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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대제사장 예수 (히 04: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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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증인'의 지도자였던 럿셀이라는 사람은 어린 시절에 다니던 교 회의 목사님이 항상 지옥을 강조하는 설교를 많이하여 그것이 몹시 싫었다 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후에 지옥을 부인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런데 만일 기독교 교리에서 지옥을 없다고 단정해 버린다면 어떻게 되겠습 니까 그것은 죄와 심판과 내세까지 부인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지옥이 없 다면 좋긴 하겠지만 그로인하여 인간은 한없이 방종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신앙을 진지하게 가질 수 없을 것이며 죄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믿지 않게 될 것이며 마침내 신앙무용론에 도달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럿셀처럼 반발심 때문에 지옥을 부인한다는 것은 결국 이단으로 전락될 수 밖에 없습니다. 또 한편 강단의 설교가 하나님 말씀의 균형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어느 한 부분만 강조하고 말씀을 편향되게 전한다면 그것 또한 잘못입니다. 성경말씀 을 해석하고 선포할 때, 성령의 인도와 도우심이 없이 말씀을 다룬다면, 그 말씀을 가지고 무슨 이야기나, 무슨 주장이나, 무슨 이론이라도 말할 수 있 는, 자의성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의 선포자는 항상 그 말씀을 바 로 깨닫고 반드시 성령의 지도와 간섭을 통하여 그 시대와 상황속에 사는 사람들에게 바르게 전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는 극단적인 말씀이나 책망들도 많습니다. 아무리 성경 말씀이라도 사전에 아무런 설명이나 이유도 없이 갑자기 '독사의 자식들아!' 라고 한다 면 듯는 사람이 그 말을 어떻게 받아 들이고 소화시키겠습니까 그러한 말 씀 선포 방법은 요단강가에 나온 부패한 당시 유대인 지도자들을 책망했던 세례요한의 설교 방식이었습니다. 그러한 책망은 오늘 우리에게 맞을 수도 있고 맞지 않을 수도 있는데, 다만 시간과 상황을 초월하여 역사하시는 성령 님의 인도가 꼭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거부와 반발만 일으킬 뿐 그것이 말씀의 바른 전달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 달하는 사람의 책임은 참으로 큽니다. 그러므로 말씀의 선포자는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서 항상 기도로써 계시의 영이 밝아져야 하며 항상 말씀을 자 세히 알고 그 깊은 뜻을 파악하여 사람들에게 전해 주어야 합니다.

구약시대에 이러한 직무를 수행하던 사람들이 제사장들이었습니다. 종교 지도자는 자기가 돌보는 백성들에게 압력과 부담감을 주어가며 원하는 방향 으로 강하게 몰아 갈 수도 있고, '편안한 신'을 섬기게 할 수도 있습니다. 어 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비상수단을 강구할 수도 있고 균형과 조화와 합 리성의 바탕에서 이끌수도 있습니다. 이 두가지 길은 어느 것이 좋고 어느 것이 나쁘다고 단정하여 말할 수는 없습니다. 구약시대에도 예언자들과 제사 장들이 있었는데 하나님께는 이 두 부류의 종들이 다 필요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언자 스타일의 과격한 지도자가 더 좋다, 더 나쁘다' 혹은 '제사 장 스타일의 온건한 지도자가 더 좋다, 더 나쁘다' 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다만 그들이 백성들에게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게 하느냐 하는 것만이 문제였습니다. 그것이 과격하던 온건하던간에 그 신앙의 정도가 문제 인 것이며 각자가 받은 소질과 성격과 입장과 그 상황들 안에서 하나님께 최선을 다 하느냐가 문제인 것입니다.

제사장이라고 하면 유대인들이 오랫동안 관련을 맺고있는 지도자입니다.

종교생활은 물론 유대인들의 일상생활 전반에 있어서 제사장과 관련되지 않 는 것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제사장이 무엇을 하는 사람이며 자기들 과 어떤 관련이 있고 백성을 위하여 어떤 일을 해주는가를 유대인들은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를 누구로 이해하고 있었는가 라고 할 때, 대개는 훌륭한 선생이나 위대한 예언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 을 가장 위대하신 대제사장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과연 예수님은 세상에 서 대제사장으로서의 일을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사이에 중개역할 담 당하는 분이 바로 제사장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들에게 초월적인 분이십 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시고 완전하시며 거룩하십니다. 그런데 인간은 타락하 고 죄 된 존재입니다. 우리는 불완전하고 제한적인 육을 가진 사람들로서 어 떻게 하나님을 뵙고 그 분의 도우심을 받고 또 그 분과 사귀고 교제할 수 있습니까 우리 스스로의 자격이나 능력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구약의 전통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친히 제사장을 택하여 기름부어 세우시고 그를 통해서 사람이 하나님께 나올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제도상으로 보면 제사 장은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중재자'입니다.

