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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는 부활의 개시 (고전 15: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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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한 번 나면 반듯이 죽는다. 그러나 인간의 영혼은 하나님께로부터 왔기 때문에 죽어도 다시 사는 부활영생을 사모한다. 그래서 옛날 이집트 사람들은 왕들 의 시신을 썩지 않도록 미이라로 만들어 거대한 피라미트속에 안장했다. 수만년이 지난 후 언젠가 부활할 것을 고대한 부활신앙의 증거이다. 우리나라 풍습에서 시신 을 화장하지 않고 관에 넣어 무덤속에 넣는 것도 일종의 부활을 기대하는데서 비롯 되었을 것이다.

과연 인류는 부활할 것인가 죽은 자들이 언젠가 다 살아날 날이 있을 것인가 이에 대해 부활은 없다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많다. 예수님 당시 유대교도들중 사 두개인들은 내세를 부인했고, 따라서 죽은자의 부활도 천국도, 천사도 믿지 않았 다. 그들이 믿은 하나님의 축복이란 오직 이 세상에서 살 사는 복을 구하는 것이었 다. 우리나라의 불교, 유교, 일본종교인 남묘호랑객교도 모두 현세에서의 복을 기 원하는 현세주의적 종교이다. 공산주의도 영혼을 인정하지 않는 유물론적 현세주의 이다. 고린도 교회 신자들가운데도 이렇게 부활은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잇었다 이와같이 부활을 부인하는 사상을 한 마디로 현세주의라고 부른다.

 1.만일 현세주의자들의 말대로 부활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죽은 자들의 부활이 없다면,

1> 그리스도께서도 부활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수고하시기 위해 죽으시고 우리를 살려 영생을 주시려고 부활하셨는데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 면 예수님의 부활은 무의미한 것이다.

 2>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은 그의 죽음으로 끝나게 되고 그러기에 예수의 죽음은 실 패의 죽음이 된다. 실제로 슈바이쳐나 문선명은 예수의 부호라을 믿지 않기 때문에 주님의 십자가 죽음을 실패사건으로 본다.

 3>그렇게 되면 기독교는 역사상 가장 철저한 허무주의적 종교가 되고 만다. 성경에 서 말하는 소망이니 부호라이니 영생이니 하는 말은 다 거짓말이 되고 만다. 부활 이 없는 기독교, 즉 윤리만 남은 기독교만 된다.

 4> 예수가 살아났다고 전했고 순교햇던 무수한 증인들은 다 거짓말장이가 되고 그 들은 거짓말을 위해서 아까운 젊음과 목숨을 바친 자들이 되고 만다.

 5>그리스도인들의 믿음도 헛되고 죄사함도 없게 된다. 본문 14절, 17절에 헛되다는 말이 3번나오는데, 만약 예수부활이 없고 우리의 부호라이 없다면, 기독교의 설교 와 전도와 선교도 다 헛것이요, 우리의 믿음도 헛된 것이 되고 만다. 기독교인은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불쌍한 자들이 되고 만다.

외와같은 사실을 미루어 볼 때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는 가정은 기독교를 정면 부인하는 셈이 되며 그것은 이단의 소리요 악마의 소리인 것이다.

 2.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신 사건이 확실하다면 그리스도안에서 모든 인 생도 역시 장차 부활할 것도 확실한 것이다. 그리스도는 부활하셨다.

1) 예수님의 빈 무덤이 증거한다. 에수님의 무덤은 거대한 돌로 아구를 막고 아무 도 열거나 손대지 못하도록 도장을 인봉해 놓앗다. 그리고 대제사장들의 군인들과 빌라도의 군인들이 철저히 지키고 잇엇는데, 그 안에 누어잇던 에수의 시신이 사라 졌다는 것은 그야말로 기적이다.

 2) 부활하신 예수님이 직접 증거하셧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3일동안 기절해 있다가 사흘만에 개어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6시간동안 못박혀 달 려 피가 완전히 솔아졌고, 로마 군인이 그가 완전히 죽은 줄 확인하고 확실하게 하 기 위해 창으로 옆구리를 찔러 피와물이 다 솔아져 나왓는데, 그런 사람이 사흘뒤 에 어떻게 다시 깨어 나올 수 잇겟으며 더구나 매장지인 에루살렘에서 갈릴리까지 는 200리나 되는데 언제 어떻게 그 피투성이의 사람이 갈릴리가지 와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실 수 잇엇겠는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생명의 성령게서 예수님께 임하시니 예수님게 신비한 하늘의 생명력이 들어가 몸이 회생하고 형혼이 소생하고 그는 다 시 살아낫으며 굳게 닫힌 돌무덤을 여시고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것이다.

 3)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한 사람들이 한 두명이 아니요,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여러차레 여러사람들이 부활하신 영광의 주님을 목격햇다고 증거한다.

 첫째, 의심하던 에수님의 제자들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직접 확인하고 믿게 되었다.

베드로도, 요한도 모든 사도들도 에수님이 고난받고 다시 살아나리라 하시던 주님 의 말씀을 기억치 못하고 슬픔에 잠겨 괴로와 하고 잇었다. 그런때 예수님이 직접 나타나시어 "너희들에게 평강이 잇을 지어다." 제자들은 정말 예수님일까 아니면 귀신에게 홀렷나 그들의 눈과 귀를 의심햇다. 주님은 말씀. 나는 귀신이 아니다.

