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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십일조의 참뜻 (창 14: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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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서울영동교회에 부임해 온지가 여러해 되었습니다만, 그 동안에 십일조나 헌금에 관해 설교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오늘날 교 회들이 헌금에 관해 너무 과잉 설교를 해온 경향이 있어왔고 또 그 속 에서 많은 성도들이 시험을 받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우리 교회안에 몇가지 문제가 제기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선 성도들 사이에 헌금,특별히 십일조에 대한 혼돈과 오해가 있다는 보고 가 당회에 접수되었습니다. 심지어 어떤 성도는 십일조를 하라는 것이 냐,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냐하는 구체적인 질문까지 해왔습니다. 만 약에 십일조를 해야 한다면 왜 구체적으로 가르치지 않느냐, 좀더 구 체적인 지침이 있어야 될 것 아니냐 하는 요청을 당회가 받게 되었습 니다. 그래서 오늘 창세기 14장의 말씀을 통해서 십일조의 참뜻을 함 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십일조를 드리지 못하는 세가지 이유 =

대체로 성도들이 십일조 헌금을 드리지 못하는 이유는 한 세가지쯤 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가르침을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주로 목회자의 잘 못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서 10장 14절에서 '전파 하는 자가 없으면 어떻게 복음을 믿을 수 있겠느냐" 고 반문합니다.

마찬가지로 만약에 가르치는 자가 없으면 십일조를 누가 할 수가 있겠 습니까 십일조가 무엇이며 그것이 도대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 를 갖는가에 대해 가르치는 사람이 없으면 행하는 자도 있을 수가 없 습니다. 십일조는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저절로 하게 되는 그런 종류의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소득의 십분지 일을 어떤 일을 위해 사용한다는 것은 엄청난 변화요 결단을 뜻합니다. 그런 점에서 가르침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십일조를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충분한 이유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둘째로 십일조는 율법에 속하므로 은혜 시대에는 하지 않는다고 오해 하므로 십일조를 드리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십일조는 율법이 아 니냐 율법은 구약으로 마감이 되었기 때문에 오늘 은혜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살고 있는 우리는 더 이상 율법이 가르치는 십일조를 할 필요 가 없지 않으냐 그렇게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율법에 대 한 오해입니다. 십일조가 율법에 언급되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성 경은 우리에게 아브라함 때부터 시작해서 오늘까지 3,900년 혹은 4,000년 정도의 역사를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중에 율법시대는 1,500년 쯤 해당됩니다. 모세에게 율법을 주시기 전 약 사 오백년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아브라함을 통해 십일조의 모범을 최초로 보여 주셨습니다. 율법은 오랜 세월 후에 주어졌고 그 율법 속 에 하나님께서 십일조 제도를 정착시키셨습니다.

율법 시대가 끝난 후에도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이 십일조를 교회의 아름다운 제도로 정착시켜 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순히 십일조 는 율법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편협한 이해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성도들이 십일조를 드리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마음이 내키지 않기 때문입니다.우리 소득을 자신을 위한 일이 아닌 다른 어 떤 일을 위해 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내 자녀를 위해 십분의 일을 쓰는 것은 어느 부모라도 할 수 있습니다. 자녀를 사랑하 기 때문에 그 일을 누구든지 합니다. 십분의 일이 아니라 전 소득을 다 털어서라도 자녀를 위해 상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라는 것을 알지만 아직까지 신앙이 어리고 그분에 대한 확신 이 부족한 사람들이 소득의 1/10을 헌금 한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 은 아닐 것입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이 은혜에 대한 감사의 고백입니다 = 우리가 오늘 십일조의 참뜻을 다시 한번 정리하고 생각해 봄으로 우 리 자신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십일조의 가장 중요한 첫번째 뜻은 이 십일조는 하나님의 은혜에대한 감사의 고백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창세기 14장에 최초의 십일조 의 모범을 우리에게 보인 아브라함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오늘 기록되 어 있는 사건의 배경을 한번 살펴 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이 고향 갈대아 우르를 떠나올 때 그의 조카 롯도 함께 떠나 왔습니다. 이 두사람이 함께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살다가 점점 가산 이 늘어나면서 결국 서로 거주지를 따로 정하게 됩니다. 그때 롯이 정 한 거주지는 소돔 가까운 곳이었습니다. 그 당시 소돔은 그 지역에서 문화적으로 가장 발달되어 있는 곳이었고 흥청거리는 도시였습니다.