제사장이라고 해서 다 흠이 없고 완전한 것은 아닙니다. 그에게도 죄와 허물이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선택하여 세워주신 제사장을 통해서 제사가 드려지고 은혜와 축복을 받게 되며 하나님의 말씀과 뜻이 전 달되고 소원과 간구가 드려지고 또한 그것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까 제사장의 직분이란 종교적으로나 세속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사람들에게 대행하여 주는 영광스런 특권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머리에 기름을 부어 친 히 그들을 택하여 주셨습니다.

제사장들은 자기가 집전하는 제사를 통해서 죄 된 인간들을 용서받게하 고 화해시킬 수 있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것일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제사장 들의 제사행위는 사람이 사는동안 끊임없이 반복되고 계속되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제사장들도 이미 죄인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제사가 완전하 다고 볼 수 없었으며 그들의 제사는 이보다 더 완전한 제사를 위한 하나의 예표에 불과하였습니다. 그리고 제사의 방법에 있어서도 희생제물이 매개체 가 되었고 제물을 계속 희생시키는 반복적인 제사를 드릴 수 밖에 없었습니 다. 또한 그 제사의 효과도 결코 영원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사를 드린다고 죄인이 의인으로 인정받는 것이 아니고 다만 일시적으로 죄책을 면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것이 구약시대 제사였습니다.

이러한 구약시대의 제사제도는 얼마나 불완전한 것입니까 그럼에도 불 구하고 하나님은 그 제사를 받으시고 사죄와 축복을 인간들에게 내리셨습니 다. 인간의 제도에 의한 제사를 통해서라도 하나님은 우리와 화평한 관계를 유지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양들이 피흘리는, 피의 제물 을 보시고 인간들의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인간의 입장에서 본다면 제사란 참으로 편리한 제도입니다. 제사장은 사람이지만, 하나님과 사람의 중보자로 서 자기에게 주어진 직무를 행함으로써 효과를 발생하게 했던 것입니다. 제 사장이 없었다면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영원히 멀어질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제사장은 백성들 앞에서 하나님의 대행자라는 종교적 특권을 가지고 하 나님의 뜻을 가르치고 전달했으며, 백성들의 죄와 허물을 위해 용서를 빌고, 백성들의 감사를 하나님께 전하고 또 백성들의 소원을 알려드려 그 소원이 이루어지도록 하던 중재자들이었습니다. 이러한 중재자가 있다는 사실은 편 리하고 마음 든든하고 안심이 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만 백성들은 제사장에게 가면 되는 것이고 또 제사장들은 제사법에 의하여 집례하면 되 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제도와 행위들을 인정하시고 받아 주셨습 니다. 그러나 엄격히 말한다면 이것은 불완전한 제도이며 불완전한 종교의식 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계에는 신.구교를 망라하여 성직자들이 있습니다. 구교에서 는 성직자를 신의 대행자라고까지 말하고 성직자 자신의 결함이나 허물은 교회를 지키기 위하여 정죄당하지 않아야 한다고까지 주장합니다. 그러나 성 경의 기준으로는 그것은 지나친 교권 위주의 주장이라고 볼 수 밖에 없습니 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에게 더 완전한 제사장은 없을까요 더 나은 제물 이나 제사는 없을까요 인간들편에서도 그렇고 하나님 보시기에도 무흠하고 거룩하고 완전한 제사장과 제사는 없을까요 이러한 의문을 제기할 때에 히 브리서 기자는 '우리에게 참으로 크고도 위대하신 제사장이 있으신데 그 분 은 이미 승천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이시다'라고 확실히 말씀하고 있습니 다. 예수님을 크고 위대한 대제사장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말씀 이 오늘 우리들에게는 아무런 이의없이 수긍되고 납득이 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성경이 쓰여지던 당시의 유대인들에게는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 주장 이었습니다. 나사렛 예수, 그 분은 레위 지파 사람도 아니고 제사장 수업을 받은 분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목수의 아들이며 유대교에서 이단자로 낙인찍 혀 처형된 시대의 반항아였을 뿐입니다. 그런데 성서는 그를 큰 대제사장이 라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성경기자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가 왜 우리에게 대제사장이 되시는지를 장황하게 아주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있 습니다.

