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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의 마음 (마 26:3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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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번 학기말 목회상담학 시험에 학생들에게 이런 문제를 냈습니다.예수믿으면 축복받는 다는 친구의 말에 성공하려고 십일조도하고 새벽기도도하며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다가 그만 사업에 실패해서 낙심하여 교회에 나오지 않는 사람을 어떻게 상담을 하겠는가 하는 문제입니다.여러분이라면 이런 경우에 어떻게 상담하시겠습니까.
상담자가 말을 조리있게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다 더 갖추어야할 중요한 자질은 상대방을 어떻게 이해하고 공감하느냐 하는 것입니다.대부분 사람들은 이런 경우에 역경을 참고 계속 신앙생활을 하라고 권고합니다.그러나 그 보다 먼저 알아야할 사실은낙심과 상처입은 마음을 이해하고 그 사람의 입장에서 공감하는 것입니다.사람은 누구나 자기를 이해하고 공감해 주는 사람을 좋아합니다.어쩌면 우리 모두는 이런 사람을 찾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진정한 이해에서 진정한 사랑이 생기는 것입니다.자녀가 공부하라는 부모의 책망을 이해하지 못하면 사랑 대신에 반항감이 생기게 마련입니다.아무리 재력과 학력과 외모가 훌륭한 결혼의 조건을 갖춘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신을 이해해 주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와 진정한 사랑을 나눌수 없는 것입니다.이해의 다리를 건너지 않고는 사랑의 동산에 도착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주님을 사랑하라고 말합니다.어떻게해야 사랑할 수 있습니까.주님을 진정 사랑하는 마음 역시 주님의 마음을 이해하는데 부터 생기는 것입니다.주님을 이해하는 것 없이 무조건 사랑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십자가를 지시기 전 나 같은 죄인을 위하여 마음의 고통을 당하셨던 주님을 깊이 이해하기 원합니다.그리고 이 이해로 주님과의 더 깊은 인격적인 교제와 사랑이 풍성해 지기를 축원합니다.

먼저 빌립보서 2:6에서 주님을 이렇게 소개합니다.“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라고 말입니다.
여러분 한 임금이 있다고 합시다.그 나라에 가장 아래에 있는 종이나 농부들과 같이 먹고 자며 그들을 이해하고 사랑하고 깨우치기 위한 가장 분명한 방법은 무엇입니까.왕의 행장을 갖추고 신하와 호위병을 거느리고 선물을 준비해서 어쪄다 한번씩 그들을 찾아가는 것이 좋겠습니까.그들을 이해하는 가장 분명한 방법은 왕의 옷을 벗고 농부의 천한 옷으로 갈아입고 그들과 똑같이 되는 것입니다.하나님게서 택하신 방법이 이와 같은 것입니다.구약시대의 많은 세월 동안 율법을 주시기도 하시며 선지자들을 보내어 회개를 외치게도 하셨으며 여러 모양으로 인간을 구원하려고 애쓰셨습니다.그러나 인간은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는 커녕 점점 죄를 범하게 되었습니다.그러므로 모두가 죄의 삯으로 멸망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이러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주님은 하나님과 동등됨을 포기하시고 인간을 사랑하고 구원하시기 위하여 왕으로서하늘 보좌를 떠나 천한 종과 같은 인간의 몸을 입고 이땅에 오신 것입니다.그래서 요한복음 1:14에서 요한은 이런 사실을 이렇게 말씀합니다.“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그러므로 주님은 인간의 몸을 입은 하나님이십니다.신적인 능력을 가지심과 동시에 연약한 인간의 몸과 인격을 가지신 분입니다.
주님의 생애는 짧고 외로운 생애였습니다.날 때부터 헤롯에게 쫒기어 다녔고 30세 때까지 가난한 목수의 집에서 생활하며 성장기를 보냈습니다.그리고 때가 되어 주님은 제자들을 모으고 그들과 함께 복음을 전하며 인간을 돌보셨습니다.주님은 집도 머물 곳도 없이 여기 저기 다니면서 외롭고 병들고 소외된 사람들을 만나셨습니다.그들 곁에는 언제나 주님께서 함께 계셨습니다.이윽고 약3년의 공생애가 끝나고 마지막 사명인 십자가를 져야할 때가 오고 있었습니다.
이제 본문 36절을 보십시다.“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주님의 사역의 마지막은 죽음입니다.십자가에서 모든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죽는 것이 주님의 사명입니다.이제 그 죽음을 불과 몇칠 앞두고 주님은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듭니다.바로 앞에 있는 17-35절의 내용입니다.그 식사를 마치고 주님은 제자들과 함께 기도하며 밤을 보내기 위하여 겟세마네라는 언덕으로 온 것입니다.
