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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 (눅 08:4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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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난 두 시간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온 우주의 주관자 되심을 배웠습니다. 풍랑이 이는 갈릴리 바다를 잔잔케 하신 예수님을 보며 자연을 지배하시는 주관자 예수님을 배웠고 다음은 거라사의 광인을 고쳐 주심으로서 사람의 마음을 지배하시는 예수님을 배웠습니다.
오늘은 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던 여인을 고쳐 주시고 “딸아 평안히 가라”는 말씀을 주시는 예수님입니다. 본문 말씀을 통하여 1년, 2년, 3년, 5년, 10년, 오랜 세월 동안 해결이 되지 않던 불치의 병이나, 인간의 힘으로 해결 하지 못하던 고질 문제가 해결되어 기쁘게 평안함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Ⅰ. 본거지인 가버나움에 돌아오신 예수님(40-42)

거라사에서 6,000마리의 떼 귀신이 들어서 미치광이 짓을 하던 사람을 예수님께서 고쳐 주셨습니다. 이렇게 고쳐 주신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① 한 사람의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 하는 것을 보여 주심이고
② 또 귀신들이 사람들을 괴롭히고 죽이는 악함이 있는 것을 보이시기 위해서, 2,000마리 돼지 떼에 귀신들이 들어가게 허락하심으로 이 돼지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 몰사했습니다. 삽시간에 거액의 물질의 손상을 본 거라사인들과 근방 사람들은 한 사람 깨끗해진 것은 관여치 않고 물질이 없어진 것 때문에 예수님을 거라사에서 떠나시도록 배척을 하므로 본거지로 예수님이 돌아 오셨습니다.(40)
예수님의 본거지가 가버나움인데 이 가버나움에 돌아오시게 되자, 무리가 환영을 했습니다. 모두가 다 예수님이 오시기를 기다렸지만 특히, 회당장 야이로가 죽어 가는 딸 때문에 가장 많이 기다렸을 것입니다.
회당장 야이로에게는 12살 먹은 외딸이 있었는데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유대인의 관습에 의하면 여자 나이 12살이면 성인이 되고 이때부터 시집을 가는데 고이 기른 이 외딸이 시집도 못 가고 병들어 죽게 됐으므로 이 회당장 아버지가 예수님의 오심을 환영하고 예수님께 와서 그 발아래 엎드려 자기 집에 오시기를 간구했습니다. 마가복음에는 자기 집에 오시기를 많이 간구하였습니다.(막5:22,23) 그래서 예수님이 야이로의 집을 향하여 가고 있습니다.

오늘 전하고자 하는 말씀은 이제부터 입니다. 예수님이 야이로의 청을 받고 야이로의 집을 향해 가는 노상(路上)에서 생겨진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야이로의 딸을 살리시기 위해서 가시는 도중이었습니다. 그 가시는 도중, 길에서 생긴 이 놀라운 은혜가 여러분에게도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이 여인도 야이로의 딸이 12살이 듯이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다가 예수님을 노상에서 만나 병고침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우리 주님의 은혜는, 우리 주님의 능력은 언제나 충만합니다. 봇물처럼 꽉 차 있습니다. 주님은 그 능력의 잔을 회당장 집까지 가지고 가시던 도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한방울의 물이 튀어 온 것입니다. 주님께서 길에 떨어뜨린 한방울의 능력이 이 여인을 치유했습니다. 큰 샘의 튀긴 물로 구원을 얻습니다. 이 여인이 나은 것은 여분의 은혜였습니다. 야이로의 딸을 살리려고 가시다가 넘쳐흐르는 튕겨 나온 여분의 은혜에 병고침을 받던 것처럼 여분의 은혜가 이 시간 여러분에게도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풍랑이 이는 바다를 잔잔케 하시고, 군대 귀신을 몰아내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산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여분의 은혜만으로도 여러분의 어려운 문제를 간단히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Ⅱ.내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43-48)

