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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음을 지킵시다 (잠 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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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공동번역-무엇보다도 네 마음을 지켜라. 그것이 바로 복된 삶의 샘이다.
오늘 부활의 아침에 하나님의 축복이 사랑하는 여러분에게 충만히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사람에게는 마음이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마음이 있습니다. 마음에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사람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마음먹기에 따라 달렸다라고도 합니다.
어떤 학생은 대학 입시에 떨어져서 실망하여 그릇된 길로 가서 타락해 버리는 경우도 있고 어떤 학생은 더욱 분발하여서 더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도 합니다. 이 차이를 무엇이 만들어 냅니까 바로 마음입니다.
마음은 참으로 묘한 것입니다. 때로는 종잡을 수 없기도 합니다. 한 때는 기분이 좋아서 모든 것이 내 원대로 될 것 같다가도 때로는 정처없이 깊은 곳으로 떨어지기도 합니다. 여러 상황이 괜찮은데도 괜히 우울해지고 기분이 가라앉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마음의 교통정리를 잘해야 생활이 질서가 있고 복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말씀이 교훈하기를 “무엇보다도 너의 마음을 지켜라, 그것이 바로 복된 삶의 샘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일순간에 모든 것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오랜 세월에 걸쳐서 형성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을 알려면 적어도 사십은 되봐야 된다고 합니다. 바른 자세를 항상 유지함으로 바른 마음을 가질 수가 있고 이 마음이 행복을 창출해 내는 것입니다.
톨스토이의 인생론-행복론 편에 보면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어느 벽촌에 가난한 부부와 잘사는 부부 이렇게 두 쌍의 가정이 있었습니다. 어느 겨울 밤의 일이었습니다. 어수선하고 어딘가 피곤한 것같이 보이는 한 사람의 늙은 나그네가 잘사는 부부의 집 문을 두드렸습니다.
이미 일도 끝나고 저녁 식사도 끝난 후 자려고 할 무렵에 문을 두들겨 일으키기에 잘 사는 부부는 속으로 화가 났으나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어서 방을 나가 문을 연즉 바로 그 노인이 서 있었습니다.
“웬일인가요” 하고 언짢은 말로 물었습니다. 늙은 나그네는 정중히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이 것 밤중에 주무시는데 대한히 실례지오만 여행에 피곤하다 보니 더이상 걸을 수가 없어서 하룻밤 쉬고 갈 수 있을가해서 들렸습니다”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잘사는 부부는 그 노인의 머리 끝에서부터 발 끝까지 가로로 세로로 훑어보았지만 하룻밤 잘 재워 보냈자 시원한 인사 한마디 받을 것 같지 않아 무조건 거절하는 것이 상책일 것 같아서 “여보세요 우리 집은 하숙집이 아니에요. 여기서 한 이삼십 킬로 더가면 거리가 있으니 그곳에 가서 잘 집을 찾는 것이 좋을 것이요”하고 매정하게 거절을 했습니다.
나그네는 더욱 간절하게 “그러지 마시고 좀 재워 주시지요. 한 발자국도 더 뗄 수가 없습니다” 라고 애원을 했지만 잘사는 부부는 들은 채도 안했습니다. 숙박료를 내겠노라고 하면서까지 애원을 하였으나 이 거지 같은 늙은이가 무슨 맘을 먹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그만 문 밖으로 떼밀어 버렸습니다.
