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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시냇가에 심은 나무 (렘 17:5-8)

첨부 1


물은 생명의 근원입니다. 물이 있는 곳에는 생명이 모여듭니다. 물이 없어지면 생명도 더 이상 버티지를 못하고 사라집니다. 아프리카에 사막화가 진행이 되어서 동물.식물을 막론하고 많은 생명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물이 많은 곳이라 아무 곳에서나 생명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광야지대에서는 물이 있는 곳에만 생명이 번성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시냇가에 심어진 나무는 행운의 나무입니다. 생존을 유지하는 물이 풍성히 있으므로 나무의 목적인 열매맺는 걱정을 안해도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식적인 상황을 통하여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신앙의 진리를 말씀하여 주십니다.
사람이 살 수 없는 외롭고 거친 땅, 돌덩이만 쌓여있고 모래바람이 휘몰아치는 광야, 그런 세상에 아무 볼품도 없이 가시덩굴만 내뻗치는 한 그루 관목과 같은 것이, 바로 하나님을 버리고 떠나서 인간의 도움만 의지하고 사는 인생이라고, 오늘의 말씀인 예례미야 17장 6절에서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언제까지나 좋은 일을 보지 못하고 불행만 겹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반면에,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틀림없이 좋은 때가 온다고 했습니다. 「분명히 복받을 때가 온다」고, 예레미야 선지자는 예레미야 17장 7절에서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주님을 굳건히 의지하고 사는 사람은, 마치 시냇가에 심겨진 과일나무와 같아서 가뭄도 무섭지 않고 여름철 뙤약볕도 두렵지 않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나무 잎사귀는 언제나 푸르고 싱싱해서, 가물어도 여전히 열매를 맺으며 무성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떻습니까 다른 사람을 찔러서 상처를 내고, 괴롭히는 가시덩굴을 마구 내뻗치는, 거친 광야의 한 그루 관목과 같은 인생을 살고 싶습니까 아니면 시냇가에 심겨진 과일나무처럼, 언제나 푸르고 싱싱해서 좋은 열매를 많이 맺어 남을 풍요롭게하고 시원한 그늘을 주는 인생이 되고 싶습니까
여러분의 생각도 거의 다 그러리라 믿습니다만, 저는 후자와 같은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푸르고 싱싱하니 보기에도 좋고, 많은 열매를 맺으니 다른 이웃에게 유익을 줄 수 있어서 좋은, 그러한 보람있고 가치 있는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가치 있는 인생을 살려면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사람을 의지하면 저주받을 인간이 되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면 자기 자신에게도 좋은 일이 많이 생길 뿐만 아니라,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 가게 되는 것입니다.
“아니,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을 안 믿는다는 말이냐 그래서 어려운 일이 겹치고 있단 말인가”하고, 항의하듯 반문하고 싶은 분들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고난이 결코 불행만은 아니라고, 제가 수없이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오히려 고난이 없는 사람보다 더 큰 복이 될 수도 있습니다.
누가복음 6장 22절에서 「예수님의 제자라고 해서 핍박받고 욕을 먹으면, 하늘에서 큰 상이 있을 것」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우리의 마음 속까지 살피실 수 있는 하나님 앞에서, 과연 얼마나 자신 있게 “주님을 의지합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겠느냐고 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17장 9절에서 하나님은 예레미야의 입을 빌려서 말씀하시기를, 「인간의 마음은 간사하고 그 깊이를 알 수 없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인간의 마음에는 거짓과 자만으로 가득차 있다」고까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함으로써 시냇가에 심겨진 과일나무와 같은 인생을 살 수 있단 말입니까 그토록 우리 인간의 마음을 깊숙이 들여다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그 누가 스스로 거짓 없는 인생이라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지금 우리들의 자화상은 어떻습니까
뭔가 색다른 것으로 위장을 해야 폼이 날 모습입니까 아니면, 그런 대로 사람들 앞에서 내세울 만한 모양을 갖추고 있습니까 어쩌면 현재 자신의 모습을 지워 버리고, 다시 새롭게 그리고 싶은 심정을 가진 분들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억지로 자기 존재를 과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요, 옛날처럼 양반 신분을 사듯 자신의 위치를 다른 무엇으로 높일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이해하고, 우리의 생각을 고쳐 살아야 합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누가복음 6장 26절의 말씀을 보면,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는 자에게는 화가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아야 복이 된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그 다음에 나오는 말씀에서 「거짓 예언자들도 언제나 환영을 받아 왔다」고 함으로써, 사람들의 평가가 꼭 올바른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에 대해서 관심을 두기 때문에, 억지를 부리거나 거짓된 행위를 할 염려가 많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우리 인간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부족한 죄인일 수밖에 없다는 진리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너그러운 용서와 보살피심이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존재입니다. 태산이 아무리 높다 해도 하늘 아래 조그마한 봉우리에 불과하듯, 인간이 아무리 훌륭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볼품없기 짝이 없는 작은 생명체에 불과합니다.
그렇습니다.

