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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죽음이 마지막 말은 아니다 (고전 15: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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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날입니다. 이 찬란한 아침에 부활의 희망과 축복이 성도 여러분의 마음과 생활 속에 넘치시기를 기원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사람이 죽으면 그 죽음으로 끝이 난다는 생각밖에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혔을 때에 다 끝났다고 절망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모든 삶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며 탄식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세상의 권력과 조직과 세상에 침투해 있는
죄악성이 얼마나 크고 강한지에 대해 말 한마디하지 못하고 저들은 절망과 허무속에 빠졌습니다. 제자들의 마음속에는 죽음이 마지막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세상 절망 앞에 인생을 포기하고 각각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이 만나게 되고 부활하신 주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들의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고 삶의 무의미가 의미있는 삶으로 변화했습니다. 허무에 빠졌던 저들이 하나님의 놀라운 생명의 에너지를 공급 받았습니다. 세상 권력과 조직과 세상깊이 침투한 강한 죄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허무하게 무너졌다는 사실을 믿고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이 제자들에게 무슨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던지 그렇게 두려워떨며 예수를 부인하고 도망갔던 제자들이 예루살렘 네거리에 나타나서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예수를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셨다"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의 목숨도 담대하게 바쳤습니다.

왜 그럴 수 있었습니까 죽음이 마지막 말이 아니라고 하는 놀라운 부활신앙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성경 말씀은 [죽음이 우리의 마지막 말은 아니다]라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죽음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에는 세 가지 태도가 있습니다.

인생살이가 힘들고 괴로울 때는 특히 "죽어버리면 좋겠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 버릴텐데....."라는 말을 잘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죽음이 우리 인생의 마지막 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 다음 어떤 사람은 '이 세상살이도 힘드는데 죽은 후의 일을 언제 생각할 수 있겠느냐'고 생각하며 죽은 후에 대해서 무관심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은 후의 사건에 대해서는 아예 관심을 쏟지 않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죽은 후의 세계에 대해서는 우리가 영원한 삶을 살겠지만 그 영원한 삶에 대해서는 삶 자체를 신비속에 묻어놓고 전혀 따지지 아니하는 그런 사람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죽음이 마지막 말이 아니라고 말씀하시고 죽은 후에 대해서 우리에게 놀라운 사실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구약시대 사람들도 죽은 후의 삶에 대해서 막연하게 생각은 했지만 사후의 세계에 대해서 명확한 신앙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죽으셨다가 부활하심으로 인하여, 부활의 주심을 만남으로 인하여 죽은 후의 삶에 대해서 확실히 믿을 수 있고 신앙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죽음이 마지막 말이라고 한다면 예수님도 부활하시지 못하셨을 것이며 기독교라는 종교도 헛된 종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 믿고 죽은 사람도 다 망해버렸다고 그렇게 말할 수 있으며 예수 믿고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 것뿐이라고 한다면 모든 사람가운데 예수 믿는 사람만큼 불쌍한 사람이 없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과거 한국교회의 신앙의 특징은 타계주의입니다. 이 세상을 어떻게 살든지 빨리 죽은 후에 잘살겠다고 하는 것이 과거의 한국교회 신앙의 한 양상이라고 본다면 오늘날 한국 교회 성도들의 신앙은 그 반대라고 봅니다. 타계주의가 아니라 오히려 현실주의입니다. 죽은 후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이 세상 삶에 너무 깊이 빠져 있어서 영원한 삶, 죽은 후의 삶에 대해서 무관심한
것이 오늘날 우리의 신앙생활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봅니다.

