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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숙한 신앙인이 되는 길 (욥 15: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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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욥을 향한 엘리바스의 두번째 공박이다. 그러니까 욥의 고난을 놓고 욥과 그 친구 간에 제 2 라운드로 접어드는 부분이다. 2차 변론은 15장에서 21장까지 이어진다. 그 변론 순서는 첫번째와 마찬가지로 엘리바스가 (15장), 그 다음은 빌닷(18장), 소발(20장)의 순으로 이어진다. 이 두번째 변론도 주로 욥을 꾸짖고 정죄하는 내용이다.

<본론>

1. 이웃의 아픔을 쉽게 판단하거나 비난해서는 안된다(1-6).

가장 연장자였던 엘리바스는 앞선 첫번째 변론에서는 그나마 정중함을 지키었다. 하지만 두번째 공박이 시작되면서 그 어투는 정죄로 돌변하였다.
욥은 끝까지 이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엘리바스는 그같은 욥의 말을 믿지 않았다. 오히려 욥의 말을 헛된 지식이라고 몰아부침으로써 욥의 인격을 단죄하였다. 심지어 하나님께 불경스런 존재로 까지 정죄해 버렸습니다. 엘리바스가 이렇게까지 읍을 몰아 세운 이유는 욥이 당하는 고난이 너무도 크고 엄청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기 자신이 이해할 수 없다고 하 여, 이웃이 당하는 고통의 정도가 심하다고 해서 무조건 정죄하거나 그 이웃의 범죄 여부를 따지고 드는 것은 참으로 잘못된 일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소경된 자를 보고 그 고난이 무슨 죄때문인가를 질문한 적이 있었다.
(요9:2)“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이때 예수님의 대답은 다른 것이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섭리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웃의 고난을 바라볼 때마다 그를 향한 긍휼의 심정을 가지며 그 이웃과 동질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롬12:15-16)“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데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
그리고 남의 허물과 고통을 바라볼 때마다 비난의 화살을 날리기 보다는 도리어 자기를 깊이 돌아보고 자기 죄를 뉘우칠 수 있어야 합니다.
(눅13:4-5)“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 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2.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논리의 도구로 잘못 이용해서는 안 됩니다(7-16절).

엘리바스가 욥을 향하여 정죄한 내용들을 살펴보면, 욥의 말이 바람과 같이 헛되다고 했으며(2-3절), 하나님 경외하는 일을 폐하게 만든다고 했고(4절), 또 욥의 입술에서 나오는 말이 곧 욥의 죄됨을 지적한다고 했으며(5-6절), 욥이 자신들에 비해 젊은 사람인데도 노인들의 지혜롤 무시한다고 했고(7-10절), 위로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했다고 했으며(11절), 욥이 감정에 이끌려 분노한 눈으로 하나님을 대적한다고 했고(12-13절), 욥이 스스로 자신을 깨끗한 자로 여긴다고 했다는(14-16절) 것입니다. 실로 엘리바스의 이같은 지적은 부분적으로는 일리가 있는 내용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엘리바스는 이러한 정죄와 비난의 말을 하면서 하나님의 권위를 함부로 들먹이며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함부로 취급하는 악함을 범하고 말았습니다(11절). 하나님의 말씀과 그분의 권위는 어떤 경우든 인간의 욕심을 채우는 도구로 사용될 수 없습니다. 사실 사단 마귀도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하고 하나님의 권위를 악용하여 예수 그리스도률 시험한 적이 있지 않습니까(마4:1-10)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논리의 도구로 사용한다거나, 혹은 이웃을 진리로 이끌기 보
다 순전히 이웃을 정죄하는 데 하나님의 말씀과 그분의 권위를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또다른 범죄가 아닐 수 없습니다.

3. 하나님 말씀보다 전통과 권위를 앞세워서는 안됩니다(9-10,17-35절).

엘리바스는 '우리 중에는 머리가 세기도 하고 연로하기도 하여 네 부친보다 나이 많은 자가 있느니라’(10절)는 말을 퉁하여 비교적으로 젊은 나이에 있는 욥의 자기 주장을 묵살하려 들었습니다. 엘리바스는 연세가 많을수록 그 깨달은 지혜와 진리가 훨씬 많다는 논리를 펼치면서 노인의 권위를 세우고자 한 것입니다. 사실 노인 곧 어른을 존경하고 그 권위를 인정하는 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바입니다(출 20:12 엡6:1-3). 더욱이 인간은 학문 연구를 통해 많은 지식을 습득하지만 그러나 실생활에 참으로 필요핟 지혜는 체험과 많은 연륜을 통해 얻습니다. 그런 점에서 노인들은 인생살이에 필요한 많은 지해와 지식과 경륜을 지니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노인을 존경하고 어른의 권위를 인정하는 깃은 바른 일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노인의 권위와 어른들의 전통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중하게 여기고 그것을 진리화하고 절대시하는 것은 참으로 불경스러운 일입니다. 실로 인간이 아무리 탁월한 지혜와 지식을 가졌다 해도 그것은 피조물로서의 한계 안에서일 뿐입니다. 온 우주히 창조주요, 이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에 비하면 참으로 미미한 것에 불과합니다(고전1:25). 진실로 그 무엇이 되었든 하나님보다 앞세우는 것은 교만이요, 하나님 권위보다 더 우위에 두는 행동은 가증스런 우상숭배입니다.

<결론>

하나님 말씀 앞에 무릎꿇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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