예수님의 행렬이 회당장의 집으로 가는 도중, 길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43,44절을 보십시오.
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중에 아무에게도 고침을 받지 못하던 여자가 예수님의 뒤로 와서 그 옷깃에 손을 대었습니다.
혈루증(血淚症)이란
계속해서 피를 흘리는 하혈하는 병으로서 구약에는 유출병(레15:1-15)이라 하기도 합니다. 이는 하혈하는 병입니다. 이 여인은 12년간 하혈을 하며 살아온 여자입니다.
이 병이 들면,
① 히브리 사회에서는 죄악과 저주로 인해서 발생한다고 여겼습니다.
② 그러므로 이 병을 앓는 환자를 부정한 사람으로 인정하고 멸시와 천대를 하였으며, 완쾌될 때까지 격리하였던 것입니다.(레15;1-12, 25-27)
③ 혈루병 환자가 누웠던 자리나 앉았던 자리도 부정한 것으로 여겼고 그가 사용했던 침상, 옷, 좌석 모두 다 부정하게 여겼습니다.(레15:20-24)
④ 유출병 환자가 만진 질그릇은 깨뜨려야 했고, 목기(木器)는 씻어야 했습니다.(레15;12)
⑤ 이 환자와 접촉하면 옷을 빨고, 물로 온몸을 씻어도 저녁까지 부정합니다.
⑥ 심지어 그 부인과 동침한 남편도 일주일이나 부정하게 됩니다.(레15:24)
⑦ 그러므로 이 병이 들면 대게 남편에게 이혼을 당하게 됩니다.
⑧ 그렇기 때문에 이 여인은 성전 예배나 기타 종교 예식이며 회당 출입이 금지됩니다.
⑨ 처녀가 이 혈루병(하혈)이 들면 시집도 못 가고, 결혼한 여자면 부정한 여자로 버림을 받습니다.
43절을 보면 그래서 이 여자는 병을 고쳐 보려고 좋다는 약은 다 써 보고 유명하다는 의사는 다 찾아 다녔습니다. 많은 의사에게 수치스런 병을 보이며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많은 괴로움과 시달림만 받았을 뿐이지 고침을 받지 못했습니다.
마가복음 5:26절에 보면 그는 많은 의원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있던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오히려 병이 더 중하여 졌다고 하였습니다. 누가복음을 기록한 누가는 의사였기 때문에 동료 의사들을 비난할 수 없어서 마가와 같이 “많은 의원에게 괴로움을 받고, 있던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오히려 병이 더 중하여 졌더라”는 것을 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유명하다는 의사는 다 찾아 다녔을 것입니다. 애굽인 의사, 시리아인 의사, 혹은 히브리인 의사, 또는 로마인의 의사나 희랍인의 의사도 찾아 갔을 것입니다. 의사, 도사, 약사, 사(師)자(子) 돌림을 다 찾아 다녔지만 재산만 다 탕진하고 병은 오히려 더 중하여 졌습니다. 많은 의사며, 약사들에게 속았기 때문에, 꼭 고칠 수 있다고 내게 다 맡기라고 하던 수 많은 사람으로 부터 번번이 속았기 때문에 사람에 대한 불신이 마음 깊이 자리 잡게 되었을 것입니다.
또한 율법적인 사회에서 부정한 자로서, 죄 많은 여자로서 소외당하였을 것입니다. 또, 결혼 할 수도 없고, 결혼을 하였다 하여도 남편으로 부터 버림을 받았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계속하여 하혈(下血)을 하였으므로 언젠가는 죽을 것이라는 사망권세에 시달렸을 것입니다. 또 하혈을 계속함으로 불편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였을 것입니다. 또, 아무리 청결히 해도 냄새가 났을 것입니다. 피를 계속 흘림으로 혈색도 없고 창백한 가운데 탄식하며 모진 목숨이라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여인은 야이로와 같이 공개적으로 도움을 요청할 처지가 못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과 접촉이 금지된 병이라 많은 사람들 사이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기의 수치스러운 병을 고쳐 달라고 말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생각 끝에 무리들 속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자기 병이 나으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무리들 사이에 끼어 들었습니다.
그는 아마도 예수님께서 38년 된 병자를 고치시고, 문둥이를 깨끗케 하시고, 풍랑이 이는 바다를 잔잔케 하시고, 귀신들린 자를 온전케 하신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자신도 나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을 것입니다. 38년 된 병자를 말씀 한마디로 일으켜 세우신 분이시라면, 불치병인 문둥이를 깨끗케 하신 분이시라면 그 옷에만 손을 대어도 나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녀는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음으로 예수님의 옷깃을 만졌습니다.(롬4;18)
구약 창세기 15장에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습니다. 그 나이 100세나 되고 그 아내는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습니다만, 육신적으로는 아무런 소망이 없는데 바라보는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그 하나님의 능력을 바랐습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을 바라보고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것이겠습니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했을 때, 이삭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이 여인은 이 시간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습니다. 그녀는 회당장 야이로처럼 공개적으로 나올 수 없으므로 남몰래 예수님의 뒤로 와서 그 옷깃에 손을 살짝 댄 것입니다.
경건한 유대인이라고 하면 옷에 술을 달아 입었습니다.(민15:37-41, 신22:12) 이 술들은 흰 실과 푸른 실을 섞어 짠 것으로 옷단의 끝에 달려 있습니다. 이러한 장식들을 유대인으로 하여금 옷을 입을 때나 또한 그것을 볼 때마다 자기는 하나님의 사람이며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도록 위임된 사람이란 것을 상기시키기 위한 것이 였습니다.
