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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의 주님을 만난 사람들 (시 편 30:1-12; 요 20: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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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옷을 벗어버리고 아름다운 옷을 갈아입어라
슬픔의 옷을 벗고 향기로움을,
헝클어진 머리를 빗어 화환으로 장식하고,
슬픔에 젖어 무거운 발걸음 대신 생기 있게 날뛰어라.
마음을 한껏 열어 크낙한 기쁨을
이 부활절에 맞아들일지어다.

이 시에 나타난 대로 부활의 큰 기쁨이 이 아침에 여러분의 마음속에 가득 차고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승천하시기까지 여러 번 제자들에게 혹은 여러 사람에게 나타나셨는데 주님을 만난 사람들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은 그들이 예수님을 찾아 만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그들을 찾아오셔서 만나셨다는 사실과 그들이 주님을 만난 후에는 놀랍게 변화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도 주님은, 주님을 만나야만 할 사람들을 친히 찾아 오셔서 만나 주시며, 그들을 변화시켜 하나님의 귀한 일군으로 삼아 주시는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

부활하신 주님은 제일 먼저 막달라 마리아를 만나 주셨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무덤 가에서 슬피 울고 있었습니다. 장사 지낸 지 사흘 되던 날 이른 아침 주님의 시체에 향유라도 발라드릴 마음으로 다른 여인들과 함께 무덤에 올라갔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 들렸던 여자로써 사람들에게 멸시와 냉대를 받던 여자였습니다. 그런 여자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고침을 받고 완전히 새 사람이 되고 주님이 전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믿고, 그 소망 중에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독실한 신앙의 여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모든 희망이며 기쁨이었던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참혹하게 세상을 떠나신 후 그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잡은 슬픔과 절망과 고독은 무엇으로 표현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흘째 되던 이 아침에도 무덤에 찾아갔다가 예수님의 시신(屍身)마저 없어진 것을 알고 홀로 남아 울고 있었습니다. 이 때 그의 등뒤에서 조용하고도 부드러운 음성이 들렸습니다.

"여인아, 어찌하여 울고 있느냐"

처음에는 동산지기인 줄 알았다가 바로 그분이 부활하신 주님임을 알고 그는 반가워 "랍오니"하고 소리를 질렀던 것입니다. 그 순간 그의 슬픔과 절망은 눈 녹듯 사라지고 그의 마음속에는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자리 잡았던 것입니다. 그는 곧 제자들에게 달려가 이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하였던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죽음을 슬퍼하는 자를 찾아 위로해 주시는 분입니다. 주님의 부활을 통해 "죽음이 생명에 삼킨 바"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이사야의 다음과 같은 예언을 성취한 것입니다.

"주께서 죽음을 영원히 멸하신다. 주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눈물을 말끔히 닦아주신다. 그의 백성이 온 세상에서 당한 수치를 없애 주신다. 이것은 주께서 하신 말씀이다." 사 25:8

부활하신 주님은 언제나 죽음 때문에 슬픔을 당한 자 가까이 계시면서 그 슬픔을 위로하시며, 그 슬픔을 거두어 가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사로의 죽음을 슬퍼하는 마르다에게 말씀하셨듯이 오늘 사랑하는 이의 죽음으로 인하여 슬퍼하는 자에게 오셔서 말씀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네가 이것을 믿느냐" 요 11:24-25

부활과 생명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 소망을 지니게 되었기에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슬퍼할 이유가 없어진 것입니다. 다만 육체의 죽음은 일시적인 것이며, 새로운 생명의 세계에 들어가는 관문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맞는 부활절은 다시 한번 죽음에 대한 우리의 슬픔을 털어 버리고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보므로 위로와 소망을 갖는 절기가 되는 것입니다.

제자들

두 번째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숨어있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열 한 제자들은 기운을 잃고 용기를 잃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절망과 수치를 느꼈으며, 불안과 공포 속에서 마음의 안정을 얻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자들이 두려워 문을 걸어 잠그고 침통하게 앉아 있는 지금, 그들에게 생각나는 것은, 왜 그들은 그처럼 비겁했던가 하는 생각입니다. 예수님과 마지막 만찬을 들 때 결코 예수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철석같이 다짐했었는데, 막상 일에 부딪치자 당황하여 경황없이 도망치지 않았던가 하나 하나 생각해 볼수록 정말로 비겁하기 짝이 없었던 일들이요, 얼굴이 붉어질 수밖에 없는 행동이었습니다.

