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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신 예수님 (눅 09:3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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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난 시간 예수님께서 헬몬 산에 (세 제자와) 올라가 기도하시다가 변형되신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에 대하여 배웠습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변화 산에서 내려오셨을 때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산상(山上)에서 기도하실 때 산하(山下)에는 9명의 제자들이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려고 하다가 실패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믿음이 없는 세대를 보시고 탄식하시며 책망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 가장 슬퍼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배우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Ⅰ.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를 책망하신 예수님(37-41)

지난밤 헬몬 산에서 예수님은 기도하시다가 변형되시고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서 이야기하는 광경이 너무 좋아서 베드로는 졸다가 깨어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초막 셋을 짓고 여기 살자고 한 것이 밤에 이루어졌고 그 밤을 산에서 지내시고 이튿날 산에서 내려 오셨습니다.
이렇게 산에서 예수님의 일행이 내려오니 산하(山下)에 큰 무리가 예수님을 기다렸다는 듯이 반가이 맞았습니다. 이 무리들은 자기들이 해결 할 수 없는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기만을 애타게 기다렸던 것 같습니다.
이 때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예수님께 나아 와 소리 질러 간청을 했습니다. “선생님 청컨대 내 아들을 돌아보아 주옵소서, 이는 내 외아들이니이다. 귀신이 저를 잡아 졸지에 부르짖게 하고, 경련을 일으켜 거품을 흘리게 하며, 심히 상하게 하고야 겨우 떠나가나이다”(38,39) 했습니다. 아이아버지는 자기 아들이 ① 귀신들렸다는 것과 ② 간질 병이 들렸다는 것과 ③ 마가복음에는 귀먹은 벙어리(막9:17,15)인 것과 ④ 외아들인 것을 알렸습니다.
부모의 기쁨은 자식입니다. 자식이 무럭무럭 자라고, 자기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또 이 아들은 외동아들입니다. 외아들에 대한 부모의 기대는 참으로 큽니다. 이 외아들을 통하여 대를 잇고 꽃을 피워 보자는 기대가 큽니다. 그러므로 이 외아들은 가정에 희망이요 꽃봉오리와 같은 존재입니다.
그런데 이 외아들의 상태는 어떠했습니까 귀신이 들렸고, 귀 먹었고, 벙어리 되었고 간질병까지 겹쳤습니다. 이 얼마나 답답하고 기가 막히는 일입니까 더 나아가서 귀신에 잡혀 있어서 귀신이 저를 잡아 갑자기 소리를 지르게 합니다. 또 발작을 일으켜 거품을 내게 하고, 경련을 일으킵니다. 아무데나 쓸어져 몸에 깊은 상처를 입힙니다. 그리고서야 겨우 떠납니다. 이런 외아들을 가진 부모의 심정이 어떠하겠습니까 너무나 애처롭고 피가 마르는 고통을 겪었을 것입니다. 한번씩 발짝을 하여 거품을 질질 흘리며 부들부들 떨면서 죽어 가다시피 괴로움을 겪는, 그리고 온몸에 피투성이가 된 자식을 볼 때, 고생하는 보람도 없고 삶의 기쁨도 없었을 것입니다. 또 일할 힘도 없었을 것입니다. 누구를 위해 돈을 버는 것입니까 그래서 온 집안이 슬픔과 절망적인 생각에 시달렸을 것입니다. 이런 자식을 두고 죽지도 못할 것입니다. 이런 자식을 둔 어느 한 사람이 자식을 고쳐 보겠다고 제자들에게 데리고 나왔습니다.
이 아비는 예수의 소문을 듣고 한 가닥의 희망과 기대를 걸고 아이를 데리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세 제자인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산에 가셨고 산 아래에는 9제자만이 있었습니다. 이 아비는 이 아홉 제자들에게 자기 아들에게 들어가 있는 귀신을 내어쫓아 주기를 구하였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능히 쫓아내지를 못했습니다.(40)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를 주셨고, 이 권세를 받아 가지고 나가서 선교 사역을 할 때, 귀신이 쫓겨 나가며 병이 낫는 경험을 했습니다.(막6;13) 지난번에는 되었는데 지금은 되지를 않습니다. 마가복음 9:14절에 보면 이 때 서기관들이 나와 있었습니다. 이 서기관들은 예루살렘에서 파견된 종교 지도자들입니다. 이들은 “어디 보자, 병을 고치나 못 고치나”하며 지켜 보고 있었습니다. 또 큰 무리들이 지금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이전과 같이 했는데도 귀신이 나가지 않았습니다. 호령을 해도 끄떡하지 않고 눈만 말똥말똥합니다. 제자들은 귀신을 쫓아내지를 못했습니다.