그런데 후에 유대인이라는 위험을 초래하게 되었을 때는 이런 장식을 속내의에 달았습니다. 그것이 오늘날에도 유대인들은 기도할 때 머리에 어깨에 탈리드(talith)나 숄을 두르거나 걸치기도 하는 모습을 봅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아직 이 장식들을 겉옷에 달고 다녔으며 그 여인이 손댄 것은 이런 것 중에 어느 술 하나를 만졌을 것입니다. 그렇게 만지는 그 순간 그 혈루 근원이 즉시 말랐습니다. 그 여자는 나았다 하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12년 동안을 온갖 수모를 다 겪으며 재산을 다 날려도 고치지 못한 고질병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는 그 순간에 완전히 근본적으로 치료가 되었습니다. 이 여자는 혼자만 알고 하늘을 날아 갈 듯이 기뻐서 “예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하며 속으로 춤을 추며 기뻐하며 어쩔 줄 몰라 하였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귀중한 진리를 하나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때 예수님 주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옹위 해, 밀고 밀리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 대인 사람도,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진 사람도 한 두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능력이 유독이 이 여자에게만 나갔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오늘날 한국에만 일 천만이 넘는 교인들이 있어 너도나도 잘 믿는다고 큰 소리를 치는 이들이 많은데 누가 과연 예수님의 능력과 은총을 받을까 입니다.
대고, 만지고 예수님의 몸을 껴안는다고 고침을 받을 수 있나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오직 이 여자와 같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예수님은 능히 할 수 있다는 믿음의 확신을 가질 때, 이런 역사가 나타나는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없습니다만, 마가복음 5:27절에 이 여자는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예수님의 옷깃을 만졌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이 여자는 예수님의 소문을 많이 듣고 예수님은 확실히 나를 고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그 옷깃을 만졌을 때 그 병이 즉시 나았습니다.
바라기는 매주일 낮, 밤, 수요일 예배에 빠지지 않고 잘 참석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이 자라나서 주의 영광을 맛보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에게서 능력이 나간 것을 아시고 무리를 돌아보시며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내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 하였습니다.
제자들은 무리가 에워싸 미는데 손 댄 사람이 한 두 사람이어야 찾지 전부 대이고, 스치고, 잡고, 밀고, 밀리고 하는데 알 수 없다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46절에 “주여! 무리가 옹위하여 미나이다”했습니다. “아이고, 예수님도 딱하기도 하십니다. 무리들이 이렇게 밀고 당기고 야단인데 어디 한 두 사람이 만져야 알지요 그것을 알아서 무엇하시렵니까” 하며 이해가 안된다는 듯이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더욱 확신 있게 “내게 손을 댄 자가 있도다 이는 내게서 능력이 나간 줄을 앎이로다” 예수님은 당신 자신에게서 능력이 나갔다 하시면서 두리번두리번 찾으셨습니다. 이 때, 이 여자는 이젠 죽었구나 하고 눈을 감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녀는 부정한 자로서 거룩하신 예수님을 만졌습니다. 그녀는 이제 율법의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또 몰래 예수님의 능력을 훔치려고 하였기 때문에 죄의식이 들었을 것입니다.
제가 국민학교 다닐 때, 우리 반에서 물건이 없어졌습니다. 선생님이 들어오시더니 “다 눈 감아! 손은 머리 뒤로 올려 가락지를 껴라”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선생님은 알아, 가져간 사람 이마에 글이 쓰여 있다” 하십니다. 또 하시는 말씀이 “자기 가방인 줄 알고 잘못 손을 넣었다가 가져갔는지 잘 생각해 봐라. 가져간 사람은 얼굴에 표가 난다”하니까 더이상 속일 수 없었는지 한 아이가 고백을 하게 되었고 그 물건을 찾은 일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여인은 더 이상 숨길 수 없어서 예수님께 나아 와 엎드리어 그 손을 댄 연고와 곧 나은 것을 모든 사람 앞에 고하였습니다. 자초지종을 그대로 고하였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셨습니다. “딸아!”는 (헬,디데르) 아버지가 사랑하는 자기 딸을 부를 때 사용하는 사랑스런 호칭입니다.
예수님은 그녀를 하나님의 딸로 영접하여 주셨고, 그리고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구원을 선포하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녀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을 수 없는 중에 믿는 믿음에 기뻐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확실한 소망을 가지고 예수님의 옷깃에 손 댄 그 믿음의 행위를 인정하셨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이 여자가 병만 낫고 그냥 돌아가도록 했더라면 언제 병이 도질지 불안하게 살아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녀를 불러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신 것입니다. 두려움 없이 살아가도록 하셨습니다.
지금도 성지에 가보면 빌라도의 재판석에서 부터 저 골고다까지 열 네 정유소가 있는데 그 정유소를 “비아돌로사”(via dolorsa)라 부릅니다. 십자가를 지시고 가다가 지쳐서 쓰러지신 군데군데마다 팻말을 세워 두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온전신에 피멍이 들고 얼굴에 땀이 흐르면서 3번째 쓰러지신 곳이 제 3 비아돌로사인데 여기서 혈루병으로 앓다 나은 여인이 자기의 수건으로 예수님의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아 드렸다고 합니다. 이가 베로니카(veronica)로 오늘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는 병이 낫고 그 후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봉사하고 주의 일에 힘썼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이 여인처럼 혼자만 갖고 있는 불치병이 있습니까
주님을 의지하여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랄 수 있고, 믿을 수 없는 중에 믿는 믿음을 소유하여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덧입고 영광 돌릴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 딸들이 됩시다.

199

4.

7. 3

1. 주일 낮 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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