이러한 때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하신 첫마디가 "너희에게 평화가 있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곧 '너희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불안과 수치와 좌절을 다 떨쳐 버리고 내가 주는 평화를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그들이 가졌던 절망을 이제는 버려도 좋다는 말씀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니, 오히려 그것으로 승리한 것이요, 그 증거로 예수님께서 부활하시어 그들 앞에 나타나 두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가 패한 것이 아니오 승리한 것이며, 그가 죽음으로 오히려 영원한 삶을 인간들에게 가져왔다는 사실을 제자들에게 알려 주시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절망과 좌절을 다 떨쳐 버려도 좋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에 평화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비겁했던 행동들에 대해서 한 마디도 언급하시지 않았습니다. 물론 힐책(詰責) 하시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다시 한번 "너희에게 평화가 있어라"고 하시므로 그들의 모든 잘못을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의 상황은 실패와 좌절로 전전긍긍하고 있는 제자들의 상황과 비슷합니다. 우리는 제자들처럼 헛된 욕심에 이끌려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는 대신 이 땅에 인간의 낙원을 건설하려 하였습니다. 우리는 한 때 경제성장을 통하여 우리의 꿈을 실현하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무엇이나 할 것처럼 한껏 교만하였고, 우리의 생활은 부풀대로 부풀어 선진국 부럽지 않은 생활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복병(伏兵)을 만나 우리의 경제는 침몰하고 지금 많은 실업자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결국 우리의 생활은 모래 위에 세워진 누각이었으며, 모두가 거품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좌절은 크고, 우리의 절망의 골은 깊어졌습니다. 이러한 때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나타나셔서 "너희에게 평화가 있어라"고 말씀하심을 들어야 하겠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나 우리의 좌절과 절망을 털어 버려야 하겠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에게 지난날의 모든 헛된 욕망은 십자가에 못박고, 이제는 다시 나야 할 것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가 맛본 절망을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출발점으로 바꾸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리석게 다시 경제 성장에 우리의 기대를 걸 것이 아니라, 이제는 하나님의 나라에 기대를 걸어야 할 것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경제적 성장이 주가 아니라 정신적이고 도덕적인 삶, 영적인 삶에 우리의 목표를 두고 이를 위해 우리가 노력할 것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난 제자들이 변화되어 하나님 나라의 일군이 되었던 것처럼 우리도 과거로 돌아갈 것이 아니라 완전히 방향을 바꾸어 정신적인 문화, 영적인 가치를 추구해 가야 할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에게 이것을 가르쳐 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도마

세 번째로 부활하신 주님은 도마를 만나 주셨습니다. 도마는 다른 열 제자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을 때 그 자리에 없었기 때문에 그 후에 다른 제자들로부터 부활의 이야기를 듣고도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는 유독 예수님의 못자국과 창에 찔린 자리를 확인하고 싶어했습니다. 도마의 관심사는 그들 앞에 나타나신 주님이 과연 그들과 함께 갈릴리 해변을 거니시던 그 예수님, 십자가에 못 박혀 처절하게 부르짖던 그 예수님인지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만일 그 분이 갈보리의 인간 예수와는 전혀 다른, 다만 신적인 환영(幻影)에 지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별로 의미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아닐까요 평화를 이야기하고, 죄 사하는 권세를 주시는 부활하신 주님은 필연코 십자가에 달리신 바로 그 분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도마에게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만일 그의 죽음이 살아 계신 주님의 일부분이 아니라면, 우리는 또 다시 헛된 꿈 때문에 큰 실망을 맛보게 될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만약 도마가 이와 같은 생각에서 행동했다면 그는 의심 많은 제자로서의 낙인보다는 오히려 사려 깊은 신학자로서 존경받아야 마땅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도마를 위해서 특별히 다시 나타나 주신 것은 그의 생각이 마냥 틀리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요 예수님께서는 도마의 생각대로 손과 옆구리를 만져보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이 짧은 기사에 손과 옆구리가 세 번이나 언급된다는 것은 그것이 갖는 의미가 크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도마는 즉시 예수님께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이라고 신앙을 고백하였습니다. 도마의 이 고백적인 대답은, 그가 갈보리의 예수와 부활의 그리스도가 완전히 같은 분임을 확인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십자가에 못 박힌 흔적을 가지고 계신 분이기에 그는 우리의 주님이시고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을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게 하려고 기록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복음 안에 간직된 이 두 가지 사건 곧 십자가와 부활이 서로 떨어져 나갈 위험 속에 살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십자가의 고난만을 강조하는 행동주의자들이 있는가 하면, 또 한편으로는 축복만을 간구하면서 영광만을 좇는 열광적인 신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다 바람직한 것이 못됩니다.