귀신은 살과 뼈가 없지만 나를 만져봐라. 나는 살과 뼈가 있지 않느냐!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고 함게 떡과 생선을 잡수셧다. 그제서야 제자들은 확신하게 되었다.

막달라 마리아는 무덤가에서 주님을 만났다. 그 자리에 없던 도마도 의심하엿으나 직접 보고야 믿엇다. 예수님의 육신적 동생 야고보는 그 때가지 예수님이 세상의 구주인 줄 몰랏고 다만 자신의 형님이 휼륭한 분이지만 좀 이상해 진것같다고 생각 하고 있엇다. 그러나 주님은 그 야보고에게 나타나셧다. 이제 주님은 더 이상 야고 보의 형이 아니라 인류의 구주라는 사실을 야고보는 확신하게 되엇다. 그래서 그는 주님을 믿엇을 뿐만 아니라, 초대교회의 기둥같은 일꾼이 되엇고 주님의 부활을 증 거하다 순교하게 된다.

 둘째, 500여명이 일시에 주님의 목격햇고 그 말슴을 들엇다. 그들은 에수님의 분 부대로 갈릴리로 모엿다. 아마 산상수훈을 가르쳐 주시던 그 산이엇을 것이다. 거 기에서 모여든 주님을 평소 사랑하고 따르던 500여명의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보았고 그 들가운데 상당 수는 에루살렘에까지 내려와 주님이 감람산에서 승천하시 는 광경도 보았다. 이 사건은 한 밤중에 도깨비 나타나듯이 혹은 비몽사몽간에 이 루어진 것이 아니라 밝은 대낮에 푸른 바닷가에서 아주 맑은 정신 상태에서 일어난 것이다.

 셋째, 그리스도를 반대하고 거부하여 교회를 핍박하는데 앞장섰던 바울자신이 부 활하신 그리스도를 직접 보고 길바닥에 완전히 거꾸라져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부활 의 증인이 되엇다. 사도 바울의 증거는 힘이 잇엇다. 전에 핍박하던 사람이 이제 는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엇으니 우리는 그의 증거를 진실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런 사실들을 볼 때, 우리 예수님의 부활은 노태우씨가 한국 대통령이 된 것이 나 옐친이 러시아의 대통령이 된 사실과 다름없이 확실한 역사적 사실이다.

 3.이제 이 주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가

주님의 부활은 우리들의 믿음이 헛되지 않다는 보증이다. 내가 믿는 주님이 부 활하셧기에 그는 항상 살아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며 주를 믿는 주님의 어린 양들 을 돌보시고 구원하신다. 죽음으로 끝나는 허무주의가 아니라 죽어도 다시 살고 영 원히 죽지 않는 생명을 우리에게 보장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의 부활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활기와 생명력이 된다.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는 슬픔과 비탄에 잠 겨 무거운 가슴으로 터덜터덜 걸어가고 잇엇으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 그들은 방향을 돌이켜 예루살렘으로 올라갓으며 그들의 걸음걸이도 기쁨으로 훨훨 나는듯 했다. 우리는 주일날마다 죽으신 예수님의 영령앞에 참배하려고 모이는 것이 아니 라, 다시 살아 나시어 그 백성들이 모인 곳에 오시고 함게 하시고 복을 주시는 살 아계시는 주님앞에 나오는 것이다. 우리 주님은 여기 이 자리에도 와 계시어 저와 여러분의 기도와 찬양을 듣고 계신다. 저의 설교를 경청하고 계시며, 이 목사! 좀 더 담대하게, 뜨거운 마음으로 나의 부활을 증거해라고 격려하고 게신다. 그러기에 예수 부활을 신앙하는 성도는 항상 기뻐할 수 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자심감과 감 사와 기쁨으로 전진할 수 있다. 다른 종교, 저 불교나 원불교에서 기독교를 모방하 여 찬불가를 만들어 부르기도 하지만, 그것은 기독교의 찬송처럼 기쁨과 감격이 있 을 수 없다. 인위적으로 만든 가사를 성악가들이 그저 노래하듯 부를 뿐이다. 성도 는 우리 주님이 무덤을 이기시고 다시 살아 나셧다는 것을 감격없이 부를 수 없다.

감사없이 부를 수 없는 것이다.

 4.주님의 부활은 하나의 개시이다.

 농사지으면 곡식중 첫단을 베면 그것을 하나님께 드렷는데, 그 첫단이 곧 에수의 부활이다. 이제 수많은 곡식을 추수하여 곡간에 들여야 한다. 에수님이 부활하셨다 면 조만간 에수님게 붙어잇는 수많은 신자들도 부활할 것이다. 에수님의 부활과 우 리 성도들의 부활은 하나의 추수이다. 추수개시를 해 놓고 첫단만 거둬 들이고 나 머지는 내 팽개치는 농부가 없듯이, 우리 하나님은 구리스도를 부활 시키셨듯이 장 차 우리 온 성도들, 그리스도안에서 잠자는 자들을 다 부활시켜 영원히 주님과 함 께 천국에서 살게 하실 것이다.

 <결론>

성도는 승산없는 싸움을 싸우는 씨름군이 아니라, 다 이긴 싸움, 승리가 보장된 싸움의 군사로 싸우는 것이다.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우리 모두 부활하여 주님 앞에 설 승리의 그 날을 소망하면서 항상 기뻐하고 담대히 복음을 증거하며 즐거운 마음 으로 신앙생활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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