여러분 죽음을 앞둔 사람의 심정을 생각해보신 일이 있습니까.
사랑하던 가족과 자녀들과 친구들과 가꾸던 정원과 아끼던 모든 것들과 떠나야 합니다.눈부신 태양과 강들과 아름다운 꽃들을 다시 볼수 없습니다.다시는 돌아 올수 없습니다.인생의 추억들 마져도 다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자녀들은 차가운 내 무덤에 한줌의 흙만 뿌리고 돌아설 것입니다.그러나 그 보다 더 두렵고 절망스럽게 하는 것은 그 죽음 후에 홀로 남을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외로움입니다.다시는 만나지 못할것 같은 고독감,이런 생각들이 모든 사람이 가지는 죽음에 대한 공통적인 생각일 것입니다.
주님도 역시 인간의 인격과 마음을 가지셨습니다.이밤이 지나면 주님은 홀로 죽음의 길로 가야합니다.사랑하던 제자들과 말씀을 듣기 위해 따르던 군중들,이제는 그들과 함께할 수 없습니다.주님은 자주 제자들을 보내고 홀로 산에서 들에서 기도하셨습니다.그러나 이 날밤은 홀로 기도하시기를 원치않으셨습니다.
그가 가장 사랑하는 제자와 함께 밤을 지새고 싶으셨습니다.죽음을 앞둔 인간적인 고독과 외로움 때문이셨습니다.마지막 밤을 사랑하는 제자들과 함께있고 싶었던 것이 주님의 마음이셨습니다.그래서 주님은 8제자와 함께한 가운데 가장 사랑하는 제자인 3제자를 데리고 기도하러 가셨습니다.37절의 말씀은 이렇습니다.“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여러분 만약 여러분이 죽는 그 시간이 찾아 온다면 그 순간에 누구를 여러분 곁에 두고 함께 있고 싶습니까.누가 여러분의 손을 잡아주기 원합니까.아마 나를 가장 잘 이해해 주던 사람,마음속으로 사랑하던 사람일 것입니다.어쩌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듣는 한 마디의 따뜻한 위로와 받고 싶어서 일지도 모릅니다.
베드로, 야고보,요한,그들은 아마도 맨 처음 만났던 정때문일까요.그러나 사실 성경을 보면 그 어느 누구도 주님의 마음과 죽음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같은 부분인 요한복음 16:5절에는 주님은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느냐 묻는 자가 없고 도리어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 하였도다.“라고 하셨습니다.이어 겟세마네동산으로 가시기 전에 16절에서 주님은 또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암시하며 말씀하십니다.“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보리라”.이에 대한 제자들의 반응은 17-18절에보니 이렇습니다.“우리에게 말씀하신바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며 아버지께로 간다는 말씀이 무슨 말씀이뇨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알지 못하노라”하며 제자들은 의아해 하며 서로 수근 거렸던 것입니다.
왜 입니까.제자들의 관심은 전혀 다른데 있었기 때문입니다.그들은 주님을 통하여 세상의 영광을 얻으려하기 때문이었습니다.로마의 정부를 부수고 새 나라를 만들어 출세
해 보겠다는 것입니다.얼마전에 예루살렘성에 입성할때 자기들을 환영한 백성들의 지지열기와 환호소리가 아직도 귀에 가시지 않은 것입니다.그래서 심지어 높은 자리를 누가 맡을 것인가를 두고 서로 말다툼을 하며 싸우기까지 하였습니다.그래서 그들은 주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주님께서 가장 필요로하는 이 밤에 잠을 자고 있었던 것입니다.


38절을 보십시다.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가복음 14:33에는 “심히 놀라며 슬퍼하사”라고 기록합니다.이 부분 의 헬라어 뜻은 “죽음에 처할 정도의 극한 슬픔”“극심한 불안과 근심”등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인간으로서 격을수 있는 극한의 슬픔을 말합니다.
주님의 슬픔은 영적인 이유에서 오는 슬픔입니다.십자가에서 인류의 모든 죄를 홀로 지셔야하는 현실,가장 저주받은 모습으로서 매달려야하는 비애감,실제로 십자가에서 주님은 이렇게 절규하셨습니다.“아버지여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십자가를 지는 순간이야말로 아버지인 하나님으로 부터 철저히 외면 당하는 것입니다.그 순간은 인간의 죄를 대신 심판하는 심판의 순간이기 때문입니다.주님께서 혹 어떤 죄가 있어서 징계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오로지 인간의 죄를 대신하시는 것 뿐입니다.그 순간 세상사람에게 버림받는 것보다 하나님께로 부터 버림받는다는 것이 고독한 것입니다. 아무도 대신할수 없고 주님 홀로 가야하는 사명의 길이기에 외롭고 슬픈 길인 것입니다.