그러므로 이 부활절 아침에 사후의 문제에 대해서 깊이 물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죽음을 통하여 우리에게 무엇이 일어 나는가 죽으면 우리의 삶, 자아, 의식, 현 존재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죽으면 그것으로 끝나 버리는가 아니면 긴 밤이 오는가 아니면 영원한 잠이 오는가 우리에게 무(無)가 찾아오는가 아니면 우리는 영원히 사라져 버리는 것인가 과연 죽은 후에 무엇이 나에게 다가올 것인가'라는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생각하면서 우리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에 나오는 사후의 세계에 대해서 너무 사소한 곳에 집착을 하게되면 우리는 하나님의 본래의 의도를 그릇되게하는 과오를 범하기 쉬울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죽은 후의 우리의 삶에 대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큰 흐름들을 종합해서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첫째는 우리는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과 궁극적으로 그리고 영원히 만나게 된다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의 약속입니다. 죽음안에 인생의 목적과 신비가 숨어 있읍니다. 우리의 인생에 죽음이라는 것이 없고 죽은 후에 영원한 삶이 없다고 하면 인생의 목적과 신비가 다 무너져 버리는 것입니다. 동물처럼 살다가 죽으면 끝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인간은 죽으면 무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죽음 안에 인생의 목적과 신비가 그 속에 숨어 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품으로 우리는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으면 죽음안에 광대한 지평이 열리게 된다는 것이 성경이 약속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사실상 우리는 현세에서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하나님과 만나고 있습니다. 예배 중에도 하나님을 체험합니다. 이웃과 서로 나누는 사랑의 정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체험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을 궁극적으로 영원히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희미하게 하나님을 보고 알지마는,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과 만나게 되어질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보게 될 것입니다.

그때는 인생의 모든 수수께끼가 풀리게 될 것입니다. 그때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비록 이 땅에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그 가혜 속에 살지 못하고, 하나님이 가까이 계시지 아니하느냐고 원망했을 때에도 그 하나님께서 우리와 가까이 머물러 계셨음을 그때서야 완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 또한 그때에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시고 얼마나 거룩하시고 얼마나 순결하신 분인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과 궁극적으로 영원히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두번째 하나님을 만나는 만남이 우리에게는 심판이 된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심판하신다고 해서 우리가 생각하는 법정을 추측하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심판하시기 위하여 심판대를 만들어 그 심판대에 앉으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생각하는 그런 심판은 없으실 것입니다. 인간이 선하신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을 직접 만나는 그 자체가 우리에게는 심판이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뵙게 되면 그 순간 눈이 확 열리게 되어 소스라치게 자신을 보게 될 것입니다. 세상에서 살 때 우리의 독선과 무정함과 이기주의와 자기 기만의 환상이 다 붕괴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쓰고 사는 갖가지의 가면이 순식간에 벗겨질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살았던 우리의 모든 삶이 들통이 날 것입니다. 그것이 심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앞에 찬란히 빛나는 모습으로 나타나실 때에 우리가 진정 존재했어야 할 삶의 모습과 실제로 존재했던 우리의 모습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심판입니다.

하나님을 영원히 궁극적으로 만나는 그 만남이 우리에게는 심판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믿고 고백한다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떠한 인생관과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가를 확실히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세번째 우리가 하나님과 영원히 만남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도 영원히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과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거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은 제한없이 용서해 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조건없이 용서하기를 분부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자신이 우리를 제한 없이, 조건없이 용서하신다고 하는 의미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하나님께서 하시지 않는 것을 인간에게 요구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믿는것은 이 세상에서의 삶을 풍부하게 이끌어갈 뿐만 아니라 생애 마지막 순간에 하나님을 만날 때 하나님께서 온전한 사랑과 자비로 우리를 맞이해 주실 것을 확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네번째 우리가 죽으면 우리의 전 존재와 전 생애와 전 인격과 전 업적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가진 재산이나 그 무엇도 가지고 갈 수 없지만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갈 때에 우리의 뒤에 따라오는 것은 우리의 생애입니다. 우리의 인격과 삶의 업적입니다.

누가복음 24:36 이하의 말씀에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제자들이 깜짝 놀라서 예수님의 영혼이 나타났다고 수군거렸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너희들 내 손의 못자국을 보아라. 내 옆구리의 창 자국을 보아라"고 하시고는 "영혼은 몸이 없지만 나는 몸이 있느
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을 때에 부활하신 모습은 영체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은 영혼이 부활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몸이 영체로 부활하셨다는 사실입니다.

