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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눅 09:2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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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 베드로가 가이사랴 빌립보 노상(路上)에서 “하나님의 그리스도”라는 위대한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이 고백을 들으신 예수님은 그리스도가 받아야 할 고난과 그리스도를 쫓는 제자의 도리가 어떠해야 함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영광스런 모습으로 변형되신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이 사건을 제자들에게 보여 주심으로 부활에 대한 믿음과 소망을 심어 주셨을 뿐만 아니라 장차 남아서 일할 수 있는 힘을 주신 것이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십자가를 싫어하는 제자들에게 친히 나타나셔서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할 것을 친히 명령을 하셨습니다.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은 본래 어떤 분이시며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들어야 할 말씀은 무엇인가 배우고 순종하는 성도님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Ⅰ.변형되신 예수님(28-31)

28절을 보십시오. “이 말씀을 하신 후”가 나옵니다. 이 말씀을 하신 후란 지난 시간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시고 난 후입니다. 즉, ① 그리스도께서 배척을 받으사 죽임을 당하시고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실 것 즉, 부활하실 것과(22) ② 그리고 예수님을 따른 제자의 도(道)가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를 것과(23) ③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장차 영광스러운 심판자로 세상에 다시 오실 것을(26) 말씀하신 후이겠습니다.

이런 이 빌립보 도상의 사건이 있은 후 8일쯤 된 때였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이 산은 헤르몬산입니다. 통상적으로 변화산(變化山)이라 부릅니다. 가이사랴에서 14마일의 거리입니다. 이 산의 높이는 약 3,000m나 됩니다. 우리 나라 백두산이 약 2,700m입니다만, 백두산보다 훨씬 더 높은 산으로 날이 맑을 때에는 예루살렘에서도 이 산이 보이고 사해에서도 보인다고 합니다. 또 사시사철 흰 눈이 덮여 만년설(萬年雪)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몇 시간을 올라가셨는지 높은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여기 왜 올라가셨습니까 28절에 “기도하시러” 올라가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배 시간만 되면 잘 조시는 분은 오늘 위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선배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잘 졸았습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조는데는 능숙한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마지막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역시 이 세 제자를 따로 데리고 나가사 이들에게 깨어 기도할 것을 부탁했는데 기도하시고 돌아와 보니 다 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23절을 보면 또 이 세 제자는 졸고 있었습니다. 멀고 험한 산길을 올라온 탓인지 피곤하여 졸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혼자 기도하셨습니다.(29) 이렇게 기도 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났습니다. 마태는 기도하실 때,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빛나더라”(마17:2)라고 기록하고 있고, 마가는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심히 희어졌더라”(막9;3)라고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변형을 하셨나요 베드로가 신앙고백을 했으나 고백을 하면서도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 왕이 될 것을 생각했습니다.(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행1:6))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 왕이 되면 자기도 우정승이나 좌정승을 생각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세상 왕이 될 것을 생각하고 예수님이 왕이 되면 세상 영광을 가지는 동시에 자기도 영광을 누릴 것을 생각했습니다. 베드로는 세속 영광을 생각 했습니다.

지난 시간 신앙고백을 한 시몬 베드로에게 22절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림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알려 주셨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확실히 몰랐던 것 같습니다. 이런 베드로에게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서 장차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別世)하실 것을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베드로는 예루살렘을 올라갈 것을 생각하고 예루살렘에 올라가 왕 노릇 할 것을 생각하고 바랬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떠날 것과 벨세(別世)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곧 예루살렘에 올라 가 십자가를 지실 것을 말씀했습니다. 십자가 없는 영광이 없는 것을 보여 준 것입니다. 십자가 넘어 저 찬란한 영광을 보여 준 것입니다. 베드로는 십자가 없이 이대로 좋사오니 하였으나 하나님은 저의 말을 들으라 하셨습니다.
십자가 없는 영광은 없습니다. “No cross No crown!” 입니다.

예수께서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했다고 했는데 이 변화한 것 이것이 예수님의 본래의 모습이요, 예수님의 본래의 영광입니다. 이는 또 앞으로 영원한 예수님의 모습이요, 예수님의 모습이 이럴 것입니다.
이런 이 본래의 모습에서 예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려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신 것이겠습니다. 그러므로 이 십자가는 영광에로 나아가는 길이요, 본래의 모습대로 나아가는 필수 조건입니다. 이것은 헤르몬산에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메시야의 영광이란 십자가와 함께 있는 것입니다.
또 왜 이런 변형을 하셨나요 이런 헤르몬산의 영광을 보아야 제자들이 십자가를 질 수 있고, 이 십자가의 길을 걸어갈 수 있기에 이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제자들이 십자가를 잘 지고 가기 위해서 앞에 있는 사건을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런 이 변형을 보여 주실 때, 문득 두 사람이 나타났는데 이는 구약에 유명한 모세와 엘리야였습니다. 이들은 영광 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는 율법을 받은 자로서 율법의 대표자요, 엘리야는 선지자를 대표하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별세는 모세의 율법을 완성하고 모든 선지자의 예언을 성취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또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의 노예살이에서 구원해 준 구원자요, 엘리야는 이스라엘을 우상 바알 숭배의 죄악에서 구원한 위대한 선지자입니다. 이들은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많은 고난을 당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도 많은 고난을 받고 예루살렘에서 별세(別世)하심으로서 멸망할 모든 인생을 죄의 사슬에서 구원하여 주실 것을 말하여 주시는 사건이겠습니다.

