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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엠마오의 두 사람 (눅 24: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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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일에는 찢어진 휘장에 대하여서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았습니다.
오늘은 실의에 빠져 엠마오 도상으로 내려가던 두 사람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가던 발길을 되돌려 살벌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바라옵기는 오늘 이 자리가 엠마오 도상으로 내려가던 두 사람이 주님을 만나는 장소가 되어 변화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인들이 다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Ⅰ.잘못된 앎(13-22)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영생은 곧 유일(唯一)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했습니다.(요17:3)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바로 알지 못해서 실족하고, 실의에 빠집니다.
오늘 본문에도 두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지 못하여서 신앙을 저버리고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13절을 보십시오.
“그날에 저희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25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촌(村)을” 가고 있었습니다.
여기 “그날”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고 사흘째 되는 날(21) 곧 부활하신 주일날로 여자들이 제자들에게 부활 소식을 전한 날입니다.
이 날에 둘이 예루살렘에서 25리 떨어진 엠마오라는 촌을 향하여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여기의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본문이 밝힌 대로 글로바이고 다른 한 사람은 본서를 기록한 누가라고 보겠습니다.
이들이 엠마오로 가면서 최근에 예루살렘에서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였습니다. 최근에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일은 예수님에 관한 일입니다. 이 일에 대하여 주거니 받거니 하는데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저희와 동행하시나 저희의 눈이 가리워져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엠마오는 예루살렘에서 서북쪽 욥바로 12km 정도의 쿨로니에(kulonieh)로 추측됩니다. 요세푸스의 전쟁사에도 엠마오로 나타납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요20:14절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한 것처럼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도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이는 바울이 종종 말한 대로 신령한 몸, 부활하신 몸이었기 때문이겠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문을 닫아 두어도 들어오시고 그러면서 사라지시는, 그러면서 볼 수 있는 Seeing Body요 그리고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예수님은 있고(눅24:39) 동시에 11제자와 500여 형제에게 나타나 보이시고 문이 닫힌 곳도 들어오시고, 음식을 잡수시는 신령한 몸 Spiritual Body였습니다. 엠마오 도상에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는 다메섹 도상에 바울에게 나타나시고 인도 도상에 나타나시고 계속하여 억만 성도의 행로에 나타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은 장차 부활할 성도의 영체의 표본이기도 합니다.(롬6:5)

예수님께서 그들과 동행하시나 저희의 눈이 가리워져 그인 줄을 알아보지 못하는 이들에게 예수께서 너희가 길을 걸어가면서 주고받는 이야기가 무슨 이야기였느냐고 묻자 이들은 슬픈 빛을 띠고 멈추어 섰습니다. 그들 중에 한 사람인 글로바라 하는 이가 말하기를 당신이 예루살렘에 우거하면서 최근에 거기서 일어난 일을 홀로 모르고 있었단 말입니까
가는 방향을 보아 예수님도 예루살렘에서 온 것이 분명한데 온 예루살렘이 알고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그 일을 홀로 알지 못했느냐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무슨 일인가 되물으셨습니다.(19)
이 둘 중에 누가 대답을 했는지 모르겠으나 예수님에 대해 쭉 설명을 했습니다.
먼저는 예루살렘에서 된 큰 일은 나사렛 예수의 일이었다고 밝힙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한 선지자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선지자를 우리 대제사장과 관원들이 십자가에 못박았다고 했습니다. 당시 일반 민중들도 제사장과 관원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구속할 자라고 바랐노라 그런데 이스라엘을 구속해 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앎이 잘못된 앎이었습니다. 이들은 생각하기를 예수님이야말로 모세와 같이 이스라엘을 원수인 로마의 억압에서부터 해방을 시켜 주고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할 것으로 믿었습니다.
이러한 개념은 일반 유대인들도 다 가지고 있었습니다. 메시아가 오시면 로마의 세력을 타도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할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제자들도 종종 그날이 오면 누가 주님의 보좌 우편에 앉을 것인가 그것을 가지고 다투기도 했습니다. 특별히 사도행전 1:6절에 승천하실 예수님 곁에서 제자들이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이니이까” 합니다.
제자들은 이처럼 몰랐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육적 구원, 정치적 구원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일이 된지 사흘이 되었는데 아무 일도 없고 또 그 분이 선지자인 줄 알고 따랐는데 너무나 무력하고 허무하게 십자가에 죽어 버리자 그들의 기대가 무너져 실의에 빠져 지금 엠마오로 내려간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또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부활을 알지 못했습니다.
22,23절을 보십시오.
이들은 여자들이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그가 살아나셨다고 하는 천사의 나타남을 보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24절을 보십시오.
베드로가 무덤에 가서 과연 여자들의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다고 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두 번씩이나 들었습니다. 그러나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선지자로 알고 따르던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을 때 받은 충격이 너무나 컸기 때문에 부활의 소식이 전해져도 믿지를 못하고 슬픔과 절망에 찬 마음으로 힘없이 엠마오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여기 실의에 빠져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사람에게는 예수님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서너 가지 있습니다. 예수님을 잘못 알았기 때문에 슬프고 낙심하며 엠마오로 갔다고 봅니다.
먼저는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아인데, 막연히 선지자로 알고 있었습니다.(19)
둘째는 예수님은 그리스도로서 영적 구주가 되시는데, 정치적으로 이스라엘 회복 자라고 알고 있었습니다.(21) 이 이스라엘 회복이 안된 때 “호산나 찬송하던 이들이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 했습니다.
셋째는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의 주님이신데, 십자가에 죽는 예수로만 알았습니다.(20-24) 그렇기 때문에 슬픔에 젖어 3년간 따르던 예수님을 저버리고 엠마오로 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하여 잘못 알고 있는 두 사람에게 예수님은 길을 가시면서 책망도 하시며 예수님에 대하여 다시 성경을 풀어 가르쳐 주셨습니다.