1.우리는 광야에 있는 한 그루 볼품없는 가시나무와 같은 존재입니다
만약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이 세상에서 폼잡고 뽑내기를 원하게 된다면, 그에게는 비참한 결과만이 주어질게 틀림없습니다.
누가복음 6장 24-26절의 말씀을 보면, 「부자가 되어 배부르게 사는 사람들, 지금은 살이 찌고 호강을 하지만, 비참하게 굶주릴 날이 닥쳐올 것이다. 지금 태평스럽게 웃고 있는 사람들과,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는 자들에게, 화가 미치게 될 것이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여기서도, 부자가 나쁘다거나 웃고 칭찬 받는 것이 그릇되다는 말은 아닙니다. 진리 안에서 바르게 사는 것을 복으로 여기지 않고, 사람들에게 과시하기 위하여 거짓된 방법으로 행복을 조작하고 있는 것이 나쁘다는 말입니다. 결코 인간의 행복은, 배가 부르도록 먹어서 느끼는 만복감이 아니거든요. 걱정할 게 없어서 태평스럽게 웃을 수 있을 때에 느끼는 그 기분이 인간의 행복이라 할 수 없다 이말입니다. 짐승들도 그러한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은 부자가 아니어도 복되게 살 수가 있고, 부자일지라도 행복할 수가 있습니다. 문제는 ‘부자가 되어야만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하나님 뜻에 어긋난다는 말씀입니다. 이 잘못된 생각 때문에, 교회 안에서나 교회 밖에서 비참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 뜻대로 살기 위하여 애쓰는 것이 아니라, 부자가 되기 위하여 열심을 다하는 것입니다. 결국 교회 다니는 목적도 하나님 뜻대로 바르게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부자가 되어 잘 살기 위한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믿는 자의 인생 목표는 이 땅에 있는 것이 아니고 하늘 나라에 있습니다. 이 땅에서 무엇을 이루어 가지고 자랑하려는 생각, 이것이 인간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하늘 나라에서 받을 상급을 바라보고 열심히 주의 뜻을 이루려는 믿음, 이것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의 자세입니다.
이 땅에서 자랑하거나 뽐내려는 생각을 가지면 결단코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를 세우는 것까지라도, 다른 교회와 비교해서 더 큰 교회 더 아름다운 교회를 짓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주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세워져야지, 인간의 자랑을 위한 것이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도 누구보다 더 잘해야되겠다고 하는 마음에서 하게되면 넘어질 때가 있습니다. 충성과 봉사 헌금··············· , 우리가 바라볼 대상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십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2-20절에서 바울 사도는 부활 신앙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활 신앙은 크게 두 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ㄱ.이 세상 가치를 부정해야 한다는 것이고
ㄴ.이 세상에서 무엇을 심든지 저 세상에서 그대로 거두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땅의 가치와 하늘의 가치는 결코 양립할 수가 없습니다. 땅의 가치를 부정해야 하늘의 가치를 발견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이 있어야 부활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부활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땅의 가치를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 선생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믿음이 헛되며 아무 가치가 없는 것이 되어 버린다(14)」고 했습니다. 부활의 확신이 있어야, 땅에서의 목표를 무너뜨리고 하늘나라를 목표로 하고 살텐데,
①부활 신앙이 없거나 희박하기 때문에, 피조물 중 가장 비참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바울 선생은 고린도전서 15장 19절에서 「크리스챤이 된다는 것이 이 세상에서만 가치가 있는 것이라면, 우리는 피조물 중에서 가장 비참한 존재」라고 했습니다.
「심는 대로 거둔다」는 말이 진리가 되려면, 부활이 있어야 합니다. 만일 부활이 없다면, 심은 대로 거둔다는 말이 진리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바르게 산다고 해서 그 결과가 꼭 좋은 것만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나 요한이 복음 전도에 그토록 힘썼지만, 그 죽음은 비참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이 세상 가치로만 따지게 되면, 바울이나 예수님의 생애가 행복하다 말할 수 없습니다.
예레미야 17장 10절에서 하나님은, 「사람이 행동한 것에 따라 그대로 갚아 주는 자가, 바로 나 여호와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부활 신앙이 확고하지 못하기 때문에, 쓸데없는 것을 구하고 쓸데없는 것을 자랑하면서 헛된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참으로 비참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②그래서 겉보기에는 넉넉하고 여유로운 듯하나, 실상은 아주 빈곤한 인생을 사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영호 전 체육부장관이 미국에서 교수 생활을 하고 있을 때, 친척의 권유로 낙엽송이 심겨진 산을 샀다고 합니다. 몇 십년 후이면 몇 억대의 재산이 되리라는 생각을 하고, 그 동안 비료를 주고 가지를 치는 일에 많은 돈을 투자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팔려고 하니, 그야말로 헐값이더라는 것입니다. 그 동안 전신주나 탄광 갱목으로 쓰이던 낙엽송 대신에, 시멘트로 만들어진 대용품이 등장하는 바람에, 낙엽송이 아무 쓸모가 없게 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귀하게 여기는 것들, 얼마 안가서 헐값이 되고 말 것입니다.

