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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이 가져다 주는 소망 (고전 15: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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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본문 말씀이 여러분의 심령에 레마의 말씀이 되기를 바란다.

오늘은 실제적으로 우리 기독교에 있어서 최고의 명절인 부활절이다. 우리 기도교에는 부활의 소망이 있기 때문에 다른 종교들과는 근본적으로 구별된 다.

만약에 우리 기독교에 이 부활의 소망이 없다고 한다면 다른 종교들과 같이 윤리적인 종교가 되거나 이 세상에 소망을 두는 종교가 되어 버린 것이 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는 이 세상에 소망을 두는 종교가 아니고 분명히 하나 님께 소망을 두며, 내세에 소망을 두면서 살아가는 종교이다.

 세상을 한때 풍미하던 많은 성인들과 교주들의 무덤이 이 세상에 거창하게 장식되어 있다.

그들은 모두 이 세상에 와서 결국 죽음을 이기지 못한 자들이 되었다.

 마호메트의 무덤은 아라비아 메카에 있고, 공자의 무덤도 있고, 각곳에 문묘라는 사당이 있어서 그를 모시고 있다.

박태선도 기장에 죽어서 무덤속에 들어가 있다.

 그러나 예수님의 무덤은 없다! 순례객들이 가서 보는 그 빈 무덤은 실제적으로 무덤이라고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약 3흘 동안 죽음의 상태에서 누워계셨던 곳에 불과 하기 때문이다.

 좀더 시간적으로 계산을 해 보게 된다면, 주님은 금요일 저녁이 되기전에 무 덤에 장사되어졌고, 안식후 첫날, 그러니까. 일요일 세벽에 이미 부활을 한 상태이기 때문에 말은 사흘이지만, 시간적으로 보면 약 34-35시간 정도 그 무덤에 시체로 계셨을 뿐이다.

 무덤이 있다는 것과 무덤이 없다는 것, 이것은 엄청난 차이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무덤이 있다는 것은 사망에 의해 지배를 당한다는 것이고, 사망에 의해 패배를 했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무덤이 없다는 것은 생명이 사망을 지배한다는 것이고, 생명이 사망을 이겼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성도들은 이제 사망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그 사망을 이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지배를 받고, 거기에 동참하는 복된 사 람이 되었다.

 그러면 좀더 구체적으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부활의 소망은 어떤 것인가

1.그리스도의 부활을 인하여 죄에서 완전한 승리를 얻게 되었다.

17절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우리들의 죄를 없애개 위해서다.

그가 십자가에 못박히심으로 인하여 우리들의 죄는 씻김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이 씻김 받은 것으로는 정상적인 완성이 아니다.

 죄를 씻김 받은 자가 거할 곳이 있어야 하는데, 그 기거할 곳이 없다면, 그 죄 씻음은 헛것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Ex)마치 사람이 목욕을 했는데 목욕을 하고 나서목욕전에 입었던 속옷, 겉옷을 그대로 있고 먼지나는 작업장에 그대로 다시 들어가야 하는 상황과 같다. 그러면 그 목욕의 의미는 사실상 없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죄 씻음을 받았는데 죄 씻음을 받은자만이 들어 갈 수 있는 그 천국의 문을 부활을 통하여서 주님께서 열어 놓은 것이다.

죄의 완성은 죽음 지옥입니다.

그래서 "죄의 값은 사망"이라고 했다.

 죄가 있는 자는 반드시 사망의 옷을 입어야 하는 것이다.

죄의 종착점이 사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을 하시므로 인해서 그 종 착점을 완전히 바꾸어 버린 것이다.

 Ex)기차가 서울에서 출발해서 대전까지 같은 레일위를 따라서 잘 오다가 이것이 부산으로 갈것이냐 광주로 갈 것이냐에 따라서 레일 변경 장치에 의 해서 그만 길이 바뀌어 버리고 만다.(레일 변경장치 설명) 거기에서 사실상 종착점이 결정이 되는 것이다.

 주님은 중간에서 그 레일을 변경하는 분이 되셨다.

죄의 길을 달려 무덤으로 가던 우리들에게 부활을 통하여 극적으로 생명의 선으로 전환을 시켜 주신 것이다.

 그래서 죄의 완성은 죽음과 지옥이라고 한다면 부활의 완성은 생명이고 천국인 것이다.