주님의 슬픔은 인간적인 이유에서 오는 슬픔입니다.함께 고생하며 쫓겨다니며 동역했던 많은 친구들과의 이별,이제 육체로는 다시 만날수 없는 사랑을 베풀었던 많은 사람들,무엇보다 아직도 아무 영문도 모르고 있는 있는 제자들을 두고 떠난다는 사실이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더구나 조금전 만찬상에서 떡 조각을 주며 회개의 기회를 주었지만 배신의 눈빛을 감추고 나갔던 제자 유다에 대한 인간적인 서운함,이제 이밤이 지나면 조롱과 멸시와 야유를 퍼부어 댈 수많은 군중들,주님의 마음은 온통 연민과 배신의 아픔과 이별의 슬픔으로 메꾸어져 있었습니다.
또한 주님의 슬픔은 육체의 고통에서 오는 슬픔입니다.고통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주님은 당시 행해지던 십자가의 사형법과 무서운 고통을 알고있었습니다.십자가를 지기 전에 온 몸에 매를 맞아야 합니다.거기서 거의 많은 피를 흘립니다.그리고 그 몸으로 십자가를 자신 스스로 지고 올라가야 합니다.올라가면서 또 째찍을 맞아야 합니다.십자가에 달려서는 온 몸의 물과 피를 다 쏟아야 합니다.몸에는 창과 못자욱으로 상처가 납니다.뜨거운 태양 아래서 목마름과 싸워야 합니다.그렇다고 금방 죽는 것이 아닙니다.조금씩 조금씩 고통을 맡보며 죽는 것입니다.벌거 벗은채 온갖 모욕을 참아야합니다.어느 누가 육체의 고통을 원한단 말입니까.주님은 이 육체의 고통을 홀로 당해야 합니다.조금도 감함이 없는 완전한 고통인 것입니다.
신이라면 고민하지 않습니다.신은 완벽한 판단과 한치의 오차도 없습니다.신은 눈물이 없습니다.아픔도 느끼지 않습니다.신은 인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초대교회시대에 영지주의라는 이단이 있었습니다.“하나님이 어떻게 죄악과 더러운 욕망으로 가득찬 인간의 몸을 입을수 있단 말인가.하나님이 어떻게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르고 고민을 하는가” 라며 주님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분명히 우리와 같은 인격과 육체를 가지셨습니다.병든 나사로의 무덤가에서 주님은 눈물을 흘리셨습니다.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들과 같은 마음을 가지시고 같은 동정을 가지시고 같은 느낌을 가지신 것입니다.
주님은 육체의 고통과 마음의 고통을 느끼셨습니다.오늘밤 주님의 고민과 슬픔은 인간으로서 갖는 극한 고통과 슬픔인 것입니다.
38절 하반절에서 주님은 이렇게 부탁합니다.“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무슨 의미입니까.너희가 비록 내가 가는 이 고난의 길을 갈 수는 없다 할지라도 고통스런 내 마음을 위하여 함께 기도를 해 달라는 것입니다.너희들 만이라도 나 홀로 기도하는 이 밤에 함께 깨어 기도해 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이 부탁 후에 주님은 조금 나아가서 기도하셨습니다.누가복음에 의하면 돌 던질만한 거리입니다.분명히 함께 머물러 기도하기 원하셨지만 주님은 홀로 기도하셨습니다.
한편으로는 사랑하는 그들과 함께 있고 싶으나 십자가를 지고 죽음의 길을 가야하는 이 중대한 일을 위해서는 인간적인 연민과 연약함을 물리쳐야 했습니다.아무도 대신할수 없는 일이기에 주님은 홀로 이일을 위하여 기도해야 했습니다.제자들에게 위로 받기를 거부하고 사명을 위하여 홀로 나가신 것입니다.주님께서 가야할 길과 그들이 가는 길은 달랐습니다.주님이 가시는 길은 아무도 대신할수 없는 길입니다.오직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님만이 하나님과 인간의 막힌 죄의 담을 무너뜨릴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골1:14에는 “그 아들 안에서 구속 곧 죄사함을 얻었도다”라고 기록했습니다.