한편 제자들은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님께서 별세하실 것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별세란 말은 원어로 “exdos”입니다. 곧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탈출할 때 쓴 단어입니다. “exdos” 출애굽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죽으심을 “별세”라고 한 것은 예수님의 죽으심이 출애굽의 사건과 같이 영광스런 사건임을 말해 줍니다.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므로, 양이 죽으므로 애굽에서 탈출이 됩니다. 해방이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안전합니다. 양의 죽음이 이들의 생명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별세하심으로 “exdos”가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 드려서 예수님의 죽으심이 출애굽의 사건과 같이 영광스런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십자가의 진리를 받아 드리지 않고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모세와 엘리야의 대화를 듣고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이 영광스런 별세(exdos)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놀라운 체험을 하고 나서야 이 제자들은 주님의 부활 증인이 되고 십자가를 달게 지고 주님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이와 같이 놀라운 변형과 벨세(exdos)의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부활 신앙이 확실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고난도 즐거움으로 감당하며 믿음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초대 교회는 로마의 극심한 박해 속에서도 믿음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믿음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변형되신 예수님의 영광스런 모습과 그리고 별세의 의미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변형되신 예수님, 영광스런 예수님을 바라보며, 최후 승리를 믿고 끝까지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쫓을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Ⅱ.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32-36)

예수님께서는 기도를 하시는데 베드로와 및 함께 한 자들이 곤하여 졸다가 아주 깨어 예수의 영광과 및 함께 선 두 사람을 보았습니다. 이런 이 관경을 보고 얼떨결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이 말을 해 놓고도 자기의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더라”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지금 이 시간이 너무너무 좋아서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를 않습니다. 그저 이대로가 좋은 것입니다. 베드로는 분명히 식구들이 있습니다. 산하의 가족들이 있습니다만, “여기 이대로 좋습니다”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유대로 올라가 유대인의 왕이 되는 것도 잊어버렸습니다. 뭐 로마를 뒤엎고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자기는 곁에서 좌,우정승이 되는 것도 생각나지 않습니다. 지금 이대로 좋사오니 이대로 영원히 살았으면 입니다. 이대로 영원했으면 하는 소리가 자기도 모르게 입으로 흘러 나온 것입니다.

젊은 사람들이 대게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 한참 달아오르면 이대로 영원했으면, 이대로 죽어도 좋다 하는 것처럼 이대로 였으면...... 베드로가 말하는 것입니다.

몇 해전에 어느 성도님이 성경 공부를 하고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너무너무 주님의 은혜가 좋으니 이대로 계속 이어졌으면 참 좋겠습니다. 요즘같이 이랬으면 좋겠습니다”하는 것을 들어보았습니다.

조금 전 베드로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고 했습니다. 조금 전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이 찬란한 여왕, 이 기쁨, 이 행복이 장래에 있을 것입니다. 이 산상의 영광은 장래에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지금 엄청난 자기 부정을 하는 것입니다. 이 거룩한 영공을 바라보고는 순간 산하(山下)의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으므로 이대로가 좋습니다라고 한 것입니다. 세속 영광 뭐 예루살렘에 올라가 왕이 되는 것과 족히 비교할 수 없으므로 이대로 영원히 있자고 베드로가 제안을 했습니다. 취중 진담이라고 베드로가 곤하여 졸다가 잠에서 아주 깨서 얼떨결에 한 것 같아도 이게 진심입니다.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이 말을 할 즈음에 구름이 와서 저희를 덮었습니다. 높은 헤르몬 산정에서는 지금도 갑자기 구름이 와서 덮고 또 순식간에 사라진다고 합니다. 이것은 순식간에 나타나는 자연의 현상이라고 하나 성경에는 언제나 구름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냅니다. 구름이 와서 저희를 둘러 덮고 구름 속으로 들어갈 때에 구름 속에서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셨습니다.(35)
마태복음에는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마17:5) 하셨습니다.

저의 말을 듣는데 이 영광이 주어집니다. 산하(山下)의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는 영광에로 나아가는 길은 저의 말을 듣는데 주어진다고 구름 속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이 지금 헤르몬 산정의 거룩한 영광을 누리는 길은 저의 말을 듣는데 있습니다. 앞으로 영원히 있을......지금 조금 전에 바라본 황홀한 그 영광으로 들어가는 길은 저의 말을 듣는데 주어지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을 때, 장차 이 영광을 우리가 소유할 것입니다. 이 세속의 영광과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으로 들어가는 길은 저의 말을 듣는데 이 영광이 주어집니다.

그러면 베드로가 들어야 할 말씀은 무엇입니까
먼저는 22절로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는 부활의 복음을 받아 드리라는 것이요,
둘째는 제자의 도리를 받아 드려야 함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을 것이니라”(23)고 하십니다. 자기 부인, 자기 십자가 없이는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여기가 좋사오니”보다 예수님의 말씀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쫓는 것입니다” 이것이 저의 말을 듣는 것입니다.
셋째는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것입니다.
26절입니다. 주님은 심판의 주로 다시 오신다는 것을 받아 드리라는 것입니다.

우리 앞에는 저 헤르몬산의 영광,베드로가 보던 그 영광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 세속의 영광과 족히 비교 할 수 없는 이대로 좋사오니 하는 그 영광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 그 영광을 바라보고 십자가를 달게 지고 가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도록 합시다.

우리 눈 앞에 보이는 저 높은 곳, 저 영광은 저의 말을 듣는데 얻어지는 것입니다.

199

4.

9.

4. 주일 낮 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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