 안동 간 고등어라고 하여 값이 보통이 아닙니다. 한 마리 하면 밥을 몇 그릇씩 먹을 수가 있었습니다. 살아있는 고등어에는 소금기가 들어가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을 때에는 세상에 살아도 죄악이 우리를 침투시키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생명이 떠나는 순간 죄가 우리 속으로 침투되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적대자들은 예수를 죽임으로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적어도 예수님 이전의 모든 사람들에게는 그랬을 것입니다. 아무리 강한 적이라도 죽이기만 하면 그 이상은 안전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경우는 그들의 예상이 빗나가고 말았습니다. 십자가에 못박고 승리의 축배를 들고 있을 즈음 그들에게 들려진 부활의 소식은 황당했을 뿐 아니라 수습을 불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부활은 하나님의 역전의 명승부전 이었던 것입니다.

둘째-부활은 미움에 대한 사랑의 승리이기 때문입니다. 오해가 쌓이면 분노하게되고 분노가 쌓이면 미움이 되고, 미움이 쌓이면 증오가 되고 증오가 쌓이면 살인을 부릅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가인이 동생 아벨을 살인한 것만 보아도 가인 자신의 제사를 하나님이 받지 않은 것이 자신의 무성의에서 기인함에도 불구하고 동생 아벨 때문이라고 오해한 것입니다. 오해는 분노로 분노는 미움으로 미움은 살인으로 이어졌습니다.

사실 예수님을 못박은 것도 그 당시 종교 지도자들의 오해 때문이었습니다. 오해는 정말 무서운 것입니다. 오해와 편견에는 이해가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셋째-부활은 불의에 대한 진리의 승리이기 때문입니다. 교회 산책로를 돌다보면 꿩들이 많습니다. 까투리가 알을 낳아 부화하는 계절이 되면 열 댓마리의 새끼들을 데리고 다니는 어미 꿩을 자주 목격하게 됩니다. 그래서 잡으려고 따라가면 조그마한 풀잎 하나를 물고 뒤집어집니다. 몸통은 그냥 노출되어 있는데도 자기를 완전히 다 가렸다고 착각하는 듯합니다. 불의를 저지르는 사람들을 보면 금방 탄로날 거짓말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곧 드러나고 맙니다.

평소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부활을 그의 제자들에게나 적대자들에게 누누이 주지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사실을 기억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오늘 본문 9절은 제자들이 무덤 속을 들여다 볼 때의 상황을 묘사한 말입니다. 『저희는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고 제자들의 형편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적대자들에게는 『성전을 헐라 내가 삼일만에 다시 짓겠다』고 하였는데 이 말은 곧 자신이 삼일만에 부활할 것을 예언한 말씀입니다. 온갖 불의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는데는 성공했으나 예수의 부활로 예수님은 그의 말씀이 진리라는 것을 움직일 수 없게 증명해 보였습니다. 그의 말씀은 진리이기에 믿을 수 있습니다. 그의 말씀은 영원토록 동일하기에 신뢰할 수가 있습니다.

넷째-부활은 절망에 대한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절망의 마침표입니다. 더 이상 절망할 수 없는 곳이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원대한 꿈을 가진 자라도 죽음 앞에서는 찬란한 태양 앞에 무력하게 사라지는 안개와 같습니다.

시편 146편 3절-4절을 보면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말찌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 하였습니다. 죽으면 어떤 죄도 원한도 종결됩니다. 그 만큼 죽음은 절망의 마침표가 됩니다.

예수의 죽음은 그를 추종하던 모든 사람들을 침묵케 하였고, 그들을 절망 속으로 몰아 넣었습니다. 그들은 두려움과 불안으로 숨을 죽여야 했습니다. 그러던 그들에게 들려진 부활의 소식이야말로 소망과 용기 충천하는 소식이 되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이제 두려운 것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죽었다가 산 사람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죽어도 다시 살 수 있다는 소망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어제는 겁쟁이가 오늘은 사자처럼 용감한 자가 되었습니다. 약한 자의 대명사인 여자아이에게도 자기 신분 노출을 꺼리던 베드로가 이제는 서슬이 시퍼런 대제사장 앞에서도 자신의 주장을 담대히 전합니다. 이러한 담력과 용기의 진원지가 어디입니까 바로 부활입니다. 부활 전까지는 방향과 목적이 없던 자가 부활을 목격하고 나니 무서운 것이 없어졌습니다.

우리가 신앙을 가졌다고 하는 최대의 무기는 목표의식이 뚜렷해졌다는 사실입니다. 이 세상을 살다가 죽으면 천국 갈 것이 확실히 믿어지십니까 구원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이보다 더 큰 축복은 없습니다. 우스운 이야기 하나를 하겠습니다. 어떤 술 취한 사람이 간신히 택시를 탔습니다. 승객은 택시를 타자마자 자신의 옷을 벗기 시작합니다. 한 참을 달리던 택시기사가 백 미러를 보면서 냅다 소리를 지릅니다. 『왜 옷을 벗습니까』 취한 승객은 혀가 꼬부라지는 소리로 『내 집에서 내 옷 벗는데 웬 참견이야』 라고 댓구하자 기사가 『손님 이곳은 택시 안이에요 정신 차리세요』라고 하니까 취한 승객 『아 그러면 진작 말해줬어야지 나는 우리집인줄 알고 신발을 벗고 들어 왔잖아요』 하더라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방향 없는 현대인들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방향과 목표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입니까 부활 신앙은 우리를 방향 없이 살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소망의 닻이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결 론-부활을 상징하는 계란 초를 여러분들에게 드렸습니다. 전통적으로 계란은 죽음에서 부활을 상징합니다. 촛불은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부활은 기독교의 기초이고 우리신앙의 토대이며 교회의 근거입니다. 부활은 죽음에 대한 생명의 승리이고, 미움에 대한 사랑의 승리이고, 불의에 대한 진리의 승리이며, 절망에 대한 소망의 승리입니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었다면 우리의 믿음도, 소망도, 헛것이 될 것이고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고 불쌍한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분명히 살아나셨고 지금 여기서 우리를 지켜보시고 계십니다. 부활 신앙에 확고히 서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우리예수 부활 승천 하셨네! 부활하신 주 예수는 너희들이 올리우심을 본 그대로 다시 오리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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