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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세 가지 시험 (신 08:1-3, 마 04: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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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공생애의 사역을 시작하기전에 먼저 두가지의 준비를 하였다.

첫째는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사건이었다. 이 세례사건을 통하여 예수는 세상 죄를 짊어진 어린양으로서 뭇 사람들 앞에 나타나셨던 것이 다. 둘째는 본문의 사건으로 곧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신 사건이다. 참으 로 성육신하사 이 땅에 둘째 아담으로서 오신 예수께서는 완전한 인간으 로서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셨다. 예수는 공생애 자체가 인간의 구속사역 으로서 궁극적으로 마귀와의 싸움이었기 때문에 예수는 공생애 직전에 사 람의 아들로서 반드시 사탄과 싸워 이겨야만 했던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 는 사탄이 지배하는 이 세상에 도무지 발디딜틈조차 없을 것이기 때문이 다. 이것은 육신의 몸을 가진 인간 예수가 마귀와 당당히 싸워 이김으로 써 스스로를 하나님의 아들이요, 인간을 사탄의 사슬로부터 구원할 참메 시야 되심을 증명해야만 했던 것이다.

 오늘 우리는 이 싸움을 통해 사탄의 시험은 어떠한 것이며 또한 예수님 은 이시험을 어떻게 물리쳤는가를 자세히 살펴보아 우리의 삶속에 사탄의 유혹과 시험을 능히 물리쳐 승리해야만 한다. 그 사탄의 시험은 3가지가 열거 된다. 마태복음 4장 3-4절에 나타난 사탄은 물질적인 먹는 문제로 시험한다. 그때에 예수는 40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후에 매우 굶주린 상 태에 있었다. 참으로 40일간의 금식은 육신의 몸을 가진 인간에게 있어 최대의 시련이요, 고통이었다. 예수는 인류의 구속사역 곧 하나님나라의 건설과 사탄왕국의 파괴라는 공생애 사역을 앞두고 육신의 몸으로 40주야 를 금식하였다. 사탄은 이처럼 육신적 한계를 갖고 있는 인간의 연약한 점을 철저히 노리고 살펴서 시험에 빠지도록 간교히 유혹했다. 그것은 장 차 인류의 구속사역을 위해서 사용되어야할 초자연적인 메시야의 능력을 한낱 자기과시나 개인이익을 위한 굶주림을 면하기 위하여 이기적인 수단 으로 전락시키고저 시험했던 것이다. 동시에 밀가루로 떡덩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돌들로 떡덩이를 만들어 굶주린 배를 채우라한 것은 결국 개 인 욕망충족을 위해서는 아무렇게나 메시야의 능력을 사용해 버리라는 유 혹이었다. 그러나 예수는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 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다'라고 첫번째 시험을 능히 이기고 말 았다. 이를 통해 두가지 교훈을 배울수 있다. 첫째는 마귀의 시험을 이기 는 강력한 무기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과 둘째는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 수 있다는 교훈이다.

 약속의 땅 가나안을 목전에 둔 모합 평지에서 모세가 40년 광야생활을 회고하는데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도록 하려 는 의도와 같은 맥락이다. 모세의 말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 년동안 굶주림없이 생활할 수 있었던 것은 세상의 양식인 떡으로서가 아 니라 하늘의 신령한 양식(만나)을 때를 따라 내려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서 가능했다. 오늘날 물질적인 의식주 문제로 고민하고 어려움에 처해있 는 신앙인들에게 신앙을 포기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개인의 욕 망을 위해 사려는 자들에게 접근하는 유혹을 말함이다.

 5-7절에 첫번째 시험에서 패배한 사탄은 두번째 시험을 하기 위해 예 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가 성전 꼭대기에 세웠다. 사탄은 '저가 너를 위 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딛 치지 않게 하리로다'하면서 예수를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도록 유혹했 던 것이다(시편 91:11-12). 그것은 예수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사랑을 미끼로한 유혹은 첫째 성 부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고 그 결과 하나님의 능력을 시험하도록 함으 로서 상호이간질 시키려는 속셈이었으며 둘째로는 예수에게 세상의 인기 와 명예라는 달콤한 굴레를 씌워 세상적인 영광과 명예의 길을 쫓게 함으 로서 십자가 구속사역을 포기하도록 만들려는 속셈이었다. 즉 예수를 소 영웅주의에 편승한 세상의 메시야로 전락시키려는 시험이었다. 여기에 예 수는 신명기 6:16의 말씀을 들어 '주 너희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고 응 수함으로서 사탄의 시험을 이기었다.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한번 시험 해 보라는 사탄의 유혹은 예수자신이 하나님의 참아들이심을 의심케하는 수단으로, 아들이 아버지를 참으로 믿고 신뢰할때 믿음과 사랑의 관계가 생긴다는 새로운 사실을 입증케 함이다.

 8-11의 세번째 시험은 최후의 수단으로 예수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었다.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 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고 시험한다. 사탄과 결탁하여 세상권세 를 잡고 그 영광을 만끽함으로써 길이 쾌락을 누리자는 시험이었다. 결국 십자가 희생을 통한 인류의 구속사역을 포기하라는 속셈이 깔린 시험이었 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이땅에 건설되지 못하도록 함에 있었다.