이 롯이 소돔왕이 벌인 전투에 휘말리게 되었습니다. 소돔을 비롯한 몇 나라와 그 이웃에 있다느 다른 몇몇 나라의 연랍군이 전투를 벌였 을 때 소돔이 이 전쟁에서 지고 맙니다. 그때 소돔 백성 대부분과 롯 도 함께 포로로 잡혀가고 맙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아브라함이 그냥 있 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집에 길러 놓았던 하인 318명을 거 느리려고 강력한 그돌라오멜 연합군을 추격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강력한 군대를 기습공격으로 싸워 이기고 롯 일가와 포로로 잡혀갔던 소돔성의 많은 사람들, 그리고 전리품들을 빼앗아 돌아오게 됩니다.

 그런데 그때 신비스러운 인물이 나타납니다. 아브라함 말고는 하나님 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생각되던 그땅에 살렘왕 멜게세덱이라 는 사람이 갑자기 나타납니다. 19절에 보면 그가 아브라함에게 "천지 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는 축복을 합니다.

이 멜기세덱이 어떤 인물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성경이 많은 설명 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멜기세덱은 가자기 나타났고 그리고 그 이후 에는 언급이 없습니다.히브리서 7장 3절에 비로소 약간의 설명이 나오 는데 "그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과 방불하더라" 즉 하나님의 아들과 같 은 사람이더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멜기세덱은 그 시대의 어느 지역의 한 왕이었던 사람이라기 보다는, 바로 하나님 자신이 혹 은 하나님의 둘째 位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잠깐 나타나신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해석합니다.

 이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에게 축복할 때, 이미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그 축복을 지적하고 이 축복이 계속해서 너에게 함께 할 것이라고 말 씀합니다. 그때 아브라함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베푸신 모든 것들에 대 한 감격이 다시 한번 넘치게 되었던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아브라 함이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모든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자기가 얻 은 소득의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 앞에 내어놓는 모습을 성경은 우리엑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세금이 아닙니다. 멜기세덱이 나타나서 네가 얻은 것의 십분 이 일을 내 앞에 내어 놓으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전 에 네가 무엇을 얻거든 십분의 일을 어떻게 하라고 명령을 주신 일도 없었습니다. 이것은 신앙을 가진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이 행하신 일 을 생각할 때 그 마음에 감격이 넘쳐서 어떻게 이 감사를 표시할까 생 각하다가 자기 소득의 십분의 일을 내어놓는 방식으로 자기의 감사를 표현했던 것입니다.

  십일조는 복음의 사역을 위해 드려져야 합니다 =

또한 십일조는 복음 사역을 위해서 드려져야 할 것을 성경이 가르치 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율법을 주실 때 이스라엘 백성들에 게 십일조를 제도적으로 하도록 요구하고 계심을 볼 수 있습니다.

구약의 십일조는 세가지가 있었습니다. 첫번째는 레윈들에게 생활비 로 십일조를 드리라고 말씀합니다. 민수기 18장, 레위기 27장에 나오 는 말씀입니다.

또하나는 축제용의 십일조가 있었습니다 신명기 13장,14장에 나오는 십일조인데 축제를 위해서 몰려드는 사람들을 위해서 십일조를 드리라 고 말슴합니다.

그리고 구제용 십일조였습니다. 이 십일조는 매번 소득마다 내는 것 이 아니고 삼년마다 십일조를 내라고 명하셨습니다. 만약에 이러한 율 법의 규정대로 십일조를 정확하게 드린다고 생각한다면 소득의 약 23% 정도의 십일조를 드리는 셈이 됩니다.

