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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는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마 28:1-10 , 출 1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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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대신 십자가에 죽으셨고 또한 부활하심으로 우리도 함께 부활의 감격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이는 죽었던 우리가 생명을 얻어 하늘나라에 시민이 되게 하시었고 주님이 계신 곳에 우리도 있게 하시었습니다. 출애굽 사건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어떻게 구원하셨는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함으로써 하나님의 구원사를 자세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한 출애굽은 과거에 행하신, 그리고 미래에 행하실 하나님의 구원 사건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홍해에서의 구원 사건은 홍해를 가르심으로 이스라엘이 바다를 육지처럼 건너간 사실과, 바로의 그 군대를 멸하신 하나님의 승리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를 느낄 수가 있습니다.
갈라진 바다를 건넌 사실은 전통적으로 구원 즉 죽음에서 생명으로, 노예 상태에서 자유의 자리로 변형된 사건으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구원 경험은 애굽에서 광야의 생활로의 변형이며, 바로의 노예 상태에서 하나님의 백성 상태로 바뀌어 졌습니다. 하나님 백성의 삶은 생명의 삶이며, 광야를 지나가야 하는 여정의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보며, 결국 이르게 될 약 속의 땅을 소망하며 걸어가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광야의 삶을 대신 살으셨습니다. 친히 마귀와 싸워 승리하셨고, 시험을 이기시고 죽으심으로 마침내 다 이루셨다고 말씀하시었습니다. 또한 무덤에서 다시 사심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약 속의 땅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마태는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일련의 과정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무덤에서늬 사건에 대한 것이고(1-7)
두 번째는 여인이 제자들에게 부활 소식을 전하기 위해 무덤을 떠나는 장면이고(8)
세 번째는 도중에 나타나서 말씀하시는 장면입니다(9-10).

마태는 이 부활 사건의 기록에서 신적인 요소를 훨씬 강조하고 있습니다. 마가는 무덤에 있는 청년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마태는 하늘로부터 내려온 천사로 설명하고 있고 돌을 굴려 무덤을 연 것도 천사들이 한 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옷은 눈과 같이 희었습니다. 더군따나 마태의 무서움과 두려움의 분위기 묘사는 이 사건의 신성한 측면을 더욱 강조해 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언급되어야 할 것 가운데 하나는 마태의 “임마누엘 신학”입니다. 마태복음서는 처음과 마지막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의 임마누엘 신학으로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출생 기사를 통해 이 사실이 선포됩니다. 그리고 이 본문과 마지막 부분에서 다시 한 번 강조되고 있습니다.

1. 무덤을 찾은 여인들

이른 새벽, 그대로 잠들 수 없어서 무덤을 찾은 여인들의 모습은 매우 아름다운 신앙의 모습입니다. 이 속에서 우리는 그들이 얼마나 주님을 사랑했는가를 보게 됩니다. 마가에 의하면 그들은 주님의 시신에 향유라도 발라 드릴 목적으로 새벽을 열어 가고 있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아름다운 신앙에 한 가지 더 필요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부활 신앙입니다.
그들은 이른 새벽 무덤을 찾아가고 있었지만 주님의 부활을 믿고 무덤을 찾았던 것도 아닙니다. 주님의 부활을 믿고 무덤을 찾았던 것도 아니고,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 가는 걸음은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아직은 부활 신앙을 갖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이른 아침 예수님의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을 잃고 슬픔이 극도에 달해 있던 그녀에게는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졌다는 생각으로 더욱 큰 절망 속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 순간 그녀에게는 예수님께서 당하셨던 십자가의 고통이 머리를 스쳐갔고 예수님을 조롱하던 군중들의 고함소리가 귓가를 심하게 두드렸습니다. 예수님의 모습을 떠울리며 로마 군병들의 채찍과 못박는 소리 천둥 번개소리 예수님의 머리에 가시관 못자국의 피흘림 고통당하시던 예수님의 모습을 기억하며 무서워 떨며 울고 있었습니다. 그때입니다. 무덤의 돌을 치우고 그 위에 앉아있던 천사들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2. 천사들의 메시지:

“그는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주님께서는 먼저 그들의 부활 신앙을 일깨우기 위해 천사를 준비시키십니다. 천사들의 첫마디는 “그는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였습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주님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천사들은 그들의 부활 신앙을 일깨우기 위해 무덤 안으로 그들을 이끌어들여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그들이 부활 신앙을 가진 성도들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천사들이 전해주는 부활의 소식을 들은 여인들은 두려움 반 기쁨 반 으로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천사들의 메시지를 다른 제자들에게 알게 하려고 그들은 정신없이 달음질 쳤습니다. 왜냐하면 갈릴리로 먼저 주님이 가계신다는 그 기대가 그들을 뛰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아직 주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사셨다는 희망과 부픈 가슴을 안고 앞만 바라보고 달려가는 것이었습니다. 숨이 찬 줄도 모릅니다. 여기 계시지 않고 갈릴리에 계신다는 그 소식이 그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습니다. 그 때 였습니다. 바로 그 순간 주님도 함께 그 여인들과 달리고 계셨습니다. 마치 마라톤 선수에게 걸음발을 조절하듯이 가쁜숨을 조절해주듯이 코치하는 감독처럼 그들과 호흡을 같이 하며 함께 뛰고 계셨습니다.