그럼, 제자들이 왜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까
그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전에는 되었는데 지금은 왜 안됩니까
⑴ 첫째, 그들은 기도를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기도하지 않고 한번 해 봤다는 생각, 지난번에 잘했으니까 이번에도 잘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들은 자기들의 경험을 의지했습니다. 경험을 의지하는 만큼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게 됩니다. 경험을 의지하는 마음이 있으면 기도가 간절하지 않습니다. 세 제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을 따라 기도하러 갔으나 9제자들은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기도하지 않고 경험만을 의지하니까 귀신이 나갈 리 없습니다.
① 제자들은 귀신을 아무리 쫓아내도 나가질 않았습니다. 많은 무리들과 서기관들에게 큰 창피를 보고 난 뒤 어느날 어느 집에 들어가 제자들이 예수님께 묻기를 “선생님 지난번에 우리는 어찌하여 귀신을 내쫓지 못했습니까” 했을 때, 예수님은 마가복음 9:29절에 “기도 외에는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② 구약에 다윗은 전쟁을 하면 백전백승을 하였는데도 전쟁에 나갈 때마다 자기 경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께 묻는 기도를 하고 나갔으므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기도하여 승리했습니다.(삼상23:2,4 30:8 삼하5:19,23,25)
③ 이런 일화를 어느 설교집에서 읽었습니다.
김익두 목사님이 길을 가다가 어느 미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이 미친 사람을 안수를 하여 고쳐 보려고 마음을 먹고 혹시 기도하여 낫지 않으면 어떻하나 해서 보는 사람이 없는가 사방을 휘휘 둘러보고서는 없으니까 머리에 손을 대며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더러운 귀신아 나가라!” 고 명령을 하니까 이 사람이 놀라서 “뭐요!” 하는 바람에 혼이 나서 쫓겨가면서 생각하기를 ‘이래가지고 어떻게 목사를 하나 귀신 하나 못 쫓아내는 목사!’ 그래서 회개하고 기도를 많이 하여 능력 받아 크게 역사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경험을 의지하거나, 기도하지 않고 일을 하면 실패합니다.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는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⑵ 둘째, 믿음이 없고 인간적인 생각에 메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고 인간적인 생각에 메여 있었기 때문에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당시의 제자들은 서로 인간적인 경쟁심에서 갈등에 시달린 것 같습니다. 특히 9장에 들어오면서 제자들은 전도 여행을 하고 돌아와 선교 보고회를 가졌습니다. 선교를 해서 성과가 좋은 제자는 우쭐했고, 그렇지 못한 제자는 좌절감에 사로잡히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46절을 보면 제자들이 서로 누가 크냐 다툰 것을 보면 경쟁심에 매우 시달린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기도하러 가실 때,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가시고 나머지 제자들은 산밑에 있게 했습니다. 그래서 세 제자의 마음속에는 우월감이 생겼고 나머지 아홉 제자는 소외감과 열등감에 빠졌을 것입니다. 예수님도 왜 그렇게 하시는가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불평을 하게 되니까 영적 분별력도 사라지고 영역도 뚝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 것입니다.
본문의 사건과 똑같은 맥락에서 마가복음 17:19-20절 제자들이 일단은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고 변화 산에서 기도하고 오신 예수님은 쫓아내셨습니다. 이 아홉 제자는 간신히 예수님 때문에 부끄러움을 모면하고 어느 조용한 장소에서 물었습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했을 때, 예수님의 대답이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겨자씨는 아주 작아서 볼펜으로 점을 찍어 놓은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 생명이 있을 때는 나물보다 더 커서 3m가지도 자라는 나무가 됩니다. 작아도 그 안에 생명력이 있을 때, 흙을 뚫고 자라서 큰 나무처럼 됩니다. 이 산 믿음이 없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아홉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기도하러 가실 때, ‘왜 베드로,야고보,요한만 데리고 가느냐 우리는 제자가 아닌가, 왜 우리만 산기슭에 두고 가셨나’ 하는 불평과 불만, 원망을 했기 때문입니다. ‘아마 우리 선생님께서 뜻이 있어서 그랬겠지’ 하며 긍정적이어야 하는데 불신하고 인간적인 생각에 빠졌으니 감사도 없고, 기도도 못하고, 선생님에 대한 불신이 있으므로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아이의 아버지가 말합니다. “당신의 제자들에게 내어 쫓아 주기를 구하였으나 저희가 능히 못하더이다” 했을 때, 예수님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라고 하셨습니다.
아무튼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귀신을 제어하며 병 고치는 능력을 주셨는데도 행하지 못했음은 ① 기도하지 않은데 있었고 ② 믿음이 없는데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능히 고치지 못하더라는 아이 아비의 말을 들으신 예수님은 41절에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믿음이 없고 패 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를 참으리요 네 아들을 이리로 데리고 오라 하시니”
예수님은 믿음이 없고 패역한 그 세대 사람들을 보시고 탄식하셨습니다. 3년 동안을 데리고 다니면서 가르치고 보이고 했는데도 귀신들린 아이 하나 제대로 돕지 못하고 쩔쩔매는 것을 볼 때, 한심한 것입니다. 그리고 불신에 빠져 믿음 없는 것을 보시고 주님은 슬퍼하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셔서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셔야 합니다. 이들과 오래 계실 날도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양 한 마리도 제대로 도울 수 없음을 보시고 탄식하시고 슬퍼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기도하는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11:6절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그가 계신 것과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賞)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 했습니다.