 우리가 오늘에 와서 구약 성경에 십일조를 이렇게 내니까 오늘 우리 도 이런 방식으로 최소한 23%의 십일조를 하자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 습니다. 왜냐하면 그야말로 율법은 지나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서 제도러서 십일조를 제정하신 것은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수동드는 레위인들,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기 위해서 모뎌 드는 나그네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서 성도들로 하 여금 하나님의 창고에 하나님의 양식이 있도록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우리가 신약시대에 와서도 하나님이 복음 전하는 일을 위해서 하나님의 창고에 하나님의 양식을 쌓는 일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와 비슷한 정신을 사도 바울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고린도 전서 9장 14절에 보면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건 다른 말씀이 아니고 복음 전하는 자들이 먹고 살기 위해 다른 직업을 가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 음을 전하는 사람들은 결국 성도들이 헌금한 것을 가지고 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5장 18절에서도 비슷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 였고 또 일군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복 음을 위해서 일하는 주의 종들이 다른 일을 하지 않고 성도들이 하나 님 앞에 드린 헌금으로 생활하도록 하느것이 마땅하다고 가르치고 있 는 것이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십일조의 정신을 생각할때, 교회를 중심으로 해서 이루어지고 있는 복음을 전하는 일, 하나님의 사랑과 의가 전파되는 일을 위해 우리 소득의 1/10을 드리는 것은 마땅한 일 이요 옳은 일이라는 것입니다.

  십분의 일 뿐만 아닌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

또 한가지 십일조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야 할 것은, "십분의 일 뿐 만 아닌 열 모두가 하나님이 것입니다."라는 우리의 신앙 고백입니다.

혹 잘못 생각하면 성경이 말씀하는 것을 오해할 수 있습니다, 구약 특 히 말라기서에 '십일조는 내 것인데 왜 도적질하느냐'는 하나님이 책 망이 많이 나옵니다. 그러면, 혹 '열에 하나는 하나님의 것이고 열에 아홉은 내것이니까 마음대로 써도 된느데 그 열에 하나를 안드려서도 적놈 소리를 들었구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열에 하나를 드린다는 것은,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 이므로 하나를 떼어 하나가바께드림으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는 행위 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이런 대표 원리를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그 예로 주 일을 들 수 있습니다. 안식일이 신약에 와서 안식후 첫날 곧 예수 그 리스도의 부활하신 날을 주의 날로 지키는 것을 우리가 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주일만 주의 날입니까 월,화,수,목,금,토까지는 우리의 날 이니까 우리가 알아서 살면 되는 그런 날입니까 아닙니다. 모든 날이 주의 날입니다. 우리의 생명의 주인이 주님이시고, 우리에게 속한 모 든 것의 주인이 그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한 주간의 모든 날이 주님의 것이지만, 특별히 하루를 주의 날로 구별하여 예배를 드리고 생업이나 세속적인 날로 보내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루를 따로 떼어 놓음 으로 말미암아 다른 날들도 주님의 것으로 인정하고 주님이 것으로 고 백하는 의미가 담겨있는 것입니다.

 이런 행위는 우리의 일상적인 생할속에서도 볼 수가 있습니다. 5월5 일 어린이날로 정한것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습니까 하루만 우리 아 이들에게 짜장면도 사주고 캔터키 치킨도 사주고 나머지 날들은 밥을 먹든지 굶든지 마음대로 놔두어도 괜찮다는 것입니까하루를 특히 아 이들을 귀히 여기는 날로 만들어 놓고 다른 날들도 아이들을 귀히 여 기고 아이들을 잘 키워보자는 뜻으로 이 날을 정하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일상적인 생활속에서도 그렇게 행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셨다는 것에 대한 신앙 고백으로 하나님 앞 에 그 일부인 1/10을 도로 돌려 드림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십일조의 축복 =