3. 달려가던 그 자리에서 만난 주님

그들은 주님의 부활 사실을 확인하고, 천사들을 통해서 들려주시는 부탁의 말씀을 듣고 갈려가고 있었습니다. 부활의 첫 소식을 전하려는 일념으로 힘껏 다려가던 도중에 그들은 주님을 만나 뵈었습니다. 주님께서 그들과 함께 달리고 계셨으며, 이는 임마누엘 하셨음에 대한 가시적인 표현입니다. 그들은 주님이 죽으시어 자기들의 곁을 떠난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의 곁을 떠나신 적이 없었습니다. 그들보다 한 발 앞서 달리시며 그 길을 인도하시면서 말씀하십니다. 평안을 끼치러 오신 예수님께서 여자들에게 가라사대 “ 평안하뇨” 부활후 첫 번째 하신 말씀입니다. 이제 안심하라는 말씀입니다. 두려워 하는 신앙이 아니라 기쁨의 신앙입니다. 부활의 신앙을 확실히 믿는 신앙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잡으려고 그들은 주님의 발을 잡고 경배를 드렸습니다. 주여 이제 저희들이 살아계신 주님을 뵈오니 감사합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사흘만에 다시 사시겠다고 하신 말씀이 이러어 짐을 감사하며 저희들이 발을 만져봄으로 이제 믿겠습니다. 주여 저희들과 함께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주님께서는 사랑하는 여인들의 눈물을 흠쳐주시며 무서워 말라 네가 항상 너희와 함께 하리라 너희는 이제 먼저 너희들과 무덤에 찾아와 빈 무덤을 보고 실망에 빠져 각기 제 빕으로 돌아갔던 제자들에게 또 각기 저들의 옛 생활로 돌아가 살고 있는 그들에게 나를 보리라고 전하라는 새로운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 때에 주님이 오늘 우리에게 나타나시어 평안을 주시며 새로운 소명과 사명을 주십니다. 항상 그들의 삶 속에 살아계셨던 주님이, 지금도 살아계십니다. 보혜사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4. 주님의 메시지

“ 갈리리에서 만나자”
주님께서는 사랑스런 여인들을 만나주시고, 확인시켜 주시고, 그들의 사명을 새롭게 확인시켜 주신 후에, 제자들에게는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첫 사랑의 자리인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만나기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그 자리로 부르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온 세계를 변화시켜야 할 막중한 사명을 짊어져야 할 제자들을 갈리리로 부르고 계십니다. 그곳에서 주님은 북음의 대 위임을 단행하실 것입니다. 잃어버린 첫사랑을 잃어버린 믿음을 잃어버린 주님을 향한 신뢰와 주님의 음성을 그들에게 들려주고 되찾아 주시기 위해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하셨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은 산 소망교회에서 만나자고 하신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새로운 대위임장을 부여받고 막중한 사명을 감당하게 하실 것입니다.

5. 내가주를 보았다.

그들은 내가 주를 보았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갈릴리에서 나나자고 하셨다. 이것이 여자들의 확실한 증거였습니다. 그녀는 제자들에게 이것을 중거했습니다. 그 여자들의 믿음은 이제 주님을 증거하는 믿음으로 성숙해 있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아무런 의심도 없었습니다. 거기서 나를 보리라 이것이 명확한 부활절의 고백입니다. 주님은 부활하셨습니다.다른 사람들도 곧 이어서 고백할 것입니다. 바로 이날 이곳에서 주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정말로 부활하셨습니다. 부활의 신앙을 갖지 못한 제자들은 주께서 십자가를 지러가실 때 모두 배신하고 그 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두려움 속에 살았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그들은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했던 그들이 이제는 생명을 내어놓고 복음을 중거하게 되었습니다. 무엇이 그들을 이토록 변화시켰을까요 그것은 주님의 부활이었습니다. 부활을 목격한 그들에게 이제 죽음이란 별 의미가 없는 것이요 두려워 할 것도 아니었습니다. 부활의 신앙은 우리에게 담대함을 줍니다. 그것은 신앙적 용기와 능력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부활 신앙은 우리 믿음의 가장 핵심적 자리에 위치해야 합니다. 부활이 없다면 우리가 믿는 모든 것은 헛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권능을 권세를 주시어서 부활의 소식을 전파하는 곳곳마다 새로운 생명이 살아 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내 양을 먹이고 치라고 명하셨습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겠습니까. 주님계신 곳에 우리도 있게하시려고 부활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계신 그곳에 우리도 있게 하시려고 부활하시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미 그곳에 있게 된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부활은 하나님만이 이루실 수 있음을 믿읍시다.
공자의 제자 자로가 공자에게 죽음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때 공자는 사는 것도 모르는데 죽는 것(죽음 이후)를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고 대답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솔직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부활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부활은 예언의 성취임을 믿읍시다. 부활은 이미 예언된 것을 하나님께서 이루신 것입니다.
부활은 역사적 사실임을 믿읍시다.
부활의 소망으로 승리하는 믿음 생활을 합시다.

설교후 기도

주님, 무덤 문을 깨치시고 영원한 생명의 길을 열어주신 주님께 영광과 찬송을 돌립니다. 부활하심은 우리의 힘이요, 용기요, 삶의 의미요, 희열인 것을 생각할 때 한없이 감사드립니다. 사랑은 있으되 부활 신앙을 갖지 못한채 무덤을 찾는 신앙이 되지 않게 하시고, 주님의 살아 계심과 부활을 통해 허락하시는 새 명명의 비밀을 온 세상에 전하는 사명자들로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날마다 사명의 자리에서 임마누엘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시옵소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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