Ⅱ.예수님께서 당신을 알려주심(25-35)

① 예수님을 선지자로만 알고 ② 이스라엘의 회복 자로만 알고 ③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을 못 믿는 제자들을 만나 25절을 보십시오.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구약 성경에는 선지자들을 통해 예수님이 유월절 양이 되심과(출12장), 놋뱀처럼 달려 죽으심이나(민21:9), 임마누엘 하리라는 것과(사7:14), 우리의 슬픔과 질고를 담당할 자(사53:4,5). 겸손하여서 나귀를 탈 자(슥9:9), 매 맞은 목자(슥13:17) 등등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셔서 구원해 줄 구주가 되실 것을 선지자를 통해 모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실로 구약 전체는 오실 메시아에 대한 기록이겠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이렇게 선지자가 예언한 말씀들을 마음에 더디 믿는다고 책망하셨습니다.

1970년 12월 7일. 저 개인적으로 하나님께 심하게 책망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당시 근 3년간 예수님이 믿어지질 않고 어찌 십자가에 달린 예수가 내 죄를 씻는다는 것일까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믿음을 달라고 애타게 8일간을 단식기도를 하고 학교 기숙사에 와서 잠을 자는데 환상을 보았습니다. 성경대로 번개가 하늘 이편에서 번뜩, 저편에서 번뜩이고 온 천지에는 눈이 하얗게 왔는데 예수님이 천사장 나팔 소리로 천지를 진도하며 하늘로 쫓아 강림하며 제 이름을 부릅니다. 성동아! 나를 믿느냐 안 믿어지는데 어떻게 믿습니까 제 속으로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는데 두 번째 또 부르시고 묻습니다. 두 번째도 대답을 못하고 있으니까 세 번째는 하나님이 화를 내시면서 <믿는다고 하라> 그것이 믿음이라고 해서 “예! 제가 믿습니다.”하니 이 몸이 둥둥 떠서 얼마나 좋았는지 모릅니다. 한 7일간은 날아다니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늘 뭘 그렇게 못 믿느냐고 책망을 심하게 받은 적이 있어서 요사이도 성경이 잘 안 믿어지면 그 때 그 일이 종종 생각이 납니다.

구원의 확신을 갈망하는 한 부인이 전도자에게 찾아와 상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부인은 “목사님! 믿어지지 않으니 어쩌면 좋죠” 하고 호소를 했습니다. 그 때 상담을 하고 있던 전도자는 조용하고도 슬기롭게 반문을 했습니다. “그래요 아주머니께서는 믿을 수 없다는 구분이 누구시지요 믿으려고 해도 믿을 수 없는 그 분이 누구시기에 그렇게 믿을 수 없나요” 하고 되물었습니다. 그제야 부인은 비로소 구원의 확신과 하나님의 자녀 됨을 알고 기쁨으로 돌아갔답니다.