우리는 또한 십일조와 축복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듣습니다.제 자 신도 어릴 때부터 교회에 다니면서 십일조를 하면 이런 저런 축복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랐습니다. 그러나 조심해야 할 것은 성경이 말씀하고 있지 않은 축복, 저주에 대한 이야기를 십일조에 결 부시켜 남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십일조를 하면 반 드시 물질 축복을 받는다. 십일조를 하면 절대로 돈에 궁핍해지지 않 는다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욥을 생 각해보십시오. 욥은 하나님 앞에 신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의롱누 사람 이었습니다. 욥만큼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경건한 삶 을 산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짐작할 수 없었 던 이유로 욥은 엄청난 고난을 당했습니다. 욥이 십일조를 안했기 때 문에 그의 재산이 날라갔습니까 아닙니다. 인생사에는 우리가 설명하지 못하는, 심지어는 하나님조차 도 다 설명해 주지 않는다는 여러가지 이유가 많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4장 12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긍핍에도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이 말씀을 어디서 합니까 로마 감옥에 앉아서 합니다. 사도 바울이 십일조를 안했기 때문에 이 렇게 되어 배고픔도 익숙해졌다라고 초라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입니다. 유대인이라면 십일조 하는 것은 어려서부터 몸에 배어있는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고난 이 그 앞에 기다리고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십일조를 드린다고 해 도, 주일이면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해도, 하나님을 순전한 마음으로 사랑하려고 하는 경건한 신자라고 해도 우 리 앞에 때로는 궁핍이 기다리고 있으며 때로는 고난이 기다라고 있습 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십일조에 대한 축복의 약속 이나 헌금에 대한 축복의 약속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말라기 3장 10-12절에 보면 십일조에 대한 엄청난 약속이 나옵니다. "만군의 여호 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 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 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 희 땅이 아름다와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 의 말이니라" 마찬가지로 헌금의 축보에 대해서 신약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 후서 9장6절에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 둔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 또한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습니다. 우리가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리기를 힘쓸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물 질의 축복도 주시고 이런 저런 축복도 분명히 주시는 분입니다. 제가 말씀을 드리려고 하는 것은 물질의 축복이 절대적이고 최고의 축복이 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십일조는...=

이제 십일조에 대한 실제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몇가지 드릴까 합니 다.

 (1) 십일조를 총수입에서 해야 합니까,순수입에서 해야합니까 월급 봉투에 적혀 있는 액수는 백오십 몇만원인데 무엇 떼고 무엇 떼 고 나면 실제로 얻는 수입은 백이십만원 뿐인데.. 그런 이야기이죠.

성경은 우리에게 "인색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2) 너무 가난해서 어려운데 그런 때도 십이조를 해야겠습니까 우리가 십일조를 할것이냐, 말것이냐는 것은 법이 아니기 때문에 결 국은 우리 자신들이 하나가바 앞에 판단해서 할 일입니다. 우리의 신 앙의 정도를 따라서 할 일인데 전느 선교자로서 제가 최선이라고 생각 되는 것을말씀드리는 것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먹을 것조차 없다면 자식을 굶기고까지 십일조를 할 수 있겠습니까마 는 원리를 생각할 때, 우리가 가난하지만 그러나 그 가난 속에서도 하 나님께 대한 내 신앙과 사랑을 고백할 때 하나님께서 그것을 아름답게 보시지 않겠습니까

(3) 십일조를 꼭 교회에 해야 합니까 그렇습니다. 교회만이 하나님께서 이 땅에 세우신 유일한 그의 가치 관이기 때문입니다. 교회 존립과 사역을 위해서 반드시 그래야 합니 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가 약화되고 교회는 일을 할 수 없게 되고 교 회는 이땅에서 보잘 것 없는 존재가 되고 말 것입니다.

 (4) 교회가 아니어도 좋은 기독교적인 단체들이 있지 않습니까 자선 단체를 비롯한 여러 단체가 있는데 그곳으로 헌금을 보내는 것은 어떻 습니까 물론입니다. 그러나 교회로 하여금 그 단체들을 섬기도록 해야 할 것 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가 약화되고 교회가 의미 없는 단체가 됩 니다. 물론 교회에 헌금을 많이 해도 그 헌금 가지고 전부 먹어서써버 리고 엉뚱한데 써버리기 때문에, 오늘날 교회가 한국 사회에서 섬기는 교회라기 보다는 배부르고 일하지 않는 교회라는 나쁜 인상을 주는 면 이 있습니다.