주님의 기도는 생명을 건 기도였습니다.39절을 보십시다.얼굴을 땅에 대시고 기도하셨습니다.누가복음에는 무릅을 꿇고 기도하셨습니다.얼마나 간절히 기도했는지 땀이 핏방울 같이 될 정도 였습니다.“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이것이 거듭된 주님의 기도였습니다.주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무엇입니까.할수만 있다면 이 고통의 길을 가지 않는 것입니다.그러나 꼭 그 길 만이라면 그 길을 아버지의 뜻대로 가겠다는 기도였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을 울리는 간절하고 슬픔에 찬 주님의 기도가 어둡고 긴 밤을 밝혔습니다.그것은 오로지 인간을 사랑하기 때문에 선택하는 길입니다.진정 인간을 사랑하는 길은 인간과 잠시동안 더 함께 있는 것이 아니라 죽음으로 영원히 하나님과 화목할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입니다.비록 잠시의 고난이 있다할지라고 주님 스스로가 한알의 밀알이되어 희생하고 썩어짐으로 많은 사람이 생명을 얻는 다면 주님은 그 길을 선택하시겠다는 것입니다.죄인이 마셔야할 심판의 쓴잔을 주님이 마심으로,형벌의 쓴잔을 주님이 마심으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구원과 은헤의 단잔이 주어질수만 있다면 주님은
그 잔을 마시겠다는 기도입니다.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일이 있습니다.“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느니라”



주님은 우리의 참 친구가 되시기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습니다.말로만 친구가 아닌 진실한 친구의 길을 선택하신 것입니다.이것이 주님의 마음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립니다.세상의 어떤 종교도 자기들이 믿는 신앙의 대상을 이렇게 약하게 만들지 않습니다.다른 어떤 신보다도 위대하게 만듭니다.인간과 같은 신은 없습니다.이웃 부족에서 만들어 놓고 절하는 바위보다 더 큰 바위를 찾아 절하며 섬기는 것이 사람들의 마음입니다.인간이 만든 신은 모두 위대합니다.오늘의 말씀을 이런 의미로서 이렇게 해야 비로서 조금 신의 모습다워질수가 있을 것입니다.“예수는 죽음을 겁내지 않았다.여유있고 당당하게 자신있게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나아갔다.그들은 예수의 담대함을 보고 놀랐다. 그의 자세와 표정은 하나도 흐트러짐이 없었고 완벽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지 않습니다.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주님은 인간에게 매를맞습니다.눈물을 흘립니다.제자들의 위로를 필요로 합니다.약한 마음으로 기도합니다.죽음을 앞두고 고민합니다.이 잔을 할 수만 있으면 옮겨달라고 기도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예수그리스도는 철저한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대속의 원리는 무엇입니까.만일 미성년인 아들이 죄를 지어 감옥에 가야하는데 그 아들이 가지고 놀던 강아지를 보낼수 있습니까.로보트를 보낼수 있습니까.다른 어떤 것도 안됩니다.그 아들과 같은 인격으로 감옥 속에서 구속의 고통을 느 낄 수 있는 사람인 아버지나 어머니만이 대신 형벌을 받을수 있습니다. 사람이 죄를 범하면 그 사람과 똑같이 고통을 느끼는 사람만이 대신 죄를 할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절저히 인간이셔야 했습니다.우리와 완전히 같은 사람이셔야만 합니다.우리가 당해야할 고통과 아픔과 눈물과 육체의 저주를 우리와 똑같은 몸으로 주님은 대신하셨습니다.그러기에 오늘 주님의 마음은 어떤 위선이 아닙니다.어떤 목적을 가진 제스츄어가 아닙니다. 비우리들이 느끼는 마음 그대로입니다.
비록 십자가로 가는 길이 제자들이 함께 갈수 없는 길이지만 그들과 마지막 밤의 슬픔을 함께 나누고 싶었던 주님의 마음,머리를 땅에 대며 죽음의 용기를 구했던 주님의 마음,몸을 가진 인간으로서 끈질기게 붙드는 삶의 미련과 생의 애착을 단절해야하는 몸부림,하지만 인간을 사랑하셔서 우리의 형벌을 대신 받기위하여 고난의 쓴잔을 선택하는 사랑의 마음,밤이 맞도록 육체의 안락을 요구하는 본능과의 투쟁끝에 인간을 위하여 스스로를 고통 가운데 내던지기로 결단하는 희생의마음,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동시에 인간이었기에 고통스런 선택의 길목에서 긴 밤을 세웠던 것입니다.
누구 때문 입니까.바로 죄로 병들어 영원한 멸망에 처한 여러분과 저를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여러분은 이 주님의 마음을 이해하십니까.동정어린 눈으로 제자들을 바라보며 이 밤에 나와 함께 깨어있자고 부탁하시던 주님의 마음을 이해하십니까.우리 속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식어질때 그리스도인은 그때 부터 추하게 됩니다.아름다움의 빛이 사라지는 것입니다.오늘 이시간 주님께서 우리들 마음 가운데 다시한번 인격적으로 만나주실 것입니다.꺼져가는 사랑의 심지를 돋우워 주실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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