이것을 멀리서 보고 있었던 사람은 맞은편 이웃의 가난한 부부였습니다. 이렇게도 피로하여 보이는 늙은 길손이 부잣집에서 자려고 하다가 거절을 당하고 초조하여 걸음을 떼는 것을 보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리하여서 “여보세요, 여보세요”하고는 불러 세웠습니다. 늙은 길손은 피곤한 다리를 끌면서 걸었지만 부름에 멈춰 서서 돌아보고서는 무슨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딴 것이 아닙니다. 보기에 매우 피곤한 것 같은데 이제 더 가신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우리 집에 쉬고 가는 것이 어떨까 해서 이러는 것입니다”하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노인은 반가우면서도 사양했습니다. “고마운 말씀이지만 나는 돈을 한 푼도 가지지를 못했습니다. 폐를 끼치고서도 인사를 차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잘 사는 집에 들른 것입니다.” 그러자 가난한 부부는 “천만에요, 우리가 무슨 인사를 받고싶어서 이러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나이 많은 노인이 밤길을 걷게 되는 것이 너무도 안되보여서 이러는 것입니다. 누추한 방이지만 유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는 것이 이래서 식사라고 해야 조밥 정도지만 그래도 괜찮으시면 묶어가십시요” 길손은 인정 있는 말에 어떻게 고마왔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가난한 부부의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이 부부는 길손을 쉬어 가게는 하였는데 정말로 아무것도 대접할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조로 죽을 쑤어 가지고 길손에게 주면서 “겨울에는 따듯한 것이 제일입니다.”하자 길손은 반가와서 자기 양껏 대접하는 죽을 잘 먹었습니다. 그리고는 유명한 요릿집에서 산해진미를 먹은 것보다 낫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칭찬을 하였기 때문에 가난한 부부는 “좋으시면 그런 죽은 더 있으니까 한 그릇 더 잡수십시오”라고 권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아차”했습니다. 더 먹겠다고 하여도 사실 이제는 대접할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길손은 이 사정을 아는 것처럼 많이 먹어서 됐다고 하면서 사양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는 잠자리가 걱정이 되었습니다. 워낙 가난하다 보니까 부부가 한 장씩 감고 잘 홑이불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부부는 자기들은 그냥 짚 위에서 자기로 하고 방과 화로까지 내어 주고 자기들은 부엌에서 짚을 깔고 잤습니다.
아침이 되었습니다. 노인은 어제 밤처럼 조밥을 먹고서는 이 은혜를 갚기 위해서 다시 한번 만날 기회를 가지고 싶은데 무엇이든지 원하는 것이 있으면 말하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에 부부는 “아닙니다. 우리는 별로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 두 사람이 의좋게 일생동안 궁색하지 않게 먹고 입을 것이 있으면 그 외는 바랄 것이 없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길손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잘 알겠습니다. 그러면 일생동안 사이좋게 먹고 입을 것 궁색하지 않게 살수 있도록 하여 드리겠습니다. 세 가지 희망 정도는 도와 드릴 수가 있으니 한 가지 더 말씀하여 보세요” 라고 말하는데 노인의 형체는 갑작스레 사람의 형체가 아닌 성자같이 숭엄하게 보였습니다. 부부는 신비함을 느끼면서 “그 외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라고 답변하였습니다. 이 길손은 감탄을 하면서 좀 더 크고 좋은 집에서 살고 싶은 생각은 없으신지요라고 하였습니다. 이 고장에서 살수 있다면 하고 말하는 순간 이 길손은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그와 동시에 자기들은 궁궐 같은 훌륭한 집에서 좋은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꿈이 아닌가 하면서 가난하면서도 정직하게 살아가는 것을 알고서 하나님이 은혜를 내리신 것이라고 하면서 손을 마주잡고 기뻐하였습니다.
그런데 맞은 편에 살고 있었던 잘 사는 부부가 날이 밝아 아침에 세수를 하러 나와 보니 어제까지도 없었던 큰 집이 있고 가난한 부부가 어제와는 판이하게 다른 차림으로 즐거운 듯 그 집에서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너무도 놀라워서 밖으로 나온 그들을 붙잡고서는 이유를 묻게 되었습니다.
가난했던 부부는 어젯밤의 얘기를 자초지종 해주었습니다.
이것을 들은 부잣집 부부는 무릎을 치며 이를 갈면서 후회를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면서 부부 싸움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처가 갑자기 생각을 돌려 남편에게 말하기를 “아마도 멀리 못 갔을 터이니 뒤따라 붙잡아 도로 모셔다가 하룻밤을 재우도록 합시다” 그러기로하고서는 걸어가서는 안되니 말을 타고서 쫓아가기로 하였습니다. 아내는 “만약에 자지 않겠다고 하면 세 가지 원만은 도와줄 약속을 받아 가지고 와야 해요” 그러마고 하고서 남편은 말에 안장을 올려놓고서 말을 타고 사정없이 채찍을 휘두르며 달려갔으나 오정이 되어서야 겨우 따라 잡을 수가 있었습니다.