그러나 제 개인적인 생각은 이렇습니다. 교회가 봉사를 안한다,안한 다 하지만 그래도 이 사회에서 교회 만큼 이웃을 위해서 일하는 단체 가 그렇게 흔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 다. 교회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도록 그래서 교회를 세우신 하나님이 이름이 높아지도록, 우리가 교회에 헌금을 해서 교회로 하여금 이 일 을 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5) 개인이 직접 사용하면 안될까요 개인보다 교회가 정보가 많고 오류의 위험이 적습니다. 지난 연말 우 리 교회에 재정 지원을 요청하는 편지를 300여통이나 받았습니다. 읽 는 것만도 불가능할 정도였습니다.그러나 오랫동안 우리가 이 일을 하면서 몇가지 원칙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우선 신원을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도와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일단 보 류해 놓습니다. 왜냐하면 신분을 믿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성도들의 헌금을 보내는 무책임한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가 알 수 있는 사람이어도 이 사람들이 정확한 감사를 받는 사람들인가, 자 신들의 재정을 공개하는 사람들인가 하는 점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에서 지원을 결정하고 헌금을 보낼 때, 반드시 현장 을 답사하고 확인하는 일을 어떻게 해서든 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수를 합니다만 책임있게 교회가 이런 일을 하는 것과 개인이 그냥 우리의 헌금을 보내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는 것을 생각하시고 교회를 통해 우리가 세상을 섬기는 것이 주님의 뜻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6) 빚진 상태에서도 십일조를 해야 됩니까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빚을 지고 삽니다. 저도 최근까지 헌금 빚 을 지고 살았습니다만 빚을 졌다고 해서 아이 등록금을 안줄 겁니까 빚을 졌다고 해서 T.V월부 값을 안낼 것입니까 우리가 다 빚을 지고 살아도 그런 것을 내고 삽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빚이 좀 있다고 해도 하나님의 교회가 운영이 되어야 하고 하나님의 교회를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과 의를 전하는 일을 계속하는 이 일도 해야 되지 않겠 는가 감히 이런 말씀을 드립니다.

 (7) 예수 믿은지

4.5년이 되었는데도 십일조를 안했습니다. 이제부터 해야 하겠는데 지금까지 밀린 것도 해야 됩니까 아닙니다. 십일조는 세금이 아닙니다. 제가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십 일조를 안한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이놈 두고 보아라,내가 너한테 주 나 안주나"이렇게 말씀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은 그렇게 속좁은 분이 아닙니다. 부모들은 혹시 자녀들이 장성한 다음에 용돈을 안주면 부아가 나서 은혜도 모르는 놈들 그럴지 모르지만, 우리 하나 님은 우리가 십일조를 좀 못한다고 해서 저주를 내리고 십일조 몇 푼 가지고 왔다고 해서 축복을 내리시는 그런 하나님이 아닙니다.

이 십일조는 이미 우리가 살펴본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것 들에 감사해서 신앙을 고백하는 차원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랑을 고백했던 신앙의 선배들의 모범을 따라서 그것 을 가지고 오늘날 이 교회를 운영해 나가는 것입니다. 오늘의 우리 교 회가 적은 돈이지만 헌금을 보내서 이런 저런 일을 했던 것이 바로 여 기에 있었던 것을 우리가 기억할 때 우리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할 필 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8) 어떤 분은 십일조를 떼어 놓고 거기에서 주일 헌금도 하고 전도 회비도 내고,구제도 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렇게 한다고 저주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너무 인색하지 않습니까제 개인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밥을 굶는 분이라면, 또는 한달에 수입이 한 이십만원 뿐이어서 십에 일은 하나님께 드려야겠고 그 나머지 십팔만원을 가지고 식구들을 먹여 살 리기도 어려운 사람이 그렇게 한다면 하나님도 이해하실 것입니다. 그 러나 소득이 넉넉하여 십분의 일을 내고도 십분의 구는 여전히 가족들 을 위해서 쓸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너무 인색하게 그러한 방식 으로 열에 하나를 드린다면 하나님의 마음에 섭섭함을 안겨 드리게 될 것입니다.

 (9) 남편이 불신자인 경우나 혹은 아내가 불신자인 경우에, 혹 불신 자가 아니어도 한쪽의 신앙이 어려서 부부 가운데 합의가 안될 때는 어떻게 할 것입니까 이럴때는 기다려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십일조를 하면 축복이 쏟 아지는데 남편 몰래라도 해야지'하는 생각을 가지는 분들이 계신데 그 렇게 생각할 일이 아닙니다. 이런일로 인해서 부부간에 금이간다든지 아직까지 믿음이 없는 배우자가 이일로 인해서 상처를 받도록 하는 것 은 옳지 않습니다. 이것은 우리 신앙의 본질적인 문제는 아니기 때문 입니다.