Ⅱ.귀신을 꾸짖으신 예수님(42-45)

예수님은 믿음이 없는 세대를 책망하시고 그 아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아들을 이리로 데리고 오라” 이렇게 하여 데려 올 때에 귀신이 저를 거꾸러뜨리고 심한 경련을 일으키게 했습니다. 귀신이 아이를 “거꾸려 뜨렸습니다.” 여기 거꾸려 뜨리는 것은 권투 선수가 자기 적수를 녹아웃 펀치로 넘어 뜨릴 때나 혹은 레슬링 선수가 상대방을 집어던지는데 사용하는 말입니다.
귀신이 하는 짓을 보십시오. 졸지에 꽥꽥 부르짖게도 하고, 경련을 일으켜 거품을 질질 흐리게도 하고 심히 상하게도 합니다.(39) 완전히 거꾸려 뜨려 녹다운을 시킵니다. 그것도 예수님께 데려 나올 때 최후 발악으로 완전히 죽은 것처럼 집어 던진 것입니다. 귀신은 이렇게 좌절하게도 완전히 죽은 것 같은 실패로 몰아넣습니다. 자기 때가 얼마 남지 않음을 알아서 더욱 삼킬 자를 찾아 두루 돌아다닙니다.
오늘 본문에는 심한 경련을 일으켜 완전히 집어던져 녹다운이 되게 해 버렸습니다. 이럴 때 낙심하지 맙시다. 그 뒤 절을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보신 주님께서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시고 아이를 낫게 하사 그 아비에게 도로 주었습니다. 누가복음에 귀신을 꾸짖어 쫓아내신 곳이 여러 곳 있습니다.
4;35절 예수님께서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귀신 들린 자가 있어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려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라” 할 때, 예수님께서 꾸짖어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습니다.
4:39절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을 때, 꾸짖어 낫게 하셨습니다.
4:41절 귀신들이 떠들고 소리지르니까 예수님은 꾸짖어 잠잠케 하셨습니다.
마8:26절 풍랑 이는 바다를 꾸짖어 잔잔케 하셨습니다.
본문에는 이런 이 간질 병자를 꾸짖어 낫게 하셨습니다.
악령들은 우리를 넘어지게 하고, 병들게 하고, 거꾸려 뜨려 완전히 죽인 것처럼 하고, 심히 경련을 일으키고, 풍랑도 일게 하지만 그래서 완전히 녹다운 된 아무런 가망이 없는 것으로 만듭니다. 그러나 이 때, 주님은 우리편이 되사 꾸짖어 낫게 하시고 완전하게 하사 아비에게 도로 주었습니다.
귀신들은 그렇게 하였으나 예수 그리스도는 악령의 세력을 꾸짖어 그 큰 문제를 해결해 원상태로 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풍랑 이는 바다 위에서 제자들이 사경을 헤맬 때, 바람과 바다를 꾸짖어 잔잔케 해 주시고 병으로 고생할 때, 우리편이 되사 이 질병을 꾸짖으시던 예수님. 완전히 넘어져 거품을 입에 물고 헤어나지 못할 때 귀신을 꾸짖어 쫓아 주시고 일으켜 주시던 주님이 우리를 일으켜 세워 주시는 주님이십니다. 그 주님이 우리 가운데 계셔서 우리를 도우십니다.

더러운 귀신이 떠나가고 아이가 온전해지자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위엄을 놀라니라” 했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의 위엄(the greatness of God)을 보고 기이히 여겼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죽은 것처럼 내동댕이 치고 거꾸려 뜨리는 귀신을 다스리고 꾸짖으시니 이런 귀신을 다스린 예수님께 환호의 갈채를 보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 영광을 돌리고 환호의 갈채를 보낼 때, 44절을 보십시오.
환호의 갈채를 보내는 그 순간 자기는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귀에 담아 두라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기우리라”
예수님은 변화 산에서 영광스런 모습으로 변형되시고 또 귀신들린 아이를 고쳐 주심으로 하나님의 위엄을 나타내 보이신 동시에 많은 영광 받으실 때, 고난의 길을 가야 하리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9:22절에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있은 후 예수님께서 수난 예고를 하시자 베드로는 그럴 수 없다고 완강히 만류를 했습니다. 이런 베드로를 아신 하나님께서 변화 산정에서 변화하는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의 나타남을 보고 여기 있는 것이 좋다고 하자 하나님은 이 영광에 이르려거든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고난으로 나아가는 것이 영광의 길이기에 저의 말을 들으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영광을 받으실 때도 유유히 사명의 길을 걸어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앞에 있는 영광을 바라보며 십자가를 개의치 않으시고 이 길을 가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배우는 우리도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으므로”(롬8:18) 그 영광을 바라보며 십자가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199

4.

9. 1

8. 주일 낮 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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