원래 제사에서 희생제물이 드려진 까닭은 사람들이 지켜야 될 율법을 지 키지 못한데 대한 죄과를 용서받는 한 방법이었습니다. 율법을 거룩하게 지 키는데 실패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최후로 하나님께 사죄를 받고 하나님과의 친교를 회복하는 구원의 방법이 제사였습니다. 그러나 수 많은 양과 염소와 비둘기등이 제물이되어 무수히 피를 흘려 희생됐지만 인간은 그것으로 구원 을 완성하지 못했고 또한 제사마저도 나중에는 형식적인 종교의식으로 전락 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드 려진 제사는, 바로 당신의 거룩하신 몸을 십자가에 달려 희생시키신 엄청난 제사였습니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은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 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 려 함이니라.'(마 20:28)고 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위대하신 대제 사장이십니다. 제사장이신 그 분 자신이 희생제물이 되심으로써 단 한번에 모든 속죄가 이루워지게된 것입니다. 인류의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 께서 자신의 몸을 하나님과 인간의 화목을 위해 영원한 제물로 내어 놓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해서 대제사장의 사역의 영원한 근거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 물로 삼으셨다'(롬 3:25)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친히 흘리신 피의 제물만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가납하시는 유일한 속죄 제물입니다. 그래 서 우리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그 몸 으로 제물이 되어주신 인류의 구세주이십니다.

본문의 말씀은 그 대제사장이 어떤 분이신가를 밝히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 분은 단순히 종교의식을 집전하는 제사장만이 아니라 우리와 하나님 사 이를 연결해 주시는 중재자시요, 또한 연약한 우리 인간들을 이해하시고 동 정하시고 약점을 보완해 주시며 허물을 변호하여 주시는 지극히 인정이 많 으신 제사장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의 모든 형편과 처지를 아 시기 위하여 사람이 되셨고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하시기 위하여 인간 들의 시험까지도 받으셨다고 하였습니다. 대제사장 예수! 그 분은 나의 사정 을 가장 잘 아시고 나를 사랑하시고 위로하시고 격려하십니다. 그는 우리가 마음에는 원이지만 육신이 약한 것을 동정하시고 눈물을 흘리시며 불쌍히 여기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직전에 세상에 있는 그의 사 람들을 보호하여 달라는 중재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주님은 당신이 잡히시기 전날 떡과 포도즙을 나누어 주시면서 위로하시고, 한마음되게 하시고, 평안 과 즐거움으로 살며 서로 사랑하라고 분부하셨습니다. 주님은 자기가 택한 제자중 하나가 배신하여 자기를 팔 것을 아시면서도 그를 위하여 기도하시 고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주님은 겟세마네에서 홀로 기도하실 때에 당신을 도와 함께 깨어 기도하지 못하고 있는 제자들을 꾸짖지 않으시고 오히려 위 로하고 동정하시면서 '시험에 들지않게 깨어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 되 육신이 약하도다'(마 26:4)라고 하시면서 그들을 이해하여 주셨습니다. 이 렇게 좋으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그는 누구보다도 연약한 우리의 인간성을 이해하시고 동정하시며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사랑과 관 용과 이해의 폭이 넓으신 우리의 큰 대제사장이라는데 깊이 공감하고 큰 위 로를 받습니다. 예수님의 이런 면모를 발견할 때에 그 예수님에게 등을 돌릴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분에게 오면 누구나 소망과 큰 위로를 받습 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들의 가장 크신 대제사장이 되신다는 것 을 다시 한번 생각하여 봅니다.

나를 가장 잘 아시고 이해하시고 동정하여 주시며 나를 위하여 중재자가 되시고 나의 모든 허물을 변호하여 주시는 대제사장 예수! 그 분이 계시기에 우리는 기쁘고 평안하고 만족하고 감사합니다. 그러므로 긍휼하심을 받고 때 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앞에 담대히 나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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