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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사내아들 광(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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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가족을 찾는 종이 피켓을 훑어보고 있으면 이산과는 관계없는 차원에서 따끔하게 서글퍼 오름을 이따금 느끼곤 한다. 찾는 할머니나 어머니, 고모, 누님의 이름에 서분(西粉), 필녀(畢女), 후남(后男), 막음이(莫音伊) 같은 딸을 낳고서 섭섭한 마음을 나타낸 이름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분은 또 딸을 낳아 서운하다는 뜻이요, 필녀는 이로써 딸은 끝마무리라는 원망 표시요, 후남은 다음 차례는 아들이라는 소원을 나타낸 아명이다.
김새치라는 할머니 이름도 나오던데, 여아명으로 새치는 네번째 딸에게 붙이는 이름이다. 양반 사회에서는 첫째 딸을 속칭할 때 하나쯤은 괜찮다는 자위로 `일가(一可)', 둘째 딸은 혹시 다음 번에는 아들일 수 있다는 기대를 갖고 `이혹(二或)', 셋째 딸은 자조의 뜻으로 `삼소(三笑)', 넷째까지도 딸이면 남 보기 부끄럽다 하여 `사치(四恥)', 곧 새치로 속칭하였으며 이 보통명사를 그대로 아명으로 삼기도 했던 것이다. 원치 않는데 세상에 태어나 이름마저 서운하다느니 새치니 하여 소외받고 살다가 중년에 이산까지 하다니, 그 기구한 한국적인 생에 눈시울이 시큼해지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미 개화기 때 한국에 와 살았던 서양 사람들이 사내아들광(Boymania)이라 하여 한국인의 남아존중(男兒尊重)이 광적임을 갈파한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이런 `보이매니어'의 가치관일랑 이미 역사책에서나 볼 수 있는 사라져간 옛날이야기이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한데 한국인구보건연구원에서 최근 조사한 것을 보니 두 딸을 가진 어머니로서 두 사람 중 한 사람꼴로 아들을 낳을 때까지 `삼소'가 되건 `사치'가 되건 계속 출산하겠다는 강렬한 의지를 보이고 있으니, 뿌리깊은 보이매니어란 고목은 독야청청하기만 하다.
씨의 보존을 위한 혈족 상속 체계, 재산의 보존을 위한 가산(家産) 상속 체계, 제사(祭祀)를 챙겨줄 제사상속 체계의 계승자로서 아들의 위치는 한국인의 가치관 가운데 확고부동하다. 같은 남아존중의 전통을 갖고 있는 일본에서는 아들딸 기르는 재미가 다르기에 아들도 갖고 싶다는 남아 선호이지, 우리 한국처럼 죽은 후까지를 계산한 남아 선호는 아니라 한다. 가치관은 하루아침에 변하는 것이 아닐진대, 오늘로 인구 4천만 고개를 넘는 우리로서 마냥 우울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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