헬라의 가장 중심된 사상은 영혼불멸 사상입니다. 사람의 영혼은 선하고 착한 것인데 사람의 육체가 더럽고 악하며 육체는 영혼을 가두어 놓는 감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구원이라는 것은 이 더럽고 추한 육체에서 빨리 우리의 영혼이 해방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의 영혼이 불멸한다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죽은 후에 어떤 형태로 나타나게 되느냐 하면 예수님의 모습처럼 그 몸이 신비한 몸으로 바꾸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모습대로 우리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납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영혼이 다시 살았다고 말하지 않고 예수님의 몸이 다시 살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영혼이 불멸한다고 이야기하지 않고 죽은 자가 다시 산다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고백 가운데 몸이 다시 사는 것을 믿는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 실존으로써 죽고 신령한 영의 몸으로 신비한 몸으로 다시 부활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부활할 때 부활한 몸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 살아왔던 우리의 인격과 모든 삶의 양태를 그대로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의 이 땅에서 했던 모든 수고가 하나도 헛되지 아니하고 그대로 하나님 앞에 설 때 뒤따른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은 타인을 체험한다는 뜻입니다. 타인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었느냐가 오늘 우리의 모습입니다. 이웃과의 공존 안에서 우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에는 우리의 전 생애와 인격을 가지고 간다고 가는데 이것은 우리가 경험한 수많은 이웃과 더불어 하나님 앞에 나간다는 말입니다. 미워했던 사람도 욕했던 사람도 질투했던 사람도 사랑했던 사람도 같이 하나님 앞에 설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우리의 생애와 인격과 업적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간다는 말입니다.

성경에 보면 거지도 죽고 부자도 죽었는데 놀랍게도 그들이 함께 하나님의 실존 앞에 서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최후의 심판에서 가르쳐주는 것은 우리가 이웃과 어떠한 만남을 가졌느냐에 따라서 하나님 앞에 선다고 하는 것입니다.

다섯번째 죽음을 통하여 현재와 같은 시간개념은 끝이 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시간 속에도 달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그것은 착각입니다. 하나님께도 현세와 같은 시간이 있다는 것을 늘 착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천년 전에 죽은 사람은 천년 전에 하나님께 가고 천년 후에 죽은 사람은 천년 후에 하나님께 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현세적인 시간이 더이상 존재하지 아니하는 세계에 계십니다.

하나님은 시간의 창조자이십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전혀다른 시간에 죽었다 할지라도 우리는 순식간에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고 합니다. 이 세상의 시간은 하나님께는 영원한 한 순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원한 한 순간에 모두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9:29에 보면 예수님이 베드로와 야곱과 요한을 데리시고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시기 전인데 거기에서 예수님은 기도하시다가 그 몸이 변화되셨습니다. 신비한 몸으로 예수님의 몸이 변화되셨습니다. 부활의 주님의 모습을 먼저 보여주셨습니다.그때 변화하신 예수님께서 수천년 전의 모세와 수백년전의 엘리야와 순간적으로 함께 대화하는 것을 베드로가 보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더이상 현세적인 시간이 하나님의 나라에는 존재하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숨을 거두는 그 순간에 우리의 역사는 끝나버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죽음은 최후의 심판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2100년에 오든지 2300년에 오든지 간에 그때와 지금 죽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는 동시적인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여섯번째 하나님과의 궁극적인 만남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사건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만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은 우리 앞에 찬란한 모습으로 나타나십니다. 예수님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뵙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과 자비를 알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 앞에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영생이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 그분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모두 맡겨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이 부활하셨을 때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말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일으켰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나사로가 죽었을 때나 나인성 과부의 아들이 죽었을 때에 예수님께서 죽은 사람을 살리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셨는데 예수님이 그들을 향하여 "나사로야,
일어나라"라고 했을 때 옛님의 그 음성알아 듣고 죽은 자들이 살아났습니다.

우리는 육체의 생명이 끝나는 순간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것입니다. 우리를 향하여 "일어나라"하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올텐데 그때 우리는 홀연히 변화할 것입니다.

우리가 죽은 후에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 우리의 이성과 지식으로 더이상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과의 궁극적인 만남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사는 삶보다 더 큰 축복이 없다는 것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낙심치 말고 우리의 믿음에 더욱 열심을 내어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신앙의 생활이 계속되다가 우리의 육체의 생명이 끝나는 순간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 홀연히 우리의 삶이 변하여 하나님 앞에 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모습을 본받아서 주님 앞에 영원히 서게 되는 놀라운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시고 믿음에 더욱 굳게 서서 강건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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