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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창 4,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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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그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2,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3,그 대에 비로서 사람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렀더라

지난 번에는 입에도 담고 싶지않은 사람들 가인과 그의 후손들에 관하여 함께 생각해 보았었다.

끝까지 회개할 줄 모르는 외고집의 사람들이었다.

 문자 그대로 제 잘난 맛에 사는 사람들이었다.

 오늘의 말씀에는 그와는 정 반대로 그들과 전적으로 대조가 되는 매우 경건한 사람들의 생활이 기록되 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서로를 위한 유익한 사람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께는 더 없이 아름다운 사람들의 삶이 있다.

 1,그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아담이 다시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의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여"

하와는 세번째 아들을 낳았다.

그 아들들은 그들에게 사랑의 선물이자 소망의 증거였다.

 하와는 세번째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셋"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셋이란 이름의 뜻은 "두다" " 자리잡다" "지정하다" "지명하다"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아답과 하와에게 주신 아들들의 이름을 보면서 그 이름을 지은 부모의 신앙을 여볼 수 있다.

 첫번 아들의 이름은 가인이었는데 그 뜻은 전에 말씀을 드린대로 "소유"라는 뜻을 가진 이름이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지만 어찌 나의 소유라고 못을 밖을 수가 있나

어찌 내가 낳았다고 내 소유라고 할 수 있겠는가 성경은 하나님께서 마끼신 기업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와가 "내 소유"라고 했던 것은 아직 신앙이 깊지 못한 상태의 믿음을 보여줌이다.

믿는다고 말ㅎ면서도 자기의 모든 일을 하나님의 은혜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다.

 두번째 아들의 이름은 아벨이었다.

아벨이라는 이름의 뜻은 "허무"였다.

이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주셨는데 허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첫벚 자식이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허무"라고 할 수 있는가

세번째 아들은 "셋"이라고 했다.

이는 늦게나마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지은 이름이라 할 수 있다.

셋이란 이름의 뜻을 무어라고 했는가 "두다" "자리잡다" "지정하다" "지명하다"의 뜻임을 말한바 있다.

그렇다.

가인처럼 나의 소유도 아니다.

아벨처럼 허무도 아니다.

어디가지나 하나님께서 지명하신 아들임을 명심하는 이름을 지었었다.

 물론 하나님게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지명한 지명이다.

메시야를 주시기 위한 지명, 구세주를 주시기 위한 지명, 영생을 위한 지명이다.

 아담과 하와는 세 아들만에 깨닫는 역사가 있었다.

 2,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셋도 아들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하나님께서 후일을 위하여 지명해 주신 아들인 셋도 장가를 들고 아들을 낳았다.

그리고 아들의 이름을 "에노스"라고 지었다.

에노쉬라는 이름의 뜻은 "인류"( mankind )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일반적으로는 개인을 지칭할 때 많이 스여지고 있다.

사56;2절에 "이같이 행하는 사람은 복이 있느니라" 욥10;4절에 "주께서 사람의 보는것처럼 보시리이까" 시8;4절에서는 "사람이 무었이관대" 땅의 사람을 말하고 있다.

 이만큼 말했으면 뭔가 느겨지는게 없는가

아담이란 이름의 뜻이 무었인가 역시 "사람"이란 뜻이다.

 셋의 아버지 아담의 이름이 사람이란 뜻을 가졌는데 또 그 아들인 셋도 자식을 낳아서 사람이란 뜻을 가진 "에노스"란 이름을 지었었다.

 왜 그랬을까 당시만해도 아직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에 중복되는 이름을 짓지 않아도 되었을텐데 왜 하필이면 사람이란 이름으로 아들의 이름을 지었을까

이는 하나님게서 하와로하여금 신앙의 본질을 깨닫게 하신 후 지명된 아들을 주셨고 그 지명된 아들 셋은 아들을 낳았을 때 참으로 사람다운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네 말에 이런 말이 있다.

"사람이면 다 사람인가 사람이 사람답게 사람 노릇을 해야 사람이 사람이지"란 말이 있다.

 그렇다, 사람의 가죽만 빌렸다고 다 사람일 수가 없어서 지은 말일께다.

 셋도 아들의 이름을 사람이라고 했던 심정을 이해할만하다.

 누구든지 예외 없이 사람이 먼저 되어야 한다.

내 어떤 위치에 있는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지금 내가 사람이 되어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먼저 에오스다운 에노스가 도어야 한다.

 3,그대에 사람들이 비로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그때에란 언젠가 바로 셋이 아들의 이름을 에노스라고 지은 그때가 아니가 사람이 참 사람이 되려고 시도했을 그 때 비로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던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직가지도 여호와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는다.

이는 자기들의 행동을 잘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를 믿는 사람이 예수 때문에 핍박을 받는 것은 참으로 영광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예수쟁이로 다 알려진 사람이 행실이 잘못되어서 욕을 머ㄲ는다면 이는 곧 여호와 하나님께 욕을 돌리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다울때 비로서 하나님께 영광이 돌려질 수 있는 것이다.

 26절을 다시 보시라.

"... 그 때에 비로서 사람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비로서"란말이 있다.

여기에 비로서란 말은 "처음"이란 말이다.

셋이 아들의 이름을 에노스라고 이름하였을 그때 처음으로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여호와의 이름이 불렀던 것이다.

 셋의 가정만이 그렇게 불렀던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라고 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아담과 하와가 믿음의 부모노릇을 바로 했을 때 지명된 아들을 얻었고 지명된 아들 셋이 에노스 즉 "사람"이 "참 사람"이 되고자 했을 그때 처음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이 불려지게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오늘 그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왜 우리를 불렀을까 그 잘난 사람이 많고 많은데 하필이면 나같은 죄인을 불렀을까 그러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셔야 했을까

그것은 사람다운 사람이 되라고 부르신 것이다.

여화의 이름을 바로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부르신 것이다.

 여러분들 때문에 여러분들의 자녀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를 수 있기를 바란다.

여러분들의 자녀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를 수 있기 바란다.

 1993년은 여러분들 때문에 참되게 불려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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