다짜고짜 노인을 붙잡고서 실은 어제 가시고 난 후 처하고 의논하여 주무시게 하려고 밖에 나가 보니 벌써 가시고 없어서 그래서 오늘 아침에 찾아온 것이니 성의를 무시하지 마시고 집에 가서 하룻밤을 묵어 가시라고 간청을 하였습니다. 노인은 전혀 말을 듣지를 않았습니다. 먹혀들지를 않자 이제는 원하는 것만이라도 좀 도와주시라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세 가지 소원을 약속하고 돌아가라고 하였습니다. 부자는 뛸 듯이 기뻐하였습니다.
욕심 많은 부자는 여러 가지를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말이 피곤하여서 생각만큼 뛰지를 못했습니다. “이놈의 말 소보다 못하구나, 차라리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말이 쓰러져 죽고 말았습니다. 말은 죽었으나 안장은 비싼 것이라 안장을 메고 땀을 뻘뻘 흘리며 걸어오는데 얼마나 힘이 드는지 모릅니다. 저절로 속에서 불평이 솟아올랐습니다. “나는 이렇게 고생하고 있는데 마누라는 집에서 낮잠을 늘어지게 자고 있겠지, 생각하면 화가나, 이 안장 그년의 등에 붙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자 안장이 어디론가 날아가고 말았습니다.
속 시원하게 생각을 했는데 집에 와서 보니 아내가 안장을 등에다 지고서 소리쳐 울고 있었습니다. 부자는 아차 하였습니다. 부자는 안장을 떼어 보려고 아무리 힘을 써도 떨어지지는 않고 더욱 달라붙을 뿐 아니라 살이 벗겨질 것 같이 아파오기만 했습니다. 부자는 아내에게 조금만 참으라고 하면서 내가 이제 세상에서 가장 좋은 집이 생기게 해주겠노라며 소리를 쳤습니다. 그러자 아내는 애원하면서 제발 안장이나 떼어 달라고 하면서 애원을 하였습니다.
할 수 없이 부자는 마지막 소원을 아내의 등에서 안장을 떼는데 썼습니다.
마음을 잘 썼던 사람은 부부가 일생을 행복하게 살았지만 마음이 바르지 못한 사람은 손해만 보고 만 것입니다.
마음 가짐의 차이가 똑 같은 경우를 만나고서 이렇게 행복과 불행으로 갈라 놓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일들이 세상에는 많이 일어납니다. 사람에게 갑자기 돈이 생길 수가 있습니다. 갑자기 땅이 올라서 거부가 된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일을 겪고서 어떤 사람은 그 돈을 잘 활용하여 보람있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 어떤 사람은 돈이 없어서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 오입질이라든가 사치 방탕에 빠져서 가정 파탄, 자신을 망가뜨리는 일들도 심심찮게 생깁니다.
예-속리산 문장대 뒷편 온천지구
다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마음을 잘 지키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16:32)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마음을 잘 다스려야 되는데 마음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유행가에도 ‘내 마음 나도 몰라.....’ 라는 귀절이 심심찮게 있듯이 나는 그렇지 않을려고 해도 그렇게 되고마는 경우가 살면서 너무나 많이 발생을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합니까 바울 사도라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도 이런 고통을 당했습니다.
(롬7: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롬7:22)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롬7: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롬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마음 속에서 두 마음이 서로 대립되고 있는 것을 그는 안 것입니다. 그런데 선한 마음이 항상 이겨야 되는데 항상 그렇지 못한 것을 그는 안타가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괴로워하면서 부르짖었습니다. “누가 나를 이 사암의 몸에서 구해준단 말입니까”
(롬7: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비로소 그는 진리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마음의 주인으로 모셔야 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사람의 노력으로는 마음을 통제한다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이 햐여 주셔야만 합니다.
(잠17:3) 도가니는 은을,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 하시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까지 바르게 하시는 분인 것을 말씀해주시고 계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떠남으로 죄인이 되어서 마귀의 종노릇하다가 죽음으로 허망하게 끝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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