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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사생학(死生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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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中宗) 때 판서를 지냈던 선비 김정국(金正國)이 늘그막에 있었던 일이다. 더불어 늙어 온 옛 친구인 황(黃)모가 재물을 열심히 모은다는 소문을 듣고 장문의 편지를 쓰고 있다.
`나는 두어 다랑이 논밭만으로도 부엌에는 남은 밥이 있고 겨울에 무명옷, 여름에 삼베옷 두 벌만으로도 갈아입을 옷이 남네그려. 그리고 시렁 위에 책 한 궤, 잠을 청할 베개 하나, 나들이할 때 의지할 지팡이 하나만 있으면 그 이상은 더 바랄 것이 뭣이 있겠는가. 무료할 때 튕길 거문고 하나만도 사치스러워서 덮어두고 있네.' 이 편지의 저의는 축재를 경계한다기보다는 늘그막에 죽음을 기다리면서 물욕(物慾)을 버리지 못하면, 버리지 못한 만큼 편안하게 죽지 못한다는 죽음을 둔 우정(友情) 어린 충고였던 것이다. 거문고를 덮어 둔 뜻도 그 거문고에 미련을 못 버린 만큼 죽기 싫어지고, 싫은 만큼 죽음에 고통이 따르기 때문이다. 우리 선조들은 이렇게 두려움 없이 편안하게 죽을 수 있는 마련을 미리미리 해두기도 했던 것이다.
송(宋)나라 때의 학자 주신중(朱新仲)은 그의 `오계론(五計論)'에서 죽음을 안락하게 맞이하는 사계(死計)를 다루고 있음을 본다. 그 사계란 다음 다섯 가지 것을 없애는 오멸(五滅)에서 죽음이 두렵지 않고 행복하게 죽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곧 죽음의 오멸계획(五滅計劃)이다. 첫째가 앞서 김정국이 실천한 멸재(滅財)다. 가급적 미련을 잡아 두는 재물을 극소화시킬수록 죽음이 편안해진다. 둘째가 멸원(滅怨) - 살아오는 동안 남에게 산 크고 작은 원망이나 한(恨)을 애써 풀어버릴수록 죽음이 두려워지지 않는다. 셋째 멸채(滅債) - 남에게 진 부채를 청산하는 일이다. 물질적인 부채는 두말 할 나위 없고, 정신적인 부채도 갚아야만 죽음이 편안해진다. 넷째는 멸정(滅情)이다. 이 역시 정든 사람이건 정든 물건이건, 또 기호나 취미건 간에 정을 극소화시킬수록 죽음이 편안해진다. 다섯째가 멸망(滅亡), 곧 죽으면 끝장이 아니라 죽어도 산다는 사생연결(死生連結)이란 마음가짐을 가지라는 것이다. 죽어서 3 년 동안 같은 집안에 살면서 조석으로 상식을 받고 공존하며, 그 후에도 제사 때마다 찾아와 후손들과 공식(共食)을 하는 한국의 상례(喪禮)와 제례(祭禮)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발달된 멸망계(滅亡計)요, 따라서 이 세상에서 가장 두려움 없는 죽음을 맞을 수 있었던 우리 선조들이었다.
미국에는 별의별 학문이 분화(分化) 발달하고 있는데, 그 중 편히 죽을 수 있는 죽음의 준비 학문인 사생학(死生學:Death-Education)도 그중 하나다. 지나 주 미국 뉴올리언스에서 열두 번째의 사생학회가 열려 전세계에서 모여든 관계 학자들의 연구발표가 있었는데, 연구 주제의 60 %가 사별 전후의 모닝 셀레머니(悲嘆儀式)에 집중됨으로 해서 형식화하거나 간소화해 가는 상례나 제례가 보다 충실하고 장기화 될수록 안심하고 죽을 수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한다. 더욱이 한국의 번잡한 제례가 그 좋은 예로 거론됐다니 현대 학문으로 재조명된 사계(死計)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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