 그래서 오늘의 말씀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었다고 한다면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 있었을 것이다"고 말씀을 한다.

 즉 부활이 없다고 한다면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이 무용지물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예수님도 죽음을 이기지 못한자가 되어 버리기 때문에 그 죽음은 헛된 죽음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2.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하여 천국의 소망을 가진다.

19절 "만일 그리스도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 람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성도가 부활의 몸을 입고 갈 천국이 없고 이 세상의 삶으로서 끝나게 된다면 성도들 만큼 불쌍한 자가 없다.

 세상의 사람들이야 이 세상에와서 먹을것 마음대로 먹고, 즐길것 마음대로 즐기고, 재미볼 것 마음대로 보면서 사는데 우리 성도들은 모든 면에서 절제를 해야 하면서 살아야 하고,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가고 싶은데 제대로 한번 가지 못하고, 사람들 앞에서 소리 한번도 제대로 지르지 못하면서 살아온 것이 얼마나 억울하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실제로 세상의 사람들은 예수 믿는 사람들 무슨 재미로 사는지 모르겠 다고 말을 한다. 부활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생에만 삶의 목표를 두고 살아가고 있습니 다.

이생에만 삶의 목표를 두고 살아간다는 것은 동물적인 삶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는 것이다.

요한1서 2:15-16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 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곳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 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사탄이란 놈은 사람들을 이 세상의 것들로 유혹해서 이 세상에만 안주하게 하고 천국의 것, 우리들이 새로운 몸을 입고 부활 되었을 때를 위해서 전혀 예비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썩어질 육신을 위해서만, 안개와 같이 사라져 버릴 이 세상의 것들만, 좀과 동록이 없애버릴 이 세상의 재물들만을 쌓아가게 하고, 거기에만 재미를 붙이게 해서 살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주님의 부활을 믿기 때문에 천국에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자가 되었다.

우리 기독교의 부활은 불교에서와 같은 환생이 아니다.

불교의 환생은 최고로 잘 되어 봐야 인간이다.!!! 그렇지 않으면 동물이고 이럴수도 사실상 없지만......

 그러나 우리 기독교의 부활은 환생과 같은 것이 아니라 완전한 부활이다.

주님이 새로운 몸을 입은 것처럼 우리들의 육신의 몸은 완전히 벗어 버리고 새로운 부활의 몸을 입는 것이다.

 시와 공간을 초월하는 몸, 만질수 있으나 또한 만질 수 없는 몸, 그리고 원래의 나의 생각과 의지를 완전히 가지고 있어서 나 자신임을 알 수 있는 몸이다.

 그래서 성도들은 부활의 소망이 있기 때문에 어떻게 살아가는가 15:42-44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성도는 이 세상의 삶의 심는 것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썩어질 것으로 심고, 욕된 것으로 심고, 약한 것으로 심고, 육의 몸으로 심고, 그래서 그 심은 것으로 부활이라는 열매를 거두기를 바라는 것이다.

 많은 불신자를은 이 세상을 심는 것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거두는 삶 으로 살아가고 있다.

누가복음 16:25절에 거지 나사로와 부자의 비유에서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 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육신의 쾌락을 이 세상에서 거두고, 기쁨을 이세상에서 다 맛볼려고 하지 심는 것은 없는 것이다.

 우리 믿음의 성도들은 이 세상을 심는 자로서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심는 다는 것은 그만큼 나에게 많은 땀과 수고가 있어야 함을 말하고, 경건과 절제된 삶을 살아야 함을 의미하고,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철저히 죽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3.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하여 우리는 사망을 이기게 되었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있기 전에는 사망이 인간들 속에서 왕노릇을 하고 있었 다.

그 사망이 이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하여 그 사망의 왕도 끝이 나고 말았다.

 고전15:54-57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 라.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 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사망이 이기는 것은 죄라고 했다.

하나님께 회개하지 아니한자만이 여전히 왕노릇을 하는 것이지,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는 자에게는 이제 사망이 왕 노릇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제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망을 이기게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다.

성경은 다시 말씀을 합니다.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고전15:2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의 부활은 죄에서의 완전한 승리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천국의 소망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에게 사망을 이기는 이김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우리 믿음의 성도들은 부활의 씨를 가지고 있는 성도로서 이제 이 세상을 심는 자로서 살아 감으로 주님의 부르시는 그날 홀연히 변화 받는 귀한 성도 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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