2.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활 신앙을 주셔서 참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처음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실 때에는 아주 고귀한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짐승하고는 너무나 뚜렷이 구별되는, 만물 중 으뜸가는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것 중, 가장 귀한 것이 자유 의지인데, 그런데 그만 인간은 그 자유 의지를 가지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영원한 가치인 영혼을 소홀히 하고 썩어질 물질을 가까이하게 되었습니다. 쉽게 말씀드려서, 금을 담고 있어야 할 우리 인간인데, 똥을 가득 담고 있는 형국이 되고 만 것입니다.
이처럼 비참하게 된 우리 인간을,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셔서 온전케 하시고, 새로운 소망인 부활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①우리 속에 담겨져 있던 더러운 죄들을 씻어 내시고, 죄로 말미암아 병든 심령을 고쳐 주셨습니다.
②뿐만 아니라, 주님을 의지하고 사는 자에게 풍성한 삶을 약속하셨습니다.
풍성한 삶이란, 물론 물질적으로만 넉넉한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예레미야서에 있는 말씀처럼,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와 같이 주님을 믿는 자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기 때문에, 풍성하다는 말입니다. 그런고로 물질적이다, 영적이다라고 구분할 필요없이, 인간 삶 그 자체가 가치가 있어서 어느모로 보나 값진 존재가 된다는 뜻입니다.
결국 풍성한 삶이란, 우리가 본래적으로 원했던 삶, 그리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심은 대로 거둘 수 있는 부활의 삶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이 풍성한 삶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야 이룰 수 있는 삶인 것입니다.
시편 1편에 있는 말씀을 보면,
「못된 짓 일삼는 자들은 힘없이 흩날리는 겨와도 같아서, 바람결에 따라 별 수 없이 흩어져 버린다(4)」고 했습니다. 그러나 반면에, 「여호와의 가르침을 기뻐하고 그 가르침을 밤낮으로 읽으며 늘 명상하는 자는, 시냇가에 옮겨 심은 나무 같아서, 철따라 열매를 맺고 그 잎사귀는 나날이 푸르르며, 하는 일마다 끊임없이 번창하리라」고 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광야의 볼품없는 가시나무나 바람에 날리는 겨와 같은 인생이 아니라, 시냇가에 심겨진 과일나무와 같은 복된 심령이 되어서,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다른 사람에게도 복이 되고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는, 가치 있는 인생을 살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하는 바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가치 있는 인생을 살려면,

3.부활 신앙을 가지고 주를 의지하는 믿음 생활을 해야 합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사람이 내세울 수 있는 것 또한 없습니다. 다만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주님을 의지하고 그 명령을 따르는 것뿐입니다. 주님의 명령 따라 살았다면 결코 자랑이 될 수 없습니다. 무슨 일을 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사용하여 그 일을 하셨을 뿐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무슨 일을 자랑하려 한다면, 그것처럼 무가치한 일이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①주를 의지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무슨 자랑거리를 만들려고 할 것이 아니라,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부활의 하나님이신 것을 굳건히 믿고 그분의 뜻을 이루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생활입니다. 그러니까, 기대하거나 목표하는 것을 땅 위에 두지 말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받을 상급을 바라보고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②진실된 마음으로 주를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혹 세상에서는 위장을 해서라도 사람들의 칭찬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속 마음까지 살피실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에, 거짓된 생활은 결코 용납되지 않습니다. 차라리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솔직하게 살아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어야 합니다.
③그렇습니다. 사람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위로와 사랑입니다.
사람이 무슨 일을 해서 칭찬 받을 생각을 한다든지, 무엇을 내세워서 자랑하려는 것은, 정말 무가치한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 인간이 소중하게 여겨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위로와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위로와 사랑을 덧입고 깨달을 수 있어야, 그 인생이 억지나 거짓이 아닌 순리를 따라 살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법칙을 따라서 사는 것만이 가치 있는 일이요, 진정 자랑스럽고 보람있는 일임을 깨닫게 된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철원교회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관심보다 사람의 칭찬에 더 중심을 두는, 그러한 생활을 이제는 청산해야 합니다.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고, 썩지 아니할 영원한 가치를 열심히 뿌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위로와 사랑을 가장 큰 상급으로 여기고, 그 상급을 받기 위하여 이 땅에서 참 가치 있는 인생을 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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