예수님은 선지자의 글을 더디 믿고 있는 이들을 책망하시고 또 26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당신 자신이 십자가에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땅에 계실 때 친히 당신이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가르치고 여러 차례 말씀을 하셨습니다.(마16:21, 17:22-23, 눅9:22, 18:31-33, 24:46) 그런데도 믿지 않고 엠마오로 내려가고 있으니 “마음에 더디 믿는 자여” 하시는 책망을 받을 수밖에 더 있겠습니까
그리고 계속 길을 걸어가시면서 예수님은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셨습니다.(27) 성경 공부를 시키셨습니다.
여기 모세와 하는 것은 모세 오경(창세기,출애굽기,레위기,민수기,신명기)을 가리켜 있고 선지자의 글이란 대선지, 소선지를 가리켜 구약 전체를 말하겠습니다. 예수님은 길을 함께 걸어가시며 구약에 나타난 예수님, 당신 자신에 대해서 상세히 성경을 풀어 가르쳐 주셨습니다.
저는 이 본문을 보면서 예수님께서 성경에 당신을 기록한 말경을 어떻게 이 두 사람에게 풀어 가르치셨을까 궁금합니다. 예수님의 설교를 배우고 싶습니다.
예수님 당신이 ① 그리스도 되심과 ② 구원자 되심과 ③ 부활의 주되심을 어떻게 자세히 설명을 하셨을까 예수님이 설명을 하셨을 때 그 설명을 들은 두 제자는 성경을 풀어 주실 때 마음이 뜨겁더라(32) 했습니다.
분명히 예수님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이들에게 성경을 통해 예수님은 예수님을 바로 알도록 도와 주셨습니다.
그 때 이들은 ① 예수님이 선지자라기 보다 그리스도이심을 알게 되었고, ② 예수님이 이스라엘을 로마로부터 해방시켜 줄 정치적 메시야라기 보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줄 구세주이심을 알게 되었고, ③ 허무하게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예수가 아니고 다시 사신 부활의 주, 사망 권세를 이기신 부활의 주 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알게 될 때 어떻게 했습니까
당시 예루살렘은 예수님의 부활 소문이 꼬리를 물고 퍼져 나갔습니다. 그래서 당국에서는 소문을 퍼뜨리는 예수님의 추종자들을 잡느라 군대를 풀어놓았습니다. 돈까지 주어 입을 막았습니다. 이 때 제자들은 두려워서 문을 잠그고 있었습니다.(요20:19)
이런 살벌한 예루살렘이 두려워서 피하여 엠마오로 내려갔는데 죽어서 다시 사신 부활의 주를 만난 이들은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가던 발길을 되돌려 예루살렘에 올라와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과연 성경대로 이 땅에 오시고, 성경대로 죽으시고, 성경대로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경대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 성경대로 믿을 때 구원을 주실 것입니다.
25리 되는 길이지만 쉬엄쉬엄 오면서 모세와 선지자의 글을 공부하느라 하루 종일이 걸린 것 같습니다. 그들이 가려던 엠마오의 마을에 거의 이르렀을 때 예수님은 더 멀리 가시려는 듯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두 제자는 “벌써 날이 저물고 저녁 때가 되었으니 우리와 함께 묵어 가도록” 간청을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들을 따라 함께 머물러 들어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시고 떡을 들어 감사하신 후 떼어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그 순간 그들은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으나 그 순간 예수님은 사라지셨습니다.
이들은 진종일 예수님과 함께 했으나 예수님을 몰라보았습니다. 떡을 가져 축사하시는 모습을 보고서야 알았습니다.
벳세다 빈 들녘에서 5천 명을 먹이실 때나(9:16) 최후 만찬 때(22:19)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던 모습과 꼭 같음을 보고 아! 예수님이시다 하는 순간 예수님은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보이지 않자 그 둘이 말하기를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성경 말씀을 풀어 주실 때 우리 마음이 뜨겁지 않더냐’ 하며 서로 주고받으며 이들은 곧 그 발길을 돌려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렇게 돌아왔더니 열 한 제자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모여서 주님이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나타나셨다고 이야기를 하고 두 제자도 길에서 있었던 일과 떡을 떼어 주실 때에야 예수님인 줄 알아보게 된 사실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오늘 전할 말씀은 다 증거 했습니다. 이제 본문이 주는 교훈 몇 가지만 상고하고자 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믿음이 생겨납니다.
낙심하고, 슬픔이 가득하고, 믿음을 잃어버린 자에게는 무슨 기적이나 이적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여 주어야 믿음이 생겨나는 줄 믿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실의에 빠진 이들에게 성경을 풀어 주셨습니다.
성경 말씀 자체를 들을 때 마음이 뜨거워지는 줄로 믿습니다.
성경 말씀 자체를 들을 때 변화가 오는 줄 믿습니다.
오늘 두 제자는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이 그리스도시요, 예수님이 영혼의 구주시요, 예수님이 부활의 주님이심을 분명히 알게 되어 구원을 받고 살벌한 예루살렘에 올라가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했습니다. 진리만이 영원한 구원을 주고 진리가 자유를 가져다줍니다. 눈이 열여 진리를 아는 것만큼 자유로워지고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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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8. 6. 주일 낮 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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