그래서 아직 불신 배우자를 모시고 사는 분들이라든지 부부간이라도 이런 문제가 합의가 잘 안될 때는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기도 하면서 우리의 신앙이 하나님 앞에서 그 정도로 고백할 수 있을 때 기 쁨으로 함께 하는 것이 훨씬 좋지 않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10) 장학금,등록금에서도 십일조를 떼야 합니까 아닙니다. 장학금, 등록금에서 십일조 떼놓고 등록 못해서 학교 못가 면 어떡할라고.. 십일조는 소득의 열에 하나를 하나님 앞에 감사의 표 시로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입니다. 부모님께 등록금 받아서 십일조 떼서 헌금 해놓고 그것이 채워지지 않아서 등록을 하지 못하는 학생을 제가 실제로 본 적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핫비니다.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마10:16) 지혜가 없이 순진한 마음만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면 비둘기 같이 우직해지는 것입니다. 반 대로 또 순진하고 순수한 마음은 없고 지혜만 가지고 있으면 뱀처럼 간교해지는 것입니다.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잘 이해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잘 파악해서 그 하나님 앞에 바른 응답을 하는 것이 신앙인들의 옳은 자세라는 것 입니다.

 가능하면 우리의 소득이 있을 때 하나님 앞에 드릴 감사의 예물을 먼 저 떼어 놓는 것은 좋은 생활 습관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어떤 장로님 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 장로님이 어렸을 때 이 장로님의 아버님은 월급을 받아모녀 식구들을 다 모아 놓고 하나님 앞 에 감사기도를 드린 후 십일조를 떼어놓는 것을 자녀들이 보게 하셨다 고 합니다. 작년 한달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축복해 주시고 직 장을 잘 다니게 해 주신 은혜에 감사하시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 가운데 십분의 일을 돌려드리는 모습을 어릴때부터 보고 자란 이 아들 이 그것이 하나님 앞에 영광이 되는 것을 저절로 배우게 되었고 자신 도 자신의 자녀들 앞에서 그렇게 행하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을들었 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참 지혜로운 부모님이셨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여러분께서도 이런 일을 결코 작은 일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께 서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소중한 부분이 여기에 있으을 발견하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이 일일 실제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가는 중요한 원동력이 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이 일에 우리가 힘을 써야 할 것 입니다.

  십일조를 드리는 이유는 오직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한 것입니 다. = 오늘 말씀의 결론을 이렇게 맺고 싶습니다. 윌리암 번즈라는 스코틀 랜드의 선교사가 중국을 향해 떠나려고 할 때였습니다. 그때만 해도 선교사로 가는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이해를 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스코틀랜드 장로교인들은 믿을 사람들은 다 하나님의 예정 가운데 믿 게 되어 있는데 무엇 때문에 그곳까지 가느냐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 번즈를 향해 어떤 사람이 말했습니다. "그래 중국인들 을 회심시키기 위해 마침내 중국으로 떠나기는 떠나는 것입니까" 번 즈는 대답하기를 "아니요, 내가 중국으로 가는 것은 다만 하나님을 영 화롭게 하기 위해 가는 것일 뿐입니다. "그렇게 답하고 중국으로 떠났 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중국으로 떠났을 때 많은 회심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설령 번즈가 중국에서 삽,사십년 선교 하는 동안 회심자가 한사람도 없었다 할지라도 번즈는 기쁨으로 하나 님을 열심히 섬고자 애를 썼을 것이고 자신이 선교사로 간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자신을 중국으로 가도록 명령하셨고 그것을 기뻐 하신다는 것을 알고 그 뜻에 순종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십일조에 대해서도 같은 말씀을 드리는 것으로 결론을 맺고 싶 습니다. 하나님은 자원하는 마음으로 십일조와 헌금을 드리는 사람들 을 기뻐하시고 복을 넘치게 주십니다. 그러나 단지 축복을 받기 위해 십일조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십 일조를 드리는 것입니다.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모든 것을 감사 하는 마음으로 십일조를 드리자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아브라함을 십일조를 기쁘게 받으셨던 하나님, 감사하는 야 곱의 십일조를 기쁘게 받으시고 성경에 기록하셨던 하나님, 그것을 율 법속에 집어 넣으셨던 하나님, 그리고 지난 이천년 동안 교회사 속에 서 수 많은 성도들의 십일조를 기쁘게 받으셨던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위해 이 헌금을 드리자는 것입니다.그리고 아 울러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는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여러모로 축복할 것을 바라보자는 것입니다. 이 축복이 여러분들 위에 함께 하 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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