그리하여 예수는 '주 너희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겨라(신명기 6:13)'고 명백히 선포하였다. 이로써 예수는 태초 마귀의 시험에 빠져 타 락한 첫아담의 실패를 완전히 회복하였고 이땅에 하나님나라의 터를 굳건 히 닦았다. 육신의 몸을 가진 인간으로써 마귀와 당당히 싸워 이김으로써 스스로를 하나님의 아들이요 인간을 사탄의 사슬로부터 구원할 참메시야 되심을 증명하였다. 이런 맥락에서 19세기 미국의 주경학자인 어드만(C.

Erdman)은 '인류역사상 가장 중요하고 가장 기념할만하며 가장 신비스런 싸움은 바로 이 공생애 직전 예수와 마귀와의 싸움이었다'고 표현했다.

 첫번째 시험은 배고픔(의식주 문제)의 시험으로 물질적인 시험인데 이 것은 육신의 정욕을 자극한 것으로 뱀이 하와에게 '먹음직'하다고 유혹한 것과 같다. 둘번째 시험은 허영의 세상으로 세상의 인기와 명예욕을 자극 한 시험인데 이것은 이생의 자랑을 자극한 것으로 뱀이 하와에게 '보암 직'하다고 유혹한 것과 같다. 세번째 시험은 주권의 시험으로 세상의 권 세와 영광을 자극한 시험인데 이것은 안목의 정욕을 자극한 것으로 뱀이 하와에게 '보암직'하다고 유혹한 것과 관련된다. 이처럼 사탄은 세상 처 음 에덴 동산에서 그랬고 예수 당시 유대 광야에서도 그랬듯이 오늘날 그 리스도 인들에게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세상의 자랑을 미끼로 접극해 유혹한다. 이 세가지 시험 당하심을 보면서 하와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말라 네가 먹는날에는 정녕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망각했고 의심햇기 때문에 결국 사탄의 시험에 빠져 원죄의 짐을 지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비운에 처하고 말았다. 그렇지만 예수는 오 직 말씀에 의존함으로써 사탄의 시험과 궤계를 파하시고 승리하셨다. 이 로써 우리는 오늘날 우리들에게 도전해 오는 사탄의 시험에 어떻게 대처 할 것인가 그 승리의 비결을 생생하게 깨닫게 된다.

 그동안 한국은 빈곤상태에서 허덕이므로 정부에서는 정책의 일환으로 경제 제일주의로 지향하고 그 과정에서 산업화의 물결을 타고 경제성장 위주의 숫자놀이로 G.M.P위주의 성장 속도를 가속화 시켰다. 배금주의 물 질 위주의 사회병폐적인 현상으로 한국병을 낳아 치유함에 급급해지고 말 았다. 사람들의 삶의 자리는 착한 마음씨 보다는 차디찬 인정, 씩씩한 생 활보다는 눈치빠른 언동, 실력보다는 돈, 능력보다는 학벌과 문벌, 창의 력보다는 순종과 반응, 비판력 보다는 해석력, 친구보다는 권력, 공동체 의식보다는 조직, 의리보다는 실리를 우선으로 하는 한국병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이러한 현상들은 물질적인 시험 단계로 사탄의 유혹속에 삶의 도전을 받고 있으며 자유당정권이후 군사문화 속에서 권위 주의가 팽배하여 권세에 아부하면 무엇이나 할 수 있고, 그것을 합리화 시키기 위해서는 정권이나 체제를 유지해야만 하고, 체제를 유지하노라면 욕심과 타협과 적당한 합리화를 이기적인 수단으로 악용하는 것이 문민정 부가 오기까지 우리나라의 실정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집단 이기주의로 치솟는 한국병폐증은 사회 구조악을 만들고 말았다. 허영과 인기, 기적은 한국교회와 사회에 대단한 마수의 매력이 되었다. 참보다는 거짓이, 내용보다는 겉이, 뜻보다는 실 리가 판을 치어 가짜가 판치는 요지경속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교계내의 부흥사들의 말버릇은 큰교회, 물질축복의 기사이적이 부흥의 내용이었고, 교회가 사회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멀리하게 만들었다. 기사와 이적으로 부흥사의 인기를 과장하며 카리스마로 둘러 싸여 이기적인 개인구원에 치 우치는 것은 사회구원을 외면하고 교회의 숫자놀이에 광분하는 결과를 초 래한 것이다. 오늘날 많은 교회와 많은 성도들의 책임은 어디서 찾아야 하고 사회에 그 대답을 무어라 할 것인가 시험의 유혹에 우리는 거듭실 패하고 말았음을 직시한다. 우리는 겸허히 예수의 시험 승리를 바라보면 서 우리의 잘못을 회개해야 한다.

하나님 나라가 이땅에 궁극적으로 이루어지는 그 날까지, 사탄을 정복하 신 예수의 공로에 힘입어 날마다 승리하는 신앙의 삶을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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