신약성경은 결코 십자가의 엄격성을 낮게 평가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신약성경은 항상 수난의 금요일을 부활의 날의 조명에 의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부활의 권능과 고난 속의 교제를 항상 연결짓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고난받는 종이시며, 동시에 영광 받으시는 메시아"이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고난 없는 영광은 천박한 것이며, 영광 없는 고난은 무의미한 것입니다. 고난과 영광이 함께 연결될 때 고난도 영광도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이라고 우리가 고백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고난의 흔적을 가지신 주님이십니다. 이제 이런 신앙고백을 하는 교회들은 오늘의 고난에 동참하여 이 역사 속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동시에 이 고난받는 역사에 부활의 소망을 전파하므로 이 고난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와 믿음을 불러 일으켜야 하겠습니다.

바울

끝으로, 부활하신 주님은 박해자 사울을 만나 주셨습니다. 사울은 젊은 청년으로 앞날이 촉망되는 유능한 율법주의자였습니다. 그는 가말리엘 문하에서 율법 교육을 받았고, 그에게는 이 율법을 수호하려는 정열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스데반을 돌로 치는 현장에 있으면서 이를 지지했고, 그후 그는 교회를 모두 없애버리려고 집집마다 들어가서 예수를 믿는 남녀를 끌어내어 감옥에 보냈던 것입니다. 이런 그의 열심이 지도자들에게 인정을 받아 다메섹까지 내려가서 믿는 자들을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도록 사울을 파견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는 거기서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그렇게 철저한 율법주의자였던 그가 그렇게 철저하게 그 율법의 무용론을 주장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그는 자청해서 율법의 외각 지대인 이방인의 사도가 되어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율법주의자들인 유대인들에게 말할 수 없는 박해와 고통을 당했던 것입니다. 그는 부활의 주님을 만남으로 고정된 율법의 틀에서 벗어나 살아 역사하는 부활의 믿음을 갖게 된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박해자였던 사울을 변화시켜 이방의 사도인 바울로 바꾸어 놓으신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사람들은 자기가 가졌던 편견과 이념의 틀에서 벗어나 더 넓은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 부활절 아침에 우리가 주님을 만남으로 우리 속에 간직하였던 옛 생각과 고집을 버려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마음이 되어 위로부터 들려오는 하나님의 말씀을 담아야 하겠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빛을 받으므로, 나의 편견, 나의 이념, 나의 사상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판단하던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박아 버리고, 빈 마음, 겸손한 자세로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구원의 역사를 보기를 힘쓰며, 그 부르심을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역군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부활의 주님은 희망을 주시는 분입니다. 용기를 주시는 분입니다. 믿음을 주시는 분입니다. 기쁨을 주시는 분입니다. 평화를 주시는 분입니다. 변화시키시는 분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이제 얼굴을 들어 우리 곁에 계신 부활의 주님을 만납시다. 마음의 문을 열어 그를 영접합시다. 그러면 우리 속에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이, 용기가, 믿음이, 뜨거운 정열이 생길 것입니다. 이 희망과 용기와 믿음으로 오늘의 슬픔을 극복하며, 우리가 만난 역경들을 헤쳐나가며, 이 땅에 하나님의 평화와 사랑을 널리 전하여야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부활의 큰 희망과 기쁨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그리고 이 나라와 민족 가운데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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